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제가 드로우한 카드는 [메타버스]. 하지만 [볼캐닉 퀸]으로부터 들려오는 환청 때문에 무엇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그저 겁에 질려 울먹거리며 떨 뿐이었다. 실제의 리스가 아이를 혹독하게 키우는 인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환청 속의 리스는 혹독한 인물이었다.
"이걸 이대로 냅둬도 괜찮은 건가... 이봐요! 진짜 이래도 되는 거에요?!"
답답한 마음에 로제가 알베르에게 따져묻기도 했지만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어쩔 수 없어. 리스를 스스로 떨쳐내야만 하니까."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마음같아선 [볼캐닉 퀸]을 손수 부숴버리고 싶은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알베르와 키벨의 대답이었으니 로제로선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뭐하는 작자이길래 애를 저 지경으로 만든건지나 좀 얘기해봐요!"
"그 악녀는 자기 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여자야.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없지."
"그럼 왜 가만히 있어야하는지나 좀 납득시켜봐요!"
당장이라도 알베르 멱살을 잡고 덤벼들 기세였지만 키벨을 봐서라도 일단은 억지로 참고 있는 로제였다. 그 울그락붉으락하는 표정에 알베르도 일단 그 성질을 좀 죽이게 만들 필요는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무리 악질이라고 해도 일단은 자기 엄마거든. 자기 엄마의 목소리를 내는 몬스터를 우리가 무작정 때려부수면 단언컨대 자기 엄마를 우리가 뺏어갔다는 식으로 여긴다고. 그게 리스의 노림수라고 확신하고 있고."
"아, 그래서 우리는 저 꼴을 손놓고 구경이나 하자, 이거에요? 쟤가 무슨 꼴이 날지도 모르면서?"
하지만 로제 입장에선 납득은 되지만 그래도 에르제가 환청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손놓고 구경하는 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키벨도 점점 자기 누나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것같아 조마조마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잊어버렸을까봐 하는 말인데, [볼캐닉 퀸]은 다른 몬스터를 릴리스하지 않으면 컨트롤러에게 1000 데미지를 준다고요!"
"나도 알 건 다 알아.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다고. 스스로 처리하게 만들지 않으면 나중엔 네 막내를 네 손으로 죽여야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도 썩 달갑지는 않을거다."
"뭐라고요...!"
그리고 키벨의 우려는 점점 현실이 되어갔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상황이라 [볼캐닉 퀸]의 효과로 [보스 러시]를 치우고 1000의 데미지를 주는 것도 못 하는 와중에 에르제의 엔드 페이즈마다 1000의 데미지를 준확정적으로 받아내야하는 그가 언제까지고 그 환청을 버텨낼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로제 입장에선 이건 도저히 할 짓이 아니었다.
"그럼 나더러 어쩌라는 거에요!? 쟤가 뭐 당신마냥 산전수전 다 겪었어도 모르는데 그것도 아니잖아요!"
결국 참다 못 한 로제가 알베르의 멱살을 잡으려던 걸 키벨이 말리고 있었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듀얼디스크를 벗어놓고서 누나의 듀얼디스크를 대신 착용해 자신이 듀얼을 이어가기로 했다.
"야!"
"누나는 일단 물러서. 이대로 가다간 듀얼이고 뭐고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넌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로제가 듀얼디스크를 넘겨주는 걸 거부하고 있었지만 키벨도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열이 잔뜩 받았는데 어떻게 듀얼을 하겠다는거야! 일단 밖에 나가서 열부터 식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그 말이 맞다. 로젤리아, 넌 지금 열이 너무 올랐어. 이래서는 듀얼은 커녕 상황 판단도 안 될 거다."
"오빠...!!"
바르바스도 키벨의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상황을 놔두자는 것은 영 껄끄러워도 적어도 로제의 현 상황으로는 무슨 사고를 쳐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었기에 일단 현재의 상황에서 떨어트려 정신을 차릴 시간을 가지게 해주고 싶었다.
"일단 밖에서 열 좀 식히고 와. 너 방금도 키벨이 아니었으면 시큐리티 포스의 요원에게 주먹 휘두를 거였잖아. 그랬으면 그쪽에서 가만히 놔두지는 않았을 거다."
