“방심하지마라, 처음의 한 장이 모두를 침몰시킬 수 있다. 포기하지마라, 최후의 한 장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LT유스 추계리그 16강! A조 1경기는 강남해 선수의 승리로 끝났고 16강 2경기는 박영애 선수의 승리!
두 선수가 8강에 진출해 대진이 확정된 가운데 이제 16강 B조 1경기를 앞두고 있는 LT유스입니다!!”
한창 해설자들이 열변을 토하기 시작할 때, 금선은 대기실에서 준비한 덱을 한 번씩 확인했다.
상대가 셀프 밴을 쓸 곳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밴할 상대 덱도 크게 고민할 것 없다.
그러면 무슨 덱을 써야할까? 금선은 덱 케이스 둘을 들고 고민에 잠겼다. 금선이 마음을 굳힌 직후 대기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최금선 선수, 시간 됐어요.”
스태프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금선은 양손으로 얼굴을 살짝 치며 정신을 집중해했다.
세 번이나 거꾸러트린 상대라면 겁낼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주먹을 쥐면 으스러질 손바닥 위의 참새를 두려워할 사람이 어딨을까?
“자, 자. 가자 금선아. 세 번 붙어서 세 번 다 박살난 새끼 뭐가 겁나? 그냥 대가리 쪼개버리고 다신 붙을 생각도 못하게 해주면 되잖아.”
혼잣말을 마친 금선은 생글생글 웃으며 문을 나섰다.
가자, 박살내러.
가벼운 발걸음과 얼굴에 가볍게 띄워진 미소를 유지한 채 금선은 복도를 걸어갔다.
어두운 복도를 지나 금새 환한 조명이 가득한 무대가 보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사이, 저 무대 위에 보이는 상대.
중학생 시절이랑 비교하면 변하긴 했다. 키도 컸고 머리색도 변한 걸 보면 물들인 거 같다.
교복 대신 흰색 외투를 걸친 걸 보니 코디가 자기랑 적대하는 이미지를 잘 맞춰준 모양이다.
하지만 껍데기만 달라져선 무슨 소용일까. 내용물이 그대로인데.
“16강 B조 1경기 대진은 최금선 선수 대 고동준 선수! 고동준 선수 대 최금선 선수! 최금선 선수는 정말 간만의 방송 공식전!
그리고 고동준 선수는 중학교 3학년 당시 최금선 선수랑 세 번을 만나 세 번을 모조리 진 악연의 상대입니다!”
“맞습니다. 상대전적 3:0. 그 일 년간 세 번을 만나는 경우도 드문데 그 와중에도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오늘 고동준 선수가 최금선 선수를 꺾는다면! 남은 경기 훨씬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상위 라운드 진출도 충분히, 8강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이야말로 복수극의 날이 될 것이냐, 오늘마저 늘 그랬듯이 짓밟히고 말 것이냐. 오늘 방송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긴장감 넘치는 이번 대회의 배경음악과 함께 해설자와 캐스터들이 이번 승부의 이야깃거리를 속사포처럼 토해냈다. 무대 위에 올라온 금선의 모습은 평소와는 달랐다.
날이 쌀쌀해지면 자주 쓰던 회색 비니는 보이지 않았다. 교복 대신 입은 옷도 평소의 편하고 캐주얼한 복장이 아니었다. 대신 진한 붉은 색 상의를 검은색 점퍼로 덮고 하의는 긴 치마를 입은 흡사 여성 록 가수 같은 모습이 되어있었다.
“금선이 쟤 잘할 수 있을까?”
“너 금선이 중학생 때 못 봤구나.”
객석에서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금선을 바라보는 원형과 달리 준오는 괜한 걱정을 한다는 듯 말했다.
준오는 부속 중학교에서 금천으로 진학했고, 원형은 외부 중학교에서 진학했기에 중학생 시절의 금선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 정도냐?”
그래서 원형은 금선을 보며 가끔 이해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금선의 실기 성적은 분명 좋은 편이다. 필기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자신이 본 경기 중에는 남해나 지민처럼 학교 밖에서 커다란 성과를 보여준 적도 없었다. 좋은 편이지만 압도적으로 빼어난 것까진 아니다.
하지만 금선의 중학생 시절을 본 아이들은 하나같이 금선의 수준을 최소한 1군의 말석에는 쳐줬고, 높게는 지민 바로 턱 밑의 3인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민만큼의 열정도 없고, 남해만큼의 승부욕도 없는 애가 왜 저렇게 평가가 좋을까.
그 해답이 원형의 눈 앞에 펼쳐지기 직전이었다.
…
“어떤 것 같니?”
“솔직히 그때랑 비슷한데요?”
경기 전날, 목사와 금선은 함께 동준의 로그를 분석하고 있었다.
힐이란 건 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피곤한 컨셉이다.
관객은 맥없이 무너지는 잡졸에게 열광하지 않는다. 시련에 걸맞은 강대하고 무시무시한 적이 나올 때 환호한다.
상대를 알아야 하고 자신을 알아야 한다. 막 던지는 거 같은 트래시토크도 상대에 따라 선이 앞뒤로 오가기 마련이다.
그 선을 넘어버리면 악역의 연기자가 아니라 양아치에 불과하다.
