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메이드와 주인(손님)들의 듀얼이 한창인 가운데, 1명당 딱 1번만 구매할 수 있는 참가 티켓을 들고서 유진은 적당한 상대를 찾으러 쭈욱 둘러보았다.
원래 이런 용도로 세워진 공간이었나 싶을 정도로 인원 수가 제법 되는데도 걸어다닐 데가 있을 정도로는 공간이 남는다.
사람들의 면면을 살피니, 거기서 거기일 줄로만 알았던 참가 이용객들의 모습은 제법 다양하다. 가게의 주요 타객층인 고객도, 이 이벤트에 관한 소문을 듣고 찾아온 듀얼리스트도 어느 정도 섞여 있을 터.
그에 못지 않게 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을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도 보기보다 다양했다. 외모도 외모지만 가게 컨셉상 동물귀와 동물 꼬리까지 달고 있는 영향이겠지.
편차는 있겠지만, 유노 못지 않게 저마다 능숙한 진행을 이어가는 것을 보면 모두 그럭저럭 검증된 듀얼리스트들일 것이다.
여기에 컨셉 어필을 위해 듀얼마다 이런저런 말투를 기교 섞인 목소리로 쩌렁쩌렁 외쳐야 하니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리라.
유진 본인 같은 구경꾼들도 제법 보인다. 대기 중인 사람들도 있는 한 편, D-패드를 꺼내놓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참가자의 일행으로서 찾아와 단순히 구경을 목적으로 하는 듯 보였다.
이들이 뭐라고 중얼거리는지 유진은 알 것 같다가도 어쩐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구경삼아 뉴런즈 기어로 접속해 보니 듀얼의 판도는 각양각색.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우세한 플레이도, 그럭저럭 팽팽히 주고받는 공방전도 보인다.
단지 메이드와의 둘 만의 시간이 목적이었는지 카드를 꺼내는 둥 마는 둥 하는 플레이도 보인다.
한 편 일그러진 관심의 발로인지 끈질기게 괴롭힌다는 것이 훤히 보이는 플레이도 보인다. 진작에 판을 끝낼 수 있을 텐데도 굳이 끝장을 내지 않고 압도적인 상황을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상대 중인 종업원의 표정은 척 봐도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듀얼조차 아닌 시비보다야 나은 것일까.
'이차원의 고전장'이라는 비유는 어찌 보면 과장이 아니었던 셈이다. 유진은 홀로 끄덕이며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고생이 많구만.'
프로 듀얼리스트나 카드 프로페서라는 직업 외에도 듀얼이라는 것을 통해 돈을 버는 수단은 찾다보면 나온다.
여느 게임이 그렇듯 스트리머로 전향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다.
게이머라는 특성상 아르바이트 수준의 벌이가 대부분이다 보니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어주지는 못할지도 모른다.
듣자 하니 공식에 기록될 일이 없는 지하 리그 같은 게 있다는데, 그런 곳은 얼마나 험난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런 자리를 서문유진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자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으로선 아직 머나먼 미래의 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
적어도 이런 일자리를 미소녀조차 아닌 유진이 잡을 수 있는 날은 찾아오지 않으리라.
애초에 남 비위 맞추는 접객이라는 것이 본인의 성미에 맞을지조차 스스로 의문이었지만.
"아린이는, 아직인가…."
그 와중에 성아린은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런 시끌벅적한 자리를 나중에 다시 들어오는 것도 제법 번거로울 텐데 괜찮을까 싶을 정도다.
그냥 기다리고 있자니 한 순간 또다시 불안이 도진 유진은 메신저로 연락을 넣어 보았다.
-EugeneS: 언제 와?
-Arin: 아 진짜
-Arin: 묻지 마 쫌
화난 이모티콘이 딸려나온다. 이런 걸 달아주고 있는 시점에서 어느 정도 참아줄 만한 수준이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역시 놔둘까 싶지만 불안을 완전히 떨치지 못하는 것도 사실.
이대로 의존증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 때 그 시점부터 이미 걸려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신에 대한 불안도 딸려온다.
단순 소꿉친구 정도의 사이일 텐데. 같은 집에서 지내는 것도 아닌데. 무슨 식구가 된 것마냥 여기고 있지 않은가.
그런 고민을 품으며 몇 발짝 더 걷던 찰나,
"다음! 다음 없냐가오옷!"
기세등등한 목소리에 유진은 절로 시선을 돌렸다.
귀와 꼬리를 보면 목소리의 주인이 되는 메이드는 사자 컨셉으로 보인다. 암사자라면 갈기가 없는 것이 맞겠지만, 그 분위기는 특유의 헤어스타일로 재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체구는 그렇게까지 큰 편은 아니지만 얼굴부터가 척 봐도 드세보이는 인상이다.
그런 여성이 '가오(어흥)'라는 말투까지 충실히 붙여가며 캐릭터를 어필하는 모습은 슈르하기까지 하다.
메이드 맞냐라는 딴지가 절로 나오는 수준임은 유노와 다를 바 없어보였다.
'연전연승이 유노만 있는 것도 아니구나.'
다음 상대를 부르짖는 것만 척 봐도 호전적임을 알 수 있다. 상당한 실력자가 아닐까.
참가비를 냈으니 상품은 따 가는 게 좋다는 입장이었기에 유진은 한창 승승장구 중인 유노와의 대결조차 고사했다. 그리하여 유진은 이번에도 그냥 지나치려 했으나,
"거기!"
갑자기 삿대질과 함께 그녀는 유진을 지목하고 말았다.
"…저, 저요?"
"상대를 찾고 있나가오?"
어슬렁거리던 모습이 때마침 그녀의 눈에 잡혀버린 모양이었다.
그녀의 추론은 분명 사실. 하지만 막상 상대로 삼기에는 내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딱히 메이드니 모에니 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유진에게 메이드와의 접견 듀얼 자체가 포상으로서 와닿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어떤 미인과 듀얼을 하든 참가비까지 낸 결과물이 빈 손이라면 손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딱 봐도 호전적이고 강해 보이는 상대는 거르고 보는 게 맞을 터.
그렇기에 유진은 그냥 둘러대고 넘어갈 생각이었다.
"아뇨, 그냥 구경 좀 하러…."
"내 눈은 못 속인다가오. 그 눈길, 필시 초원에서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육식동물의 것이 틀림없겠지. 동족의 낌새인 것이다가오."
진짜로 그런 눈길에 한동안 시달려본 유진으로서는 적지 않게 거슬리는 비유다.
