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림이 리나 시티에서 보낸 날로부터 약 사흘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꿀맛 같은 휴일이 지나자마자 황혼 중학교에 등교해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현실에, 하림은 평소엔 느리게 가는 것 같이 느껴지는 시간이 휴일만 되면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거냐고 툴툴대며, 옷장 안에서 미리 드라이를 마쳐 놓은 황혼 중학교 교복을 입고 학교 등굣길에 오르기 위해 집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기 시작했다.
하림이 현관에 앉아 신발을 신는 모습을 본 하윤 역시 자신이 재학 중인 초등학교인 황혼 초등학교에 등교할 준비를 하기 위해 부랴부랴 자기 방으로 뛰어갔고, 아직 다섯 살이라 학교에 갈 일이 없는 막내 하준은, 오늘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라 엄마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막내동생 하준이 엄마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고 있는 모습을 본 하림은, 자신도 이럴 땐 막내동생 하준이 부럽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며, 한숨을 쉬고 부모님께 등교 인사를 올렸고, 형의 이런 사정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똘망똘망하고 순수한 눈빛을 빛내며 형 하림이 등교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하준은, 자기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하는 듯이 천진난만한 투로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형 하림을 배웅하였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림 어머니)
"형아, 잘 갔다 와!"
"그래, 준이 너도 엄마랑 아빠 말씀 잘 듣고, 사고 치지 말고 있어. 알았지?"
"알았어! 앗싸, 난 오늘 어린이집 휴원일이라 집에서 쉰다!"
"그러냐? 이럴 땐 준이 네가 정말 부럽다. 형도 너처럼 집에서 아무 생각 없이 푹 쉬고 싶다~"
"헤헷!"
하림이 힘 없는 말투로 자신은 오늘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자,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웃음 소리를 내며 아빠 품으로 달려가는 하준.
하림 남매의 아빠는 자신의 품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막내아들이 달려오자 함박웃음을 터뜨리며 하준을 번쩍 안아 올렸고, 아빠와 하준이 순수하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본 하림은, 스마트폰 액정 화면에 뜬 현재 시간을 확인하자, 등교 마감 시간 안에 등교하지 않으면 자신은 학생 주임 선생님과 선도부 위원들에게 벌점 폭탄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등교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일어나 집 문을 열고 바깥을 달리기 시작했다.
하림의 집에서 하림이 다니고 있는 황혼 중학교가 있는 곳까지는, 하림의 걸음 속도로 걸으면 약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
지금 전력을 다해 학교까지 뛴다면,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약 15분 정도, 정말 운이 좋다면 20분 정도나 되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수많은 등교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하림은, 아기 때 어머니의 젖을 먹던 힘까지 다 해 학교가 있는 곳으로 빠르고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운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지, 약 15분 정도 걸려서 학교에 도착한 하림.
학교 교문을 무사히 통과한 하림은 여기까지 뛰어 오느라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였고, 현재 시간이 등교 마감 시간인 오전 9시에서 약 1분 전인 오전 8시 59분이라는 사실을 파악하자, 진짜 아슬아슬하게 제 시간 안에 등교했다는 것을 실감하고, 여기까지 달려 오느라 얼굴에 삐질삐질 땀이 흐르고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자신이 제 시간에 등교를 마쳤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헥... 헥... 간신히 안 늦었다... 헥... 헥... 아이고, 나 죽네..."
"오늘도 지각하지 않고 무사히 등교했구나. 잘 했다, 림아."
"감사합니다, 학생 주임 선생님. 아이고, 나 죽네..."
"아직 15살밖에 안 된 녀석이 벌써부터 죽는다는 소리를 하면 어떡하냐?"
"선생님께서 저희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죽을 힘을 다 해 뛰어 와 보세요. 숨이 안 차곤 못 배길 걸요?"
"녀석, 엄살은. 하여튼 숨 다 쉬었으면 어여 너희 반 교실로 들어가라, 2학년 학생들 출석 체크 시간까지 10분 남았다."
"네, 선생님. 아이고, 내 숨이야..."
황혼 중학교 학생들에 관한 대부분의 사항들을 책임지는 학생 주임 교사이자, 녹색 운동복을 입은 덩치 큰 남성, 이정석 교사가 오른쪽 손목에 찬 손목시계를 보며 하림에게 얼른 교실로 들어가라고 말하자, 정석의 말을 들은 하림은 다시 한 번 부스터를 달아놓은 것처럼 빠른 발놀림을 보이며 자신이 배정되어 있는 2학년 2반 교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림이 본인이 배정된 교실을 향해 달리기를 시작하자 잠시 미소를 지은 뒤, 빠르게 미소를 거두고 옆에 있던 선도부 위원 한 명에게 혹시 오늘 지각하거나 결석한 학생이 더 없는지 물었다.