듀얼에서 보여주는 독하고 거친 플레잉, 승부 전의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자존심 강하고 세 보이는 모습까지. 이런 것 하나도 힐에게는 과제다.
그런 금선에게 ‘나의주의 수제자’라는 이미지는 커다란 방패가 되어줬다. 꼭 이미지가 아니어도 금선은 목사에게 배우는 것들이 많았고.
“그 시절 습관 그대로에요. 카드 드로우하는 모습도 그렇고 이런 사소한 데도 그냥 뭐…
머리 염색할 시간 있으면 이거나 연구해오지. 얘랑 조 짠 매니지먼트과 애는 일 잘 안 하나봐요.”
중학교 3학년 당시 바쁘게 일 년을 불태웠다. 그러고서 금선은 지쳐버렸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쉴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다시 달릴 시간이다.
…
“자! 밴픽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고동준 선수의 자가 밴부터 보시겠습니다. 두 분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동준 선수 덱이 셋 있습니다만, 이 덱들 중 가장 숙련도 문제가 많이 나오는 덱이 [밸리언츠]입니다. 밴픽 꼬여서 이것만 남았을 때 가장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덱인만큼 자가 밴은 역시…”
- <밸리언츠>
“아 역시 밸리언츠!”
“이렇게 되면 최금선 선수 밴에 주목할 차례인데요. 가장 만나기 싫은 덱이라면 아마 예선에서 제일 활약한 [불꽃성기사]일 겁니다.”
“그렇죠 역시. 이왕 밴할 거 제일 강한 덱부터 밴하고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 <불꽃성기사>
화면에 떠오른 동준의 덱 셋 중 <밸리언츠> 패널은 암전됐고 <불꽃성기사> 패널은 붉게 물들었다. 이제 금선의 차례가 돌아왔다.
“이렇게 되면 고동준 선수의 덱은 [마건]으로 확정됩니다! 그리고…”
…
“밴픽은 어떻게 하려고? 금선이 넌 어떨 것 같니?”
“으으음… 다른 건 몰라도, 셀프 밴은 노이드 말고 다른 덱 하려고요.”
“이유는?”
“예선 보면 묘지 저격하는 카드랑 제외 메타하는 카드는 한 장씩은 꼬박꼬박 썼어요.
저 정도까지 노이드 노골적으로 견제하는 카드 욱여넣었잖아요? 노이드를 정면돌파하고 자기가 저번과 다르다고 증명하고 싶은 거라고 생각해요.”
방송무대에서 노이드에게 세 번씩이나 깨져서 탈락했으면 당연히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겠지.
아예 동준의 덱 하나는 묘지 비중이 낮은 펜듈럼 덱이었다. 덱으로 넘어가면 결국 LT유스의 특성상 밴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싫은 덱이면 밴하지 않겠어?”
“그럴 생각이었으면 저렇게 병적으로 묘지 견제 카드를 쓰진 않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쟤가 지민이처럼 너 할 일 해라~ 하는 타입은 아니니까요.”
남해와 달리 금선은 지민에게 전적이 눈에 띄게 열세였다.
다른 학생들은 금선과의 듀얼 전부터 긴장하고 시작한다. 그리고 게임 중간중간 금선이 던지는 말이 상대를 더욱 위축시키니 주도권도 금선이 쥐고서 몰아붙일 수 있다.
그런데 지민은 다르다. 상대가 강할수록 타오르는 투쟁본능 덩어리다. 상대가 무슨 카드를 써도 위축되지 않고 제 할 일을 한다. 구석에 몰아넣어도 드로우 페이즈가 지나면 다 잊고 회복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려고?”
…
“이제 최금선 선수의 밴 차례입니다. 역시 덱 파워라던가 예선에서의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데스피아를 살리지 않을까요?”
“고동준 선수의 밴 카드는 당연히 노이드일테니…”
- <데스피아>
그때 금선의 덱 리스트 중 <데스피아> 패널이 점멸했다. 남해는 문득 그 패널의 색이 눈에 들어왔다.
…반은 붉고 반은 검은 패널도 있었나?
“아니, 16강에서 벌써 더블밴이 나왔습니다!!”
“두 선수 밴 카드가 겹쳤어요! 고동준 선수 노이드가 아니라 데스피아 밴했나요? 최금선 선수가 지금 가장 살릴 것처럼 보이던 데스피아 닫았어요!!”
“더블밴?”
동준의 당혹한 표정, 그리고 목소리가 높아진 해설진의 이야기에 낙랑이 남해를 쳐다봤다.
금선이 덱을 하나 꺼내 D-패드에 꽂을 무렵 무대 장비들이 가동되기 시작했고 양쪽의 D-패드도 덱을 읽기 시작했다.
“서로 밴 카드 겹쳤을 때 말하는 거야.”
“아, 전에 말한 그거구나. 어? 그러면…”
그러면 금선의 덱은 듀얼이 시작할 때까진 동준을 포함해 아무도 모른다. 저 D-패드에 꽂힌 카드는 오직 금선만이 알 뿐이다.
“그나저나 데스피아라니…”
-“주군의 은사께서 아무리 주군을 아끼기로, 설마 불공평하게 주군에게만 뭔가 챙겨주었겠습니까?”
뭐, 생각해보면 자신만 목사님께 뭘 받았을 리 없긴 하다. 금선의 이미지와도 매우 어울리는 카드인건 부정할 수 없다.
