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블 시티의 수해(樹海)는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거대했다. 동서남북의 네 방향으로 뚫린 작은 도로 이외엔 숲에 집어삼켜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도시 전체를 숲이 감싸고 있었고, 그나마도 숲의 초입에 위치해 나무가 덜 우거졌음에도 가장 나무가 덜 우거진 남쪽 방향이 아니면 지평선을 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누가 이런 곳에 도시를 세웠냐고 따져도 할 말이 없는 작은 도시의 수해의 샛길을 따라 시큐리티 포스의 토벌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젠장... 시큐리티 포스가 기어코...!"
아자르만이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그 샛길의 존재는 시큐리티 포스의 공세 이틀 전에 하샤신의 우두머리인 '사이먼'도 늦게나마 발견했지만 문제는 하샤신은 수에서 너무 밀린다는 점이었다. 루나 시티의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하샤신들은 많게 잡아도 백 언저리였고, 그나마도 모두가 자신을 따라 암흑 날개의 재건에 나선 것도 아니었기에 숫적 열세를 질로서 극복하고자 지난 5년의 시간동안 지나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혹독한 훈련을 치렀지만 이런 식으로 작정하고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하샤신들로선 언젠간 밀려버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너무 늦은 발견과 함께 시큐리티 포스의 대대적인 토벌 등과 겹쳐 하샤신들은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었고 더 유감스러운 사실은 그런 샛길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넷이나 있었기에 세이블 시티 곳곳에 설치한 트랩들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것과 늦은 발견으로 인해 고작 하루 안에 트랩을 설치해야했기에 그 수준이 너무 부실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곳으로 옮긴 건가요?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들을 하나라도 더 죽일 수 있게?"
"그렇습니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습니다만, 이럴 때야말로 믿음을 가져야합니다."
그렇기에 원래의 거처였던 별장을 포기하고, 일종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거대한 지하 동굴에 마련한 비밀 시설로 자리를 옮긴 사이먼은 만약 자신의 실패가 명백해진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동굴 곳곳에 설치한 폭탄을 기폭시켜 말단 대원들이라도 길동무로 삼을 작정이었다. 설치한 폭탄의 폭발력이나 숫자 등을 따질 때 동굴 전체를 무너트리는 건 무리였지만 어차피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만 막아버리면 아사하든 질식사하든 어쨌든 살아남기는 어려웠다.
"다른 하샤신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죠?"
"이미 매복 포인트 곳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부는 바깥에 있고, 일부는 동굴 곳곳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군의 숫자가 너무 부족한 건 유감이지만, 적어도 시큐리티 포스의 말단 몇몇은 죽일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전에 그 축성을 받았다던 듀얼리스트들은 어떻게 된 거죠?"
"별도로 준비를 해뒀습니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놈들은 여기서 살아서 나가지 못 할 겁니다."
로벨리아는 사이먼의 말에 이 곳이 자기가 죽을 곳이 되겠다는 예감을 받았고, 그러면서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던 한 남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3년 전의 이야기였고, 그 남자가 굳이 이런 위험한 곳까지 올 이유가 없으리라 생각한 로벨리아는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어버렸다.
"왜 그러십니까?"
"막상 죽을 때가 가까워지니 옛날 생각이 나서요. 아무튼 마지막까지 잘 해주세요. 저는 암흑 날개가 재기에 성공하든, 완전히 무너지든, 어느 쪽이 될 때까지 지켜볼테니까요."
"알겠습니다."
로벨리아는 가벼운 한숨과 함께 죽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 창백할 정도로 하얀 손은 어느 때보다도 차분해져있었다.
*
사이먼과 로벨리아가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는 동안, 세이블 시티의 수해에서는 하샤신들의 마지막 저항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자르가 알려준 정보에 맞춰 샛길을 따라 아지트로 이동하던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들은 수해 속으로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하샤신들의 급습에 대처해야만 했다. 샛길마다 급조된 함정이 배치된 것을 발견한 대원들은 이미 그 시점에서부터 무슨 일이 생기겠구나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지만 암살의 명수인 하샤신들은 그 전투력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기에 대원들은 하샤신들의 공격에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었다.
