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 하늘로부터 뚝 떨어진 한권의 마도서. 모종의 이유로 마법의 숲을 찾은 한 남자가 그것의 출처인 하늘을 바라보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시선을 내렸다. 검은 색 가죽커버로 된 양장본을 집어 든 남자는 표지에 적힌 금색의 글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남자로서는 읽을 수 없는 문자였지만, 그는 자신이 손에 든 이것이 마도서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보통의 책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수상쩍은 기운을 느껴서였다. 책에서 강한 운명을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찾은 숲에서 마도서를 발견하다니. 마도서를 호기심의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는 남자가 이곳, 환상향에 정착한지 어느덧 5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20살에 처음 환상들이 했으니 올해로 25살이던가. 짧지도, 그렇다고 길다고도 할 수 없는 시간동안 그는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안락한 집도 구했고, 마을 밖으로 나오더라도 쉽게 요괴밥이 되지 않을 정도의 노련함도 갖췄다. 이제 섹시만 구해 가족만 이루면 완전한 환상향의 주민이다.
하지만, 요괴들이 득시글 대는 환상향에 무사히 적응을 한 그에겐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법을 쓰고 싶다는 것. 즉, 마법사가 되는 것이었다.
요괴가 있고 신이 있는 곳이다. 줄곧 환상이라 생각해 왔던 것이 실존하고 있는 환상향은 마법이라는 힘이 당연하다는 듯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가방을 메고 다니던 시절부터 판타지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던 그가 실존하는 마법에 매료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존재를 알고부터는 언제나 마법을 익히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마법의 숲을 찾거나 요괴를 만나는 등의 위험을 감수하던 나날이 계속되었고, 그럼에도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했던 그였다.
마법을 익힌다는 건 주제 넘는 생각이었던 걸까.
포기를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나타난 마도서는 그야말로 복권 당첨보다 더 기쁜 일. 마법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노력한 그에게 신이 내려준 축복. 기적인 것이었다.
세상에 마법사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구나.
그토록 찾아 헤매던 물건을 손안에 넣게 되니, 감격 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행여나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숲에 만연한 버섯의 포자를 너무 들이 마신 나머지, 환각을 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그러나 손에 들린 마도서는 진짜다.
환상도 가짜도 아닌 진짜라는 것이 손을 통해 전해져오고 있었다.
이것이 마력이란 건가? 굉장하잖아!
오감이 짜릿해져오는 감각을 느끼며 그는 커버를 넘겼다.
*
「저 도둑년. 갈수록 손버릇이 안 좋아져.」
오늘도 어김없이 도서관의 책을 도둑맞은 마녀가 미간을 주물이며 중얼거린다. 달 모양 장신구가 달린 연보라색 나이트캡 아래로 연보랏빛 머리칼이 쏟아져 내리는 묘령의 마녀는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한숨을 내뱉었다.
너무 봐줬어. 한 번쯤은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는데.
홍마관 지하 도서관의 주인인, 파츄리 널릿지는 마음 같아선 두 번 다시 도둑질을 못하도록 혼쭐을 내놓고 싶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고민이었다.
본인 성격이 그렇게 매몰차지 않은데다가 자신의 스승이 그 도둑년을 맘에 들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봐주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인데.
소악마라는 자신의 사역마이자 사서가 도둑년이 책을 훔쳐가는 것을 막아 주기라도 하면 고맙겠는데. 꼭 이럴 때만 직무유기를 하고 만다. 그런 주제에 자신이 뭐라고 한 소리를 하면 건방지게 추가수당을 요구해 온다.
혹, 책을 도둑 맞는 것 보다 추가수당을 주는 게 더 낫지 않겠냐 싶겠지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소악마가 요구해 오는 추가수당이란 금전적인 것이 아닌 악마로서의 수당. 그녀가 서큐버스라는 종임을 생각해 볼 때, 그 추가수당이 무엇인지 대략 유추될 것이다.