대놓고 악당을 연기하는 배우와 극단 컨셉에 융합 테마니 금선에게 꼭 맞긴 하지.
그 사이 무대의 중앙에 커다란 동전이 올라왔다. 휭휭거리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동전이 맹렬하게 회전하다가 점차 속도를 줄였다.
이윽고 동전은 속도를 줄이고 줄인 끝에 동준을 바라본 채 멈춰섰다.
““듀얼!!””
융찬은 패를 확인한 다음 하나를 뽑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더블밴. 당연히 데스피아와 노이드를 살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니 프레데터 플랜츠를 밴 하리라 생각했는데 둘 다 아니다.
이쪽의 생각을 읽은걸까? 아니야,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일 거야.
“먼저 패에서 지속 마법 [베어진 어둠] 발동!”
“진행해~”
금선의 목소리에 동준이 움찔했다. 아주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본 금선은 아무 일 없듯 미소 띤 얼굴로 동준을 쳐다봤다.
동준은 중학생 시절 금선에게 지독하게 시달렸다. 교대표 8강에서 금선에게 압살당한 기억도 있었고 채 계절이 끝나기 전 다른 대회 32강에서도 처절하게 붙은 끝에 끝끝내 승리를 놓쳐버렸었다.
-“뭐야~? 그게 네 에이스였어? 너무 쉽게 터지는 거 아냐?”
-“아하하하하하하하!! 네 비장의 수였지만 간단하게 막혔네! 아직 하나 더 있어? 솔직히 없겠지, 그럼 비장의 수가 아니잖아?”
-“들어와, 들어와! 지뢰인지, 허세인지는 밟아보면 알겠지!”
금선의 독기는 그 시절에 비하면 많이 빠지긴 했다. 하지만 저 미소만큼은 그때랑 똑같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기고 만다. 동준은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플레잉을 이어갔다.
“이어서 패에서 필드 마법 [마건시해] 발동, 발동 시의 효과처리로 덱에서 [마건총-바토스버스터]를 서치. 그리고 [예상외] 발동!”
“체인, 거기에 [하루 우라라] 던져요.”
동준의 머리 위에서 벚꽃잎이 흩날렸다. 장난기 섞인 웃음소리와 함께 [예상외]의 카드가 방전을 일으키며 산산조각 났다.
그래도 동준은 흔들리지 않고 패 하나를 더 뽑았다.
“패에서[레스큐 래빗] 일반 소환! 레스큐 래빗을 게임에서 제외하고 덱에서 일반 몬스터 [가가기고]를 둘 특수 소환!!
이때 [베어진 어둠]의 효과로 덱에서 한 장을 드로우!”
금선은 별다르게 반응해주지 않았다.
동준은 최대한 자신의 페이스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D-패드를 터치했다. [마건시해]의 카드가 빛을 발했다.
“[마건시해]의 3번 효과! 덱의 [마건-마프테아]를 패에 넣고 패 하나를 덱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마프테아의 효과를 발동, 덱의[마건총사-클라비스]를 소재로 의식 소환!
마의 열쇠로 새로운 에너지를 해방시켜 새 힘을 불태워라! [마건총-바토스버스터], 라이징!!”
[마건총-바토스버스터/Lv4/2000/2200]
동준의 필드에 금발의 소년이 가볍게 착지했다. 소년은 들고있던 총을 장전하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탱-!! 하고 쇠가 튕기는 소리와 함께 총이 빛을 발하며 소년보다도 거대한 미니건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어서 동준의 덱에서 카드 하나가 뽑혀나왔다. 바토스버스터의 효과였다.
“바토스버스터의 효과로 덱에서 [마건]카드인 [대마건-마프테아르]를 패에 넣는다!
그 다음, 가가기고 두 장을 오버레이! 랭크 4 [심연에 숨은 자]를 엑시즈 소환!”
[심연에 숨은 자/Rnk4/1700/1400]
파도 소리와 함께 몸 곳곳에서 푸른 빛을 발하는 검은 용이 바토스버스터의 옆에 웅크리고 앉았다. 금선은 그 카드를 보고 실소가 새어 나왔다.
“심숨자야? 노이드 트라우마가 크긴 했나 보네?”
동준이 대꾸하지 않고 패에서 다른 카드를 뽑았다. 금선은 동준이 대꾸하지 않고 있자 제 할말을 이었다.
“하긴, 아무리 바보라도 세 번이나 당하면 대책은 세워와야지. 그렇지?”
“[대마건-마프테아르]의 효과 발동. 자신을 패에서 공개하고 [마건] 몬스터를 일반 소환. 마프테아르를 일반 소환하고 마프테아르로 클라비스를 소생시킨다. 이번엔 레벨 4 클라비스를 마프테아르에 튜닝!
마의 열쇠로 잠든 악마를 깨워 승리로 나아가라! [마건변귀-트랜스풀미네], 라이징!!”
[마건변귀-트랜스풀미네/Lv8/2800/2800]
이번에도 소년이 총을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에는 방금과 다르게 악마가 소년의 몸 속으로 흡수됐고 새빨간 불꽃이 소년을 집어삼켰다.
불꽃의 안에서 포효하며 붉은 마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금선이 장기 나온다.”
준오가 무대 위의 금선을 보며 원형에게 귀띔했다.