그러나 메이드의 삿대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기다, 그렇게 듀얼 디스크 차고 돌아다니면 누가 봐도 듀얼할 준비가 돼있는 걸로 보이지 않겠냐가오?"
'앗차!'
황급히 팔에 차고 있는 D-패드를 움켜잡지만, 이미 떼어놓아봤자 늦었음을 깨닫고 다시 놓는다.
눈길이고 자시고 이쪽이 더 결정적인 증거였을 터.
"뭐, 선택은 주인님 마음이니까. 안 할 거면 지나가도 좋다가오."
"아, 실례했…."
"싸움에서 등을 돌리다니, 듀얼리스트 실격이 아닌가 싶지만 어쩔 수 없지가오. 어디 만만한 초식동물 한 마리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가오."
뭐 임마, 라는 말이 목까지 치밀어오른다. 정녕 이것이 접객 중인 사람이 할 소리란 말인가.
그러나 유진은 인내심을 발휘해본다. 값싼 도발 한 방에 몸이 나서버리면 쓰나. 그러니 참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참아야 한다. 참아야 한다.
유진이 내면에 대고 그렇게 설득하려 노력한 결과, 어느 샌가 그 사자 귀 메이드 앞에서 듀얼 디스크를 키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못 살아. 아무리 나라지만 이렇게 단순할 수가.'
그런 반응을 내다본듯 메이드가 살짝 히죽인다.
"자, 듀얼리스트 주인님 한 분 더 모시겠다가오. 존함은?"
"서문유진이요."
"응. 아사가오라 불러라가오!"
'아사가오(나팔꽃)'라니. 본명이 아사인 것일까. 어쩐지 절묘한 작명이었다.
적어도 유노와는 달리 캐릭터 어필이 싫지는 않은 듯 보인다.
뉴런즈 기어로 감각을 교란시켜 현실이 아닌 공간에 진입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주변으로부터 격리된 세계에 진입했다.
가게에서 별도로 준비한 사양인지, 기본 옵션으로 뜨는 검푸른 배경이 아닌 주변 공간에서 사람만 치워버린 듯한 배경이 나타난다.
핑크빛 벽과 창밖으로 비추는 푸르른 하늘의 대비는 제법 산뜻한 분위기다.
이런 것도 이벤트의 묘미라면 묘미일 터. 나름 KC의 지원을 받아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찌 됐든 세팅은 완료했으니 남은 절차는 결투(듀얼)에 임하는 것 뿐.
""듀얼!""
[서문유진: LP 8000, 패 5장]
[아사가오: LP 8000, 패 5장]
유진은 패를 확인하자마자 입꼬리가 올라간다. 써보고자 했던 카드가 바로 잡혀 준 것이었다.
다짜고짜 승부를 자처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 그 생각에 유진은 냅다 그 카드를 꺼낸다.
"내 턴,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면, 패에 있는 '크샤트리라 유니콘'을 특수 소환!"
[크샤트리라 유니콘: 사이킥족 / 바람 / 레벨 7 / ATK 2500 / DEF 2100]
[서문유진: 패 4장]
나타나는 그 모습은 붉은 몸체를 가진 괴인 형태의 기계. 유니콘이라는 이름처럼 정수리에 외뿔을 달고 있었다.
"으겍."
유진의 눈은 확실히 포착했다. 얼굴을 구기며 불쾌해하는 상대의 반응을.
무슨 카드인지 알아본다면 더욱 잘 된 일이 아닌가.
"'유니콘'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크샤트리라' 마법 카드를 1장 패에 추가. 이어서 가져온 지속 마법 '크샤트리라 버스'를 발동. 레벨 7 몬스터의 소환에 필요한 릴리스를 없앨 수가 있어. 그럼 '크샤트리라 펜리르'를 릴리스 없이 소환."
[크샤트리라 펜리르: 사이킥족 / 땅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서문유진: 패 3장]
"'펜리르'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다른 '크샤트리라' 몬스터 하나를 패에 추가. 이어서 '유니콘'과 '펜리르'를 오버레이, 랭크 7 '환상수기 드래고사크'를 엑시즈 소환! '드래고사크'의 오버레이 유닛을 1개 써서 ①의 효과를 사용. 내 필드에 '환상수기 토큰' 두 마리를 특수 소환."
[환상수기 드래고사크: 기계족 / 바람 / 랭크 7 / ATK 2600 / DEF 2200 / ORU 2]
[환상수기 토큰: 기계족 / 바람 / 레벨 3 / ATK 0 / DEF 0]
[환상수기 토큰: 기계족 / 바람 / 레벨 3 / ATK 0 / DEF 0]
"패에 있는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의 효과.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하고, 방금 묘지로 간 펜리르를 제외. 이어서 '크샤트리라 버스'의 ②의 효과로, 제외 상태의 '크샤트리라' 하나를 특수 소환."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 사이킥족 / 땅 / 레벨 7 / ATK 0 / DEF 2600]
[크샤트리라 펜리르: 사이킥족 / 땅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견제가 없으니 소재가 금세 필드를 메운다. '크샤트리라' 하나만 더 잡혀도 간단히 다른 '크샤트리라'를 가져올 수 있는 덕분이리라.
"바람 속성의 '환상수기 토큰' 둘을 소재로,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ET레인저 에어로그린'을 링크 소환. ①의 효과로 바람 속성이 아닌 몬스터를 하나 특수 소환한다."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바람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모터쉘: 기계족 / 어둠 / 레벨 4 / ATK 1300 / DEF 1800]
"'드래고사크', ''에어로그린', '모터쉘'을 소재로, 링크 4 '아폴로우사'를 링크 소환. 이어서 묘지로 간 '모터쉘'은 필드에 모터 파츠를 토큰으로 남긴다."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천사족 / 바람 / LINK-4 / ATK 2400 / 링크 마커 ↑↙↓↘]
[모터 토큰: 기계족 / 땅 / 레벨 1 / ATK 200 / DEF 200]
"이어서 땅 속성의 '스케어클로 크샤트리라'와 '모터 토큰'을 소재로, 'ET레인저 지오옐로'를 링크 소환. ①의 효과로 땅 속성이 아닌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
[ET레인저 지오옐로: 사이킥족 / 땅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디브전: 기계족 / 화염 / 레벨 2 / ATK 200 / DEF 200]
"'디브전'을 릴리스하고 ①의 효과 발동. 릴리스한 '디브전'의 두 배만큼 내 필드에 '기계 토큰'을 특수 소환한다."
