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그 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그리고 그 사후세계의 모습에 대해 여러 종교들이 다양한 형태의 모습들을 제안했으나, 지금도 사후세계의 존재 자체부터 그것이 실존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어이. 네 녀석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그런 수많은 왈가왈부와는 상관없이, '지옥'이라 불리는 산 사람은 결코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에서 한 악마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영역의 수많은 관들 중 가장 깊고 뜨거운 곳에 몸을 뉘인 샤키르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었다.
"나같은 죄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겁니까."
"말했잖아. 보여줄 게 있다고."
악마의 핀잔과 함께 샤키르의 눈 앞에 어떤 홀로그램이 투영되기 시작했다. 그 안의 아이들을 본 샤키르는 이내 그 악마가 무엇을 보여줬는지 깨닫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정도 눈치는 있어서 다행이네. 그래, 네가 네 나쁜 버릇을 주체못하고 낳은 네 사생아들이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보라고."
*
"잘 됐어?"
"꽝이다. 예상은 했다만 오디션 참가자들의 수준이 우리 생각 이상이었다."
얼마 후, 바르바스와 오리피아 모두 트와일라잇 시티를 연고지로 두는 신생 프로 팀의 오디션에서 탈락이라는 쓴 잔을 들이킨 채 로제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바르바스는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그다지 동요하는 모습은 없었지만, 오리피아는 자신의 진심을 담아 만든 덱으로도 프로의 세상에 들어설 수 없었단 사실이 참으로 씁쓸했다.
"모처럼 잡은 기회였는데, 역시 등용문이란건 오르기 힘들더라."
"어쩌겠어. 오빠랑 너도 간절했겠지만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잖아."
자신의 말이 위로가 될지는 모르더라도, 그런 오리피아를 조금이라도 위로해주던 로제는 문득 이 두 사람이 곧 돌아가겠구나란 생각에 조금 아쉬움이 들었다.
"아, 맞다. 내일이면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겠네. 그치?"
"돌아가야지. 이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던 것도 물론 즐거웠지만, 이제 우리도 우리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언제까지고 언니한테 신세만 지기도 그렇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오히려 여기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오늘까지란 것이 아쉬울 따름인데."
"나야 언제라도 짐 뺄 준비는 해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오리피아 말마따나 네게 계속 신세지는 것도 미안하니 말이지."
"아, 상관없어. 얼른 짐 빼고 이리로 와. 방은 아직도 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루나 시티에는 얼씬도 하고 싶지 않은걸."
"하긴... 네 말은 고맙다만 나도, 오리피아도 생각할 시간 정도는 필요하다."
모처럼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여 조금 손이 많이 가기는 해도 즐겁다는 생각이 들었던 로제는 아쉬운 마음에 두 사람을 향해 미련을 보이고 있었다. 바르바스도 오리피아도, 그런 로제의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괜히 자신들때문에 안 해도 될 고생을 더 할 것만 같아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정도로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것은 없는 듯하면서도 어디선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가 종종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감은 다음 날, 오리피아에게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챙겨온 짐을 정리하고 리나 시티로 귀가하려던 오리피아에게 들려온 청천벽력같은 소식. 그것은 바로 그녀가 거주하는 건물에서 새벽 사이에 큰 화재가 발생했고, 그로 인해 더 이상 그곳에서 거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무슨 일 있어? 엄청 큰 일인 것 같은데."
로제와 키벨, 에르제가 자리를 비운 오전 시간에 들려온 오리피아의 비명 소리에 막 출발할 준비를 하던 바르바스가 방문밖에서 그녀의 상황을 확인해보고 있었고, 뒤이어 스카일러와 알핀, 엘피나의 세 명도 뒤따라 나온 상황이었다.
"아, 아무 것도 아냐...!"
"괜히 숨기고 그럴 거 없어. 네 목소리만 들어도 뭐가 뭔지 답이 보이거든."
애써 괜찮다고 말해보려던 오리피아였지만 이미 바르바스는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터졌음을 직감하고 있었고, 결국 오리피아는 방문을 열고서는 바르바스와 세 남매에게 밤사이에 있었던 화재 소식을 전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되었어..."