"으아악!!"
그리고 하샤신들의 거처인 수해에는 당연하겠지만 여러 동물들도 서식하고 있었고, 그 중에는 인간들이 무책임하게 버리고 도망간 개들도 있었다. 크기를 막론하고 반쯤 야생화가 된 채 수해 속을 살아가던 개들은 하샤신들에 의해 살육에 특화된 동물 병기가 되어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들을 공격하고 있었고, 사족보행동물의 기동력에 더해 수해 특유의 복잡한 지형이 맞물리며 시큐리티 포스도 큰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하샤신들이 중거리 저격으로 합동 공격을 펼치는 바람에 선발대로 나선 대원들 중 일부가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등의 인적 손실까지 생기고 있었다.
"방패벽! 방패벽!"
그러나 시큐리티 포스도 순순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고, 고대에서부터 내려져온 전술에 맞춰 방패벽을 만들어 조금씩 이동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응수하고 있었고, 닌자들 역시 현대전의 흐름에 맞춰 총기류, 연막탄 등을 인법과 결합해 사용하는 식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금둔, 금강벽(金剛霹)!"
사쿠야와 이와나가는 인법으로 만들어진 단단한 벽을 엄폐물 삼아 연사가 가능하게 개조한 7.62mm 전투소총으로 개들을 하나하나 저격하기 시작했고, 카게야마와 코가라스마루는 일부 닌자를 대동하고서 특유의 신체능력과 인법을 조합해 하샤신의 추적에 나섰다.
"끄아악! 이거 놔!!"
그리고 가끔은 행운도 따랐다. 한참 개를 저격하던 사쿠야를 역으로 저격하려던 하샤신 중 한 명을 수해에 사는 호랑이가 뒤에서 급습한 것이었다. 아무리 하샤신이 암살의 명수라 해도 뒤를 내주면 별 수 없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어떻게든 호랑이의 기습에 대응하려던 하샤신은 뒤이어 사쿠야의 저격에 명을 다하고선 호랑이의 한 끼 식사가 되는 운명을 맞이했다. 총성이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와중에 자신을 저격하려던 하샤신을 응징하고자 아케루스가 숲속의 호랑이를 이용해 자신을 도운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던 사쿠야였지만 이내 그 잡념을 끊고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제길! 퇴각! 퇴각!"
하샤신의 전투에 점점 적응한 시큐리티 포스가 상황에 맞춰가며 응수하고,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개들도 닌자들과 시큐리티 포스의 특등 사수들의 합동 저격으로 인해 하나 둘 저격당해 무력화되자 남은 하샤신들은 사전에 합의했던 대로 옛 아지트로 퇴각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큐리티 포스 측에서 투입한 헬기와 드론들이 하샤신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고, 뒤이어 경고 방송도 이어졌다.
"너희 하샤신들은 이미 포위되었다!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투항하는 자들에게는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이미 하샤신들은 자신들이 벌여놓은 일들이 있는 이상, 투항해봐야 결말은 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한 명이라도 더 아트몬의 곁으로 보내주고자 결사항전을 벌였고, 드론 몇 기를 저격해 떨어트리는 경이로운 저격까지 선보였다. 그리고 시큐리티 포스는 그에 대한 화답으로 남은 하샤신들까지 모두 옛 아지트로 몰아붙이며 그들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다.
"쿨럭...! 하지만... 우리의 신은 반드시 돌아온다...! 반드시...!!"
"그럴 일은 죽어도 없을 거다."
그렇게 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는 하샤신들 중 한 명은 눈 앞에 있는 중무장 상태의 토니와 엘레인을 향해 자신의 광신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러거나 말거나라는 태도로 화답했다.
"그 잘난 어둠의 신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잖아."
"너희 불신자들 모두... 반드시..."