금선이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 여러 이유로 방송 무대를 오르지 않았기에 원형은 금선의 ‘힐 컨셉’에 대해 듣기만 할 뿐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와, 되게 거슬리네.”
“트랜스풀미네의 몬스터 효과로 덱에서 [마건] 마법이나 함정을 세트!”
“누구 맘대로? 패에서 [무한포영] 발동할게요. 트랜스풀미네가 대상이야.”
빠찍-!! 바닥에 생겨난 마법진에 트랜스풀미네가 들고있던 벼락을 꽂으려던 찰나 그 벼락이 형태를 잃고 방전됐다.
트랜스풀미네는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트랜스풀미네가 쓰러지며 넓어진 시야 너머, 동준의 눈에는 실실 웃고 있는 금선의 얼굴이 보였다.
동준은 굳은 표정으로 금선을 노려보며 [End Phase] 패널을 터치했다.
“턴 종료.”
-고동준/LP 8000/패 1장
“내 차례, 드로우~”
두 번이나 찌른 것 치고 동준은 꽤 건실한 필드를 세웠다.
묘지의 클라비스가 어둠 속성이니 모든 몬스터가 어둠 속성인 프레데터 플랜츠 상대로 [마건변귀-트랜스풀미네]로 한 번의 견제 기회가 있다. 묘지에서 격발될 효과 역시 [심연에 숨은 자]가 견제할 것이다.
아무리 바보라도 세 번은 안 된다고 한다는데 세 번을 당했다. 그러니 동준은 이를 갈고 피눈물을 흘리며 오늘의 듀얼을 준비했을테지.
하지만 금선의 덱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지금의 필드는 차선책에 불과했다.
“음… 먼저 패에서 [프레데터 플랜츠 세라세니앤트]를 일반 소환합니다.”
[프레데터 플랜츠 세라세니앤트/Lv1/100/600]
세라세니앤트는 효과로 묘지로 보내지게 되면 격발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동준은 트랜스풀미네의 효과를 아직 발동하지 않았다. 심연에 숨은 자의 효과도 이 카드를 묘지로 보낼 효과에 체인하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했겠지?
체인이 걸리지 않자 금선은 일말의 고민 없이 패의 다른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러면 패 한 장을 버리고 마법 발동, [초융합]!”
-“여기서 초융합! 초융합 나왔습니다!!”
-“패 한 장 남기고 최대한 필드 세웠는데 이렇게 되버리면 안됩니다!!”
금선의 필드에 생겨난 소용돌이가 세라세니앤트를 먼저 집어삼켰다. 그리고는 바토스버스터를 든 클라비스를 노렸다. 클라비스는 필사적으로 들고있는 총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거의 금선의 필드 코앞까지 클라비스가 끌려오자, 바토스버스터의 손잡이가 스르륵 사라지며 클라비스를 두고 혼자만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소용돌이 안에서 보랏빛 광채와 질척거리는 소릴 내며 거대한 꽃 한 송이가 자라났다.
“어둠 속성 몬스터와 프레데터 플랜츠 한 장을 소재로 [프레데터 플랜츠 키메라플레시아]를 융합 소환할게요.
여기에 묘지로 간 세라세니앤트, 패에서 버린 [프레데터 플랜츠 비브리스프]의 효과도 발동.”
“거기에[심연에 숨은 자]와 트랜스풀미네의 효과 발동!”
-“안돼요! 이미 늦었어요! [심연에 숨은 자]의 효과는 발동을 막는 효괍니다. 이미 발동한 효과는 무효로 못해요!”
-“이렇게 너무 당연하게 최금선 선수가 이득을 보는 흐름이면, 과감하게 전개했어도 지속력이 훨씬 떨어지는 고동준 선수 최소한 이 차례라도 어떻게 넘겨야 해요!”
트랜스풀미네가 다시 손아귀에 벼락을 모아 키메라플레시아를 향해 던졌다.
벼락이 작렬한 키메라플레시아는 순식간에 새까맣게 타버렸다. 금선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덱에서 카드를 둘 뽑아 패에 넣고 플레잉을 이어갔다.
“덱에서 그럼 [프레데터 플랜츠 부포리큘라]와 [프레데터 플랜츠 트리안티스]를 패에 넣고, 양 쪽에 세팅해 부포리큘라의 효과로 둘을 융합!”
금선이 잠시 남은 패 하나를 D-패드에 고정시켰다. 그리고는 양 팔을 크게 펼치고는 박수치듯 빠르게 손을 모아 합장했다. 금선의 등 뒤에서 갑작스레 덩굴들이 뻗어나왔다.
뻗어나온 덩굴들은 서로 얽히며 마치 관상수처럼 특정 모양새로 변해갔다. 그리고는 악어를 닮은 모습으로 변하며 서서히 구체적인 모양을 갖춰갔다.
“나와라, [프레데터 플랜츠 암불로메리두스]!”
[프레데터 플랜츠 암불로메리두스/Lv5/1000/2500]
-“심연에 숨은 자 자체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고, 융합 소환 위주 테마에게도 아주 강력한 카드입니다. 가뜩이나 고동준 선수가 데이터 상으로 불리하고 최금선 선수에게 노이드로만 세 번 졌던 와중에 진짜 합리적인 선택인데!!”
