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빛이 존재한다면, 그 어딘가에는 반드시 어둠이, 그림자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지난 5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었지만, 이제 다시 한 번 그 날개를 펼칠 준비가 되었다."
여기는 트와일라잇 시티로부터 북쪽으로 한참을 올라가야 나오는 도시인 세이블 시티. 산꼭대기에 위치한 천문대와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다시는 귀가할 수 없다는 말이 나돌 만큼의 크고 울창한 수해(樹海), 그리고 매년 늦가을 언저리에 열리는 마녀를 주제로 하는 도시 축제 이외에는 그다지 볼 것도 뭣도 작고 한적한 도시였고, 그런 곳이었던 만큼 애프터라이프도, 그 후신인 암흑 날개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이었다.
"인정한다. 우리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고,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채 이런 작은 도시에서 힘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는 걸. 그러나 우리는 끝내 돌아왔다."
그런 세이블 시티의 수해 어딘가에 위치해 보통 사람들은 접근도 할 수 없는 버려진 별장에 결집한 하샤신들은 5년 전의 치욕과 패배를 곱씹고 있었다.
"큰 치욕이었고 터무니없는 실패였다. 우리들의 마스터는 목숨을 잃었고, 날개는 꺾여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중 소수나마 살아남았고, 그 치욕을 되갚기 위해 우리는 5년의 시간을 인내했다."
루나 시티에서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극소수의 하샤신들의 우두머리는 조용히 살아남은 하샤신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있었다.
"어둠의 신은 명계의 사슬에 묶여있으니, 이는 죽음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내 눈으로 직접 본 것이니 틀림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둠의 신의 뜻을 받들 새로운 무녀를 찾아냈다."
그렇게 말하는 우두머리의 뒤에는 흔들의자에 앉아있는 한 가냘픈 소녀가 있었다. 그 얼굴에 씌워진 검은 가면은 비탄에 잠겨 있었고, 분홍색 머리는 푸석해진 채 길게 늘어져있었다. 검은 드레스와 검은 스타킹으로 온 몸을 감싼 소녀의 손에는 시체에 가까운 창백함이 선명히 보였으나, 분명 맥박이 뛰고 있어 최소한의 생기는 남아있었다. 암흑 날개의 몰락 이후, 지난 시간 동안 살아남은 극소수의 하샤신들은 암흑 날개의 재건을 위해 사방팔방으로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했다.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광신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 이상으로 끈질긴 것이었고 어둠의 신을 향한 광신 하나로 그 길고 긴 시간을 버텨온 하샤신들은 명계의 사슬에 묶여버린 어둠의 신의 계시를 받을 새로운 무녀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의 무녀에게, 비통하게 세상을 뜬 대장로님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의 주인에게 인사하라."
그리고 하샤신들은 모두 그런 소녀에게 일제히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정말로 이 소녀가 어둠의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인지, 혹은 하샤신들이 그렇게 믿을 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믿음이라는 것은 때론 허구에 불과한 것을 실제로 만들기도 했기에 그들의 광신을 생각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 5년의 시간동안 울지도, 날지도 않았던 새는 이제 다시 한 번 부러진 날개를 완전히 치유하고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소녀는 하샤신들의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할 뿐이었다.
*
여기는 시큐리티 포스. 각자의 이유로 시큐리티 포스에 뛰어들려하는 지원자들의 서류를 하나하나 확인하던 알베르의 눈길을 사로잡은 서류가 있었다.
"이 얼굴... 많이 낯익은 모습인데."
가족이 없었고, 루시우스라는 이름으로 신분을 바꿔 지금도 살아있는 루샬카를 제외한 나머지 암흑 날개의 장로들의 가족들은 암흑 날개 사태의 종결 이후 암흑 날개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종적을 감춘 채 사라졌고, 5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는 신분까지 모두 바꿔버렸는지 더 이상 그들의 현황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상황에서 알베르는 바르타 여장로의 모습을 상당히 닮은 한 여성 지원자의 서류에 주목하고 있었다.
"엘레인 듀크... 하지만 이 얼굴은 상당히 낯익은데."
'엘레인 듀크'라는 이름을 쓴 지원자의 증명 사진을 보며 바르타 여장로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알베르는 또 다른 지원자 서류에서 또 다른 장로를 떠올리게하는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엔... 토니 다니엘스인가... 이 얼굴도 상당히 낯익고."
