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서, 그리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 마태복음
작전들의 연이은 실패, 그리고 그 실패로 인한 후유증과 뒤이어 터져나온 대형 폭로들로 인한 처절한 실패와 파멸적인 결과에 암흑 날개의 처지는 이래저래 말이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희생양이 필요한 법이었고, 현 상황에서 그 희생양으로 가장 적합한 것은 누가 뭐래도 대장로 본인이 직접 끌어들였던 리스였다.
"이건 도저히...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른 건 그렇다쳐도, 설마 대장로와 그 요사한 계집이 서로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니..."
심지어 대장로와 리스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고, 그로 인해 리스가 대장로를 뒤에서 조종해 그를 자기 입맛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정황까지 확인되자 여섯 장로 모두 더 이상 리스와 같은 배를 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대로 있다간 우리 모두 죽고 말거요! 지금이라도 그 간사한 계집을 끌어내고 어떻게든 이 암흑 날개를 정상화해야만 합니다!"
리스를 뺀 남은 여섯 장로 중 최연장자인 자바트 장로의 결단으로 현 상황을 타개하고자 대장로를 직접 찾아가 리스를 끌어내리기로 결심하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여섯 장로들은 필요하면 대장로를 강제로 끌어내려서라도 리스라는 요물을 쳐내기로 작정했다. 암흑 날개의 내분인 셈이었지만 오벨의 대형 폭로로 인해 서로가 사이좋게 박살이 나버린 관계로 윗선들조차 이젠 뭣도 없는 상황인 만큼 작정하고 숫자로 밀어붙여 리스를, 필요하다면 대장로까지도 끌어내리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어머, 대장로님을 찾아오신거라면 그 분은 현재 요양 중이랍니다."
그러나 대장로가 있어야 할 방에는 대장로가 아닌 리스가 있었다. 마치 자신이 대장로인 것마냥 행세하는 리스의 손에는 샤키르 나셸의 손으로 쓰여진 대장로 대행 증명서가 들려있었다.
"이건 또 무슨 간계냐?! 이젠 자기가 대장로라도 되는 것처럼 굴다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이건 엄연히 대장로님의 자의로 작성된 서류랍니다. 즉, 이 이상 저를 적대한다면 대장로님의 뜻에..."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아!"
자바트 장로를 좌우에서 호위하는 펠라니스 형제 중 큰 쪽인 잭 펠라니스 장로가 당장이라도 리스의 목을 부러트릴 기세로 화를 내고 있었다.
"루샬카의 테러 계획이 실패한 건 우리 잘못이니 그렇다고 쳐도, 네년이 우리 암흑 날개로 새로이 들어온 이후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것들이 죄다 실패의 연발이야! 도대체 누굴 위해 내놓은 계획들인지는 둘째치고, 그 계획들이 죄다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이젠 우리 암흑 날개는 말 그래도 우습기 그지없는 꼴이 되었단 말이다!"
"그래서 그게 다 제 탓이라고 몰아세우는 건가요?"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며 대장로를 뒤에서 조종한 사실까지 다 알려졌는데, 끝까지 아닌 척할 셈이냐?!"
자신을 향해 살의를 드러내는 여섯 장로들의 모습에 리스도 여태까지의 웃음기를 지우고 정색하며 말했다.
"뭐... 이제 당신네들은 아무 필요도 없으니, 이 사실 하나만 특별히 말해주지. 사실은 내가 대장로를 뒤에서 조종한 것이 아니야."
"끝까지...!"
작은 쪽인 아서 펠라니스가 아예 리스를 찢어죽일 마음으로 달려들려던 찰나, 대장로의 방의 분위기가 이상해졌음을 깨달았고 곧 여섯 장로 모두가 대장로의 방에 숨어있던 하샤신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알아채고 표정들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그 대장로라는 남자가 내 호구를 자처해준 거란 말이지, 장로 나부랭이들."
"뭐라...?!"
충격적인 사실. 여섯 장로들은 리스가 암흑 날개에 합류했을 때부터 자신들이 리스의 손에서 놀아난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죽을 생각이 없거든? 그러니까 대신 당신들이 그 우주 경찰들을 위해 대신 죽어줘야겠어."
"이, 이건...!"
곧 여섯 장로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꿈틀거리는 무언가. 장로들이 그 감각을 알아차렸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내가 수집한 자료 중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하더라고. 인간을 조종하는 마물, [패러사이트 퓨저너]. 이제 암흑 날개는 내게 아무 쓸모도 없어. 하지만 아직 할 일은 남았지. 자, 가서 할 일을 하라고."