"아오, 씨...! 알았어!"
결국 쿠노이치 자매와 바르바스의 호위 하에 로제는 자신의 듀얼을 키벨에게 넘겨주고, 이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키벨은 환청에 시달리는 에르제를 향해 이야기를 걸었다.
"에르제! 네 이름, 내가 제대로 부른 거 맞지?"
하지만 환청에 시달리는 와중이었던 에르제로선 키벨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막내의 신경을 이쪽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에르제! 나 보여?"
"으흐흑..."
리스의 저주가 워낙 강렬했는지 키벨의 시도에도 에르제는 아무 것도 못 하고 제한 시간 초과로 턴을 넘기고 말았고, 로제가 우려했던 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에르제 LP 8000 → 7000
"으아아!!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에르제!!"
자신의 다른 몬스터를 릴리스하지 않으면 매 턴마다 컨트롤러에게 1000의 데미지를 주는 효과가 발동하는 [볼캐닉 퀸]에게서 리스의 비난이라도 들려왔는지 에르제는 듀얼리스트들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정도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잘못했어요... 제발..."
"이건 좀 곤란한데..."
일단 엔드 페이즈에 [염정룡-블래스터]가 자신의 패로 돌아오기에 일단 [보스 러시]나 [군웅할거] 중 한 장은 확정적으로 파괴할 수 있지만 에르제가 잘못했다고 통곡하듯이 비는 모습에 키벨 입장은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누나를 바깥으로 보내긴 했지만,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이 덱에는 [달의 서] 같은 카드가 없으니까요."
"아냐. 그것도 별로 좋은 방법은 못 돼. 불편한 줄은 아는데 스스로 자기 마음 속의 족쇄를 떨쳐내지 못 하면 여기까지 온 것이 아무 의미도 없어져."
키벨이 드로우한 카드는 하필이면 이 상황에선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매직 플랜터]였고, 언제까지고 로제의 울화가 달래지지는 않을테니 어떻게든 리스의 저주의 매개체가 된 [볼캐닉 퀸]을 떨쳐내야하는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패의 [블래스터]를 [볼캐닉 불릿]을 함께 버리고 그 효과를 발동하겠어! 이걸로 [군웅할거]를 파괴하겠어!"
하지만 아직은 돌아가야 하는 길이었다. 원래대로면 [보스 러시]를 파괴하고자 했지만 [보스 러시]를 파괴하는 건 일단 다소의 데미지를 감수하더라도 에르제에게 맡기기로 하고, 서로의 필드에 소환 제약을 걸어버리는 [군웅할거]를 우선 처리하기로 하는 키벨이었다. 자신의 라이프 포인트가 에르제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남아있을지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우와악...!?"
그런 와중에 [군웅할거]가 파괴되자, 키벨은 이 짧은 틈에 무어라도 말해 에르제의 정신을 차리게해주고자 했다. 그러나 알베르가 그런 키벨의 입을 다물게 했다.
"아니, 왜...!"
"안 돼. 훈수를 두는 건 별로 좋은 모양새도 아니고, 오히려 본인의 환청을 악화시킬 수 있어. 리스의 저주라는 건 그렇게나 성가시고 귀찮은 거야."
[군웅할거]의 파괴로 일순 얼떨떨해진 에르제였지만 이내 [볼캐닉 퀸]이 아예 대놓고 그에게 몸을 돌려 비명을 지르자 또 다시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키벨도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알베르도 그 나름대로 할 말은 있었다.
"리스는 전에도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의 저주를 남겨놨어. 하지만 그 땐 대처가 빨랐기에 어떻게든 해결되었는데, 문제는 에르제는 그 저주에 거의 5년을 길들여진채 살아왔다고. 그런 저주를 푸는 것이 쉬울 리가 없잖아."
"어으... 그래도 이건 좀 많이 답답한데요..."