"안타깝군. 하지만 로제 입장에선..."
"알아. 이런 말하긴 싫지만 여기서 신세지는 수밖에 없겠네..."
전화위복이라 해야할지, 새옹지마라 해야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리나 시티에서의 화재로 인해 갈 곳이 없어진 오리피아 입장에선 결국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바르바스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어 자신이 싸들고 왔던 짐을 일단 자신이 머물던 방에 다시 놓고 있었다.
"응? 오리피아 누나는 그렇다쳐도, 형은 왜?"
"음... 일단 하루 정도 더 머물다 가는게 나을 것 같았어. 듀얼리스트로서의 직감이라고 하면 될까."
루나 시티에는 얼씬도 하고 싶지 않다던 로제의 말이 문뜩 떠오른 바르바스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연락처들에 연락을 넣었다. 하지만 어느 쪽과도 전원이 꺼져있다거나 연락할 수 없는 상태라는 등의 사유와 함께 연락이 닿질 않아 바르바스는 불안한 마음에 루나 시티의 지역 뉴스를 찾아 확인해봤다가 루나 시티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불법 운영되고 있던 지하 도박장들이 강제로 문을 닫고, 그곳의 도박꾼들과 지하 듀얼리스트들, 운영진들도 상당수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발견했다. 그 중에 자신이 다니던 시설도 포함되었음을 발견한 그는 이것이 바로 운명인건가 싶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 이렇게 되면 루나 시티로 돌아가도 할 일이 없겠는데..."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철저히 폐쇄적으로 운영되어 여간해선 들킬 리가 없었을 루나 시티의 지하 도박장들의 상당수가 문을 닫은 이상, 아직 남아있을 지하 도박장들도 언제 루나 시티 경찰 내지는 시큐리티 포스의 입김이 닿아 강제로 폐쇄될지 알 수 없었고 루나 시티로 돌아간다고 한들, 자신이 일하던 '직장'이 사라진 와중에 자신이 프로 전향을 시도했다는 소문도 암암리에 돌텐데, 지하 듀얼리스트들은 대체로 프로로 전향하려는 듀얼리스트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것도 있어 바르바스는 이 참에 다른 길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
"잘됐다, 잘됐어! 물론 동생에게 있었던 일은 솔직히 매우 유감이긴 하지만..."
그리고 이렇게 되니 가장 이 상황을 반기는 건 누가 뭐래도 로제였다. 오리피아는 리나 시티에 있던 거주지가 화재로 인해 소실된 탓에, 바르바스는 루나 시티에서의 대대적 단속에 더해 이번 일을 계기삼아 다른 길을 찾고자 트와일라잇 시티에 있는 로제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덕분에 드디어 형제자매들이 모두 모였다며 즐거워하는 로제였다.
"나한테 있었던 일은 별로 유감스럽지 않은가 보구나, 로제?"
"아이, 참! 그건 유감스러운게 아니라 잘된 일이지! 검은 돈만 만지다가 비명횡사할 일 있어?"
그 와중에 바르바스의 말에는 핀잔을 주던 로제는 이내 흥분을 일단 가라앉히고 이 곳에 엄청난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형제자매 모두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엄청난 손님?"
"그래, 그래. 평소라면 절대로 여기 올 리가 없는 분...이지."
로제가 전해준 소식에 키벨은 그 사람이 혹시 전에도 만난 적이 있었던 오르시스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잠시 뒤에 모습을 드러낸 건 의외로 오르시스가 아니었다.
"여기로군. 어쩐지 두 사람이 살기엔 너무 큰 곳이 아니었나 싶었는데, 이게 다 아버님의 큰 그림이었던건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 이와나가, 사쿠야 자매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난 건 다름 아닌 SEM 사의 현 CEO, 오벨이었다. 그 큰 회사의 CEO가 직접 로제의 집에 방문한 것을 본 여덟명 모두가 각자 놀랍다거나 신기하다거나 하는 반응들을 내비치고 있었다.
"로제... 너는 그 손님의 정체를 아는 줄 알았는데...?"