촉수는 좋아해도 레즈플레이는 달갑지 않은 파츄리에겐 소악마가 말하는 추가수당이야 말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당분간 이대로일 수밖에 없나.
결국, 마땅한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한 파츄리는 읽다 만 책을 집어 들고 조용히 독서 삼매경에 빠져 들었다.
그러고 보니, 도둑맞은 책 중에 금서가 포함 된 것 같은데?
뭐, 상관 없나.
털린 것이 조금 곤란한 책들을 분류한 책장이었지만, 그녀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곤란하다곤 해도 위험한 부류가 아니니까. 끽 해봤자, 마계에서 써진 허접한 삼류 소설 정도.
*
인간 마을에 새로운 입주민들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비구니를 중심으로 요괴들이 불제자로 있는 절이란다. 얼핏 들어선 수상쩍지만, 이곳에는 그런 데가 한 두 곳이 아니니까.
전경 좋은 봉우리에 서서 아래 경치를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멀리서 낯익은 초록색 무녀복이 보였다.
「오빠, 안녕하세요!」
사나에가 밝은 얼굴로 반갑게 인사를 해온다. 나는 손을 흔들어 그녀를 맞이했다.
「어. 사나에냐. 엄청 즐거워 보이는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헤헤헤. 들어 보실래요?」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보이는 사나에가 흥분된 기색을 드려냈다. 나는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딱 보니, 나한테 뭔가 자랑하러 온 거구만.」
「잘 아시네요. 아무튼 들어봐주세요. 제가 말이죠.」
사나에는 눈을 빛내면서 자신이 이룬 업적에 대해 줄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로는 자신이 무려 하늘을 나는 배에 올라타 마계까지 갔었다고 한다. 그리고 UFO까지 목격한데다가 방해하던 요괴들까지 퇴치했다고.
참 허무맹랑한 얘기에 나는 미심쩍어하며 그녀의 얘기를 반쯤 흘렸지만, 아마도 상당 부분은 사실이겠지.
「그렇게 해서 이변을 해결한 거예요! 저 대단하죠?」
「응. 대단하네.」
확실히 대단한 일을 했으니, 솔직하게 칭찬해야겠지.
「그런데, 그런 일은 레이무가 할 일이지 않아?」
환상향의 크고 작은 이변은 어디까지나 환상향의 관리자인 레이무가 할 일이다. 예외로 마리사라는 마법사도 끼어들긴 하지만, 레이무와 보조를 이루는 정도이지 직접적인 해결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나에에겐 이변 해결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런 것보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신도를 모을 생각을 해야지.」
「에이~. 이변이나 요괴 같은 걸 사삭하고 퇴치하는 것도 신도 모으는 일로 이어지는 걸요.」
「홍보에 이용하기라도 하려고?」
「그러면 안 되나요?」
사나에의 생각이 너무 바보 같아서 말문이 막혔다.
「어휴..」
「뭐가 문제에요?」
전혀 깨달고 있지 않은 사나에를 나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했다.
「이변 해결이나 요괴 퇴치로 신도가 모일 것 같으면, 레이무가 고생을 안 하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이긴. 너 하쿠레이 신사에 한 번이라도 가봤어?」
「네. 자주는 아니지만, 몇 번 가본 적은 있어요.」
「사람이 있디?」
「음... 전혀.」
사나에는 아직 이곳에 온지 오래되지 않아서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사나에에게 어째서 요괴 퇴치 따위가 신도를 모으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가를 설명했다.