그리고 엘레인의 말마따나, 수해의 하샤신들이 피를 흘려가며 죽어가는 와중에도 어둠의 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설령 뭔가를 하고 싶어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했지만.
*
"생각보다 부상자가 많군... 이건 안 좋아..."
하샤신들의 옛 아지트에서 중간 점검을 진행하는 마린의 표정은 매우 굳어있었다. 확인된 사망자가 이미 15명에, 부상자도 약 40여명 가량이 확인되었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대원들도 있어 사망자의 숫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면목이 없다고, 이래선... 전원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랐을텐데..."
총 4개 방향에서의 공격임을 감안하더라도 하샤신들과 그들이 육성한 개들의 합동 공격으로 인해 바깥의 아지트를 공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가 60여명에 이르렀고 그나마도 무력화된 하샤신들을 현장에서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아지트를 옮겼다는 정보를 알아냈기에 앞으로도 사상자의 수는 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닌자들이 남은 하샤신들이 수해 어딘가에 위치한 옛 지하 요새에 틀어박힌 상태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마린에게 하샤신들이 농성하는 최후의 거처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고 그들이 지하 요새에서 버티고 있다는 말에 그녀는 더 이상의 희생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판단하에 이번 작전에 대동한 책사들과 함께 이야기를 좀 나누고 오겠다고 말하면서, 닌자들로 하여금 지하 요새의 출입구를 가능한 모두 찾아내어 하샤신 중 어느 누구도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 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임시 본부로 정해진 옛 아지트에서의 작전 회의가 열린지 약 30여분 후, 그녀는 새로운 지시를 하달했다.
"우선은 닌자들과 특수 드론을 최대한 동원해 놈들이 농성하고 있을 지하 요새의 출입구를 모두 찾아내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출입구의 위치가 모두 확인되는대로 드론들과 무인 로봇들을 투입해 놈들이 설치했을 트랩을 제거하고, 하샤신들을 가능한 모두 처리하되, 닌자들과 협조해 현장의 상황에 맞춰 대처하도록 하세요."
"그리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이런 저런 작전 지시를 내리는 마린의 마음은 무거워졌다. 지금쯤이면 시리우스도 사상자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시큐리티 포스의 총대장으로서 가슴이 찢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미 희생을 각오한 이상 먼저 세상을 뜬 대원들을 위해서라도 이번 작전은 반드시 성공시켜야했다.
*
작전이 개시된지 이틀, 사흘, 나흘, 그리고 5일이 되었고 요새에서 항전하고 있는 하샤신들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차라리 바깥에서 농성했던 동지들마냥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들을 하나라도 길동무 삼기라도 하면 그나마 낫겠지만 무인 로봇과 드론을 시작으로 닌자들이 인법의 힘을 빌려 안으로 들여보내는 독충들만 계속 마주하는 와중에 배는 점점 고파오고, 목은 점점 말라오는데다 식량과 식수를 저장하던 저장고들이 시큐리티 포스의 로봇들에 의해 공격받기 시작하면서 하샤신들은 이번 시련은 지난 5년간의 인내 이상으로 괴로운 것이라 느끼고 있었다.
"차라리 바깥의 동지들처럼 말단 대원들의 목이라도 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지난 5일동안 상대한 거라곤 기계들과 벌레들 뿐이라니. 우리 처지가 참 말이 아니군..."
"하지만 어쩌겠나. 이 또한 시련일테니까."
"그렇긴 하지... 하지만 지치는 것도 어쩔 수 없군."
아무리 부수고 처치해도 시큐리티 포스 측의 로봇들과 드론들은 계속해서 지하 요새를 들쑤시며 지형도를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있었고, 닌자들의 인술까지 더해져 지하 요새 곳곳에 마련한 트랩들도 하나 둘 낭비되거나 돌파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이제는 식량과 식수가 저장된 저장고들까지 공격을 받기 시작하고, 이렇게 되면 자신들은 몰라도 어둠의 신의 그릇이 되어야할 무녀가 고통받을 것이 뻔하니 하샤신들도 이제는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저장고들을 사수하는 수밖에 없었다.
