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보인 적 없다고 믿고 있었던 레밀리아의 유아적 행동은 사실, 그녀의 여동생인 플랑도르가 줄곧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비결은 당주의 방에 몰래 설치된 카메라. 원래는 방범용으로 판매되는 cctv인 그 카메라는 여동생이 개조하여 상당한 고화질 영상을 모니터로 송출하는 흉악한 관음증 기계로 설치 된지도 벌써 2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환상향으로 넘어오기 전부터 훔쳐보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그러한 카메라는 비단 당주의 방뿐만이 아니었다. 집무를 보기 위한 집무실 천장과 벽에 걸린 액자에 각각 하나 씩, 하루 일과를 마치고 심신의 휴식을 가지는 개인 방에도 여기저기에 총 다섯 개의 카메라가 몰래 설치되어 있었다. 즉, 레밀리아가 주로 이용하는 공간에는 어김없이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당주 전용의 화장실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설치하기는 건 너무 심하다 생각되어 관뒀지만, 그렇다고 해도 총 여덟 개의 카메라로 언니의 행동들을 감시하듯 지켜보는 짓은 어지간한 스토커도 하지 않을 사도(邪道)의 영역. 언니를 향한 플랑도르 스칼렛의 집착은 삐뚤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 뿐 만이라면 모를까. 플랑도르에게는 귀여운 언니를 훔쳐보는 것뿐만 아니라, 하루 일과를 전부 할애하는 다른 취미가 있었다.
「오늘도 언니 성분을 잔뜩 섭취 했으니까, 슬슬 겜이나 재개해 볼까~.」
고개와 함께 시선을 돌리자, 그곳엔 개량형 cctv 화면이 나오는 모니터가 아닌 다른 화면이 비쳐지고 있는 모니터가 있었다. 마을의 광장 같은 곳에 서 있는 마법소녀풍의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형 아바타가 멀뚱히 서있고, 그 아래에 달린 창에는 채팅 로그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채팅의 내용 중 대부분은 한 동안 손을 놓고 있던 플랑도르에게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묻는 물음들이었다. MORPG라는 장르의 게임이었다. 플랑도르는 키보드에 손을 얹고 타자를 쳐나갔다.
[플랑플랑] 오래 기다려서 ㅈㅅ..ㅋㅋ..ㅎㅎ!
[루시퍼D] 플랑쨩 넘나 잠수타서 쓸쓸해쬬오~
[플랑플랑] 이제 잠수 안 탐.
[루시퍼D] ㅋㅋㅋㅋ 그럼, 반던 함 돌 수 있겠네요.
[플랑플랑] 반던 ㄴㄴ. 젖꼭지 돌거임.
반던은 유저가 쓴 스킬을 반사하는 몹들이 대량으로 나오는 던전을 줄인 말이고, 젖꼭지는 상반신 노출인 보스몹의 젖꼭지가 너무 디테일해서 일종의 밈화 되어 그 보스가 나오는 던전을 칭하는 단어가 된 말이었다. 둘 다 파티를 짜서 돌아야 하는 던전이지만,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 번 도는데 걸리는 시간이었다. 전자는 20분이면 돌 수 있지만, 후자는 무려 1시간이나 걸린다. 당연히 시간이 남아도는 플랑은 레어템이 나올 확률이 높은 후자를 택했다.
뭐, 늘 같이 파티를 짜던 유저끼리라면 젖꼭지도 40분이면 클리어지만. 플랑도르는 [루시퍼D]라는 유저에게 물었다.
[플랑플랑] 여중생님은 벌써 접종한 모양?
[루시퍼D] 짐 부캐 키우고 있슴.
[플랑플랑] 부캐명 뭐임?
[루시퍼D] 여초딩양말우물우물.
[플랑플랑] 캬~ 갈수록 연령대가 낮아지넴 ㅋㅋㅋㅋ
[루시퍼D] 완전 캐뵨태 ㅋㅋ
[플랑플랑] 이러다 잡혀가는 거 아님?
[루시퍼D] ㄴㄴ 그넘 경찰도 없는 깡촌에 살아서 안 잡혀감.
[플랑플랑] 깡촌이라고 경찰 업슴?
[루시퍼D] 암튼 그런 곳임. 설명해줘도 모를 거임.