[기계 토큰: 기계족 / 화염 / 레벨 1 / ATK 200 / DEF 200]
[기계 토큰: 기계족 / 화염 / 레벨 1 / ATK 200 / DEF 200]
"화염 속성의 '기계 토큰' 둘을 소재로 'ET레인저 파이로레드'를 링크 소환. 이번엔 ①의 효과로 화염 속성이 아닌 몬스터를 특수 소환."
[ET레인저 파이로레드: 사이킥족 / 화염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환상수기 오라이온: 기계족 / 바람 / 레벨 2 / ATK 600 / DEF 1000]
첫 턴만에 패를 그대로 유지한 채 'ET레인저'를 셋이나 불러낼 수가 있다니. 전개 중인 유진 본인이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증식의 G'라도 뽑지 않는 이상 전전긍긍할 뿐이던 이전의 자신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었을 터.
더 놀랍게도 그에게는 아직 꺼낼 카드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속공 마법 '긴급텔레포트'. 이걸로 레벨 3 이하의 사이킥족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차원동이체 바리스'!"
[차원동이체 바리스: 사이킥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서문유진: 패 2장]
"레벨 7의 '펜리르'에 레벨 1의 '바리스를 튜닝. 'PSY(싸이)프레임로드 Ω(오메가)를 싱크로 소환!"
[PSY프레임로드 Ω: 사이킥족 / 빛 / 레벨 8 / ATK 2800 / DEF 2200]
"아직이야! 레벨 8의 'Ω(오메가)'에 레벨 2의 '오라이온'을 튜닝. 레벨 10 '플뢰르 드 바로네스'를 싱크로 소환! 그리고 '오라이온'이 묘지로 갔으니까, ②의 효과로 '환상수기 토큰' 하나도 특수 소환."
[플뢰르 드 바로네스: 전사족 / 바람 / 레벨 8 / ATK 3000 / DEF 2400]
[환상수기 토큰: 기계족 / 바람 / 레벨 3 / ATK 0 / DEF 0]
필드를 바쁘게 오고가는 몬스터를 지루하게 지켜보고 있던 아사가오는 적당히 좀 하라는 듯 딴지를 걸었다.
"엑스트라 덱을 거덜낼 기세구만가오."
"보채지 마세요. 금방 끝나니까."
이 메이드는 버릇 없는 것이 컨셉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하지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한 편 유진은 그런 반응을 상쾌하게 여기는 자신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지오옐로', '파이로레드', '환상수기 토큰'을 소재로 링크 소환. 빛과 어둠이 하나로, 링크 3 '혼돈의 전사 카오스 솔저'!"
'아폴로우사'의 뒷편에 모인 소재들이 한데 모여 한 명의 전사가 강림한다.
금테가 박힌 검푸른 중갑으로 무장한 전사는 예리한 검과 방패를 양손에 잡고서 전투 대기에 들어갔다.
[혼돈의 전사 카오스 솔저: 전사족 / 땅 / LINK-3 / ATK 3000 / 링크 마커 ↙↑↘]
'크샤트리라'를 미리 소재로 써버린 터라 레벨 7 이상을 소재로 삼지 못했다. 따라서 '혼돈의 전사'의 대상 내성과 파괴 내성은 얻지 못한 상태. 그러나 그 공격력 정도면 어떻게든 버텨볼 수는 있을 터.
"엔드 페이즈에 묘지로 간 '에어로그린'의 효과. 묘지의 다른 링크 몬스터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지오옐로'도 마찬가지."
[ET레인저 지오옐로: 사이킥족 / 땅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ET레인저 파이로레드: 사이킥족 / 화염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그럼 내 턴이다가오."
[아사가오: 패 6장]
[서문유진: 패 2장]
'크샤트리라'.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프로리그에서도 활개를 치는 파워 카드들 가운데 당당히 한 축을 차지한 테마.
'플뢰르 드 바로네스'. 역시 두 말 하면 입 아픈 파워 카드다.
나름 듀얼리스트로 활동해 온 그녀 역시 그 카드들의 악명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ET레인저'는 그녀조차도 생판 처음 듣는 카드들이었다. 보아하니 덱에서 새로운 소재를 뽑아내서는 새 엑스트라 전개로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윤활제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딱 봐도 학생인 애가 무슨 재력이 있다고 저런 카드를 다 구해온 것일까. 그 정도로 이 가게의 상품 카드가 절실하다는 뜻일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리다.
어쩌면 그냥 새로 맞춘 강력한 덱을 자랑해볼 기회가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손님이 없던 것도 아니니까.
그런 카드들을 활용해가며 채워진 상대 필드를 보자마자 짜게 식은 그녀이긴 했지만, 오히려 잘 됐다며 생각을 바꾸기로 한다.
여태까지의 상대들이 시시하다 싶던 참이었으니까.
'그래, 해보자 이거지.'
다른 듀얼 메이드들이 그렇듯 이기든 지든 받는 그녀가 수당은 같다. 고객 배려 차원에서라면 적당히 져주는 것이 배려일 터.
그러나 저렇게 작정하고 승부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봐줄 필요도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승부욕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지속 마법 '염무-「천기」'. 이걸 발동하면 덱에서 레벨 4 이하의 야수전사족 하나를 가져올 수 있다가오."
"그럼 '하루 우라라'로 체인."
[아사가오: 패 5장]
[서문유진: 패 1장]
아사가오가 발동시킨 카드 위로 강아지 귀와 꼬리가 달린 여자애가 갑자기 튀어나온다. 그리고는 약을 올리듯 벚꽃잎을 흩날리며 카드 주변을 떠돌아다녔다.
대놓고 약을 올리는 연출에도 아사가오는 그럴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기색을 놓지 않는다.
"몬스터 효과를 썼으니까 마법 카드 '삼전의 호'를 발동. 상대 필드에 몬스터가 존재하면 덱에서 마법 카드 하나를 패로 가져올 수 있다가오."
"'바로네스'로 체인. '삼전의 호'를 무효로."
"그래그래, 다 갖고 있구만. 덕분에 더 잘 됐다가오. 마법 카드 '삼전의 재'를 발동. 2장 드로우."
[아사가오: 패 5장]
유진은 공교롭게도 똑같이 패에 남아 있던 '삼전의 재'를 힐끗 살핀다.
'삼전의 호'로 가져오기 좋은 '삼전의 재'가 저쪽의 패에도 이미 갖춰져 있었다니. 더구나 다른 효과를 써서 '바로네스'의 컨트롤을 뺏어온다는 선택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의 덱이 선보일 전술을 믿겠다는 뜻이리라. 확실히 저 정도 패면 일단 뭔가를 시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일 것이다.