-“지금 소재로 쓴 부포리큘라랑 트리안티스 둘 다 펜듈럼 몬스터라 묘지로 안 가요. 이건 못 막습니다. 못 막습니다!!”
“암불로메리두스의 효과를 체인 1, 부포리큘라를 2, 트리안티스를 3에 놓고 효과처리 할게요. 트리안티스로 트랜스풀미네에 카운터 하나 얹고 부포리큘라로 트리안티스를 회수한 다음 암불로메리두스로 덱의 [프레데터 플랜츠 프랙티스]를 패에 넣어요.”
트랜스풀미네의 머리 위에 식충식물의 잎사귀처럼 생긴 카운터 하나가 생겨났다. 그와 함께 동준이 가슴팍에 올 정도로 크던 트랜스풀미네의 덩치도 반대로 동준의 가슴팍에 올 정도로 작아졌다.
금선은 뽑혀나온 카드 둘과 아까 꽂아둔 카드를 패에 넣다 말고 심연에 숨은 자를 한 번 쳐다봤다. 거기에 대해서 금선은 말하진 않았지만, 원형은 꼭 그 카드가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와, 장난 아니다. 금선이 쟤 저런 애였냐?”
“완전 악마의 주둥이라니까. 금선이가 중3때 4강에서 떨어졌거든? 그때 상대가… 아 누구더라.
어쨌든 걔는 귀 닫고 지 할 것만 하는 애라 안 흔들리니까 금선이가 오히려 박살나긴 하는데… 저 주둥이한테 안 흔들리는 애가 희귀종이지.”
“[프레데터 플랜츠 프랙티스]의 효과로 패의 트리안티스를 특수 소환하고 덱에서 [프레데터 그래프트]를 서치. 그리고 발동, 묘지의 키메라플레시아를 소생시켜요.
그리고, 암불로메리두스의 효과로 트랜스풀미네를 릴리스하고 덱의 [프레데터 플랜츠 썬듀킨지]를 특수 소환!”
트랜스풀미네 머리 위의 카운터가 입을 쩍 벌렸다. 머리 위에 드리운 그림자에 트랜스풀미네가 위를 쳐다본 순간 거대한 주둥이가 한순간에 트랜스풀미네를 집어삼키곤 땅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직후 금선의 필드에 작은 새싹이 자라났다. 새싹은 방금 전처럼 빠르게 자라나며 도마뱀의 모습으로 변했다.
[프레데터 플랜츠 썬듀 킨지/Lv2/600/200]
“썬듀킨지의 효과 발동, 썬듀킨지와 암불로메리두스를 소재로 융합!
자, 그 아가리를 벌리고 적을 포식해라! [프레데터 플랜츠 드라고스타페리아]를 융합 소환!”
[프레데터 플랜츠 드라고스타페리아/Lv8/2700/1900]
썬듀킨지와 암불로메리두스의 형체가 무너지며 덩굴로 되돌아갔다.
다시 마구 얽히며 징그럽게 꿈틀거리던 두 몬스터는 이번에는 용의 모습으로 변해 금선의 필드로 발을 내딛었다.
금선의 미소는 이제 여유를 즐기는 강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먹잇감을 보고 이빨을 드러내는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동준보다도 관객석의 원형이 더 겁먹은 표정이 된 사이 금선의 D-패드에서 [Battle Phase] 패널이 빛났다.
“배틀! 드라고스타페리아의 효과로 심숨자에게 카운터를 얹은 다음, 키메라플레시아로 심숨자를 공격! 키메라플레시아의 효과로 서로의 능력치도 변화!”
[심연에 숨은 자/A 2200 → 1700]
-“이렇게 되면 심연에 숨은 자의 효과는 무효가 되고 공격력도 원래 수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턴 플레이어인 최금선 선수의 키메라플레시아 효과가 체인 1, 고동준 선수의 베어진 어둠이 체인 2가 돼요!”
[심연에 숨은 자/A 1700 → 4200 → 3200]
[프레데터 플랜츠 키메라플레시아/A 2500 → 3500]
키메라플레시아가 덩굴을 뻗어 심연에 숨은 자를 덮쳤다. 심연에 숨은 자의 발목이 묶인 사이 거대한 식충식물의 아가리가 심연에 숨은 자를 머리부터 집어삼켰다. 원형은 소스라치게 놀라 옆자리의 준오에게 몸을 찰싹 붙였다.
뒤이어 스타고페리아와 트리안티스가 날아들어 동준을 한 번씩 베고 지나갔다.
금선은 패에 남은 마지막 패를 살피다가 그대로 D-패드를 터치해 [End Phase] 패널을 눌렀다.
“턴 종료!”
-고동준/LP 8000 → 2600
-최금선/LP 8000/패 1장
턴을 받은 동준은 덱에서 카드를 뽑는 대신 한참이나 금선을 째려봤다.
금선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으쓱, 했다. 결국 참다못한 동준이 입을 열었다.
“즐겁냐?”
“응? 뭐가?”
“그딴 식으로 하면 좋냐고.”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니.”
금선의 표정은 별로 밝지 않았다. 동준은 어이가 없는지 바로 반박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뭐? 나 놀리냐?”