그렇다해도 환청에 고통받는 에르제의 모습은 키벨 입장에서도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뾰족한 해답도 없이 그저 스스로 해결하게 놔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은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덕분에 샤키르의 사생아들 모두 리스가 얼마나 악랄한 인물이었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떻게든 라이프 포인트가 0이 되기 전에 본인이 정신차리길 바라야한다니... 턴 엔드."
리스의 저주가 에르제를 옭아매고 있다는 걸 뻔히 아는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이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지만 키벨은 어쩔 수 없이 운에 현 상황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턴, 에르제가 드로우한 카드는 [아이언드로우].
"나... 나는... 네...?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고 [볼캐닉 퀸]의 효과를 발동하려던 차에 또 다시 여성의 비명 소리가 에르제의 정신을 공격하고 있었고, 그 효과를 쓰려던 에르제는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두려움에 몸을 떤 채 고개를 끄덕였다. [보스 러시]도 파괴해야 새로운 몬스터를 꺼내드는 것이 가능할텐데 모르긴 몰라도 자식의 생각을 얽매서라도, 그의 전술전략을 망쳐서라도 자신을 이 필드에, 이 세상에 남기려는 듯한 행태에 그 저주라는 것이 보기 이상으로 지독하다는 것을 키벨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배틀 페이즈... [볼캐닉 퀸]으로..."
"함정 카드, [볼캐닉 에미션] 발동! 이걸로 덱에서...!"
그렇다해도 이대로 바보처럼 당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키벨이 보기엔 자력으로 깨어날 법한 상황도 아니었고, 자칫하면 에르제가 정신차리기 전에 자신의 라이프 포인트가 먼저 바닥을 보일 지경이었다. 그렇기에 우선은 [볼캐닉 엠페러] 같은 강력한 몬스터를 세워서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 그러나 키벨의 생각을 읽었는지 [볼캐닉 엠페러]를 꺼내려던 그를 저지하는 알베르였다.
"아직은 안 돼. 아직은. 서두르면 망친다."
"어으... [볼캐닉 로켓]을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
볼캐닉 로켓 / 화염족 / 화염 / ★4 / ATK 1900 / DEF 1400 / 효과
키벨도 일단 알베르의 말을 듣고는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노리고서 이렇게까지 시간을 질질 끄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볼캐닉 로켓]의 효과로 덱에서 [브레이즈 캐논] 1장을 패에 넣겠어."
"그... 그럼, [볼캐닉 퀸]으로 [볼캐닉 로켓]을 공격..."
그런 둘의 상황을 보며 알베르는 아직 혀를 차고 있었다. 그의 노림수를 위해서는 어떻게든 키벨이 궁지에 몰려야했고, 그래야만 리스가 에르제에게 남겨놨을 자신의 파편을 끄집어낼 기회를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우세를 점해 이긴다'라는 상식을 저버려야한다는 의미였고, 승리를 위해 움직이는 듀얼리스트로선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ㅋ... 카드 1장을 세트하고... ㅌ... 턴 엔드..."
에르제 LP 7000 → 6000
이어지는 [볼캐닉 퀸]의 효과. 주인을 불태우는 효과가 발동하고, 엄마라는 단어를 애처롭게 외치는 에르제의 마음 속 고통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이 모습에 다른 듀얼리스트들도 점점 반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였고, 알파드 등은 그런 듀얼리스트들의 반감을 달래느라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으으... 드로우!"
그러나 키벨이 드로우한 카드는 [화령매사 히타]. [화령매사 히타]의 효과를 발동하고 싶어도 코스트가 되어줄 다른 화염 속성 몬스터가 없었고, 이대로라면 [볼캐닉 퀸]을 제 때 처리하지 못 하고 거기에 서린 저주가 자신과 에르제를 덮칠 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키벨은 결단을 내렸다.
"턴 엔드!"
"뭐?! 미쳤어?!"
일영이 자기도 모르게 내지른 말마따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턴을 넘긴 키벨은 정말 미친 결단을 내린 상황이었다. 일이 잘못된다면 에르제는 에르제대로 저주에 묶인 채 있어야하고, 키벨도 키벨대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 것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키벨은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모습에 알베르는 다음 드로우가 키벨의 결단의 결실을 정해줄 것이었다.
"드... 드로우..."