그리고 남아있는 하샤신들과 하급 단원, 중간 관리직, 끝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당해버린 마스터 하샤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여섯 장로의 머릿속에도 금단의 마물, [패러사이트 퓨저너]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 마물에는 임무 실패시에 뇌와 척수를 파괴해 감염자를 불구로 만들거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기능을 추가해둔 리스였다. 이 또한 결국 시간 벌이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쓸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쓰겠다고 작정한 리스였다.
"이제 더는 볼 일도 없겠지만... 이거 하나는 해두고 갈까."
그리고 리스는 이 땅에서 영영 사라지기 전에 아직 자신이 못 마친 일을 다 마쳐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전에 미처 끝내지 못 했던 일, 이브의 영혼을 담아놓은 루시라는 소녀의 영혼과 그녀가 품고 있는 '이브'의 영혼으로서 완성되는 '페르세포네'의 새로운 육신. 이제와서 암흑 날개에 대한 미련은 딱히 없었지만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던 만큼 자신이 [패러사이트 퓨저너]로 세뇌시킨 루시의 행방을 찾아낸 리스는 즉시 그들로 하여금 그녀를 생포해 자신 앞에 사로잡아올 것을 명했다. 처음부터 하샤신들을 시켰다면 일이 배는 편했을텐데. 라고 생각하는 리스였지만 지금이라도 자신의 발 밑에 완전히 들어온 암흑 날개를 부려 루시를 사로잡고자 했고, 약 1시간 후 그것이 마침내 현실로 일어났다.
"응...? 이건 또 뭐야...? 아니, 넌...!"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곧 하샤신들이 사로잡아온 '루시'의 정체를 본 리스는 분노와 함께 허탈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루샬카...! 넌 분명 죽었을텐데...!!"
루샬카. 일전의 글레이브 하우스 테러 실패의 책임을 지고 암흑 날개의 가짜 대장로로서 죽었어야 할 그가 이례적으로 신속했던 사형 집행 소식까지 모두 전해졌음에도 살아남은 것으로도 모자라, 오랜 코스프레 경력을 살려 자신을 루시로 위장해 하샤신들을 속였다는 것에 리스는 경악했다.
"안녕, 아줌마. 그리고 죽은 건 맞아. 적어도, 암흑 날개의 장로 루샬카는 말이야."
"말장난을 하다니...! 그보다도 어떻게 하샤신들의 눈을 속인 거지...!"
그러나 아무리 한 밤중이었다지만 하샤신들이 루시와 루샬카를 구분 못할 리가 없었을테니 이것이 무슨 일인가 싶어 루샬카를 찬찬히 살펴보던 리스는 곧 하샤신들이 속아넘어갈 정도의 강인한 기운, 즉 성녀의 영혼을 느낄 수 있었고 어차피 자신은 이 세상에서 영영 떠날 계획이었던 만큼 꿩 대신 닭이라는 마인드로 루샬카를 제물로 삼아 '페르세포네'에게 새로운 육신을 넘겨주고 그대로 자신만이 아는 이차원으로 떠나기로 했다.
"뭐, 아무래도 좋아... 비록 원하는 상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네게서도 충분히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니, 암흑 날개의 새로운 날개로서 제물이 되어줘야겠다."
"그럴 일 없을 걸... 왜냐면 난 이제 먹을 수 있는 신을 안 믿으니까."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넌 어차피 죽을 것이고, 네 영혼도 무의미하게 소모되다 그대로 잊혀질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리스는 자신만이 아는 이세계의 언어로 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곧 루샬카의 영혼과 그 안의 무언가가 함께 그의 몸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신이 죽을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도 루샬카는 오히려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도 즐겁냐고. 리스는 그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주문을 외우는 동안에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기에 궁금증은 궁금증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다.
이걸로 된 거야. 어차피 죽었어야 할 나였잖아. 잘 된 거야.
의식이 완전히 끊기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게 된 시점에서도 루샬카의 정신은 마지막까지 리스의 손에서 죽는 것이 루시가 아닌 자신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죽는 건 싫었지만, 어차피 죽어야 한다면 이런 식으로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죽는 것이 나았다. 그리고 루샬카의 시신에 어린 미소를 본 리스는 뭐가 그리도 좋아서 웃는거냐고 생각하며 대단히 불쾌하게 여겼고, 이 망할 시신을 불에 태우든 어떻게 하든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샤신들에게 떠넘긴 그녀는 자신은 약속을 지켰으니 그 다음은 알아서 하라고 페르세포네에게 들리지 않는 말을 던진 후, 자신과 대장로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아이들을 데리고서 자신만이 아는 이차원으로 차원 이동을 실시했다. 그리고 거기 남은 루샬카의 시신을 치우는 하샤신들을 끝으로 거기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최악의 상황이로군... 기껏 되살아나자 겪는 것이 이런 상황이라니."