"좋아. 2학년 2반 하림, 8시 59분에 등교 완료했고. 지현아!"
"네, 주임 쌤!"
"혹시 오늘 지각하거나 결석한 애들은 없지?"
"흠, 지금 시간이 오전 9시 1분이고... 어제 갑자기 급성 폐렴이 발병한 것 때문에 병원에 입원한 3학년 1반 현진수 선배님이랑, 어머니께서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에 실려 가시는 바람에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에 있어야 하는 2학년 4반 혜민이를 뺀다면... 이제 모두 등교한 것 같습니다, 선생님!"
"그럼 이제 교문 닫아도 되겠구만. 얘들아, 얼른 교문 닫아라!"
"자, 잠시만요! 여기 아직 등교할 학생 한 명 있습니다!!!"
"응? 방금 저 쪽에서 자기 오고 있다고 소리 지른 애 누구냐?"
"아, 2학년 2반 강유철 학생이네요!"
"저 뱀 같은 놈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지각한단 말이야."
"그러게 말이에요. 유철이가 있어서 학교 생활이 지루하지 않단 말이죠. 푸훗."
"저도 동감이에요, 지현 언니. 단골 지각생 뱀 선배가 있어서 학교 생활이 참 재미있어요. 푸힛."
"좋아, 2학년 2반 강유철. 지각으로 벌점 5점 매기는 거 적어 놔라. 빨랑 와라, 유철아! 벌점 폭탄 맞고 싶지 않으면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정석이 굳게 닫히려는 학교 교문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유철을 향해 손짓하자, 정석의 손짓을 본 유철은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달리기 시작했고, 교문 안에 입성한 유철은 숨을 헐떡이는 와중에도 자신이 지각했다는 사실에 마음 속으로 절규를 부르짖고 있었다.
유철이 학생 주임 교사 정석과 선도부 위원들에게 벌점을 맞고 있는 그 시각.
오전 9시가 되기 1분 전에 간신히 등교를 마친 하림은, 2학년 2반 교실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아 여기까지 달려 오느라 지친 몸을 엎드려 체력을 충전하기 시작했다.
하림이 책상 위에 축 늘어진 채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본 호철은, 오늘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아침부터 책상 위에 늘어져 있는 거냐고 물었다.
"림아, 너 오늘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보이냐?"
"말도 마라. 어제 분명히 숙제 다 마치고 일찍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으로 잤는데, 내가 예상한 시간보다 20분 늦게 일어나 버렸지 뭐냐."
"대체 몇 시에 잤는데?"
"해야 할 숙제를 다 마치고 보니까, 오후 11시 30분이었어. 그래서 "7시 40분까지는 일어나야지!"라고 굳게 다짐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예상 시간보다 20분이나 더 흘렀지 뭐냐."
"으이그, 그러니까 알람을 맞춰 놓고 자라니까."
"알람 맞춰 놓고 자면 옆 방에 있는 윤이가 내 알람 소리 가지고 겁나 쪼아대. 알람 소리를 뭐 그렇게 크게 해 놓고 자냐고 말이야."
"아, 윤이가 있구나."
"그래서 잘 때 알람도 함부로 못 맞춰. 윤이 걔가 지금 사춘기가 왔는지, 조금만 소리를 크게 틀어도 짜증이, 짜증이 진짜..."
"여동생 있는 집은 이래서 피곤하구나."
"호철이 너도 아래로 동생 한 명 있지 않아?"
"한 명은 아니고 두 명 있어. 지금 2살인 민철이랑 민영이가 이란성 쌍둥이에다 늦둥이로 태어나서, 우리 집에서 무지하게 귀여움 많이 받아."
"와... 호철이 너희 부모님, 금슬이 엄청 좋으시나 보네. 늦둥이로 태어난 아기들이 이란성 쌍둥이라니..."
"꼭 좋은 것만은 아니야. 민철이는 나랑 같은 남자아이라 내가 편하게 돌봐줄 수 있는데, 민영이는 나랑 민철이랑은 다른 여자아이라 어떻게 돌봐줘야 하는지 갈팡질팡할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야."
"그래? 우리 집 준이랑은 다르네."
"그래도 내가 책임감을 가지고 돌봐 줘야지, 뭐. 우리 부모님 힘만 가지고는 너무 부족하니까. 그러고 보니, 네 동생 준이가 올해로 다섯 살이지?"
