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요코하마 기행 https://bbs.ruliweb.com/community/board/300261/read/30564006?view_best=1&page=2
연말에 이 기행문 올린 사람입니다.
저는 덕질의 시작을 동방프로젝트로 끊은 사람입니다.
같은 반에 아랫집 살던 친구녀석이 하길래 캐릭터 오시부터 시작했는데, 친구들에게 똥퍼라고 놀림당해도 음악이 좋아서 파게 되었죠.
(정작 저는 영야초 이지 난민따리입니다. (눈물) 우동게까지는 아득바득 깼는데 에이린에서 기가 질려서...)
아마 제가 WAVE나 유파미확정 유튜브에 클립 돌아다니는 건 거의 다 수집했을 겁니다.
한때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 1순위가 유유코고 2순위가 뱌쿠렌인데 유유코 오시를 하다가 와카에 관심이 생겨서 와카, 하이쿠를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유유코의 아버지가 모티브인 사이교 법사가 벚꽃과 관련된 시를 많이 읊었더군요.
'바라옵건대/봄벚꽃 아래에서/죽게 하소서/부처님 입멸하신/이월 보름 무렵에'라는 시를 가장 좋아했는데, 검색해보니 사이교 법사의 기일은 이월 보름에서 이틀 더 걸려서였다고 하니 소원이 거의 이루어진 거라고 봐야겠죠?
와카야마 쪽에 사이교 법사 기념관이 있다는데, 문제는 여기가 4월 1일 개장이라 시간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유유코와 관련이 있는 스미조메사쿠라에 대한 전승이 전해지는 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왕족이 죽었을 때 그 친구들이 그를 애도하는 마음이 벚꽃에까지 전해져 상복 색깔로 물들었기에 사람들이 그 일대의 절을 '사쿠라데라'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까지 전래되어 보쿠젠지(묵염사-사찰 등은 음독이 원칙)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쿠젠지 일대는 훈독인 스미조메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이 친구 중에 사이교 법사가 있었다고도 하죠. 유유코는 나름 히메사마입니다. 외척인 후지와라 가의 방계였으니, 근대 정도로 가도 고위급 귀족 정도는 되었을 신분이죠. (항렬을 따지면 모코우(1300년 전)가 유유코(900년 전)의 먼 친척할머니)
현존하는 벚나무는 그 때 전승이 남아있던 나무의 3세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벚꽃이 다른 데는 꽤 활짝 피었는데도, 그 나무만은 그루도 작고, 아직 채 피지 못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작 그 옆에 있던 벚나무는 거의 만개한 거 같았는데 말이죠.
-이 전승에선 검은 벚꽃의 원전이 되는 시를 읊은 사람은 사이교 법사가 아닌 우에노 미네오라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게 사이교아야카시의 대표적인 모티브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습니다-
-일련종 소속인 듯 해서 찍어본 현판. 4월 2일에는 벚꽃축제를 한다네요.-
비록 전승대로의 먹빛 벚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야기만은 여전히 우리 가슴에 남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중간에 교토어소를 갈 일이 있었습니다.
어소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꽃구경 오신 분들이 많았어요.
높은 신하들이 앉던 자리라든가, 태자가 공부하는 궁궐 등의 모습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900여년 전 사이교 법사도 이런 벚꽃을 보았을까라는 생각, 그리고 귀족으로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던 사람이 무엇이 그리 허무해서 모든 것을 던지고 산에 들어갔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토 북단에 있는 키후네신사 쪽에도 검은 벚꽃 전설이 전래되어 한 번 가보기도 했습니다.
어딘가에서 피었던 먹빛 벚꽃을 사이교 법사가 옮겨심었다던 전설이 키후네 신사에 있었습니다.
사진은 타비벤토에서 사 온 소고기 스키야키-스테이크 도시락.
귀멸에서 쿄쥬로가 멋고 맛있다고 외칠만한 퀄리티였습니다.
가는 길에 쿠라마신사로 가시는 할머니 세 분을 만났는데, 자리를 양보해드리고 말벗을 해드렸더니 과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가 손자 같으셨나봐요. 한국이든 일본이든 따뜻한 할머님들은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시나봅니다.
키후네 신사 쪽에는 벚꽃은 안 피었고, 대신 동백인지 뭔지 모를 붉은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도 산길을 따라 가니 경치가 좋더군요.
마지막으로 자작한 와카를 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비록 일어에 능통한 것은 아니고 시 솜씨도 좋지 못하지만, 한 수 지어보고 싶었습니다.
'散る桜/儚くても/涙出ず/君の足跡/訪れたから'
(발음은 치루사쿠라/하카나쿠테모/나미다데즈/키미노아시아토/오토즈레타카라)
한글로 갈음을 하자면, '지는 벚꽃잎/덧없다 하더라도/눈물 없으리/그대의 발자취를/찾을 수 있었으니'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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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맘 먹고 소원을 이루러 갔습니다. :) 마침 오미쿠지도 자그마한 소원을 성취한다고 길이 나오더군요. | 23.03.28 01:2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