"아니, 나도 저기 닌자 언니들한테 큰 손님이 올 거라고만 들었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렇게 여덟명 모두가 예상 외의 손님의 등장에 당황한 사이, 오벨은 문득 지금은 철거되어 사라진 샤키르의 별장에서 그가 남긴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네 아버지는 별을 바라보았고, 나는 땅을 내려보았지. 뭐,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지. 네 아버지는 너라는 유산을 남겼지만, 나는 아무 것도 남기지 못 했다. 무슨 말을 더 하겠느냐.
결국 아무 것도 남기지 못 했다며 스스로 자조했던 샤키르였지만, 한 때의 숙부이자 암흑 날개의 대장로인 그가 남기고 간 것은 결코 작지 않은 것이었다. 오벨은 그 이유야 뭐가 되었던 그가 남기고 간 그의 핏줄들이자 법적으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친척들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저기... 이렇게 계속 계시지말고 우선 앉으시겠어요?"
그 사이에 겨우 정신을 차린 로제가 오벨에게 소파에 앉을 것을 권하고 오벨은 알았다는 제스쳐와 함께 그녀가 권한 일인용 소파에 조심히 앉았다. 물론 그 옆에는 쿠노이치 자매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로제와 오리피아가 간단한 먹을거리를 내놓으러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벨은 사형 집행 전날 면회실에서 마지막으로 만났던 샤키르와의 대화를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을 찾았다고?"
"그렇습니다. 루나 시티에서의 마지막 전투에서 발견했죠. 한 명은 중학생 언저리의 소녀였고, 다른 한 명은 한참은 어린 소년이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는지, 아니면 어둠의 신의 축복이 모두 떨어져나간 탓인지 샤키르는 별장에서 체포되었을 때보다도 더 늙어보였고 수척해져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어둠의 신이 남기고 간 어둠이 걷혀진 덕분인지 맑고 투명했다.
"전에 이렇게 말했죠? 아무 것도 남기지 못 했다고."
"그래...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든, 나는 아버지 소리도 들을 자격이 없는 몸이고."
"하지만 제 아버님이 그들을 보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과는 다른 길을 걷게 해주려는 것이겠죠."
"그렇겠지... 전에도 말했듯, 네 아버지는 별을 바라보았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인 모양이군."
마지막 순간에도 샤키르는 자조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애프터라이프, 그리고 암흑 날개로 이어지는 아트몬 숭배의 말로였으며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었으니 자업자득이었고 인과응보였다.
"하지만... 솔직히 놀라워. 형님이 그 아이들을 보살필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더 이상 형제도 숙부도 뭣도 아닌 나의 핏줄을 챙길 이유가 있었단 말인가?"
"당신의 악행과 당신의 핏줄은 별개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죄를 핑계로 당신이 남기고 간 아이들마저 나락으로 떨어트릴 생각은 저도, 제 아버지도 일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샤키르가 남기고 간 사생아들에 대한 것은 아는 바가 없었으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오벨은 그의 사생아들이 그와는 다른 길을 걷게 해주겠다는 결심을 품고 있었다.
"그런가. 하지만 그렇다면 이 세상이 그 아이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리려들겠지. 누가 뭐래도 그 암흑 날개의 수괴의 핏줄이니까. 별 것 아닌 것으로 도시 전설을 만들어낼 정도로 떠벌리기 좋아하는 인간들도 차고 넘치지 않더냐."
"물론 그럴 것입니다. 하지만 증명해보일겁니다. 암흑 날개의 피가 또 다른 암흑 날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샤키르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리던 오벨은 로제와 오리피아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건내주고서야 정신을 차렸고, 그렇게 입과 목을 축인 그는 이어서 자신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설명해주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여기까지 찾아와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제 아버님이 여러분들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저 역시도 이번 기회에 실제로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그거 참 반가운 이야기네요, 사장님. 우리같이 귀찮고 걸리적거릴 인간들을 이렇게까지 신경써주니 말이죠."
"스카일러!"
하지만 스카일러는 오벨에게 의도적으로 도발에 가깝게 이죽거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로제도 당황한 나머지 그에게 소리치며 그를 다그치려하고 있었다.
"조용히 해봐! 나도 할 말이 많아서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한 번 이야기해보세요."