"또 무슨 소리가... 잠시만, 이건 발자국 소리같은데..."
"드디어 놈들이 온 건가...!"
그러던 중 드디어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으로 추정되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이번에야말로 바깥의 동지들처럼 대원들의 목숨을 하나라도 취하겠다고 결심한 하샤신들이었지만 문제는 시큐리티 포스의 장비 현황이었다.
"움직이지 마라! 너희는 이미 포위되었다!"
"으윽...!"
하샤신들은 밤눈도 밝아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어둠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기에 지하 요새 전체를 어둡게 만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닐 수 있었지만 이에 대응하고자 시큐리티 포스는 먼저 섬광폭음탄을 몇 발 던져 하샤신들을 먼저 무력화시키고, 미캉코 신도들의 도움을 받아 아케루스의 가호를 그려넣은 특제 서치라이트까지 다수 동원해 지하 요새 전체를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제아무리 하샤신이라 해도 동굴 속에서 미칠 듯이 울려퍼지는 폭음에 계속 노출되어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고, 게다가 며칠 동안 쉬지도 못 하고 계속해서 시큐리티 포스 측의 자잘한 공격을 막아내느라 신체 능력도 다소 저하된 하샤신들로선 버틸 수가 없었다.
"분하다...!!"
"놈들이 헛짓거리 못 하게 수갑 잘 채우고, 재갈도 물려버려!"
이런 식으로 하샤신들의 저항을 하나 둘 벗겨나가는 시큐리티 포스였고, 드론들과 무인 로봇들을 대량으로 투입한 대가로 엄청난 재정 지출이 요구되겠지만 적어도 아까운 인적 자원들이 죽어나가는 것보다는 훨씬 싸게 먹힐 것이었다.
"드디어 놈들이 온 것 같습니다...!"
"올 것이 왔나보네요."
그리고 사이먼은 요새 곳곳에서 울려퍼지는 폭음에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하고, 의식용 단검과 함께 기폭 스위치를 준비했다. 그의 몸에 둘러진 기폭 스위치는 수동 작동도 가능했지만 수동 작동에 실패할 때를 대비해 데드맨 스위치의 형태로도 기폭이 가능하게 손을 본 물건이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의식용 단검은 루나 시티에서 도망칠 때 혼란스러운 와중에 어떻게든 챙겨온 것이었다.
"그 단검은...?"
"루나 시티에서 챙겨온 겁니다. 단 한 번만 쓸 수 있는 칼이지만,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때인 것같습니다."
그 단검을 본 로벨리아는 그 검에 서린 무언가 위험한 힘을 느꼈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몰라도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 벌이겠구나라는 직감을 받았다.
*
"그나저나 너무 이상하군... 아무리 하샤신들의 수가 소수인데다 놈들이 설치한 트랩들도 무력화시켰다지만, 이상할 정도로 적막해..."
닌자들이 파악한 지하 요새의 중심부로 향하는 대원들의 한 명인 토니는 중심으로 향하는 내내 이상할 정도로 적막한 분위기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무어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뭔가 위험한 일이 터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토니는 부디 이 곳에 있을 그 소녀, 로벨리아가 무사히 있길 바라고 있었다.
"여기군. 도어 브리칭."
지하 요새의 중심부에 도착한 대원들은 도어 브리칭을 통해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갔고, 이내 그 곳에서 하샤신의 우두머리인 사이먼과 함께 있는 로벨리아를 발견한 대원들은 그 둘에게서 뭔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움직이지 마! 시큐리티 포스다!"
"흐흐흐... 어차피 이 곳은 외통수다. 움직이지 말라고 할 것도 없어. 갈 곳도 없으니까."
그리고 로벨리아를 발견한 토니는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로벨리아!"
"당신은...?!"