“내 역할은 ‘힐’이라고. 악당. 응? 이렇게 막 나쁜 짓 하다가 정의의 히어로한테 박살나면서 시청자들한테 즐거움을 주는-”
“그래서…? 대체 어쩌라는 거야…”
동준의 목소리에선 맥아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악몽을 떨쳐내고 어떻게든 차례를 이었다.
그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금선은 이젠 되려 한심하다는 눈으로 동준을 쳐다봤다.
“내 입으로 구구절절 설명해야 해? 내 필드에 몬스터 셋 있지? 내성 하나도 없다? 세트 카드도 없어. 네가 우승할 인재고, 베이비페이스-선역-의 자격이 있으면 이 정도는 뚫고서 날 꺾어야하지 않겠어?”
이것도 익숙한 반응이다. 얼굴이 팥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화내던 애도 있었다. 이렇게 질려버려선 듀얼의 의지를 잃어버리는 애들도 있었지.
나름 이를 갈고 준비에 준비를 쌓아온 승부였을 텐데 나름의 비책은 전혀 효과를 보지 못했다. 2년만의 재회에 양쪽의 덱은 바뀌었지만 흐름은 여전하다. 머리도 물들이고 옷도 빼입고 새출발하려 노력했건만 그 모든 게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있다.
“뭐라는 거야…”
“너도 듀얼리스트 아냐? 포기할 때야? 카드도 안 뽑고?”
그래도 자신 같은 힐의 역할은 결국 마지막에 선역, 혹은 더 무적 악역 기믹에게 꺾여버리는 일종의 조미료다.
“2년 전이랑 똑같이 여기서 무너지게? 심숨자 그러려고 덱에 넣었어?”
동준은 금선의 말에 남은 패를 쳐다봤다. 동준의 D-패드에서 [Draw Phase] 패널이 진행을 독촉하듯 점멸하고 있었다.
“네가 진짜 성장했고 변했으면, 그거 뽑고 한 번 게임 뒤집어봐! 아무것도 못 하고 무너지려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닐 거 아냐!”
금선이 역으로 목소릴 높이자 동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직 남은 승부욕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
그래도 아직 [마건시해]와 [베어진 어둠]이 필드에 남아있고, 패도 한 장 쥐고 있고, 드로우할 카드도 있다.
-“이 차례에 역전의 한 수를 뽑지 못하면!! 이대로 최금선 선수에게 4연패하고 인간상성 낙인 찍히는 겁니다!”
-“아… 그런데 가진 자원이 너무 없어요. 아직 최금선 선수는 스타브도 안 냈는데 많이 어려워요. 너무 많이 어려워요!”
“드로우!!”
눈을 질끈 감고 카드를 뽑은 동준은 그 카드를 들고 눈을 살짝 떴다. 그리고 막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하고 패에 넣었다.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해야 한다. 지려고 올라온 게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상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려고 그 전쟁터 같은 예선전을 뚫고 올라왔다.
“패에서 [대마건-마프테아르]를 공개하고 마건 몬스터 마프테아르를 일반 소환한다! 마프테아르의 효과로…”
“거기에 체인! 드라고스타페리아의 효과로 마프테아르에 포식 카운터를 하나 얹어요!”
마프테아르의 머리 위에 생긴 식충식물이 마프테아르의 에너지를 빨아먹었다. 마프테아르는 힘껏 자세를 잡았지만 이내 지친 듯 몸을 늘어트리고 바닥에 뻗어버렸다.
그리고 기다린 것처럼 동준은 마지막 패 한 장을 D-패드에 냈다.
“그걸 기다렸어, 패에서 [삼전의 재] 발동! 덱에서 카드 두 장을 드로우한다!”
-“키카드, 키카드를 뽑을 수 있느냐가 지금 관건이에요!”
-“어드밴티지 보충했습니다!!”
-“이제 견제 다 썼고, 세트 카드 없어요! 몬스터만 어떻게 치워내도 밀어붙일 기회가 있어요!”
“그래야지.”
금선은 동준이 카드를 뽑는 모습을 보며 고갤 끄덕였다. 드로우한 카드 두 장을 본 동준은 실낱같은 승리를 향해 나아가며 계속 카드를 뽑았다.
“그리고 패에서 클라비스를 일반 소환! 이제 [베어진 어둠]의 효과로 덱에서 카드 한 장을 드로우한 다음 [마건시해]의 효과 발동, 덱의 마프테아를 하나 패에 넣고 패 한 장을 덱 밑으로 되돌린다!”
다시 필드로 올라온 클라비스의 손에 다시 마건이 쥐어졌다. 비장한 표정이 된 클라비스는 신중하게 총을 장전하고 저 하늘 높이 총을 들어 올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총성과 함께 마프테아르의 몸이 부풀어올라 형태가 변했다.
“마프테아의 효과 발동! 필드의 마프테아르와 덱의 클라비스를 소재로 융합! [마건소수-안샤라볼라스]를 융합 소환!”
마프테아르는 맹수의 모습으로 변해 목청껏 포효했다. 그리곤 클라비스를 몸 위에 얹고 한 번 들쳐올려 자신의 등에 앉혔다. 방금 묘지로 들어간 마프테아가 안샤라볼라스의 효과로 묘지에서 빠져나왔다. 다시금 마프테아는 클라비스의 손으로 돌아갔다.
“다시 마프테아의 효과로 필드의 안샤라볼라스와 덱의 [엔젤 트럼피터]를 소재로 융합!