그런 스카일러에게서 뭔가를 읽었는지 오벨도 스카일러를 다그치려던 로제를 말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사장님, 회사에서도 이거 알고 있어요?"
"이건 회사와는 별개의 일입니다. 저나 아버님과 여러분 사이의 관계는 비즈니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아, 그래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엄청 상관있을 이야기인데 말이죠?"
오벨과 오르시스가 보여주는 지금의 호의를 스카일러는 도저히 신용할 수 없었고, 되려 그 호의를 이용해 자신들을 실컷 이용하다 쓸모가 없어지면 그대로 내쳐버릴지 누가 아느냐는 식의 심리였기에 그는 설령 무리하는 감이 있더라도 그들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이를테면 이거에요. 광인 짓을 하면 실제 광인이라죠? 우리가 그 샤키르 나셸의 자식이란 거야 알고 있을테고, 분명 우리가 알기로는 그 인간과 모든 종류의 관계를 영원히 끊어버렸댔는데, 만약에 그 인간의 자식과 잘나가는 회사의 사장님이 비밀리에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 그 다음엔 어쩌실 건데요? 그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만들어낼 온갖 입소문들을 사장님은 감당할 수 있어요? 아니면 사장님의 아버님은 감당할 수 있나요?"
상당히 날이 서있는 질문이었지만, 스카일러는 아직 끝난게 아니었다.
"그런 입소문이 번지고 번져서 우리에게도 불똥이 튈텐데, 그럼 그걸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야하죠? 사장님이나 사장님 아버지는 감당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아니에요. 일이 잘못되어버리면 우리는 죽을 때까지 암흑 날개의 후손 어쩌고하는 소리에 시달려야 한다고요. 그러다 진짜 수틀리면 새로운 암흑 날개를 만들지도 모르죠. 이러나 저러나 죽을 맛이라면 차라리 크게 한 번 터트리고 말자는 식으로 말이죠. 그리고 저는 아직 할 말이 많아요."
다른 형제자매들이 스카일러의 독기어린 발언에 안절부절하거나 표정이 어두워지는 와중에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오벨에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 전에 왜 사장님 아버님이나 사장님이 우리를 그렇게까지 챙겨주려고 하는 거죠? 우리가 사장님 회사의 마스코트라도 되어달라는 건가요? 아니면 회사의 이미지에 무슨 도움이라도 되길 바라는 건가요? 난 이해가 안 되거든요. 저기 있는 키벨이나 로제 누나야 시큐리티에서 공식으로 구해줬으니 그렇다쳐도, 왜 우리까지 이렇게까지 챙기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단 말이죠? 아니면 혹시 이런 건가요? 이렇게나 신경을 써줬으니 그 대가로 나중에 사장님 회사나 사장님이나 사장님 아버지가 처리해야하는 더러운 일을 우리더러 대신 해달라거나 뭐 그런 건가요? 하긴, 그럴 법도 하죠. 이렇게나 신경을 썼으니까 받아내는 것도 있어야 수지타산이 맞을테니까요. 아직 할 말은 더 있지만, 그건 일단 질문에 대한 답부터 들어보고 더 하던지 말던지 하죠."
스카일러의 거침없는 발언에 다른 형제자매들 모두가 얼어붙었고, 오벨의 호위를 맡은 쿠노이치 쌍둥이도 일순 표정이 굳었지만 정작 오벨 자신은오히려 예상했다는 반응을 보이며 짤막하게 답했다.
"핏줄은 다르지만, 가족이기 때문이지."
그 말에 이번에는 스카일러 쪽에서 당황하는 반응을 내비치고 있었다. 오벨의 태도가 다소 달라진 것도 있었지만, 자신의 모든 질문들을 '가족'이라는 키워드로 답한 것이 스카일러 입장에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뭐, 뭐라고요? 가족이요? 우리끼리야 가족이지만, 사장님하고 우리 사이에 뭐가 있어요? 아니면 그 가족이란게..."
"그런 거 아니다."
스카일러의 비아냥을 일축시킨 오벨은 5년 전에 있었던 사죄 현장의 한 장면을 스마트 가전의 기능을 통해 거실의 TV로 보여주고 있었다.