에르제가 드로우한 카드는 [어썰트 코어]. 자신의 효과를 통한 특수 소환의 조건은 막혔고, 일반 소환만이 가능한 상황이므로 현 시점에선 의미없는 카드였다.
"하.... 함정 카드... [메타버스]를 발동... 이걸로... 덱에서 [제로스]를 발동..."
다시 한 번 [거대요새 제로스]가 발동되고, 이제 패의 [거대전함] 몬스터를 거리낌없이 특수 소환할 수 있게 되었기에 키벨에게는 커다란 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패의 [테트란]을 특수 소환..."
거대전함 테트란 / 기계족 / 바람 / ★6 / ATK 1800 / DEF 2300 / 효과
거대전함 테트란 ATK 1800 → 3100 DEF 2300 → 2800 카운터 : 0 → 1
[볼캐닉 퀸]과 [거대전함 테트란]의 공격력의 합계는 총 5600. 여기에 [볼캐닉 퀸]의 효과까지 발동해 [보스 러시]를 묘지로 보내면 키벨을 사정 거리 안에 두는 것이 가능했다.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알베르는 이것이 그 리스의 잔재를 끄집어낼 유일한 기회라고 여겼다.
"그... 그리고... 두 장의 몬스터로 직접 공격..."
키벨 LP 7000 → 1400
거대전함 테트란 카운터 : 1 → 0
그리고 이어지는 연속 공격. 저주서린 화염과 4연장 레이저 암의 포격이 키벨의 라이프 포인트를 단숨에 거덜내버리고, 그 모습에 듀얼리스트 전원이 이 터무니없는 상황을 언제까지 봐야하는 것이냐며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볼캐닉 퀸]의 효과... [보스 러시]를 코스트로 1000 데미지를 주겠어..."
키벨 LP 1400 → 400
그리고 용암을 뭉쳐내어 만든 화산탄이 키벨을 재차 직격하고, 키벨은 이제 다음 드로우에 모든 것을 맡겨야하는 상황이라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엔드 페이즈... [볼캐닉 퀸]의 효과로 [테트란]을 릴리스하겠어..."
"에르제, 내 말 들려?"
그런 그의 마음을 돌려보고자 키벨이 다시 한 번 막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젠 들려... 하지만..."
"네 엄마가 너보고 뭐라고 해?"
"그게... 이런 종이쓰레기 따위는 당장이라도 내다버리라고..."
그 말에 키벨은 죽어도 암흑 날개는 암흑 날개라는 생각에 착잡함이 들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주류와 비주류가 나뉘고, 비주류 안에서도 주류에 편승할 만한 덱과 철저히 비주류로 남는 덱 등이 갈리지만 설령 덱 자체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덱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 한다고 해도 그것을 '쓰레기'로 매도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네가 만들어낸 그 덱, 그걸 만들어내면서 무슨 기분으로 만들었어?"
"그 때는... 잠깐만요... 조금만... 조금만 이야기하면 되니까..."
그러나 에르제의 마음을 대화로 풀어보려던 차에 [볼캐닉 퀸]이, 정확히는 리스의 저주를 머금은 [볼캐닉 퀸]에게서 비명 소리가 울려퍼지며 둘의 대화를 끊어버리려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네 어머니라는 사람은 별 거 없는 이야기조차도 싫어하나보네."
"닥치라고 했어... 쓸데없는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고..."
"너는 그런 엄마를 사랑할 수 있어?"
키벨이 드로우한 카드는 때마침 드로우한 2장째의 [볼캐닉 림파이어]. 이제 다음 턴을 받아낼 여유가 없었기에 어떻게든 키벨로서는 에르제로 하여금 리스의 저주가 서린 [볼캐닉 퀸]을 폭파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에르제로 하여금 자의로 자신의 어머니와 작별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내 엄마야..."
"그래, 네 엄마야. 하지만, 나는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 엄마가 왜 너를 사랑하지 않는 거지?"
키벨은 듀얼을 잠시 멈추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과거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나도 다른 형누나들처럼 어둠의 신을 따르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났어. 하지만 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어. 나를 사랑했는지, 아니면 나를 귀찮게 여겼는지도 잘 몰라. 내가 아는 거라고는..."