마의 열쇠로 날개를 펼치고 승리를 향해 날아올라라! [마건소룡-안드라비무스], 라이징!!”
[마건소수-안샤라볼라스/Lv4/2200/2000]
[마건소룡-안드라비무스/Lv8/2800/2000]
안샤라볼라스가 다시 그 힘을 해방했다. 두껍고 단단한 안샤라볼라스의 가죽을 뚫고 그 안에서 녹색의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클라비스는 휘청거리면서도 간신히 중심을 잡으며 그 위에 버티고 앉아있었다.
“묘지의 어둠 속성 안샤라볼라스를 대상으로 안드라비무스의 효과 발동! 어둠 속성의 상대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안샤라볼라스가 날개를 크게 펄럭였다. 모든 몬스터가 어둠 속성인 금선의 필드는 돌풍 한 번에 모조리 휩쓸려 박살나고 말았다. 동준은 아직도 심장이 터질 거 같았다.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이제 덱에 일반 몬스터도 다 떨어졌다. 그래도 승리가 코앞에 보인다.
그때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다르다. 이번에는 할 수 있다.
그때처럼 절대 되지 않는다.
-“드디어 활로 나왔어요!! 길 열렸습니다! 최금선 선수 필드 한순간에 정리당했어요!!”
-“그래도 아직은 모릅니다! 모르는 거 거든요! 고동준 선수 벌써 방심하면 안 돼요!”
“이제, 이제 안드라비무스의 효과로 덱에서 카드 한 장을 드로우! 이제 카드 두 장을 세트하고… 배틀!! 안드라비무스로 상대를 직접 공격! 용공흡탄!!”
동준의 D-패드가 [Battle Phase]패널을 밝혔다. 안드라비무스가 힘껏 발을 바닥에 꽂으며 자세를 잡고 날개를 펼쳤다.
금선은 안드라비무스를 올려다봤다. 지금 금선에게 남은 카드는 고작 패 한 장.
“방심하지마라, 처음의 한 장이 모두를 침몰시킬 수 있다. 포기하지마라, 최후의 한 장이 모든 것을 뒤집을 수 있다.”
동시에 그 카드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가장 먼저 드로우한 40장의 카드 중에도 제일 위에 있던 카드였다.
LT유스의 캐치프레이즈를 한번 읊은 금선에게 안드라비무스의 공격이 작렬했다.
“끝났다.”
“응? 뭐가?”
준오가 괜히 중얼거린 혼잣말에 원형이 이상한 듯 쳐다봤다. 준오는 중학교 3학년 때 그 듀얼이 기억났다.
…
“쟤 중학생 때부터 습관이 하나 있던데, 보셨어요?”
“아. 공격력 높은 몬스터부터 공격하는 거 말이냐?”
“괜히 퍼미션이나 내성 바르려다가 자원 낭비하기보다 차라리 이거 쓰는게 낫겠다 싶어서… 이번에도 이거 쓰려고요.”
금선은 덱 위에서 카드 하나를 뒤집었다. 목사는 별 지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다음 클라비스로-”
파앙-! 금선의 필드에서 날아온 반격이 클라비스를 집어삼켰다.
이어진 포격에 안드라비무스의 날개가 관통됐고 이제 시작이라는 듯 빗발치는 포화가 동준에게로 쏟아졌다.
-최금선/LP 8000 → 5200
“어? 어…?”
“응.아냐, 손 떼. 내 승리야.”
금선은 동준을 향해 자랑하듯 손에 쥔 카드를 흔들었다. 동준은 D-패드에 떠오른 정보를 보고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분명 두 번째 듀얼에서도 저 카드에 당했었다. 그런데 왜 난 그 카드를 잊고 있던 거였지? 대체 왜?
“내 동생이 배워온 말인데 이거 괜찮더라. 패에서 소환하면 몬스터, 내면 마법, 쥐고 있다면… 패트랩.”
-“저 카드는!!”
-“[요룡 마하마]! 최금선 선수가 과거 고동준 선수와 듀얼에서 사용한 적 있던 몬스터입니다!”
“마하마의 효과로 내가 입은 전투 데미지만큼 상대에게 데미지를 주겠어.
안드라비무스가 직접 공격 했으니까 2800 받았고 너도 그만큼 데미지를 받으면?”
-고동준/LP 2600 → …0
빠아아아앙-!! 승부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과 함께 마하마의 모습이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동준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마하마가 사라진 자리를 한참 계속 쳐다봤다. 금선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무대를 내려오며 객석의 친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래, 금선이 저 카드 있었지.”
“나의주 제자라 그런가 남해도 그렇고 금선이도 그렇고 이상한 패트랩 하나씩 들고다닌단 말이지.”
“크리보르는 이상한 카드 아니거든?”
다음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준비 시간을 틈타 원형은 화장실로 달려갔고 준오도 잠깐 자리를 벗어났다.
그 사이 용연은 자연스럽게 남해 옆 빈자리에 털썩 걸터앉았다.
-“이 듀얼은 시작부터 금선 낭자가 이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역시?”
용연은 의자가 작은지 몸을 이리저리 움찔거리다가 겨우 자세를 잡고 남해에게 말을 건넸다.
-“그 자는… 두려워했고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두려움에 눈이 멀어 본질을 보지 못한 겁니다.”
