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관심을 무럭무럭받은 보람이 있었는지, 키벨의 운동능력은 점점 눈에 띠게 늘어나고 있었다. 물론 이는 키벨 본인이 큰 형의 스케쥴을 착실히 따르고 힘든 시간을 묵묵이 견뎌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은 의도치않게 소외당한 에르제 입장에선 알 바도 아니었고, 전혀 반가운 사실도 아니었다.
"누~나~"
"응? 오늘도 언니나 다른 애들이 너랑 안 놀아주는 거야?"
"응. 그래서 삐졌어."
그런 에르제를 어르고 달래주는 건 늘 오리피아의 몫이었다. 형인 키벨의 사정을 들려줬어도 그건 그거라는 식으로 토라진 에르제였고, 하필 로제도 키벨의 체력 증강 계획을 돕느라 에르제에게 평소만큼의 신경을 쓰지 못 하는 입장이었기에 다른 선택지라고 할 것이 없었다.
"정말이지, 키벨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다들 우리 막내한테 신경을 안 쓰는건지 모르겠다니까."
"맞아, 맞아! 나하고도 놀아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어머니의 비상한 머리를 그대로 물려받았기에 에르제도 키벨의 상황 정도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욕심많은 성격도 어느 정도 이어졌는지 이건 이거고 그건 그거라는 식으로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그래선지 가끔은 키벨이나 로제에게 심술을 부리곤 했고 다른 형제자매들에게도 자신을 어필하곤 했다. 하지만 이도 저도 안 되거나 분위기가 아니다 싶으면 그대로 오리피아에게 가버리는 것이 주된 패턴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뭐하고 놀고 싶어?"
"있잖아, 있잖아! 내가 멋진 덱 하나 만들었어! 한 번 봐줘!"
"우후후, 그럴까?"
그런 에르제를 돌보는 일은 오리피아 입장에선 늘 재밌는 일이었다. 욕심이 많은 성격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자기 마음에 안 들면 가끔 심술을 부리기도 하지만 아직 다섯살밖에 안 된 꼬마인데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만큼 자기를 챙겨주는 누나의 말은 또 잘 들어주는데다 어머니의 잔혹한 심성까지는 물려받지 않았기에 얄밉게 굴거나 심술을 부려도 그 모습이 밉다기 보다는 오히려 귀여웠다.
"자, 내 턴이야!"
이번에 가져온 것은 저번의 그 [거대전함] 덱이었지만 이번에는 고레벨의 몬스터가 많다는 점을 활용해보려는 흔적이 느껴진 덱이었다. 하지만 고레벨의 몬스터가 많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패가 꼬이기 쉽다는 의미였고, 패가 꼬이기 쉽다는 것은 자신의 플랜을 제대로 펼치지 못 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다.
"우으으..."
"에르제, 얼굴에 패가 말렸다는게 다 보이네?"
"기다려봐! 나는 천재니까, 방법은 금방 나와!"
"우후후. 그럼 기다려볼까."
그리고 이는 그대로 맞아떨어졌고, 덕분에 에르제는 단 두 턴만에 도저히 뭘 어쩔 수 없는 패를 잡아버린 바람에 한참이나 고민하다 결국 토라진 채 서렌더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끄으응..."
"혹시 다른 덱은 없어? 뭔가 네가 보기에 멋져보이는 덱이라던가..."
"그런 건... 아, 있어!"
그렇게 토라졌던 에르제였지만 이내 다른 걸 준비했다면서 꺼내든 것은 다름아닌 [불꽃성기사] 덱이었다. 다소 자기 취향껏 만든 첫번째 덱과는 다르게 다섯 살 먹은 듀얼리스트가 자기 나름대로 덱 레시피들을 참고하여 만든 덱 치고는 제법 준수했고, 덕분에 오리피아도 어떻게든 이기기는 했지만 자신의 [군관] 덱으로는 제법 애를 먹었다.
"우와아... 이번 듀얼은 제법 쉽지 않았네..."
"아깝다아... 그러니까 한 번 더 듀얼이야, 누나!"
"그럴래?"
제법 팽팽한 승부를 낸 것에 신이 난 에르제가 그 기세를 타고 오리피아와의 듀얼을 이어나갔고, 신이 난 에르제의 듀얼을 보며 오리피아는 왜 자기 언니가 귀여운 소년들에게 맥을 못 추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다.
*
그리고 형제자매들도 에르제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은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기에 그런 막내를 위하여 나름대로 이벤트를 준비해주기도 했다.
"그렇다! 내가 바로 마왕이다! 자, 상대할 준비는 되었는가!"
"헤헤! 나의 성기사들의 힘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올까!"
트와일라잇 시티의 주말. 공원에 마련된 듀얼 공간에서 엉덩이를 덮을 정도로 긴 검은 코트와 군청색 조끼, 검은 넥타이를 조합한 드레스 셔츠, 군청색의 반바지와 가터를 물려놓은 검은 하이 삭스, 몇 센티미터 정도의 굽을 가진 짙은 갈색의 옥스포드 화, 특별 주문으로 제작한 제트 블랙 듀얼디스크 그대로 키벨은 간만에 악역 놀이를 즐길 때 쓰던 복장을 갖춰입고 등장했다. 한 편, 에르제는 '귀여운 소년이라면 역시 멜빵과 반바지'라는 주장을 관철시킨 로제 덕분에 하얀 드레스셔츠와 붉은 나비 넥타이, 멜빵을 물린 짙은 갈색의 반바지, 하얀 하이 삭스, 갈색 로퍼 조합의 클래식한 소년 복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으헤~ 너무 좋다~"
"우리 큰 언니는 이래저래 사형감이라니까."