3년 전의 그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 로벨리아는 생각치도 못 한 상황에 당황했다. 그만한 시간이라면 진작에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고도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크게 당황했으나, 어차피 사이먼이 자기 곁에 있는 한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낯익은 목소리를 듣게 될 줄은 몰랐군요... 마지막 순간이지만 이런 곳에서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요."
"아냐! 넌 아직...!"
"뭐라 말해도 소용없다. 이미 일은 시작되었으니까."
사이먼의 말과 함께 여러 도시에서 하샤신들에 의해 납치당한 지하 듀얼리스트들이 멍한 눈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서 그들이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시큐리티 포스들은 일순 강렬한 두통을 느끼며 주저앉고 있었다.
"어윽...!! 이건 도대체...!"
"그 분이 내려주신 비밀 가르침의 힘이지."
강렬한 두통과 함께 쓰러져버린 시큐리티 포스의 대원들을 보던 사이먼은 이윽고 자신의 몸에 두른 기폭 스위치의 안전 장치를 해제했고, 망설임없이 눌렀다. 허나 원래대로면 진즉에 들렸어야 할 폭발음은 어디서도 들려오지 않았고, 이미 예상했었다는 듯이 사이먼은 기폭 스위치를 내려놓고선 무어라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사이먼의 반격에 맞춰 재반격을 시작하는 두 기운이 있었다.
"미안하지만 네 마음대로는 안 돼!"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여주겠어!"
하레와 니니. 이 두 사람이 사이먼과 세뇌당한 듀얼리스트들이 외우는 아트몬의 비밀 가르침 속 주문에 맞서 미캉코의 춤을 선보이기 시작하고, 사이먼은 이 둘의 등장에 말많고 탈많은 집단이나 기본적으로는 빛의 신을 섬기는 집단인 미캉코와 엮였음을 느끼고 이번 대결을 통해 저 둘의 피를 제물삼아 어둠의 신의 편린이라도 강림시키겠다는 각오로 본격적인 힘을 선보였다. 허나 하레와 니니의 두 사람만으로는 세뇌된 듀얼리스트의 힘까지 받는 사이먼의 힘을 받아내기가 어려운 상황. 그렇게 이 둘의 피를 어둠의 신에게 바치겠다 다짐한 사이먼을 방해하는 또 다른 힘이 느껴졌다.
"나, 참... 세이블 시티가 시끄럽네 마네해서 와봤는데, 이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우으... 귀찮지만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자고."
김철수와 후우리였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분명한 것은 세이블 시티의 수해 어딘가에서 느껴진 기운들의 격돌을 느끼고서 두 사람이 찾아왔다는 것이었고, 하레와 니니는 왜 저 두 사람이 여기에 나타났냐며 속으로 당황하면서도 일단 물불 가릴 처지도 아니었기에 둘에게 도와달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암흑 날개를 등진 사내를 알아본 사이먼은 저 배신자의 피도 함께 바치겠다며 모든 힘을 총동원하기 시작했다.
"너 때문에 진짜 귀찮은 일 많이 겪었어. 그리고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끝장이나 보자고."
김철수의 말과 함께 그가 지닌 정령의 힘이 발현되고, 뒤이어 [티아라멘츠]의 힘과 후우리의 춤까지 함께 더해지며 사이먼의 힘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호각지세 이상은 안 되는 상황이었고 사이먼도 잠시 당황하기는 했어도 아직 이 정도라면 충분히 자신이 밀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요!"
"너무 늦지는 않아서 다행이군."
그러나 또 다른 기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애프터라이프의 전직 간부인 알파드와 아케르나, 암흑 날개의 전 간부였던 루시우스, 그리고 [엑스퓨어리 누아르]를 데리고 나타난 나나와 마리아, 거기에 그 누아르에게 덩달아 끌려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베르트랑이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먼은 이건 또 무슨 일이냐며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저 배신자들을 모조리 어둠의 신의 영전에 바치겠다며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암흑 날개인가 암흑 프라이드 치킨인가 뭔가가 꽤나 골치 썩인단 말이야. 우리 방송도 저 놈들 때문에 며칠 강제로 문 닫았고."