"그렇지. 오늘 아침에 자기는 어린이집 쉬는 날이라고 어머니랑 아버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니까, 준이가 참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
"아기들은 원래 순수해서 좋지. 나도 등교할 때 동생들이 부모님 품에 안겨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너랑 같은 생각이 들어."
"역시 어린 동생을 둔 사람들끼리는 대화가 잘 통하네."
"그러게 말이다."
서로 각자 집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을 어린 동생들의 순수한 모습을 떠올리니, 형의 입장에 있는 두 사람의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피어 올랐다.
그렇게 모든 학생들이 출석 체크를 마친 이후, 약 3시간 동안의 수업 시간이 지난 12시 10분.
점심 식사를 마치고 학교에 비치된 벤치에 앉아 꿀맛 같은 휴식을 즐기던 하림은, 자신의 눈 앞에 여학생으로 보이는 실루엣을 가진 사람이 포착되자, 혹시 청월이 얼마 전에 있었던 황혼 중학교 개교 기념일에 자기랑 데이트를 하지 않고 혼자 휴식을 즐긴 것을 알고 분노의 불꽃을 불태우며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은 마음에, 순간 지레 겁을 먹고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림에게 다가오고 있는 학생의 정체는, 오렌지빛 머리를 휘날리는 자신의 여자친구, 청월이 아니었다.
교복 오른쪽 위에 황혼 중학교 1학년 학생이라는 것을 알리는 연두색 명찰을 본 하림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여학생의 정체가 분노에 찬 청월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하림 앞에 다가온 그 여학생은, 하림 앞에 멈춰서자 쭈뼛쭈뼛하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 안녕?"
검은색 긴 머리를 휘날리는 귀여운 인상의 여학생이 자신 앞에서 쭈뼛거리자, 그런 여학생이 퍽 귀여웠는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하림.
연두색 명찰에 새겨진 정유민이라는 이름을 본 하림은, 자기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몸을 떠는 유민을 향해 혹시 1학년 학생이냐고 물었고, 하림의 말에 유민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앞에서 계속 쭈뼛거리며 말을 잇지 못 하는 유민을 조금 답답하게 느낀 하림은, 유민에게 자신에게 할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이야기하라고 말하였다.
"그렇게 쭈뼛거리고만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잖아? 할 말이 있으면 시원하게 말 해!"
"앗, 네! 시, 실은... 이거, 받아 주셨으면 해서요..."
"이건...??"
하림의 앞에서 계속 말을 잇지 못하고 쭈뼛거리기만 하던 유민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의 입구 부분에 작은 빨간색 하트 모양 스티커가 붙어 있는 편지 하나를 건네 주었고, 유민의 손에 있던 편지를 받아 든 하림은 유민이 쓴 편지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편지에 붙어 있는 빨간색 하트 모양 스티커를 조심스럽게 떼고 안에 있는 편지 내용을 확인하였다.
하림이 받은 편지는, 바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진심을 담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담긴, 학생 시절 뿐 아니라 그 이후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한 번 받을까 말까 한다는 연애 편지.
편지 내용을 확인한 하림은 순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유민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직접 쓴 손 편지네? 나한테 편지 줘서 고마워, 유민아."
"네! 그럼, 저... 선배의 여자친구가 된 건가요...??"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야. 내 곁에는 이미, 나에게 있어 소중한 여자친구가 있거든."
"2학년 3반... 진청월 선배님 말씀이시죠?"
"네가 그걸 어떻게...?!"
"선배님이랑 진청월 선배님이 사귄다는 소문, 저도 들었어요. 그 소문은 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 모든 학생들이 다 아는 사실이니까요. 그래도, 만약 진청월 선배님이랑 헤어지시게 된다면... 제가, 선배님의 옆에 있고 싶어요."
매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심을 하림에게 전하는 유민.
유민의 진심에 하림은 미소를 지으며, '네 마음은 고맙지만 그 마음만 받을게. 그러니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말로 유민의 고백을 정중하게 거절하였다.
하림이 정중하게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자, 하림이 꺼낸 말의 뜻을 알아들은 유민은,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전하긴 했으니 미련 없이 후련한 표정으로 하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하림이 앉아 있던 벤치가 비치된 자리를 떠났다.
유민이 떠난 뒤, 유민이 자신에게 준 편지를 다시 편지 봉투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하림.
그 순간, 하림의 등 뒤에선 순간 강한 살기를 품은 사람이 뿜어내는, 마치 겨울철 공기와도 같은 차갑고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 뒤에서 왠지 모르게 익숙한 사람이 뿜어내고 있는 한기를 느낀 하림은, 경직된 표정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였다.