루시퍼D의 채팅에 플랑도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깡촌이길래 경찰이 없을까? 설령 없다고 해도 오지가 아닌 한 경찰의 수사가 닿지 않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지라면 온라인 게임은커녕 인터넷도 안 될 테지만. 하지만, 예외인 곳도 존재하는 법이었다.
「여기 같은 환상향도 아니고.」
홍마관 채로 이주해온 환상향이라면 경찰의 발이 절대 닿을 수 없을 테니까. 그러면서 인터넷이 되는 환경이라니, 히키코모리 니트에게 있어 최고가 아닌가! 다만,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은 불편하지만.
어차피 필요한 건 진즉에 다 구입한 뒤라서 지금 환경이 딱히 큰 불만은 없었다. 플랑도르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타자를 두들겼다.
[플랑플랑] 있다면 환상향 정도겠지 ㅋㅋ
어차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툭 던지듯 올린 채팅글에 루시퍼D가 예상외의 반응을 보였다.
[루시퍼D] 저기.. 플랑님. 혹시나 해서 묻는데, 거기 환상향이에요?
[플랑플랑] 그렇다면 어쩔 ㅋ?
[루시퍼D] 농담이 아니라. 진짜??
[플랑플랑] 믿거나 말거나 ㅋㅋ
[루시퍼D] 사실, 여중생양말우물우물도 환상향에 사는데..
[플랑플랑] 허걱! 혼또니???????
루시퍼D의 채팅글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자신 말고도 환상향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자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것도 자신과 자주 파티를 짜는 여중생양말우물우물이.
설마, 아니겠지.
환상향은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곳이다. 그런 폐쇄적인 사회에서 몰래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자는 자신 외에 존재할 리가 없지. 그 요괴의 현자의 눈을 피해 바깥세계의 문물을 조달하는 건 여기 홍마관 뿐이니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머리에서 지워내며 루시퍼D가 평소처럼 자신의 장난질에 맞장구쳐 준 거라고 판단 내렸을 때였다.
[알림][여중생양말우물우물]님이 접속 하셨습니다.
[여중생양말우물우물] 하이.
[루시퍼D] ㅇㅇ
[플랑플랑] ㅎㅇ
때마침 화제의 주인공이 본캐로 접속한 것이었다. 일단, 인사를 하긴 했는데 그것에 대해 물어봐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루시퍼D가 먼저 선수를 쳐서 물었다.
[루시퍼D] 히데오 씨, 여기 플랑님도 환상향에서 산다던데.
[여중생양말우물우물] 어이, 본명은 언급 금지야. 그런데, 뭐라고? 플랑님이!?
[플랑플랑] 정말임? 나 환상향에서 접속중인데.
[여중생양말우물우물] 별 일이 다 있군. 설마 플랑님이 동향일 줄이야.
[루시퍼D] 사실이라면 세상 참 좁은 듯.
[플랑플랑] ㅅㅂ 이게 무슨 우연이얔ㅋㅋㅋㅋㅋ
채팅으로는 배꼽 빠지게 웃고 있었지만, 현실에서의 플랑도르는 마냥 웃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사실이라면, 저 여중생양말우물우물이라는 심하게 변태 같은 닉네임을 쓰는 유저는 절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뜻이니까. 자신처럼 환상향에서 인터넷이라는 문명의 이기를 즐길 수 있는 자가 몇 명이나 될까?
일단, 감시가 가장 심하다는 인간 마을 출신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 요괴라고 봐야 하겠지. 그런 요괴들 중에서도 인터넷을 알고 몰래 이용할 만한 자들이라면 자신 같은 바깥세계 출신일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여기서 루시퍼D가 알려준 양말우물우물의 인적사항이 떠올랐다. 분명, 군인이라고 한 것 같기도. 하도 애매한 기억이라 플랑도르는 본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플랑플랑] 여중생님 군인마즘?
[여중생양말우물우물] 그렇소. 직업 군인으로 계급은 부대장이오.
[플랑플랑] 와 개쩌네.
[루시퍼D] 스펙은 쩔음. 생긴 것도 이누아수라 빼다박음.
[플랑플랑] 부대장이나 되면서 겜창인게 쩐다곸ㅋㅋㅋㅋ
빈말이 아니라,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밤새도록 겜에 열중한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 보통 겜창은 현실이 시궁창인 인생들만 되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실을 배우게 된 플랑도르는 본격적인 취조에 돌입했다.
[플랑플랑] 어디서 근무함?