"그래도 둘은 하샤신에게 목이 안 달아났으니 다행아냐? 그리고 긴말은 필요없어. 이번에야말로 암흑 날개의 잔불까지 모두 꺼트리자고."
암흑 날개의 하샤신들 때문에 방송을 반강제로 중단해야했던 일 때문에 굉장히 불쾌함을 느끼던 와중에 세이블 시티에서의 소식을 듣게 된 아케르나와 알파드는 자신들과 같은 입장인 마리아, 루시우스 등을 대동하고 급히 세이블 시티로 오게 되었고, 여기에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함께 합류한 나나와 베르트랑까지 총 여섯명이 사이먼의 힘을 밀어내는데 동참했다. 미캉코의 춤과 정령들의 힘, 여기에 애프터라이프의 전 간부들까지 가세하자 열 명을 상대하게 된 사이먼도 이제는 힘이 부치고 있었고, 끝내 아트몬의 비밀 가르침 속 주문이 깨져 격파당하자 결국 올 것이 왔다는 것을 직감하고서는 쓰러진 와중에도 문제의 의식용 단검을 꺼내들었다.
"그런가. 나로서는 한계였나. 하지만... 우리의 신이...!"
그리고 사이먼이 무슨 짓을 하려 한다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김철수가 뭔가 해보기도 전에 그는 자기 손의 의식용 단검을 자신의 목에 찌르고서는 사선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나나는 경악한 나머지 비명을 질렀고, 다른 사람들 역시 이 광경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너희들 모두를... 단죄할 것이다...!"
"거기 너! 어서 피해!"
그렇게 부르르 떨리던 사이먼은 그 말과 함께 이내 그 움직임을 멈췄고 그의 손에 들려져있던 의식용 단검은 손잡이만 남긴채 검신 모두가 녹아버리고 말았다. 한 편, 사선으로 갈라진 사이먼의 가슴에서 어둠의 촉수가 뻗어나오기 시작하고, 김철수가 그 근처에 있던 로벨리아에게 급히 피하라고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 그 촉수가 로벨리아의 몸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기점으로 로벨리아의 눈에는 어두운 기운이 서리게 되었고, 세뇌당한 지하 듀얼리스트들은 그 어둠의 촉수와 연결되어 그녀의 몸을 그릇으로 삼아 다시 한번 재림을 꿈꾸는 어둠의 신의 양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끈질긴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해... 지겹지도 않냐?!"
아케르나의 말마따나 어둠의 신, 아트몬은 참으로 끈질겼고 이번에는 로벨리아의 몸을 빌려 나타난 어둠의 신은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록 본체는 명계에 속박당한 상황이어서 본래의 힘을 다 쓰지는 못 했으나, 그럼에도 이번 기회만은 절대 놓치지 않고자 아트몬은 자신의 양분이 되어 줄 영혼들을 사냥하기 위해 애프터라이프 시절의 신도들과 암흑 날개 시절의 신도들의 모습을 본딴 검보랏빛 그림자들을 내보내고 있었다.
"나는... 다시 일어나리라...!"
"그냥 잠이나 처 자세요, 이 불량식품아!"
열받은 아케르나의 한 소리와 함께 세이블 시티의 지하 요새에서 아트몬의 재침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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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비상식량, 재림!
참고로 사이먼이라는 이름은 아트몬-아몬-나루드-듀란-듀란듀란-사이먼 르 봉-사이먼 으로 이어져 탄생했습니다
(IP보기클릭)1.238.***.***
(IP보기클릭)211.198.***.***
비상식량 취급은 이름을 늦게 지은 업보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른 외전의 인물들도 슬쩍 끼워넣어봤네요 | 23.09.03 01:56 | |
(IP보기클릭)220.83.***.***
(IP보기클릭)211.198.***.***
어쩌다 이 동네까지 끌려왔는지(?)는 선생님에게 맡기겠읍니다 그리고 사이온이라니 왠지 엘지폰이 생각나는데요 | 23.09.03 02: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