과거 이야기를 하려니 잠시 목이 매이는 키벨이었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어머니가 어디론가 나갔고, 그 뒤로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거야. 그리고 전부터 나를 자주 챙겨줬던 로제 누나를 엄마처럼 생각하면서 따라다녔어."
"그 이야기는... 왜..."
"음... 이런 말하면 화내려나. 낳아줬다고 다 엄마는 아니라는 것 정도라고 해야겠네."
키벨의 그 말에 [볼캐닉 퀸]이 키벨을 향해 포효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들려줬다.
"누나라고 뭐든 잘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어도 로제 누나는 나한테 있어선 엄마보다도 더 엄마같은 사람이야."
"왜 그런 이야기를..."
에르제의 의문에 키벨은 모 래퍼의 모 곡에서 따온 가사를 빌려 대답했다.
"네가 아무 쓸모 없다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믿을 필요는 없어. 널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매달릴 필요도 없어. 너에겐 그런 사람은 필요하지 않거든. 진심이야."
"내가... 쓸모 있어...?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에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배낀 AI는 그렇다쳐도, [볼캐닉 퀸]에 깃든 자신의 어머니는 본인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을 혹독히 몰아세우고 있었으므로.
"그럼. 나도 그렇고, 로제 누나도 그렇고, 나도 몰랐던 다른 형누나들도 그렇고. 우리는 버림받기 위해 태어난게 아니잖아?"
"그래도..."
"에르제. 네 엄마가 왜 자기처럼 살지 않냐고 뭐라 따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게 네 엄마라고 하면 말이야. 하지만 애초에 넌 네 엄마가 아니잖아? 너는 너야. 네 엄마의 2회차 인생 같은 게 아니라고."
'엄마의 2회차 인생'이라는 말에 에르제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들려온 어머니의 비난들은 결국 그저 자기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 하나로 괴롭힌 것에 지나지 않았나란 생각에 그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누구 말을 듣고 있는거니! 엄마 말을 들어야지, 누구 말을 듣고 있는 거야!
"너도 잘 생각해봐. 패에서 [브레이즈 캐논]을 발동. 그리고 패의 [화령매사 히타]를, [볼캐닉 림파이어]를 버리고 그 효과를 발동! 이걸로 덱에서 [볼캐닉 백샷]을 패에 넣겠어!"
다른 사람 말따위 들을 필요도 없어! 내가 시키는대로만 하면 돼! 다른 걱정따윈 안 해도 된다고!
"그리고 묘지로 보내진 [림파이어]의 효과로 [브레이즈 캐논]을 제외하고, [브레이즈 캐논 매거진]을 앞면 표시로 놓겠어!"
그리고 시작되는 키벨의 플레이. 키벨의 설득과 어머니의 질책 속에서 에르제는 점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파이어 이젝션] 발동! 미안하지만 조금 따끔할거야! [볼캐닉 엠페러]를 묘지로 보내고, 그 레벨 당 100의 데미지를 주겠어! 총 800의 데미지야!"
에르제 LP 6000 → 5200
드디어 키벨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일순 느껴진 그 열기 속에서 에르제는 자신이 진짜로 바랐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금씩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의 모습을 본떴다고 하는 AI의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재능을 개안했고 그 과정에서 작은 정령계 하나를 정복하기도 했지만 에르제가 정말로 무의식적으로 바랐던 것은 별 것 없었다.
"집... 장난감... 과자..."
지금 그런 걸 중얼거릴 때라고 생각하니! 정신 차려! 넌 아직 할 일이 많잖아!
그런 에르제를 또 다시 질책하는 [볼캐닉 퀸] 속의 리스였지만 그의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낀 키벨은 [브레이즈 캐논 매거진]의 효과를 발동하기 직전, 그를 향해 소리쳤다.
"에르제! 집에 가자!"
"집... 집...!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그래!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집에 갈래! 집에 갈래!"
그 말을 듣자 마자 알베르도 드디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쏴!"