이걸로 견제 수단은 몬스터 효과 3번을 틀어막는 '아폴로우사'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 대책마저 아사가오가 바로 꺼내기 시작한다.
"'「천기」'를 묘지로 보내고 속공 마법 '금지된 일적'을 발동한다가오. 이걸로 '아폴로우사'를 지정해서 효과를 무효로. 그리고 공격력도 반으로 다운."
[아사가오: 패 4장]
어딘가에서 물방울 하나가 필드에 똑 떨어진다.
청아하게 울려퍼지는 소리와 함께 물방울은 파장을 일으키며 원형의 물결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주위에 있던 '아폴로우사'가 괴로운 듯 움츠리기 시작한다.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2400 → 0]
이걸로 원래 공격력이 정해지지 않았던 '아폴로우사'는 반감될 것조차 없이 그대로 공격력 0으로 떨어진 것이다.
이제 아사가오가 전개하는 몬스터를 막을 수단은 없어진 셈이다.
아직도 충분히 남아 있는 패를 바라보던 아사가오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진다.
"주인님, 혹시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춤춰 본 기억 있나가오?"
"…뭐?"
"아니, 이 덱을 쓸 때면 꺼내보고 싶은 말이라서."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날 듯 말듯도 한 영문 모를 소리를 흘려넘기듯, 아사가오는 바로 다음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럼 먼저 '월광취조(문라이트 에머랄드 버드)'를 소환."
[문라이트 에머랄드 버드: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200 / DEF 1000]
[아사가오: 패 3장]
그녀가 꺼내든 몬스터는 무용수처럼 치렁치렁한 프릴이 달린 레오타드 차림의 여인이었다. 반달을 형상화한 듯한 가면으로 얼굴 반쪽을 가리고 있는데다, 양 팔에는 장식인지 진짜인지 모를 날개가 천막처럼 하늘거리며 달려 있다.
'문라이트'. 소속 몬스터는 대체로 저런 생김새였을 것이다. 유진이 기억하기로는 펜듈럼 소환이 유행하던 시즌에 나타난 융합 소환 전용 테마 중 하나였다.
과연, 저런 덱을 쓴다면 달빛 운운하고 싶어질만도 하겠지.
"'에머랄드 버드'의 ①의 효과로 패에 있는 '문라이트' 카드를 묘지로 보내고 1장 드로우. 이어서 묘지로 간 '월광소야곡무답(문라이트 세레나데 댄스)'를 제외하고 그 ②의 효과를 사용. 패를 1장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문라이트'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 있다가오."
[문라이트 카레이드 치크: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400 / DEF 800]
[아사가오: 패 3장]
"이어서 묘지로 간 '월광황유(문라이트 옐로 마틴)'의 ②의 효과. 덱에서 '문라이트' 마법이나 함정 하나를 패에 추가. 그리고 '월광채추(문라이트 카레이드 치크)'의 ①의 효과. 엑스트라 덱에서 '문라이트'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보내고, 이번 턴에 자신을 융합 소재로 한다면 그 몬스터와 같은 이름으로 취급할 수 있다가오. '월광무표희(문라이트 팬서 댄서)'를 묘지로."
뒤이어 나와 있던 병아리 컨셉의 소녀 무용수는 지명받은 몬스터로 변신에 들어간다.
그 모습은 표범의 귀가 달린 단발머리의 무희. 따라한 모습이라지만 탄탄하게 잡힌 몸과 손에 뻗어나온 예리한 손톱, 그리고 손등에 달린 붉은 클로는 그 공격적인 본성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 카드 '문라이트 퓨전'. 이건 '문라이트' 전용 융합 카드. 엑스트라 덱 출신의 몬스터가 상대 필드에 있으면 덱이나 엑스트라 덱에 있는 '문라이트' 몬스터 하나를 소재로 쓸 수도 있지가오."
유진 필드에 있는 모든 몬스터가 엑스트라 덱에서 나온 것들이니 발동 조건은 채우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럼 필드의 '팬서 댄서', '에머랄드 버드', 그리고 덱에 있는 '월광흑양(문라이트 블랙 시프)'를 융합. 달의 인력으로 휘몰아쳐 새로운 힘으로 다시 태어나라! 융합 소환, 달빛 벌판의 정점에 서서 춤추는 백수(百獸)의 왕! '월광무사자희(문라이트 라이오 댄서)'!
[문라이트 라이오 댄서: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10 / ATK 3500 / DEF 3000]
세 명의 무희를 소재로 탄생하는 한 명의 무희. 그것은 사자 갈기처럼 이리저리 뻗치다 꼬리처럼 한 줄기로 모여 내려오는 특이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필드에 모습을 보인다.
한 자루의 곡도를 쥐며 가볍게 검무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얼굴에 쓰고 있던 짐승 얼굴을 형상화한 듯한 가면이 갑자기 부서져내렸다. 그리고 그 파편은 초승달을 형상화한 장식이 되어 다시 머리 주변에 들러붙는다.
드러난 맨얼굴은 늠름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이어서 융합 소재가 된 '블랙 시프'의 ②의 효과. 묘지에 있는 다른 '문라이트' 몬스터를 패로 되돌린다가오. '옐로 마틴'을 회수. 그리고 '에머랄드 버드'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레벨 4 이하의 다른 '문라이트' 몬스터를 수비 표시로 살릴 수 있지."
[문라이트 블랙 시프: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2 / ATK 100 / DEF 600]
[아사가오: 패 3장]
"이어서 패에 있는 '옐로 마틴'의 ①의 효과. '블랙 시프'를 패로 회수하고 이 카드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 다음으로 패에 있는 '블랙 시프'를 묘지로 보내고 ①의 효과 발동. 덱에서 '융합' 하나를 가져온다가오."
[문라이트 옐로 마틴: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800 / DEF 2000]
[아사가오: 패 3장]
"마법 카드 '월광향'. 이걸로 묘지에서 '문라이트' 몬스터 하나를 되살린다가오. 이어서 되살린 '카레이드 치크'의 효과를 다시 한 번 사용. 이번엔 '월광무묘희(문라이트 캣 댄서)'를 묘지로 보내고 그 이름을 베끼겠다가오."
[문라이트 카레이드 치크 → 문라이트 캣 댄서: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400 / DEF 800]
[아사가오: 패 2장]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 냄새에 이끌리듯 다시 필드로 되돌아온 병아리 무희가 이번에는 고양이 귀의 무희로 모습을 보꾼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음에도, 요란한 장식 사이에서 몸의 맵시를 절묘하게 드러내며 살랑이는 자태는 화려하고도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다음은 마법 카드 '융합'. 필드의 '월광무묘희(문라이트 캣 댄서)', 패에 있는 '월광홍호(문라이트 크림즌 폭스)'를 융합한다가오. 달의 인력으로 소용돌이를 일으켜 새로운 힘으로 다시 태어나라! 융합 소환, 달빛 벌판에서 춤추는 유연한 야수, '월광무표희(문라이트 팬서 댄서)'!''