그 애는 노이드를 두려워했다. 묘지에서 발동하는 효과들이 뼈아팠다.
세 번이나 같은 덱에게 압살당했고 모두의 앞에서 패배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같은 방법으로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무대에 올랐다.
그래서 진 것이다.
-“금선 낭자의 강점은 강한 하수인이 아니고 그 하수인들을 통해 공세를 펼치고 승부의 흐름과 주도권을 원하는 대로 휘두르는 점입니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라, 그 본인이 무엇을 잡든 만인지적인 것을 손에 쥔 무기가 중요하겠습니까?”
용연의 이야기를 듣던 남해의 눈에 문득 화면 속 대진표가 들어왔다. 미아의 듀얼은 16강에서도 제일 마지막으로 치뤄질 예정.
거기서부터 시선을 위로 올리던 남해의 눈에 한 선수의 이름이 들어왔다. 남해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것을 보고 용연도 대진표의 그 자리로 물끄러미 시선을 돌렸다.
“그렇군요. 그렇습니까… 신경 쓰이실 수밖에 없긴 하시겠지요.”
남해가 보던 것은 성균의 대진표였다.
…
‘또… 졌다…’
동준의 대기실. 동준은 자리에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채 좌절감에 휩싸여 있었다.
왜 졌지? 밴픽을 읽혀서? 방심해서? 운이 없어서?
아니다.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까지 동준은 금선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거야.’
손가락 끝은 달을 향하고 있는데 손만 보고 달을 보지 못했다. 노이드에 당한 것만 기억해 그걸 극복하는 일만 집중했다. 그런데 노이드가 문제가 아니었다.
금선에게 진 기억에 짐짓 움츠리고 주도권을 내어줬다. 그래서 손해를 봤고 더 휘둘렸다. 준비한 것들을 반도 꺼내지 못했다.
자신의 문제는 진 것이 아니고… ‘이렇게 진 것’이었구나.
너무 늦게 알았다. 그나마 이제라도 벽을 오를 방법을 찾았다.
벽을 넘을 수 있을까? 기회가 다시 생길까? 그건 모르겠다.
그렇지만 네 번이나 일어난 참사를 다섯 번 반복할 순 없다. 그래서는 안되고 더는 그러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되겠지.”
동준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꾸려온 짐을 어깨에 멨다.
다섯 번째에는 반드시 달라질 거라고 결심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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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은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실력자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드디어 투고된 25화입니다.
처음으로 다뤄진 금선의 듀얼인데요, 1시즌에 지나가듯 언급한 ‘힐 컨셉’ 같은 게 잘 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금선의 덱 목록도 사실 계속 바뀌어왔어요. 최초 구상 당시에는 클리포트-노이드-섀도르였다가 섀도르가 데스완구로 바뀌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수정했지만 딱 둘.
‘인페르노이드는 포함시킨다.’
‘악역 이미지가 강한 테마로 짠다.’
이 둘은 반드시 고정된 상태로 덱 목록을 짰습니다.
그간 학교에선 금선도 강자라고 인정받았고, 잘 주목받지는 못해도 남해의 사저에 해당하는 캐릭터라는 점도 간만에 조명할 수 있었네요.
그리고 혹시 이것 아셨나요? 이번 에피소드 내에서 [심숨자] [프플]이란 줄임말을 쓰는 캐릭터는 금선뿐이던 거.
(IP보기클릭)121.173.***.***
초안 당시에는 섀도르 써서 괴수+초융합으로 아무거나 집어먹고 원하는 에이스 내는 전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스가키라기엔 데레 성분이 0이니 그냥 빌런인 반동인물으로 합의점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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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안 당시에는 섀도르 써서 괴수+초융합으로 아무거나 집어먹고 원하는 에이스 내는 전개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메스가키라기엔 데레 성분이 0이니 그냥 빌런인 반동인물으로 합의점을 봅시다 | 24.04.21 22:54 | |
(IP보기클릭)12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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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열심히 뿌린 떡밥도 회수할 겸 묘사에 신경 많이 썼습니다. 비단 프로레슬러가 아니어도 가장 모티브 많이 따오는 프로게이머들에게도 저런 인터뷰나 태도를 통한 기믹 표출이나 심리전이 꽤 꾸준히 나왔었고 애니에서도 잭이나 고강철처럼 자주 나왔던 케이스니까요. | 24.04.22 00:51 | |
(IP보기클릭)211.194.***.***
(IP보기클릭)121.173.***.***
연타가 아니라서 버텼다... 학교 축제 하편에서 말했던 인생의 벽이 동준에게는 금선이었던 것으로 의외로 스타크래프트 시절 E스포츠에선 꽤 있던 일입니다. 상대전적 10:2이라던가 8:1이라던가. 단순히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상성이란 게 있더라구요. 그나저나 지금보니 남해는 마지막 한 장으로 모든 걸 뒤집었고 금선은 최초의 한 장으로 모두를 침몰시켰네요 | 24.04.22 02:55 | |
(IP보기클릭)118.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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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 불가 효과는 진짜 강하죠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니까요 상대 몬스터를 소재로 쓰는 점에서 캐릭터 컨셉이랑도 되게 잘 맞고 노이드랑 같이 초안 시절부터 같이 온 카드입니다 | 24.04.22 11: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