얼마 전, 제 숙부님이신 샤키르 나셸이 바로 현재 각 도시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조직인 '암흑 날개'를 이끌고 있는 수장, '대장로'의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접하고, 그 분의 조카였던 저는 걷잡을 수 없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충격적인 사실을 국민 여러분께 감추고 쉬쉬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 사실을 국민 여러분께 모두 털어놓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죄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해,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 기자분들과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저의 숙부님... 아니, 샤키르 나셸이라는 사람이 사악한 의지를 품고 있는 세력, '암흑 날개'의 수장 자리에 앉아 있는 이상, 저 역시 그 자가 사악한 세력인 '암흑 날개'의 수장이고, 샤키르가 벌이는 악행을 방관하고만 있었다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겠죠. 그러니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샤키르 나셸이라는 사람이 저지른 모든 악행들이 용서 받을 수 없는 짓들이라는 것을, 그 사람의 조카인 저 역시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암흑 날개'의 '대장로', 샤키르 나셸의 조카인 저 오벨이, 그 사람을 대신해 국민 여러분께 사죄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정말로... 국민 여러분께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에르제는 말할 것도 없었고, 나머지 형제자매 모두 TV 앞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낼 만한 여력이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였던 만큼 여덟명 모두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놀라움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 사실들을 기자들 앞에서 죄다 까발렸단 말이에요?"
"그렇지. 게다가... 로제와 키벨은 알고 있겠지만 이미 샤키르 나셸의 아이들이란 사실도 TV로 모두 방영되었지."
그 말과 함께 이번에는 다른 영상 자료를 가져온 오벨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중학생 시절의 로제 자신이 인터뷰이로 나왔다는 점이 차이였다.
왜 이번 기회에 본인과 본인의 동생이 그 악명높은 샤키르 나셸의 사생아임을 밝히게 되었습니까?
아까도 말했었지만 제 밑에는 아홉 살 아래인 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아까도 보셨겠지만 제 동생은 놀라울 정도로 그 샤키르 나셸을 빼닮았고요. 내년에는 제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자꾸 주변에서 친구들이 암흑 날개 대장님이라고 동생을 부르고 있죠. 그래서 이 참에 시큐리티 포스의 힘을 빌려서 저희 두 사람이 어떤 분을 아버지로 뒀는지 확인했고 정말로 샤키르 나셸과 유전자가 98% 이상 일치한다는 결과를 확인했죠.
그렇다면 그 사실을 감추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본인이나 본인의 동생에게 큰 불이익이었을텐데 말입니다.
비록 1년 전에 SEM의 회장님이 제 아버지와의 모든 관계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고 절연했다지만, 그래도 어찌보면 제 사촌 오빠나 다름없죠. 너무 건방진 말일려나... 아무튼 그런 사람조차 이대로 묻어버렸어도 될 샤키르 나셸에 대한 이야기를 스스로 밝히고 사죄했었잖아요. 그래서 저도 어렵게 용기를 냈죠. 어차피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닐테니까, 차라리 이 참에 있는 그대로 밝히기로 했죠. 저나 제 동생... 어쩌면 다른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제 형제자매들도 그 샤키르 나셸의 피를 이어받았단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고 기피당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꼭 증명하고 싶었어요. 샤키르 나셸의 피가 반드시 제 2의 암흑 날개가 되는 건 아니라고요.
오벨이 보여준 두 영상 자료에 스카일러는 벙찌고 말았고, 그 와중에 로제는 예전의 자신을 영상으로 다시 보게 되어 기분이 이상했다.
"네 큰 누나가 큰 용기를 냈지."
"어... 이거... 어, 그러니까..."
이렇게되자 스카일러는 졸지에 자신이 바보가 되어버린 것같아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스카일러에게 오벨은 '사촌 형'으로서 몇 마디 말을 덧붙였다.
"이제 알겠지? 설령 사람들이 우리와 너희들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고 한들, 이미 영상화되어 사람들에게 다 공개되었단 말이지. 그러니까 이건 그저 사촌 형이 잠시 시간을 내서 너희를 찾아온 셈이야. 물론 공식적으로는 남남이나 다름없지만 말이지."