"시끄러. 그렇게 따지면 너도 얼마 전부터 몰래 곰인형 모으고 있잖아?"
"윽... 하지만 적어도 난 사람에게 침흘리고 그러진 않거든?"
로제와 로벨리아가 티격태격하는 사이에도 키벨과 에르제는 각각 [지박] 덱과 [불꽃성기사] 덱으로 서로 재밌는 듀얼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 나의 최강의 몬스터되는 [지오글라샤=라볼라스]가 강림했다! 과연 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턴 엔드다!"
"우으! 하지만 용사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법이야! 자, 드로우!"
그런 둘의 모습을 로제는 흐뭇함과 위험함 그 어딘가에 있는 싱글벙글한 표정을 지으며 캠코더로 촬영하고 있었고, 오리피아는 못 말린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오빠, 우리 큰언니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그치?"
"무슨 말을 더 하겠어. 범죄로 이어지지만 않으면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하고, 좋게 생각하면 그만큼 가족의 흔적을 하나라도 더 남기고 싶다는 거 아니겠어?"
"으음... 난 잘 모르겠어."
로벨리아는 그런 로제를 두고 푸념했지만 정작 바르바스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받아넘기는 바람에 그 말과 함께 가벼운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둘의 듀얼은 거짓말같은 에르제의 데스티니 드로우를 통한 역전극으로 끝이 났지만 이 듀얼을 구경하는 모두가 키벨이 막내를 위해 적당히 힘을 빼줬다는 정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하하! 불꽃의 정의가 마왕의 어둠을 모조리 불태웠다!"
"분하네! 하지만 다음엔 이렇게 당하지 않을 거라고, 용사!"
그 말과 함께 키벨은 그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날렵한 몸놀림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동안의 훈련의 성과를 에르제에게도 보여줬고, 그 모습을 본 에르제는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그나저나 키벨 형, 언제부터 막 닌자처럼 움직인거야?"
"헤헤, 우리 형이 많이 신경써준 덕분이야. 물론 그 사이에 너한테 신경을 많이 못 쓴 것도 사실이니까, 이번 주말은 너를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쳤어. 어때?"
"헤헤, 그럼 다음에도 이렇게 놀아주면 정말 좋겠는데."
기분이 좋아진 에르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남매 모두가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자, 자, 기왕 여기까지 나왔는데 다같이 사진 한 번 찍어보자고!"
"나도?"
"너도. 이럴 때 즐기는거지, 안 그래?"
"으음..."
이 기세를 탄 로제가 남매 모두가 담긴 사진을 찍기로 하고, 자신의 얼굴이 찍히는 것에 부담을 느끼던 로벨리아도 결국 여러 설득 끝에 사진의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단연 에르제였다.
*
"오늘 에르제 엄청 신났지."
"그래. 키벨도 체력 단련 열심히 했는데도 에르제를 못 따라갈 뻔한게 한 두번이 아니었잖아. 그랬는데 결국 오빠 등에 업혀서 잠이 들어버렸네."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함께 공원에서의 듀얼, 점심 식사, 놀이공원에서의 한 때 등을 즐기던 에르제는 결국 놀만큼 놀고 먹을만큼 먹었다는 듯 바르바스의 등에 업힌채 잠들어있었다. 그런 에르제의 머리를 로제가 가볍게 쓰다듬으니 잠든 막내의 얼굴에 가벼운 콧소리와 함께 작은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헤헤... 잘 자, 에르제."
"아마 한동안은 푹 잘거야. 그런데 설마 에르제가 자는 것까지 찍는다거나 그러진 않겠지?"
"으음, 솔직히 말하면 찍고 싶은데."
"언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범죄처럼 들려."
주변에서의 티격태격이 무색하게, 에르제는 큰형의 등에 업힌 채 잘만 자고 있었다. 그리고 키벨은 에르제의 표정을 보며 비록 부모는 없을지언정 모두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잘 살아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그리고 에르제가 그 마녀의 잔혹한 성품을 닮지 않았다는 것에 큰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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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한 번 끄적였습니다
사실 지난 몇 개월간 기존에 써내려가던 x-point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습니다만 쓴게 얼마나 되었다고 리부트든 리바이브든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기존에 써내려가던 글에 적용하려던 설정들이나 그 모든 것들을 계속 유지하기에는 제 기량도 안 되고 설정을 매끄럽게 이어줄 뭔가가 없었다는게 유감스러울 따름입니다
일단 리부트인 만큼 기존의 x-point 관련 설정이나 등장인물들은 최대한 살려내고, 기존에 써내려간 글들을 삭제한다거나 하는 건 판단을 미룬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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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외전 모두 마치면 x-point의 리부트를 시작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23.10.30 06: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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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스토리 진행은 커녕 하기 싫어 죽겠다는 마음이 한 가득이었으니 말이죠 뭐 | 23.10.30 06: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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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써내려간 설정들을 살릴 방법을 전혀 찾지 못 했습니다 :( | 23.10.30 11: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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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ㅠㅠㅠ | 23.10.30 12:5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