'토니 다니엘스'라는 이름을 쓴 남성 지원자는 비록 다소 앳되보이는 구석은 있었지만 자바트 장로를 떠올리게하는 인상을 지니고 있었고, 이 두 명이 정말로 암흑 날개의 장로들의 친척 내지는 가족이라면 이 또한 기묘한 인연이 되겠다고 생각한 알베르는 문득 샤키르의 여덟 사생아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기묘하기 그지없네."
*
하림 가족의 고향이기도 한 문라이즈 시티. 한 때 리스의 저주받은 '성창'이 있었던 자리에는 창의 끝이 지상에 박힌 그대로 남아 5년 전의 상흔과 그 승리, 그리고 아픔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당신은 이제 제 할아버지도 뭣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옥에서 꼭 지켜보세요. 토니 다니엘스라는 인간은 당신과는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그 자리에는 토니 다니엘스가 있었다. 베이지색의 짧게 다듬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를 지닌, 20대 초중반 언저리로 보이는 장신의 남성은 그 날선 눈빛을 '성창'의 창끝에 겨누며 자신은 암흑 날개의 장로로서 저주받을 행적을 걸어갔던 자신의 '할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다.
"한 때는 그 모습을 부러워하기도 했었지만... 이젠 아냐. 한 때의 큰 언니 때문에, 내 언니는 자신의 꿈을 버려야했고, 나도 다른 길을 가고 말았으니까."
그 맞은 편에는 짧게 다듬은 붉은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를 지닌 여성이 있었고, 그녀 역시 자신의 '큰 언니'를 원망하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니까 꼭 두고봐. 보란 듯이 시큐리티 포스의 요원이 되어서 그 쪽 무덤에 침을 뱉어줄테니까."
그녀의 이름은 '엘레인 듀크'. 자신의 큰 언니가 암흑 날개의 높은 직책이었던 '장로'의 자리에 오른 것이 드러난 이후, 그녀의 가족들 역시 원래의 성씨 대신 '듀크'라는 성씨로 신분을 바꿔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자했던 작은 언니는 이 일을 계기로 자신의 꿈을 모두 내려놓고 다른 살 길을 찾아야만 했었기에 그녀의 독기서린 태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구석이 있었다.
*
"검게 칠해진 모습을 보고 싶어. 밤처럼 검게. 석탄처럼 검게."
세이블 시티의 수해 속 버려진 별장에서 검은 가면의 소녀는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노래 가사를 어설프게 따라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홀로 남아 그녀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 하샤신의 우두머리는 그 중얼거림에 저절로 반응하고 있었다.
"우리의 신이 내린 계시입니까?"
"아뇨. 예전에 어디서 들어본 노래가사에요. 하지만 왠지 지금 상황과 더 없이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샤키르 나셸의 피를 이어받은 또 다른 아이. 하지만 소녀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의자에 힘없이 앉아 온 세상을 검게 칠하고 싶다는 말을 되뇌이고 있었다.
"온 세상을 까맣게 칠하면, 이 한심한 모습도 조금은 가려질까요?"
"그리 말하실 필요 없습니다, 주인님. 당신의 모습은 지금도 아름답습니다."
하샤신의 우두머리가 한 말에 소녀는 비웃음인지 자조인지 모를 헛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가면을 씌워놓고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비탄에 잠긴 검은 가면을 쓴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가면을 벗어보이고 있었다. 얼굴에 깊이 서린 수심만 뺄 수 있다면 틀림없는 미소녀였고, 자신의 아버지와 닮았으되 그 위치가 뒤집힌 청색과 보라색의 오드아이는 반쯤 죽어버린 눈빛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그 아름다움을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비위를 맞추는데엔 선수시네요."
그렇게 말하는 소녀는 이내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차피 이 얼굴도 결국 까맣게 칠해져서는 이내 아무도 못 알아볼텐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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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트라 스토리에서 진행될 2차 토벌전은 과연 얼마나 크게 일을 벌일 것인가
그리고 시큐리티 포스에 합류하려는 두 명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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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토벌전은 경우에 따라선 본편에 영향을 줄지도 모르겠단 생각은 들지만 그래도 가능한 엑스트라 스토리 내에서 처리해보겠읍니다 | 23.08.24 0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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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 아니 그래서 내가 그 불량품의 후유증으로 고생하잖아. 근데 또 누군가가 깨어났을땐 근처에 시체투성이였다는거 보면 생각보다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던 패러사이트 퓨저너도 꽤 있었을듯요? | 23.08.24 0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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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바케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 23.08.24 07:4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