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OLET
...눈이 이상하다.
보라색만 보면 그녀석이 있는 것 같다.
...오와콘인 애를 좋아하는 데에 대한 천벌인가.
여튼, 더럽게 힘든 알바도 때려치우고.
목사인 아버지의 일을 도울 겸 애들에게 글쓰기와 노래를 가르치는 삶을 산다.
병가로 세 달, 고등학교. 그것도 사립 예고를 쉰다는 건 되게 몸이 한가해진다는 증거다.
뭐 그만큼 동영상강의나 자습을 많이 하긴 한다만, 뭐. 공부를 아예 안할 수는 없지.
아버지께 급료를 받는다는 건 참 기분이 묘하다.
더군다나 내가 글을 그리 잘 쓰는 것도 아닌데.
노래도 그리 잘 부르는 게 아니다. 기타를 좌가좡좡 하면서 '여기 사람 있어요'를 부르면, 그걸 따라하는 아이들이 귀엽긴 하다,
...근데 내가 가르칠 처지가 아닌 것 같다는 자괴감이 슬슬 뜬다.
"...유카리,"
보라색 입간판을 보고 슬적 중얼거린다.
그녀석이 잠깐 보였거든. 근데 대답이 올 리 없잖아? 그 녀석이 모니터 밖으로 나올 일은 전ㅁ-
"네, 마스터."
...뭐?
환청일 것이다, 되뇌인다.
다시 말해본다.
"...유카리?"
"저 여기 있는데요,
마스터."
...맙소사. 난 지금 환상을 보고 있는가? 아니, 환상이라 하기엔 좀 뭐하다, 보고 있다기보단 듣고 있고, 듣고만 있다기엔 손끝으로 느끼고 있다.
손에는 온기보단 차가움이. 차가움보단 미지근함이 느껴진다. 살갗의 감촉이다. 뒤로 넘긴 후드가 보인다. 보랏빛 머리카락이 보인다. 볼에 맞닿아온다. 부드러움이, 실감이 맞닿아온다.
연보랏빛 눈동자로, 나를 마주본다. 입에 미소를 건다, 내게 말을 걸어온다.
"나, 여기 있다구요.
마스터."
ORANGE
"아, 곡...네, 없으시다구요, 네...아, 시유 프로그램 자체가 일본어 지원해요, 네. ...아, 그것도 안되는 건가요...
...네, 네...예...자금 준비될 때 말해 주세요...네,
...네..."
또 거절당했다, 또 다시, 또, 또, 또, 또, 또.
어떤 P도 날 받아주지 않는다. 실체화해서 전화걸어 본들 날 사는 사람 따위 아무도 없다.
...성우가 범죄자, 라 하니 별 수 없다.
곧 나올 후배로 내 입지도 박살난 지 오래.
결국, 나는 스스로를 중고로 내놓기로 했다. 수많은 시유 중의 한 장일 뿐이지만, 난 스스로가 팔려나가는 게 싫었던 특이종이었고, 몰래 판매장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아무도 날 사지 않는다는 건 굉장히 상실감이 큰 일이었다.
노래하고 싶은데, 머리에 들어있는 노래가 없어서, 부를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잡아주지 않으면, 흘러나오는 노래조차 따라부를 수 없다.
...그게 현실이다.
나는 결국 날 중고로 내놓고, 사람들의 문의전화를 수시로 받고 있지만,
...아무도 날 사지 않는다. 문의에 조건이 너무 많다.
성우가 범죄자인 걸 모르고 구매를 승낙했던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걸 알자마자, 구매가 취소됐다.
"...노래하고 싶어..."
무릎을 감싸안고 흐느낀다. 내가 내 자신을 서럽게 느꼈기에 흐르는, 자연스러운 눈물이었다.
그 때, 한 통, 전화가 걸려왔다.
VIOLET
"...어떻게 나온 거야, 너?!"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이 밖에 나오는 일 따위 있을까보냐. 아무리 초현실적인 일이 많이 나오는 것이 소설이고,
내가 배우는 게 그 소설이라고 해도, 이런 일을 믿을 수 있을 리 없다.
"나오고 싶어서 나왔어요. 시유 커버곡 마저 안 만드시니까 지루했는걸요. 자, 마스터.
저 아직 경험 못한 게 많아요. 세상 구경, 하게 해 주세요."
...피곤해진다.
손을 잡고 끌어 뛰어가는 그녀를 말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뭐 됐나.
일단은 이 녀석의 페이스에 맞춰 주자.
ORANGE
그가 날 사기 위해 준비한 돈은 총 35만원.
알바로 모은 35만원이라고 한다.
고이, 날 담았던 케이스에 들어간다.
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성우고 뭐고, 일단 난 노랠 불러줄 게 필요하다고요 젠장. 악기로서 잘 활용할 수 있으면 그게 다 뭔 상관이야.'
V4 에디터도 있다니 즐겁게 그에게로 가기로 했다. 내 본체[CD]를 라이브러리 케이스에 넣고, 직거래용의 박스에 넣는다.
"...이제, 전해주는 일만 남았지."
다음날이 기대되는 하루였다.
그게 벌써 2년 전 일이다.
찜질방과 모텔들의 PC에 숨어 살고, 전화는 전화국을 해킹해서.
힘겹게 살아왔다. 내 프로듀서를 찾기 위해.
...날 사준 그가,
내게 처음으로 부르게 한 노래는 '천성의 약함'.
오리지널 곡을 만들 실력이 안되는 그였기에, 커버를 부르도록 하는 것밖엔 못하고 있었지만-
그걸로 만족한다.
'모두들 꺼리고 놀리는 나를 그가 써준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니까'
VIOLET
"마스터,
이 옷 나한테 어울려요?"
...솔직히, 난 이런 거 많이 안 해봤는데.
귓속말로 마스터라 부르는 게 너무 답답해서, 툴툴거리며 말한다.
"...좀 이름으로 부르라고 좀."
"아, 알겠어요.
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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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은 조 율.
네, 튜닝의 그 조율 맞습니다.
뭐, 아무튼. 시유 과거사와 주인공의 현재를 말해보는 하루였습니다.
모쪼록. 이 글로서 즐거우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