[여중생양말우물우물] 이 이상은 알려주기 곤란한데..
[루시퍼D] 뭐 어떰? 걍 알려줘버려.
[여중생양말우물우물] 내 정체가 환상향 주민에게 알려지게 되면, 우리 백랑텐구들의 위신이.
[루시퍼D] 이미 다 불었구만;;
[여중생양말우물우물] 이런 실수
[플랑플랑] 텐구들 존나 보수적이라는데 시밬ㅋㅋ 그동네 괜찮은 거야???
뜻하지 않은 실수로 드려난 여중생양말우물우물의 정체. 플랑도르는 놀라서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평범하게 생각해서 용의선상에서 거론될 일이 절대 없을 그 텐구라니. 아니, 정말로 놀랄 놀자가 따로 없었다. 만년 방콕 니트라 요정들이 떠드는 소리나 가끔 창문을 깨고 들어오는 신문을 읽어서 대략적으로 밖에 알고 있진 않지만, 요괴의 산의 텐구들이 자신의 영역에 외부자의 출입을 엄금할 정도로 폐쇄적인 사회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부대장이라는 놈이 겜창이라니!
그곳 사회에 대해 편견을 가졌다고 해도 상당히 깨는 사실이었다. 세상 말세네. 플랑도르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게임 지인들에게 그만 챗하고 젖꼭지나 한 바퀴 돌자고 보챘다.
*
밤을 꼴딱 새고 잠 한숨 제대로 자지 않았지만, 플랑도르는 전혀 졸린 기색하나 없이 멀쩡했다. 유구한 혈통을 자랑하는 진조가 되는 자 고작 하루 이틀 정도 밤 샌다고 피곤해 하지 않는다. 흡혈귀인 이상 낯을 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만, 그런 사소한 건 아무래도 좋은 플랑도르는 기지개를 크게 핀 다음 옆쪽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모니터의 화면에는 엔티크한 대형 침대 위에서 아직 곤히 잠들어 있는 언니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었다. 잘 때는 항상 침대에서 자는 주제에 방 한 가운데에 커다란 관을 놓아두고 거기서 잔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언니의 모습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오는 플랑도르. 한참을 자는 모습을 모니터 너머로 훔쳐보다 만족 했는지, 히죽 웃으며 겨우 시선을 뗀다. 그리고 다시 morpg게임이 비쳐지고 있는 모니터를 바라봤다. 거기엔 아직도 접속 중인 여중생양말우물우물이 있었다.
[플랑플랑] ㅁㅊ 군인이 이시간에 이러고 있어도 됨?
[여중생양말우물우물] 아직 괜찮다. 조금만 더 있다 나갈거다.
[플랑플랑] 7시 넘었는데? 텐구 개빠졌네.
[여중생양말우물우물] 7시 반에 점호한다. 끝나고 나면 오후까지는 또 시간이 있어서 다시 접속할 거다.
[플랑플랑] 이거 오나전 당나라군대. 오니한테 개발처발한 각 나오네.
[여중생양말우물우물] 아픈 곳을 찌르지 마라. 나도 통감하는 바다.
지랄하네. 통감한다는 놈이 출근 직전까지 접속하고 있는 겜창이 되어 있나? 그렇게 챗을 날리고 싶었지만, 무슨 소리를 해봤자 변변찮은 궤변만 늘어놓을 게 뻔해서 '알았음.'하고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부대장이란 놈이 잠도 안자고 근무 시간에도 틈틈이 온라인 게임에 접속하는 군대가 어떤 꼬라지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을 정도였다. 물론, 부대장이라는 여중생양말우물우물의 상태만 안 좋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메이드장이 아침 식사를 가져올 때가 다 된 시각이라 플랑도르는 이만, 접종을 하고 오랫동안 구동되어 뜨겁게 가열된 pc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탕탕, 하고 철로 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아침 식사를 가져 왔습니다.」
메이드장의 식사 시간을 알리는 목소리에 호응하듯 플랑도르 스칼렛은 높은 톤의 목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와─! 밥이다. 근데, 사쿠야 오늘 아침은 뭐야?」
「양송이 스프와 크림빵입니다.」
「피이─, 플랑은 고기가 좋은데..」
「그럼, 점심 식사는 스테이크로.」
「정말? 신 난다─!」
순진무구한 얼굴로 식사를 놓고 사쿠야와 딜을 하는 플랑도르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악마가 따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