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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했으니 망설임도 없다. 나는 약간의 숙취가 느껴지는 몸을 이끌고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마루가 있는 곳 까지 걸어갔다. 도중에 뻗어있는 누군가가 발에 채였지만, 별 상관하지 않았다. 짹짹하는 참새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서늘한 새벽 공기가 옷안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 공기를 크게 들이마시는 것으로 잠기운을 완전히 몰아냈다. 후우-. 숨을 길게 내뱉자, 하얀 입김이 서린다. 산에 둘러쌓인 곳이라 그런지 일교차가 크구나. 나는 유카리를 기다릴 요량으로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있기로 했다. 과연, 유카리가 테루가 나의 존재를 용납 할지. 이 세계에 살게 된다면 어디에서 지내야 할지. 조금 이른 상념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리고 내가 이 세계에 살기로 결심하게 만든 소악마. 나는 그녀와 교제 할 수 있을까? 아니, 당장 교제까진 아니더라도 될 수 있으면 좋은 관계로 있고 싶다. 정말 예상치도 못했어. 설마 그 소악마가 나의 이상형이었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죽치고 앉아있자, 동쪽, 집 마당 너머로 부터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정신없이 자고 있던 자들도 하나 둘 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홍마관 패밀리는 새벽에 돌아가서 소악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나 여기에 정착하고 나면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보나마나 파츄리의 사역마로 홍마관 지하 도서관에서 부려지고 있겠지. 이 참에 나도 파츄리의 사역마가 되어 볼까? 그게 좋겠네. 거절 당하면 어쩔 수 없지만. 「가만히 앉아서 뭐하세요?」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의 상념을 깨웠다. 인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녹색 천모자를 쓴 소녀가 호기심에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더벅한 흑발 위로 금색 링을 단 짐승귀가 보인다. 「아차, 인사를 안 했네.」 소녀는 혀를 살짝 내밀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저는 첸이라고 해요. 란님의 식신이고, 음.. 그리고.. 딸이에요!」 「딸? 란이라면 그 구미호인데.」 「네, 피는 안 이어졌어도 딸이에요.」 「그렇구나.」 이른바 의모녀라는 건가. 확실히, 첸이라는 소녀는 개과가 아닌 고양이과다. 허리 뒤로 보이는 저 두 쌍의 꼬리를 보건데 네코마타. 고양이 요괴일 터. 구미호인 란의 딸이라고 한다면 그 테루라는 남자의 딸도 된다는 소리겠네. 「근데, 아저씨 누구 기다리는 중이에요?」 첸이 귀여운 얼굴로 물어왔다. 그 보다 나 아저씨 아니거든. 아직 오빠거든! 「응. 이 집의 주인마님을 기다리는 중이지.」 「유카리님요?」 손뼉을 치며 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내 머리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동시에 조금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어머, 무슨 일로 저를 기다리신 거죠?」 후후. 웃는 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틈새로 부터 상반신만 나와 있는 유카리가 허공으로 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카리는 양 손으로 깍지를 끼고 그 손등 위로 턱을 언지며 말했다. 「보아하니 무슨 결심이라도 한 모양인데.」 「뭐, 그렇죠.」 담담하게 대답하자, 유카리의 입 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간다. 이어 상반신과 함께 틈새를 내 앞으로 옮긴 그녀가 흥미로운 눈으로 내게 묻는다. 「그래서 무슨 결심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재촉하는 질문에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자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않고, 이곳에 머물기로.」 그녀에게 말하기로 한 말이다. 한 치의 거짓도 없이 담담히 나의 의사를 밝혔다. 나의 결심을 들은 유카리는 변함없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응시하다 입을 뗐다. 「그렇군요. 하지만, 유감이에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도대체 왜 유감이라는 말을 하는 거지? 설마, 나를 억지로라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려는 심산인가? 순간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유카리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유감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신은 액귀의 힘에 의해 강압적으로 넘어온 것이기 때문에 액귀가 힘을 잃고 봉인된 지금, 이 세계로 부터 쫓겨 날 처지인 걸요.」 그렇게 말하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진지한 표정을 짓는 유카리. 다소 진지함이 묻어나는 어투로 말을 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불법 입국한 셈이죠. 그러니 이 세계 자체가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어요.」 그 말이 사실인 듯 나는 어젯밤부터 작은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몸이 약간 붕 뜬것 같은 기분. 그것이 지금은 몸과 영혼이 서로 어긋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애초에 유카리가 내게 거짓을 고할 이유가 없지. 