「거긴 사람도 안 오지만, 새전함은 더 심각해. 신도가 거의 없다는 뜻이지. 왜냐? 환상향에 거주하는 인간들의 다수가 퇴마가계거든. 굳이 레이무가 아니더라도 저급한 요괴 정도는 얼마든지 퇴치할 힘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마을 안에서는 안전이 보장되지.」
「그래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를 퇴치하다보면 고마움을 느낄 게 아니에요?」
「가십거리 정도는 되겠지. 네가 말하는 해를 끼치는 요괴 대부분이 저급한 요괴라서 그 정도는 힘 있는 인간이라면 퇴치가 가능해.」
「저급하지 않은 요괴가 해를 가해오면요?」
「그땐 레이무가 출동해야지.」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는데도 사나에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겠어요. 오빠 말 대로 요괴 퇴치로는 신도를 모을 수 없다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요.」
겨우 이해해준 모양이었지만, 썩 내키지 않은 지 꿍한 표정을 지으며 곰곰히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리고 그때, 멀리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텐구님께서 집합하라고 하신다!」
메아리치며 울리는 목소리는 토도키의 것이었다. 대텐구님께서 갑작스레 소집 명령을 내리신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이라도 생긴 듯하다.
나는 생각에 잠긴 사나에를 뒤로한 채 백랑경비대가 모이는 연병장을 향해 달려갔다.
*
연병장 안에는 모든 경비대원들이 모여 있었지만, 누구하나 떠드는 일 없이 조용했다. 단상 위에는 작은 대텐구님이 양반다리로 앉아 있었고, 손에는 아직 불을 안 붙인 곰방대를 들고 있었다.
대텐구님은 오열 종대로 서 있는 우리들을 흘겨보다가 입을 뗐다.
「내 너희들을 급히 부른 이유는 한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그렇게 말하면서 시선을 우리 백랑텐구와 다른 줄을 만들고 있는 카라스텐구 쪽으로 옮긴다. 어째서 병과가 전혀 다른 카라스텐구가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무슨 이유가 있는 거겠지.
「4년 전, 우리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바깥세계로 나갔던 텐구의 귀환을 환영했었다.」
갑자기 꺼낸 이야기에 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날의 기억이 내 안에서는 아직도 쪽팔림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놈의 백랑의 귀감. 순간 많은 시선들이 나에게 향해진다. 아 젠장, 이런 식으로 또 쪽팔림을 느끼게 될 줄이야. 이런 관심 전혀 달갑지 않으니까, 제발 이쪽 좀 그만 쳐다봤으면.
대텐구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그리고 오늘. 또 다른 텐구가 바깥세계로부터 귀환했다.」
그 얘기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와 같은 임무를 위해 바깥세계로 나갔던 텐구. 그들 중 귀환했던 자는 아직까지 나뿐이었지만, 이젠 아니게 된 모양이다. 동료가 생긴 것이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나와 같은 바깥세계를 경험한 동료. 그 사실이 내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들뜬 기분으로 동료의 등장을 기대하고 있자, 어디선가 「예압-!」하는 기함성이 단상 뒤에서 들려왔다. 동료의 목소리인가?
그리고 마침내, 동료가 그 모습을 드려냈다.
「bro. 만.나.서.반.가.워! 나!나! 이름은 마사다 타이치! 카라스텐구! 짱멋진 카라스텐구! YO!」
자기소개와 함께 어깨에 짊어진 구식 오디오에서 디제잉 음악이 흘려 나오고 있었다. 거꾸로 쓴 하얀 모자에 선그라스를 낀, 검은 피부의 외국인.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대텐구님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저 흑인이 설마했던 내 동료가 된다.
「Hey! 오늘부터 요괴의 산. ㅁㅁ 야츠가타케! 마사다 타이치, 앞으로 살아간다 Ye-a! Mysterious Mountain, 최고로 danger. 최고로 Fantasy. 최고로 Cool!」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가 벙쩌 있었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선진문물을 보는 듯한 눈이다. 물론, 나도 황당해서 도대체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등장부터 랩을 해대는 저 흑형을 어느 누가 텐구라고 생각하겠나. 등 뒤에 돋아난 까마귀날개를 봐도 믿겨지지 않는다. 도대체 바깥에 나가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생겼던 거야?
어째서 인종. 아니, 요괴니까 요괴종이라 해야 하나.
전혀 다른 요괴종으로 바꿔 있는 건데!?
텐구면서 국적을 바꾸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