그렇게 말하며 오벨은 스카일러에게 다가가 그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이건 무슨 이득을 취하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을 길들이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야. 비록 나셸 가문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내 숙부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부정했을지언정, 그건 너희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 너희들의 아버지가 너희들을 내팽개쳤을지언정, 너희들은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건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스카일러도 더 이상 무어라 따지거나 비꼴 여력이 없었다. 결국 오벨과 오르시스가 그들을 챙겨주는 건, 그들의 순수한 호의였음이 분명해지는 순간이었다.
*
그리고 로제와 키벨이 하림과 함께 나타난 그의 반려인 청월의 초대를 받아 형제자매들을 모두 데리고 그녀의 가족들이 사는 저택으로 초대받는 모습을 끝으로 악마는 그의 시야에서 홀로그램을 치웠고, 샤키르는 그런 모습에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나 자신은 결국 지옥으로 떨어졌는데, 내 핏줄들은 형님마냥 별을 바라보게 되었다니."
"네가 떨어진 건 네 선택의 대가지. 네 자식들이 네가 간 길을 따라가라는 법도 없고. 안 그러냐?"
"그러게 말이오..."
악마의 말마따나, 자신이 죽어서도 안식 하나 얻지 못 하고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의 대가였고 자신의 자식들이 다른 길을 선택해 걸어가고 있는 것도 결국 그들의 선택이었다. 악의 쾌락은 말초적이며 충동적이고도 파괴적이었고, 그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파멸이었다.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이미 각오했지만 자신이 남기고 간 핏줄들이 다른 길을 택하는 것까지는 전혀 생각치 못 했기에 샤키르 입장에서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그나저나, 너 진짜 독한 놈이긴 하다."
"그건 무슨 말이오...?"
그런 샤키르에게 악마는 홀로그램으로 다른 무언가를 봤는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말했다.
"그 부러진 날개로 날아오르려는 사이코들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의미다. 네가 그래도 꼴에 아버지라고 하면, 그 사이코들이 데리고 간 네 자식이라도 좀 챙겨봐."
진심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끝으로 악마는 그의 곁을 떠났고, 샤키르는 자신의 '암흑 날개'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마지막까지도 발버둥을 치고 있음을 직감하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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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일러의 오해는 이로서 풀렸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또 한 번, 엑스트라 스토리만의 작은 분쟁(?)의 씨앗을 뿌리고 갑니다
(IP보기클릭)220.94.***.***
샤키르와 그 자식들은 별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번 편에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선을 긋는 에피소드군요. 그나저나 또 다른 암흑 날개라니... 잔당들이 또 남아 있는 것인가요?? 으아아... 암흑 날개는 완전히 소탕되어서 이젠 없을 줄 알았는데...ㅠㅠ
(IP보기클릭)220.83.***.***
김철수 : 눈치....
(IP보기클릭)211.198.***.***
하지만 별 이유가 없다면 저번처럼 본편과 외전의 친구들은 참전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IP보기클릭)211.198.***.***
물론 영희없는 철수 눈엔 그저 ZYNTHAR에 불과할 예정
(IP보기클릭)220.94.***.***
알겠습니다. 아무튼 잔당들이 참 끈질기네요.
(IP보기클릭)220.94.***.***
샤키르와 그 자식들은 별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이번 편에서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선을 긋는 에피소드군요. 그나저나 또 다른 암흑 날개라니... 잔당들이 또 남아 있는 것인가요?? 으아아... 암흑 날개는 완전히 소탕되어서 이젠 없을 줄 알았는데...ㅠㅠ
(IP보기클릭)220.83.***.***
로이드온
김철수 : 눈치.... | 23.08.20 18:06 | |
(IP보기클릭)211.198.***.***
하지만 별 이유가 없다면 저번처럼 본편과 외전의 친구들은 참전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 23.08.20 18: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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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영희없는 철수 눈엔 그저 ZYNTHAR에 불과할 예정 | 23.08.20 18: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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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오리
알겠습니다. 아무튼 잔당들이 참 끈질기네요. | 23.08.20 18:1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