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진 세이자는 외롭지 않다.
키진 세이자는 외롭지 않다.
홀로 있음에도 그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느낄만큼 감정적이지 않았으니까.
한때 자신과 뜻을 같이 하여 그녀가 이용하고자 했던 이가 있었지만 세이자는 외롭지 않았다.
설령 세상에 그녀 혼자만 남게 되더라도,
키진 세이자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
◇
한 남자가 있다. 길을 잃은 것인지 남자는 어두운 숲속을 혼자 헤쳐나가고 있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남자의 손에는 한 송이 꽃이 들려 있었다는 것.
한없이 어두운 길을 헤쳐가며 남자가 도착한 곳은 어느 높은 절벽이었다.
달빛이 밝게 비추는 절벽. 그 끝에는 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남자는 소녀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손에 쥐고 있던 꽃을 소녀에게 건넸다.
소녀는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며 뭔가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 꽃을 받아 절벽 밑으로 던져버렸다.
그 모습에 남자는 놀랐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소녀는 그런 남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의 손을 쥐고 잰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남자는 행복했고 소녀는 불행하다 생각했다.
◇
그 날 이후 여러 번 계절이 바뀌었고 소녀와 남자는 한 집에 살고 있었다.
다른 이의 눈을 피하려는 듯 마을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곳에 집을 지어 살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소녀는 남자에게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했지만 남자는 늘 있는 일이라도 되는 듯 대범하게 웃어넘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평범한 가족처럼, 연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행복했고 소녀는 조금 불행하다 생각했다.
◇
더 많은 계절이 지나갔다.
어느 날부터 소녀가 며칠간 자리를 비우고 돌아오면 어딘가 다쳐있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남자는 그런 소녀를 걱정했다.
소녀는 남자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도 남자에게 불평을 쏟아냈다. 남자는 그런 불평을 묵묵히 들어주면서 소녀에게 물었다.
위험한 일은 안 하면 안 되겠느냐고. 조금 더 조용히 살아가지 않겠느냐고.
소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남자는 그 대답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남자는 행복했지만 걱정이 많았고 소녀는 불행하다 생각했다.
◇
남자의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허리가 구부정해졌을 즈음. 소녀는 여전히 어린 모습이었고, 더는 남자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는 일이 없었다.
소녀는 남자에게 불평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않았고 남자는 그런 소녀를 향해 늘 웃어보였다.
남자는 여전히 행복했고 소녀는 불행하다 생각했다.
◇
소녀는 병상에 누운 남자를 조용히 내려보고 있었다.
남자는 소녀의 손을 잡은 채로 소녀를 안심시키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다 남자는 소녀에게 물었다. 단 한 번만 자신을 위해 울어줄 수 없느냐고.
소녀는 남자의 말에 놀랐지만 이내 그 마음을 이해했는지 남자를 향해 활짝 미소지어보였다.
남자는 마지막까지 행복했고 소녀는 끝내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
무덤을 앞에 두고 소녀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남자의 마지막 부탁을 떠올리며 소녀는 크게 웃었다.
행복하다는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가 된 것처럼, 소녀는 웃었다.
소녀는 남자를 잊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소녀는 외롭지 않았다.
혼자 남았지만 소녀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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