[문라이트 팬서 댄서: 야수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800 / DEF 2500]
[아사가오: 패 0장]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표범의 무희. 베낀 모습이 아닌 장본인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춤을 추며 손등에 달린 붉은 클로를 휘두르는 모습은 언제든 적을 찢어발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듯 보였다.
"이 순간, 효과로 묘지로 간 '크림즌 폭스'의 효과! 상대의 앞면 표시 몬스터 하나의 공격력을 이번 턴 동안 0으로 만든다가오!"
[플뢰르 드 바로네스: ATK 3000 → 0]
든든하게 필드를 버텨야했을 전력 하나가 무력화되면서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에 노출된다. 유진은 이미 좋지 않은 징조를 직감했다.
"'팬서 댄서'의 ②의 효과. 이 턴에 상대 몬스터에게 1번씩 전투 파괴 내성을 부여하는 대신, 이 카드는 모든 몬스터를 2번씩 공격할 수 있게된다가오."
"엑?"
"그리고 '라이오 댄서'는 2번 공격이 가능하지."
"에엑!?"
그리고 그 징조는 짧은 순간만에 현실이 되어버렸다.
'지오옐로'의 ②의 효과라면 몬스터 하나에게 파괴 내성을 1번 추가로 부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차피 '라이오 댄서'의 첫번째 공격에 터져나가고 나머지 공격이 유진에게 직접 작렬해올 운명이다.
이럴 때 하필이면 공격 반응형 카드 하나 갖춰놓지 못했다. 하다못해 '크샤트리라'를 필드에 남겨놓는 선택을 했더라면 원턴킬을 막을 수는 있었을지도 모를 터.
"이제 본격적인 댄스 타임! 준비는 됐나, 주인님?"
두 무희가 옅은 미소를 띄운다.
그것은 유진에게 도발로도 조롱으로도 보였다. 언젠가 겪은 적이 있는 듯한 광경이었지만, 이번에는 유진에게 대항할 방법이라고는 없었다.
"아니, 잠깐. 댄스는 잘 못추는데…."
"배틀!"
그렇게 후회할 시간조차 아사가오는 더 줄 생각이 없었다.
먼저 공격을 지시받은 '팬서 댄서'가 입맛을 다시며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리고는 화려한 몸놀림으로 필드를 누비며 손톱으로 적들을 차례차례 베어가르기 시작했다.
쓰러뜨리면 쓰러뜨릴 수록 '팬서 댄서' 자신의 효과로 공격력이 추가로 올랐기에, 끝내 제일 공격력이 높았던 '카오스 솔저'에게까지 공격이 닿아버린다.
제법 튼튼해 보이던 방패는 피에 굶주린 듯 새빨간 손톱이 할퀴고 지나가자 맥없이 두동강난다.
뒤이어 마지막으로 남은 '지오옐로'마저 '라이오 댄서'가 춤사위가 곁들여진 검격으로 베어버리고는, 유진을 향해 뛰어들며 또 한번 칼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서문유진: LP 8000 → 0]
참격에 당해도 베이는 고통은 없다.
그러나 한 턴만에 주르륵 깎여나간 끝에 완전히 닳아버린 LP를 보고 있자니, 유진은 힘이 절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아, 졌다…."
결과는 원턴킬.
그렇게 앗차 하는 사이에, 유진은 사자 귀 메이드의 승점을 하나 더 올려준 꼴이 되어버렸다.
"수고했다가오, 주인님!"
"하, 하하…. 내 참가비, 내 상품……."
솔리드 비전이 꺼지며 현실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유진은 허무하다 못해 통쾌할 정도로 꼴사나운 패배에 헛웃음을 흘렸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을 텐데, 내 눈에 띄어버린 시점에서 운이 다했나 보네. 미안하게 됐다가오."
그걸 사과라고 하고 있냐, 라며 속으로 딴지를 걸던 유진은 불평하는 대신 한숨을 팍 쉬었다.
"아뇨. 카드를 제대로 쓰지도 못한 제 잘못인데요, 뭐."
"충분히 강한 덱이었던 것 같은데. 혹시 그 덱, 짜 온지 얼마 안 된 것이냐가오?"
"아, 네. 오늘 막 짠 거라서."
"흐음, 그럼 부족한 건 카드하고의 믿음이겠구만가오."
"믿음?"
낯뜨겁고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그 키워드를 유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듀얼에서 유진은 원하는 카드가 패에 잡혀주기를 평소 이상으로 빌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카드가 잡혀주었기에 자신은 이렇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것은 운 덕분이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운을 거머쥐어도 되는지에 대한 '믿음'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사정을 몰라주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다만,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취급받는 것은 다소 야속하다.
"어떻게 해야 최적으로 써먹을지 연구가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거지. 물론 주인님이 못 썼다는 건 아니고, 상황이 안 따라줬겠지가오."
"연구, 말이죠…."
"보통은 '아폴로우사'나 '바로네스' 정도만 꺼내도 상대 턴을 버티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할 거다가오. 단지, 나한테 그걸 돌파할 수단이 다 갖춰져 있었을 뿐이고. '유니콘'이나 '펜리르'를 남겨놓았어도 내 턴에 살아남을 수는 있었을지도."
역시, 자신의 전술이 보인 맹점을 그녀는 꿰고 있던 모양이었다.
'크샤트리라'는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하는 순간에 반응하여 상대 카드를 제외해버리는 식으로 견제가 가능한 카드들이다. 그들을 철저히 소재로만 취급했기에 진가를 제대로 발휘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믿음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면 유진에게도 할 말은 없었다.
"아니, 듀얼 한 번 갖고 이런 소리 듣는 것도 웃기겠지. 기분 나쁘면 잊어라가오. 주인님이 본격적인 듀얼리스트의 길을 노리는 것 같아서 참견 좀 해봤다가오."
대회에서의 패배를 뒤로 하고 물러나던 그를 멋대로 붙잡고 조언하던 사람을 기억한다.
자신을 보기 좋게 눌러놓은 장본인이 참견을 하다니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유진은 그의 지적을 마지못해 납득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투덜거렸다.
