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는 짐승에게 인간의 업을 등에 지게 했던 것이다
죽인 것의 업을 이어받는다
이것 또한 닌자이다
하샤신들을 꾀어내고 희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었다고는 하나, 트와일라잇 시티의 죄없는 길고양이들을 인법을 빌려 하샤신들의 제물로 바친 것은 이와나가의 결정이었다. 그렇기에 인법의 힘으로 '고기인형' 신세가 되어 하샤신들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된 길고양이들의 혼을 달래고, 죽은 고양이들의 업을 이어받는 것도 이와나가의 몫이었다.
"언니..."
이와나가의 의식. 그것은 자신들의 뜻을 위해 희생된 무고한 생명에게 바치는 작은 진혼제. 길고양이 몇 정도 죽는 것이 대수냐고 생각하는 시선도 있을지 모르나, 인법의 힘으로 희생되는 생명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이윽고 살육의 쾌락에 빠지고, 끝내는 수라의 길로 떨어지기 마련이었기에 이와나가는 이번 작전을 위해 희생된 고양이들의 영혼을 위해 작을지언정 허투루 의식을 치르지 않았고 사쿠야도 그런 언니의 의식을 지켜볼 뿐, 무어라 말을 덧붙이거나 할 수는 없었다.
*
냉동 고기 신세였던 하샤신, 아자르의 조력으로 신생 암흑 날개가 세이블 시티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과, 수해에 근거지를 마련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된 시큐리티 포스였지만 여전히 난감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먼저 세이블 시티의 지리라면 지난 몇 년 동안 활보했을 하샤신들이 더 자세히 알고 있는데다 그들은 암살의 명수인 만큼 어느 포인트에서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할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하샤신들이 시내에 구축했을 방어선을 돌파한다고 쳐도, 그들의 본거지가 마련된 세이블 시티의 수해는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는 순간 울창한 숲들과 잡초들의 시너지로 인해 길을 해매기 쉽상이거니와, 수해에 놓여진 다양한 종류의 트랩들은 수해의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그 위치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고, 애초에 그 본거지가 수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만큼 하샤신들이 그곳으로 가는 길에 무슨 장난을 쳤을지 절대 알 수 없었다.
"이거야 원..."
아자르가 실토한 각종 정보들을 토대로 추정한 근거지의 위치를 확인한 사일런스였지만 하샤신들이 멍청하게 그가 알려준 별장에만 있어줄 리가 없었고, 수해 내부의 지리는 대략적인 것 이외에는 아직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어 고민이었다. 그나마도 세이블 시티의 경찰들이 가끔씩 수해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시신을 처리하느라 수해의 지리 중 일부를 알고 있었고 그들을 통해 추가적인 자료를 얻은 상태임에도 이 모양이었고, 위성 사진으로도 수해 내부의 상황을 파악하는 건 한계가 있었기에 현재로서는 세이블 시티에 파견된 닌자들이 하루라도 빨리 수해의 지리 정보를 완성시켜 시큐리티 포스의 소탕 작전에 뭐라도 보탬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고작이었다.
*
"혹시 당신이 그 로벨리아 님이신지요?"
2년 전의 어느 밤. 지금은 문을 닫은 채 방치되어가는 보육원에서 '로벨리아'라 불린 분홍 머리의 소녀는 자신을 찾는 의문의 인물들에게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은 누군지도 모르는 의문의 인물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당황할 일이었는데, 그런 자신 앞에 한 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기에 더욱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누구세요...?"
"저희는 당신을 모시게 된 종들입니다. 몰랐다고는 하나 만남이 늦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니 이제는 세이블 시티의 수해에 마련된 비밀 지하 시설이 보였다. 로벨리아는 어둠의 신의 축복을 온 세상에 널리 퍼트리자는 하샤신들의 제안을 반쯤은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받아들였고, 그렇게 어둠의 신의 무녀라는 허울좋은 이름만 가진 채 지난 시간을 하샤신들의 얼굴마담 신세로 살아왔다. 어차피 샤키르 나셸이라는 희대의 테러단체 수장의 피가 흐르고 있고, 하샤신들이 자신을 순순히 놓아줄 것 같지도 않았기에 로벨리아는 그들이 바랐을 대로 무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따름이었다.
"어둠의 신의 축복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까놓고 말하자면 그저 약쟁이와 약팔이의 관계일 뿐이잖아..."
하샤신들이 가르쳐준 암흑 날개의 교리를 재차 곱씹어보던 로벨리아는, 요약하자면 어둠의 이름으로 '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어둠의 신의 약속 정도로 말할 수 있는 내용을 향해 조롱에 가까운 해석을 내리고 있었다.
"너무 불경한 해석아닙니까."
그런 그녀의 해석에 하샤신의 수장은 다소 못마땅하다는 태도를 드러내고 있었다. 만약 그 말을 하는게 이를테면 시큐리티 포스의 요원이었다거나 했다면 당장이라도 그 자의 목을 날려버렸을 발언이었다.
"그렇게 말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 축복인지 뭔지를 받은 사람들의 모양새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약에 흠뻑 취해버린 모양새잖아요."
그렇게 말하는 로벨리아와 하샤신의 수장의 눈 앞에는 루나 시티 등에서 '대대적인 단속'에 걸려 '체포'된 지하 듀얼리스트들이 하샤신들에 의해 정신적으로 굴복당한채 무기력하게 서있는 모습이 펼쳐져있었다. 하샤신들에 의해 암흑 날개의 교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당근과 채찍등을 병행한 끝에 그들에게 굴복해 세뇌되어버린 지하 듀얼리스트들의 모습은 도시 전설로 치부되었던 특수한 약물을 통한 세뇌 실험을 방불케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기에 로벨리아 입장에서는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달리 이 상황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틀렸습니다. 이건 축성(祝聖)이라는 겁니다. 저들의 목숨은 다만 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 님의 것이 되었고 그 외의 다른 무엇도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지하 듀얼따위로 남은 평생을 보냈을 걸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목적을 내려준 겁니다."
"그렇군요. 하기야 세상을 까맣게 물들이는데 방법이야 중요치않겠죠."
하샤신들의 광신을 넘어선 맹신을 지난 2년간 목격했던 로벨리아는 하샤신들의 수장의 궤변에 가까운 언변에 그러려니하는 식으로 답했다. 하샤신들이 승리해 정말로 이 세상을 어둠으로 물들이든, 그 반대로 하샤신들이 패퇴해 어둠의 신이 재기도 못 할 정도로 무너져버리든 아무래도 좋았던 만큼, 로벨리아는 하샤신들에 의해 여러 의미로 인생이 망가져버린 지하 듀얼리스트들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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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뭔가를 하기 전에 일종의 쉼표로서 짧게 작성해봤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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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벨리아는 꽃의 이름에서 따왔으니 유사성 자체는 순전한 우연입니다 | 23.08.30 23: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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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차후 두고봐야 알 것입니다 | 23.08.31 08:1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