아무래도 정말로 세계가 나를 배제하려 드는 느낌이다. 나는 속으로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겉으로 드려내지 않았다. 오히려 별 거 아닌 일처럼 유카리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불법체류자란 말이군요. 그럼, 비자를 소유하는 방법 또한 있지 않나요?」 「그 말대로 세계가 당신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하는 방법은 없지 않아요.」 「그 방법이?」 「일단, 한 번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다가 제대로 된 방법으로 넘어오는 것.」 아-. 순간 숨이 멈춘다. 원래 세계로 돌아간 다음 거기서 제대로 된 방법으로 넘어 온다는 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잘 안다. 그렇기에 좌절감을 느낀다. 한마디로 사실상 이 세계에 정착할 수 없다는 말이다. 다물어진 입에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가능성은 제로가 아니기에 이미 알고 있는 질문을 어렵사리 해본다. 「그 쪽에서 제가 있던 환상향을 찾을 순 없는 건가요?」 질문을 마치고 유카리의 눈을 빤히 응시했다. 그리고 곧 그녀의 입에 나올 대답을 추측한다. 분명, 이렇게 말하겠지.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에요. 설령 차원을 넘는다 해도 그 수많은 차원 중 당신이 존재하는 차원을 특정해 내는 건 아무리 저라도 불가능해요.」 정확히 내가 추측한 대로 대답하는 유카리. 「반대로 당신이 이곳 차원의 환상향을 특정해내는 것도 불가능하겠죠.」 하고 조금 안타까운 시선으로 말했다. 이걸로 내가 여기에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확실해졌다. 더욱이 내 이상형인 소악마와도 더는 만날 수 없게 되었다. 폐를 드나드는 공기가 무척이나 쓰라리다. 심박수가 올라가고 두 눈이 따가웠다.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의 실망감이었다. 처음으로 이상형을 만났는데 이런 식으로 헤어져야 한다니. 어느새 나는 표정관리가 안되는지 안면의 근육들이 엉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 상태로 고개를 돌려 첸을 바라보니. 아까 유카리와 나눴던 얘기가 좀 어려웠는지 양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서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며 유카리가 한 마디 했다. 「왜 그렇게 까지 아쉬워하는 거 에요? 무슨 심정이 들었는지 몰라도 처음엔 원래 세계에 돌아가고 싶어 했잖아요.」 유카리는 내가 이곳의 소악마에게 푹 빠져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이해가 안 가는 건 당연하다. 나조차도 이정도로 괴로울 줄 몰랐으니까. 할 수 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이곳의 소악마를 납치해 같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허나, 불가능하겠지. 돌아가는 건 나 혼자라서. 하아-.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기분전환 해본다. 「조금, 미련이 남아서요.」 그 말을 끝으로 툇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때마침, 이 세계에 머무는 것이 한계라는 신호가 왔다. 땅을 밟고 서 있는데도 허공에 떠있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는다. 눈앞의 광경이 오래된 필름으로 재생한 영상처럼 깨진다. 참 급하기도 해라. 조금 더 기다려 주면 어디 덧나나. 「이 곳에 머무는 것도 이제 한계인 모양이군요.」 뒤로 부터 작별 인사라도 말하는 듯 한 유카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조차 약간 노이즈가 낀 듯이 깨끗지 못하고 탁하게 들렸다. 이제 곧 있으면 내 몸은 이곳을 떠날 것이다. 그 사실을 직감한 나는 최후의 한마디를 남겼다. 「만약, 이곳의 내가 환상향에 소환되어진다면, 심야 애니 정도 시청할 수 있게 해줘.」 말을 마치기 무섭게 온몸의 균형 감각이 무너져 내린다. 무대에 내려진 커튼처럼 눈에 보이는 건 온통 검고 붉음의 연속. 기괴한 감각이 정신을 오염시킨다. 나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눈을 감았다. * 그로부터 얼마나 정신을 잃었던가. 전원이 들어온 가전제품처럼 나의 의식도 단숨에 돌아와 있었다. 의식이 돌아온 직후, 가장 먼저 눈치 챈 것은. 「왜 그래? 아까부터 멍해져서는.」 내가 다른 환상향에 소환되어지고, 돌아오기 까지 눈앞의 파츄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두가 전부 일장춘몽이었는지. 지금의 나는 파츄리에게 내 엉덩이 상태를 주제로 한참 대화중이었다는 것이었다. 정녕 짧은 순간에 꿨던 꿈이었나? 그렇다고 하기 엔 너무나 생생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치 챈 것은 「아아흑.. 아파...!」 깔끔하게 나앗던 엉덩이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는 것이었다. 「크케케케켁. 남자 신음소리가 왜 그래?」 등 뒤로 들려오는 흡혈초딩의 웃음소리. 그제야 내가 완전히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설령 그 모든 것이 한낮 내 망상에 불과한 꿈이었다 해도. 당분간 그 생생했던 경험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형이었던 소악마도. 「푸후후훕.」 언제부터 있었는지. 레밀리아 옆에서 같이 웃고 있는 저 소악마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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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끝입니다.
생각보다 길어진 이야기 였는데
마무리는 대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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