가뜩이나 상한 기분 더 상하게 만들 뿐인 일이었지만, 목숨을 걸던 순간까지도 그 날의 일을 떠올렸던 것을 보면 그 때가 자신의 전환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패배는 쓰디쓸지 몰라도 분명 가치 있는 기억이었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끔찍한 패배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그런 기억은 새겨둘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 유진은 기분 상하는 일 없이 승자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아뇨, 감사합니다."
"천만에. 주인님께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메이드의 당연한 소양 아니겠냐가오."
그래도 본인이 메이드 컨셉이라는 것을 잊지는 않고 있었구나, 하고 유진은 새삼 재평가해보았다.
이런 지적을 들은 것이 얼마만이었을까.
역시 자신에게는 미숙한 점이 남아있다. 듀얼리스트의 길은 원래부터 멀고도 험한 길이라는 것을 곱씹을 수 있는 시간이었으리라.
"다음 주인! 없냐가오옷!"
볼 일 끝났다는 듯 주변에 소리쳐대는 메이드를 뒤로하고 유진은 터벅터벅 출구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떠올라 유노가 있는 쪽을 돌아보니, 그녀는 지금도 도전을 걸어 온 고객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다.
상황을 보아하니 그녀는 침착하게 유리한 판도를 끌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연전연승 기록을 쌓아가고 있겠지.
과연, 바쁘다는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어보였다. 방해가 되는 것 같으니 유진은 그냥 그대로 물러가기로 한다.
그녀는 그런 식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역시 그 때 자신이 이겼던 것은 그냥 운이 좋아서였을까. 유진은 그렇게 자조했다.
별실 밖을 나오면서 여전히 기기묘묘하고도 화기애애한 가게 내부의 풍경을 맞이한다.
예쁜 종업원들이 애교를 섞어가며 대접하는 광경은 분명 나쁘지 않지만, 캐릭터와 혼연일체 중인 모습은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 가게가 제시하는 테마, 세계관을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의 포용력이 못 미쳤던 것일까.
유진은 그냥 시선을 돌린다. 찾아야 할 여자는 따로 있으니까.
듀얼이 끝나고 나오는 순간까지 찾아오지 않은 아린의 모습을 찾고 있자니, 누군가가 콕콕 등을 두드린다.
누군지 반쯤 짐작하면서 유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아린이 너…, ……!?"
유진은 그 당연히 있으리라 생각한 녀석의 모습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어느샌가 메이드복 차림으로 갈아입고 나온 것이었다.
"어때뿅?"
유진은 황급히 눈을 돌릴 뻔했다.
이미 한 번 본데다가 별다른 노출이랄 것이 없는 의상임에도, 어쩐지 보는 것만으로 낯부끄러워진다.
하얀 토끼귀와 눈송이같은 꼬리 장식, 그리고 앞발이 포인트를 더하고 있었다.
"그, 그건 또 어디서…?"
"아까 그 메이드 언니가 특별히 입어볼 기회를 주셨거든. 어울린다고 해주시긴 했는데 네가 보기엔 어때?"
'귀엽다'는 솔직한 감상을 도저히 털어놓을 수가 없다.
이런 옷을 빌려줬다는 종업원에게 괜한 친절이라고 따져야 할까, 아니면 순수하게 감사하는 것이 좋을까.
그러나 칭찬도 없이 넘어가는 것은 실례라고 여겼기에 그나마 견딜 수 있는 표현으로 대신해 보았다.
"어, 어울리네."
그런 어설픈 말로도 아린은 미소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고마워."
그 속내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일까.
유진이 그런 불안을 품으며 불안을 느끼는 동안, 아린은 오히려 그 표정을 보며 무언가를 떠올린다.
"아, 그러고 보니 듀얼은 이겼어?"
"아니……."
어리둥절해 하기를 잠시, 장난기가 또다시 도진 듯 아린은 놀리듯이 질문을 더했다.
"센 카드 얻었다며? 왜 못 이겼어?"
아, 이 광경조차 유진에게는 그 때를 떠올리게 한다.
장소도, 옷차림도 다를 뿐.
"그냥, 카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겠지."
묻지 말라며 퉁명스럽게 넘길 것이라 예상한 것인지, 순순히 나오는 그 대답에 아린이 오히려 당황한 듯 보였다.
그 대답 역시 그 때와 비슷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괜한 거 물었구나. 연패 행진 중인 애한테."
"시끄러."
눈앞에 있는 것은 토끼귀를 한 소악마. 그런 짖궂은 애 앞에서 쩔쩔 매는 자신이 있다.
이번에 그 소악마는 더 없이 터무니없는 제안을 던지기 시작한다.
"잠깐만, 기왕 입었으니까 같이 사진 찍자."
"어, 으, 응."
오므라이스에 대고 의미불명의 주문을 외우던 순간처럼, 유진은 쑥쓰러운 기분과 맞서싸우며 아린과 함께 셀카를 찍어야 했다.
딱 봐도 어색하게 짓고 있는 미소가 더더욱 보기 괴롭게 만든다. 아린 쪽을 살펴보니 새삼 이렇게 즐거워보일 수가 없다.
같은 미소인데 이렇게 대비가 될 줄이야. 유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린이 인증 샷까지 찍고 나서 메이드복을 다시 환복한 뒤에야 두 사람은 가게를 나온다.
아직 하늘은 파랗다. 그만큼 오늘 하루라는 여유시간이 자신을 맞이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놀기는 실컷 놀았다. 금전이 소비되는 취미 생활은 오늘만큼은 이제 그만.
돈은 돈대로 빠져나가고 상품조차 따지 못했지만, 어쩐지 딱히 나쁜 경험은 아닌 것 같다며 넘어가는 유진이었다.
무엇보다 아린 쪽이 굉장히 만족한 모양이었으니까.
"어땠어?"
"재밌네! 귀엽기도 하고. 다음에 또 올까?"
유진은 잠시 고민한 끝에 솔직히 답해보기로 한다.
"그럴까?"
언젠가 이런 가게를 다시 찾아올 일이 있을까.
이벤트 시간, 즉 아이바 유노의 업무 시간이 드디어 끝이 났다.
드디어 유노는 아이돌 의상 마냥 짧고 화려하게 리파인된 메이드복에 동물 귀와 동물 꼬리라는, 그런 영문도 모를 조합의 옷차림을 벗어나 평상복 차림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걸 벗었다는 것은 이제 그 입에 맞지도 않는 동물 말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차라리 동물 컨셉만 뺐더라면 그나마 적응하기는 더 쉬웠을까.
'차라리 수영복이 덜 부끄럽겠네….'