혹시나가 역시나라는 말이 사실이었는지, 하림의 등 뒤에서 분노에 가득 찬 한기를 뿜어내고 있는 사람의 정체는, 언제부터 하림의 뒤에 다가와 있었는지, 작가도 모르는 사이 하림의 등 뒤에 서서 분노로 가득 찬 차가운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는 청월.
청월의 모습을 확인한 하림은,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보고 청월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려 하였다.
"처, 청월아?!"
"헤에~ 귀여운 1학년 후배한테 정성 가득 담긴 고백 편지를 받다니, 우리 림이 인기 좋네~??"
"처, 청월아! 이, 이건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 봐! 내가 방금 그 1학년 여학생이 쓴 편지를 받긴 했는데, 그 여학생이 한 고백은 정중하게 거절했어!"
"그래애~? 그럼 방금 전까지 아주 스윗한 선배 포스를 뿜어내던 림이는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 그거야 학교 선배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나 하림의 여자친구 진청월이, 림이 네 곁을 두 눈 부릅뜨고 지키고 있는데, 그런 햇병아리 같이 새파란 어린애가 감히 내 자리를 침범하려 들다니..."
"야, 그래도 고백은 정중하게 거절했으니까 됐잖아!"
"그건 그렇지. 이번엔 그냥 넘어가겠지만, 만약 다음에도 내가 없는 사이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알지?"
"윽... 네..."
청월의 분노는 선선한 공기가 흐르고 있는 지금 이 곳에 서리를 내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웠고, 또 이 곳에 있는 모든 것을 녹이고 불태울 수도 있을 정도로 뜨거웠다.
청월의 분노가 가득한 살기에 마음 속으로 자신을 연모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두 번 고백 받았다간 목숨이 남아나지 않을 거라고 마음 속으로 중얼거리는 하림.
그렇게 두 사람의 즐거운(?) 스쿨 라이프는, 천천히, 그리고 아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점심 시간이 끝난 뒤, 오후 수업 시간까지 무사히 넘긴 황혼 중학교 학생들은, 종례 시간을 마치는 종 소리가 울리자 각자 가야 할 곳을 향해 발걸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림 역시 종례를 완전히 끝마치고 하굣길에 오르려 하였고, 하굣길에 자신이 다니는 황혼 중학교 교문 앞에 서 있는 어느 남자아이를 본 하림은, 이런 시간에 남자아이가 왜 교문 앞에서 저러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 마음에, 교문 앞에 선 남자아이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꼬마야!"
"으악, 깜짝이야!"
"으악! 야, 내가 더 놀랐다..."
"죄, 죄송합니다!"
"보아하니 황혼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학생처럼 보이는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니?"
"시, 실은... 제가 짠 덱을 여기서 시험해 보고 싶어서요!"
"덱을 시험하고 싶다고?"
"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이 황혼 중학교에 찾아온 이유를 밝히는 황혼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남학생.
자신을 정하민이라고 소개한 그 학생은, 여기에 설치된 듀얼 필드라면 자신이 짠 덱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이 곳 황혼 중학교에 찾아 왔다고 말했다.
하민이 자신이 여기 찾아오게 된 이유를 말하자, 황혼 초등학교에도 듀얼 필드가 설치되어 있지 않냐며, 황혼 초등학교에 설치된 듀얼 필드에서 덱을 시험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는 하림.
하림의 말에 하민은 그 쪽 듀얼 필드는 너무 많이 가서 지겹다고, 그러니 다른 학교에 설치된 듀얼 필드에서 자신이 짠 덱을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하였고, 황혼 중학교 듀얼 필드라면 자신의 덱을 시험하기 딱 좋은 장소라 말하며 하림에게 듀얼 필드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하민의 간절한 요청에 하림은 곤란해 하는 표정을 지었고, 일단 하민의 덱부터 확인하기로 한 하림은, 하민에게 혹시 덱을 보여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하림의 물음에 자신이 소중히 챙겨 온 덱을 꺼내 하림에게 건네주는 하민.
하민이 짠 덱은 서치와 전개력은 물론, 이 테마에 속한 몬스터들이 가진 공격력과 효과 연계력도 뛰어난 축에 속하는 덱인 [강귀] 덱이었다.
하지만 하민이 짠 [강귀] 덱의 내용물을 살펴보니, 상대를 견제할 수 있는 효과를 가진 함정 카드가 없는 건 고사하고, 덱을 구성하는 마법 카드는 물론, 덱에 들어가 있는 몬스터 카드까지 전부 [강귀] 카드로만 이루어진, 범용 카드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단 한 장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강귀] 카드로만 이루어진 덱이었다.