"[브레이즈 캐논 매거진]의 효과 발동! 패 1장을 버리고 덱에서 1장을 드로우한다! [볼캐닉 백샷]을 버리고... 발포하겠어!"
에르제 LP 5200 → 3700
그리고 드디어 쏘아올려진 반격의 불꽃. 패에서 버려진 [볼캐닉 백샷]의 효과로 500의 데미지, 그리고 이어서 덱에서 묘지로 직행한 2장의 [볼캐닉 백샷]을 더해 1000의 데미지, 거기에 에르제의 필드를 모조리 쓸어버림으로서 그의 마음을 얽매던 리스의 저주가 [볼캐닉 퀸]과 함께 불에 타오르며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으아아!!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네깟것들이 뭐라고오오!!"
무너져내리는 [볼캐닉 퀸]에서 불에 휘감기며 드러나는 리스의 사념. 알베르의 생각대로 에르제에게도 그녀의 조각이 조금씩 들어있었고, 5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자신의 혈육을 자신의 '2회차 인생'으로 삼으려 했었던 그 집념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럴 순 없어!! 내가... 내 아이한테 뭘 하든 무슨 상관이냐고!!"
"네 아이라고 네 마음대로 하겠다니. 참신한 헛소리네. 아무래도 오랫동안 고통받고 싶은 모양이로군."
그리고 그 사념이 무너져내리는 와중에 여태까지의 분노를 받아내느라 전전긍긍했던 알베르도 속풀이삼아 그 사념에게 한 소리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많단 말이야! 네 놈들 따위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알게 뭐야, 그 할 일인지 뭔지! 그냥 지옥에서 잠이나 처자세요!"
거기에 [파이어 이젝션]의 발동으로 위에서 들려온 폭발음에 반응해 일행과 함께 위층으로 돌아온 로제 역시 무너져내리는 리스의 사념에 한 소리해주고 있었다. 리스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그 사념만으로도 에르제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었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개... 끼들...!!"
리스의 사념은 욕지거리를 끝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렸고,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
"그렇게 되었지."
"언니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를 빼놓고 그런 일을 했었단 말이에요?"
얼마 후, 로제의 집으로 초대받은 하림 가족은 로제가 들려준 그간의 일들을 통해 하준이 들려준 말들이 모두 사실임을 알게 되었고 하윤은 그런 일에 왜 자신들을 빼놓고 갔던 것이냐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 했다.
"어쩔 수 없었어. 다른 것도 아니고 그 리스인가 린스인가 하는 여자의 아들이니까 최대한 조용하게 일을 처리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뭐 어쩌겠어."
그 와중에도 리스를 꼭 빼닮은 에르제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약간의 불편함이 올라오면서도 신기함을 느끼는 하림의 가족이었고, 그런 에르제가 태양이와 놀아주는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악녀는 마지막까지 악녀였구나... 자기 아들을 무슨 자기 부계정마냥 키우려했다니."
"그러니까. 나도 그 여자를 직접 마주한 적은 없었지만 그 귀신 꼬라지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만했지."
자기 눈 앞의 상대가 그 희대의 악녀 리스의 아들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는 태양이는 그런 에르제에게 꺄르르 웃어주고 있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건 키벨 덕분에 에르제가 별 탈없이 우리 품으로 왔다는 거야."
"어... 알베르 씨도 같이 있댔는데..."
"알게 뭐야, 그 아저씨."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는 해도 알베르 때문에 쉬운 길을 어렵게 가버린 것 탓인지 로제는 약간의 심통을 부리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르제와 뒤이어 합류한 하준, 키벨의 세 사람은 아장아장 걷는 태양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토벌전 종료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막혀서 애를 먹었지만 어찌저찌 써내려가는데 성공했읍니다
이제 다시 일상물로 복귀할 수 있겠군요 혹은 과연 그럴까요
(IP보기클릭)220.83.***.***
빰빠밤빠 빠빰 보이지 않는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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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두고봐야 알 것입니다 그래도 분명한 건 에르제는 확실하게 구원받았읍니다 | 23.08.05 22: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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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오리
빰빠밤빠 빠빰 보이지 않는 위협 | 23.08.06 00: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