한 편으로는 그런 차림에 그런 말투로도 쾌활하게 일에 임하던 사람들이 대단하다는 감상도 품는다. 그 만큼 연기에 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진심으로 즐기고 있는 사람도 적지는 않아 보였다.
"수고했습니다."
"수고했다냥!"
적어도 방금 인사를 주고받은 고양이 컨셉의 서빙 담당 여성은 확실히 그러해 보인다.
손님이 보지 않으니 동물 말투를 고수할 필요가 없는 자리에서도 '냥' 하는 말꼬리를 빼놓지 않았으니까. 주어진 캐릭터와 혼연일체한 듯한 모습이다. 듣자 하니 이 가게에서 일한 경력이 꽤 된다는 모양이었다.
또한 자신처럼 연전연승을 고수하고 있었다던 사자 컨셉의 아르바이트생도 떠올린다. 그 사람 역시 하루종일 듀얼에 들어가면서도 의욕을 잃지 않고 다음 도전자를 부르짖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도 쉬는 시간 때 '가오'라는 말꼬리를 놓치지 않았다. 정말로 일을 즐기고 있었다는 듯이.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일까. 유노는 방금 전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 요소를 곱씹어 본다.
메이드와 동물의 조합. '드래곤메이드'라는 카드들의 컨셉이 그런 발상에서 기인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유노 자신의 견문이 좁은 것은 아닐까 되짚어보기도 했다.
다만 그녀 스스로 그걸 이해할 날이 언제 올지는 자신이 서지 않는다는 것 또한 사실.
영업 시간이 끝난 것은 아니기에 아직도 밝은 가게 내부를 나서니 하늘은 이미 어둠으로 물든지 오래였다.
자동문을 빠져나가면서 유노는 기지개를 킨다. 그리고는 다시 찾아오는 노곤함에 발걸음이 축축 쳐졌다.
목숨 따위 걸지 않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일은 하면 할 수록 긴장과 피로를 동반하게 되어 있었으니까. 더구나 내일도 이런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생각하니 더더욱 피로가 찾아오는 것만 같다.
코스프레 차림으로 희한한 말투를 쓰면서 듀얼만 할 뿐인 일인데도, 사람을 접대하는 일인 이상 다양한 사람을 접하게 된다.
여자하고 제대로 대화해 본 적이 없는 것인지 하도 버벅거려서 뭐라고 말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손님, 패배를 인정 못한 듯 이러는 게 어디있냐면서 따지고 드는 손님, 나아가 자기 말이 맞다고 따박따박 우겨대는 손님, 그리고 듀얼 자체에 별 관심이 없는 듯 기분 나쁠 정도로 찝적대는 손님. 심지어는 이런 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는 완전체 손님까지.
짜증을 유발하는 부류가 결코 적지 않았지만, 보람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실전 경험은 충분히 됐나?'
'응, 확실히.'
사람이 다양한 만큼 대전 상대가 쓰는 카드만큼이나 듀얼에 대한 조예도 가지각색.
체인 개념은 커녕 자기가 쓰는 카드가 마법인지 함정인지 제대로 구분도 못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하마터면 질 뻔했을 정도로 프로 수준의 듀얼을 선보이는 자도 있었다.
고저차가 확연하다 보니 어떤 카드를 어떻게 먼저 내놓느냐를 보는 시점부터 실력을 대충 짐작할 수가 있다.
듀얼이란 자고로 수읽기 싸움. 괜히 몸을 사리다 승리의 기회를 놓치는 상황도, 충분히 대비를 했다 싶은 포진이 어이없을 정도로 깨지는 상황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어떻게 대처해야될지는 감으로 깨우치는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건 듀얼을 하는 입장이라면 이는 더더욱 중요한 사항이었다.
어찌 됐든 이런저런 실전 듀얼을 거칠 수 있었으니 의외의 도움은 되어준 것이다.
자신한테 굳이 이런 일을 보낸 것도 그러한 안배였을까.
문득 서문유진도 그 때 도전을 해왔더라면 자신은 이길 수 있었을지 의문을 가져본다.
그 새 다른 상대 찾아서 대전을 치뤘는지 여유가 잠깐 있는 틈에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내심 아쉽기는 해도 자신의 일이 한참 남아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으리라.
무엇보다 성아린하고 함께 데이트 중이었던 모양이니. 앞으로 어떤 일에 휘말릴지 알 수 없는 그들은 더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시간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런 시간에 자신 같은 사람의 간섭은 덜할 수록 좋을지도 모른다.
떠올린 김에 오늘 일 끝났다고 서문유진과 연결된 메신저에 메시지를 띄우려던 유노는,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관둔다.
가게에서의 일은 끝났더라도, 유노의 임무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전번의 사건으로 교대해가며 작전 대기 중인 다른 대다수의 태스크 포스 멤버들과는 달리, 자신이 이렇게 자유롭게 밖을 오갈 수 있는 것은 학생 신분인 것도 있지만 주어진 임무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방금 그녀가 나온 '테일 테일즈' 체인점 역시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투자를 통해 운영되는 곳이기도 하고.
밤의 거리는 리퍼로서 활동하는 주무대. 그런 곳에 발을 디딘 유노는, 확실한 일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도 다시금 긴장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문득 자신이 맞이했던 상대 한 명을 떠올린다.
메이드를 상대로 메이드 덱을 사용해 오는 대범함, 그리고 현실이나 가상이나 가릴 것 없이 유난히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언동.
그런 오타쿠 기질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었던 것을 뺀다면 그럭저럭 신사적으로 보이던 남성이었다.
'그나저나…'
'응.'
그냥저냥 웃어넘길만한 추억으로 묻어갈 수도 있겠지만, 전혀 웃어 넘기지 못할 요소를 곱씹게 되는 것이었다.
남은 업무시간 내내 덮어두기는 했지만 임무가 있는 이상 가능성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그 기운, 아무래도 역시…'
'디젠과 연루된 자일 가능성은 배제할 수가 없지.'
디젠 너머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리퍼 역시 유노의 느낌에 동의한다.
뒤이어 유노는 보류해 두었던 의혹까지 다시 짚고 넘어갔다.
'굳이 날 찾아와서 '비스테드'를 들고 나온 건 설마, 내가 누군지 안다는 건가?'
'그건 지켜봐야겠지.'
실전적인 테마를 누가 쓰든 의심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의혹이 겹치고 겹치다 보면 설마 하는 의문으로 번지기 마련.
어둠의 듀얼을 치루는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경우는 두 가지. 그 사람이 정말로 무고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공공연한 곳에서 무작정 승부를 치루는 것은 삼갈 정도의 염치가 있는 사람이거나.