하민의 [강귀] 덱을 본 하림은 "이 덱이 정말 굴러가기는 할까?"하는 의문을 품었고, 하림에게서 덱을 돌려받은 하민은 학교 친구들을 상대로 자신이 짠 [강귀] 덱을 시험할 때마다 매번 지기만 했다며, [강귀] 덱으로 친구들과의 듀얼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았지만, 방법을 찾기는 커녕 계속 허탕만 치고 있다고 말했다.
전설의 듀얼리스트 중 한 사람이자 링크 브레인즈의 영웅 중 한 사람인 [Go 강철]을 동경해서 [강귀] 덱을 짰는데, [강귀] 덱으로 듀얼을 할 때마다 이기기는 커녕 계속 지기만 하니 어떻게 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며, 부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강귀] 덱으로 친구들과의 듀얼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애원하는 하민.
하민의 간곡한 부탁을 들은 하림은, 이 소년이 구성한 덱을 어떻게 해서든 개수해 줘야겠다고 생각하였고, 마침 그 광경을 본 청월이 하림에게 다가오자, 청월에게 하민이 이 곳에 찾아오게 된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림의 설명에 청월 역시 하민에게서 [강귀] 덱을 받아 덱을 구성하고 있는 카드들을 살펴 보았고, 범용 카드 없이 오로지 [강귀] 카드로만 이루어진 덱 레시피를 보자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며, 덱 구성이 이러니까 듀얼에서 지기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하아... 이 아이, 덱에 [강귀] 카드만 잔뜩 넣어 놓았네..."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물론이지! 지금 네 덱은 범용 카드 없이 오로지 [강귀] 카드만 있잖아!"
"네! 고강철 형을 동경해서 그렇게 짰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가 심각하게 많아. 이렇게 [강귀] 카드만 잔뜩 덱에 넣고 다니면, 상대가 사용하는 패 트랩 같은 효과가 뛰어난 범용 카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어! 이거, 덱 레시피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지경이야."
"그, 그런가요?!"
"그래. 고강철 님도 [강귀] 덱을 짤 때, 적어도 [증원]같이 범용성 뛰어난 카드들을 덱에 넣으셨어! 근데 지금 네 덱에는 그런 효과를 가진 카드가 단 한 장도 없잖아? 그러니까 듀얼에서 매번 질 수밖에 없지!"
"그렇군요..."
"휴... 림아, 얘 덱을 어떻게 짜 줘야 좋을까...??"
"흠... 글쎄. 일단 덱을 짜는 데 필요한 범용 카드들부터 어떻게든 구해야 하지 않을까?"
"범용 카드가 어디 한두 푼 하는 줄 알아? 물량이 많이 풀려서 값이 저렴한 범용 카드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범용 카드들은 그 카드들이 가진 효과만큼 가격이 비싸다구!"
"그렇긴 하네... 아, 맞다! 청월이 너, 혹시 너희 집에 덱 짜고 남은 범용 카드 같은 거 없어?"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으면 진작 가져왔지. 난 내가 사용하는 덱들을 뺀 카드들은 대부분 집에 놓고 다닌다구."
"나도 그렇긴 한데... 아, 청월아! 오늘 혹시 너희 언니 스케줄 어떻게 되는 지 알고 있어?"
"우리 언니 스케줄? 오늘은 스케줄 없는 날이어서 집에서 쉰다고 했는데? 그건 왜?"
"오케이, 그럼 너희 집으로 가자! 혹시 너희 언니랑 네가 덱 짜고 남은 범용 카드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
"어머, 결국 이렇게 상견례가 진행되는구나~"
"그, 그런 이유 때문에 가는 거 아니잖아! 어쨌든, 얼른 얘랑 같이 너희 집에 가자!"
"네, 서방님~"
"그런 이유로 가는 거 아니라니까!!!"
하림이 범용 카드를 구하기 위해 청월의 집을 방문한다고 말하자, 능글맞은 투로 하림에게 지금 상견례 하러 가는 거냐고 말하는 청월.
하림은 그런 게 아니라 범용 카드들을 구하기 위해 가는 거라고 꽥 소리를 지르자, 청월은 즐거운 표정을 숨지기 못하고 남자친구 하림, 그리고 덱 개수가 필요한 하민과 함께 자신의 집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림과 진청월, 정하민. 세 명의 소년소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연 하민의 덱을 개수하기 위해 청월의 집으로 향하는 세 명의 소년소녀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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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편 연재 완료!!!
이번 편도 일상 에피소드로 한 번 써 봤습니다!
듀얼 에피소드는... 아마 다음 편에 나올 지도?
아무튼 이번 편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모두 다음 편에서 만나요, 제발~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