리스가 아쉬운대로 대용품을 사용해 부활에 성공한 페르세포네였지만 '신의 세 심장'이라 불리던 자신의 눈 앞에 놓인 현 상황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지겨운 우주에서의 방황을 겨우 마치고 되살아난 페르세포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리스의 [패러사이트 퓨저너]에 세뇌당한 암흑 날개의 구성원들과 엉망진창인 조직 뿐이었고, 그나마도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는 리스와 그녀에게 이미 모든 것을 내놓은 대장로인 샤키르 나셸에 의해 모든 것이 돌아가는 신세였으니 그녀로선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그 여자가 약속은 지켰다지만, 정작 내게 뭐 하나 남겨준 것도 없이 그대로 사라지다니. 기가 막히는군."
그런 페르세포네가 향한 곳은 리스가 이 세상에 남겨둔 마지막 연결 지점이라 할 수 있는 성유물 [성잔]이 위치한 루나 시티의 심장부였고, 성잔의 용자 루니샤는 리스가 성잔에 남겨놓은 본인의 의식 일부분을 통해 '계시'라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봐. 네가 그 성잔의 용자라는 루니샤 맞지?"
"무슨 일이시죠?"
한 참이나 성잔의 '계시'를 듣고 있던 루니샤를 향해 페르세포네가 말을 걸었다.
"저 성유물에 깃든 의식과 조금 아는 사이거든. 단 둘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말이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됐습니다."
또 다른 '계시'를 전해들은 루니샤가 옆에 있던 페르세포네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오롯이 홀로 성잔 앞에 서게 된 페르세포네는 이어서 리스의 의식과 소통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를 다시 되살려준 것에는 감사를 느끼지만, 나를 쓰레기장에 던져놓고 도망치는 건 좀 비겁한 짓 아니더냐?
쓰레기장이라니요? 그렇게 멋대로 말하시면 조금 서운한데 말이죠.
그럼 네가 세뇌시킨 암흑 날개와 루나 시티는 죄다 뭐지? 내게 줄 선물은 아니지 않더냐.
아하하. 많이 서운하셨나보네요. 그 점은 제가 사과드리죠.
사과? 네 사과를 내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있나?
제가 모종의 사정으로 자리를 비운 이상, 이제 암흑 날개와 루나 시티의 통제권은 당신에게 주어졌는데, 그걸로 선물 대신으로 하는 건 어떨까요.
퍽이나 반가운 소리군.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리의 신이 자취를 감춘 이상, 우리의 신과 가장 가까운 당신이 암흑 날개의 마지막 구심점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네 뒤치닥거리나 해주는 입장이란 말이군.
제가 어렵게 당신에게 새로운 육신을 주었는데, 그에 대한 보상은 있어야겠죠?
어쩔 수 없군.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던 자신을 살려준 리스가 귀찮은 숙제를 자신에게 던져놓고 도망간 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목숨 빚을 진 이상 페르세포네도 마냥 리스에게 불만을 토로하며 궁시렁거릴 시간은 없었다. 전성기의 애프터라이프에 비하면 떨거지나 다름없는 세력이었지만 이걸로라도 뭔가를 해줘야하는 입장인 페르세포네는 루니샤에게 다시 자리를 비켜준 후, 암흑 날개의 거처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하여간 목숨 빚을 져버렸으니... 일을 안 해줄 수도 없군."
그리고 그런 페르세포네를 플루토스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고, 그의 눈길을 느낀 페르세포네는 허탈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이러니 일이 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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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놓고 말았읍니다 이름하야 [패러사이트 퓨저너]
그리고 루시를 대신해 루샬카 쟝이 으앙 쥬금 상태가 되었는데 과연 루샬카 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페르세포네는 개같이 부활했지만 정작 리스 쟝이 직무유기를 시전하고 아무도 모르는 이차원으로 대장로 사이에서 낳은 애들을 데리고서 째버리는 바람에 매우 잣되어버린 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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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리스답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 아트몬 프라이드 치킨은 조만간 압류당하고 문 닫겠군요 | 23.04.29 22:1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