후자라면 그 자는 디젠을 가진 다른 인물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을까.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지만, 디젠을 착용한 순간에만 리퍼로서의 존재감을 발산하는 유노까지 간파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전히 그런 임무 때에는 모습 숨기기를 빼먹지 않고 있는데다, 오늘 같은 임무에는 만약을 위해 모조 디젠을 빼놓고 나온 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인물이 있지 않은가. 자기가 얼마나 위험에 처했는지 제대로 자각은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무방비한 아이가.
유노는 D-패드를 다시 킨다.
일상에 간섭하는 꼴이 될지라도,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면 망설여서는 안 되니까.
실제로 특별 주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연에 체키 타임까지 거친 그는, 한결 흐뭇해진 기분으로 인사를 받으며 가게 문밖을 나올 수 있었다.
이제 다시 그늘진 거처로 돌아갈 시간이다. 애지중지하는 컬렉션들이 줄지어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지만, 안타깝게도 요새는 불청객이 식구마냥 눌러붙어 있는 상황이었기에 마냥 전처럼 편하지가 않았다.
또 갔다오면 무슨 잔소리를 해댈지, 뭘 건드려 놨을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막막해져 온다.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는 안 하니 차라리 가만히나 있으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그런 불과 몇 십분만에 이뤄질 미래의 일은 잠시 머릿속에서 접어두고, 캔필드는 보람 있었던 오늘 일을 떠올리기로 한다.
물질적인 이득은 없어도 상쾌한 경험. 손해만 보는 감이 있어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 언제 이래로였을까.
'유노멍…, 아이바 유노 쨩. 봉사가 아니라 진지하게 이길 생각으로 덤비다니, 역시 오래 할 애는 아니겠지.'
자신이 상대하고 나온 무패의 알바생. 보아하니 다음 상대도 꿋꿋이 이겨댄 모양이다. 영업용 말투까지 잊어먹을 정도로 승부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듀얼리스트로서만 고용된 알바생이 맞았다.
그런 계열의 알바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 역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카드 살 돈을 벌려고 이런 이벤트에 참전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나마 메이드로서의 자격은 몰라도, 서비스업을 하는 입장으로서의 본분을 잊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굳이 보일 필요가 없는 에이스 몬스터들을 선보이면서 깔끔하게 끝을 맺었으니까.
진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승부에서 그랬다면 티배깅밖에 되지 않겠지만, 이벤트라는 장소에서는 확실히 퍼포먼스가 되어준다.
'아쉽네, 아쉬워. 그래도 충분히 귀여웠으니까. 어둠의 듀얼만 아니면 지든 이기든 대만족이지. 음.'
듀얼은 본디 즐기는 것. 즐길 만한 상대와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은 것이다. 거기에 승패 따위는 상관없다.
그녀는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점에서 우러나오는 존중이 비로소 마음에 울린 것이었겠지.
겸사겸사 늑대 귀 메이드복도 잘 어울리는 미모였으니까. 애교라고는 쥐뿔도 보이지 않는 무뚝뚝한 태도로 일관해도 그것이 오히려 시너지가 될 정도다.
그러니 용서해주기에 부족함은 없다. 비록 자신이 상품을 따낼 기회를 빼앗아간 못된 녀석이라고 해도.
대신 불쾌감을 달랠 거리가 더 필요하다. 딱히 정을 줄 일이 없는 상대가 좋겠지.
그는 유달리 눈에 밟히던 상대의 이름을 곱씹었다.
"그리고, 그런 애하고 알고 지내는 것 같던 그 놈, 걔가 서문…, 뭐시기랬나… 들은 대로 심상치가 않네. 그런 기운을 아무렇지도 않게 풍기고 다닐 수 있단 말이지."
백문이 불여일견이랬던가. 매장에서 미소녀 카드에 집중하고 있던 정신이 금세 쏠릴 정도의 박력을 느꼈던 것이다.
다른 디젠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를 풍기던 장본인은 순진하고 평범해 보이는 소년이었지만, 자고로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는 것은 하수 중의 하수. 나름 들키지 않게 예의주시하며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면서 내 눈치는 겁나게 봤으니까, 대범한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역시 그거구만. 초짜 주제에 감당도 못할 힘이 생긴……. 아니지 아냐. 걔가 무슨 초짜야? 분명 컨셉이야. 기만자 자식."
우연인지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주 들르던 가게까지 동선이 겹쳤기에 '이쪽 계열'의 사람인가 싶었으나, 대화를 들어보면 그저 같이 데려가던 여자아이가 꼬셨을 뿐. 메이드와의 꿈만 같은 서비스를 누리고 있는 동안의 행동거지를 보면 딱히 그런 계열은 아닌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유노멍'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트고 있던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옆에 귀여운 여자애까지 끼고 다니고… 뭐야, 그 리얼충. 이쪽 세계에 있으면 안 되는 인간상 아니냐고."
섣불리 접근하는 것도 하수. 그러니 이번에도 위저드가 취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을 써볼 수밖에 없다.
남의 목숨을 팔아먹는 짓이겠지만, 적어도 애지중지 해야 마땅할 동료를 팔지는 않았으니 그 녀석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런 애정없는 녀석과는 다르니까.
애정이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 그러니 애정을 둘 일이 없는 것이라고 대충 대해서는 안 된다.
단지 그 이름을 기억할 가치가 없을 뿐.
"역시, 찔러보길 잘 한 것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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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만에 세 편이라니 요 근래 가장 업로드 빈도가 높군요
그것도 꾸역꾸역 삽화까지 집어넣은 것까지 따지면 그나마 성실하게 올라온 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태까지가 불성실했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만...
그나저나 문라이트
왜 하필 이 덱을 픽했느냐 하면 그냥 사자가 에이스로 나오는 테마 찾고 찾다가 고심끝에 정해졌습니다
SR에 팬나에 프플에 이미 다 다룬 참이니 설정만 안 거슬린다면 다른 애니 테마라고 딱히 고사할 일은 없으니까요
덕분에 이렇게 원턴킬로 깔끔하게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다행이네 다행
다시금 글에서 펜듈럼을 다룰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을까 싶지만 결국 한 장도 다뤄지는 일은 없었네요
그럼 펜듈럼은 다음 기회가 되는 것으로
네 쓰는 본인도 언제일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삽화로 나오는 일은 없었던 작중 메이드들은 요런 느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역 신세라 아사가오 씨 빼면 이름도 제대로 안 정했다는 게 유감
혹시 모르지요 언젠가 또 다뤄질 일이 있으면 정해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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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3.24 15: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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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3.24 19: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