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어느정도 페이크에 가깝습니다. 일단 2006년 경에 출간된 "황제를 향해 쏴라" 가 2010년 이후 개정작업을
거쳐서 "마왕전생 RED" 라고 재간되었습니다만 양 작품은 설정이나 세계관, 캐릭터의 성격도 많이 다르고 (대표- 로라 바트리)
황제... 쪽에선 중요한 조연에 가까웠던 게른할트 등은 아예 안나옵니다. 더불어 마왕... 쪽에선 드워프 등 이종족도 등장하지
않고 배경 설정 , 세계관의 주요특징이 크게 달라지는 바람에 그저 일부 주요캐릭터가 동일하고 초반 전개가 비슷한 다른 작품
잘쳐줘야 평행세계정도 랄수 있는 물건이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스포일러를 최소화 하다보니 자연스레 이 감상은 다소 두서없고 , 두리뭉수리한 이야기로 흘러 가게 될겁니다.
그러고 보니 황제...는 말할것도 없고 , 마왕전생 만해도 이미 13년도에 완결된걸 이제사 본 셈이군요. 뭔가 세월이 참 빠르다는
느낌이고 더불어 작가분의 성향도 좀 바뀐듯 한 기분이 듭니다. 전작 황제... 는 전반적으로 시니컬하고 막장스런 느낌이 강하게
드는 세기말적 다크히어로 물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이쪽- 마왕...은 메이드가 나오는 광고이미지 에서도 알수 있듯이 "라이트 노벨 시대" 에
어울리는 비교적 밝은 느낌의 하렘물 가까운 작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범람하는 단순히 즐겁고 밝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원작격인 황제... 가 좀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여서 그렇지
이번작 - 마왕... 도 꽤 하드하고 어두운 분위기는 남아 있습니다. 뭣보다도 신들이 떠나간 이후 점차로 멸망해가는 이야기니 밝은 전개에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요.
주인공 카를은 귀족의 사생아로 시골 소년입니다.
철딱서니 없는 귀족 딸네미인 어머니가 방랑의 음유시인(이라고 쓰고 사기꾼) 에게 혹해서 집안 패물과 돈을 들고 함께 도주했다가
바트리지방의 여관에서 돈만 뺐기고 내동댕이 쳐진 뒤 여관 빚을 갚아준 시골농부 안톤과 재혼하게 된뒤에 낳은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안톤과의 결혼 당시 이미 카를을 임신하고 있었고 , 그후 안톤의 아이 - 딸 둘을 더 낳았고 그럭저럭 시골 아낙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었죠. 뭐 주인공 카를은 양부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다니다가 ( 안톤도 카를이 자기 자식이 아닌건 뻔히 아는데다
카를이 성년이 되면 친자가 아니더라도 안톤의 재산 상속권이 생깁니다. 그덕에 나이먹기 전에 죽이려고 심심하면 폭력을 휘두릅니다.
물론 겉으로 티가 나면 안되니 주로 둘만 있을 때를 골라서요. 그래서 안톤과 함께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도망다니던 주인공 카를은
영주가 자기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도서관에 숨어들었다가 거기서 영주 일가족의 가정교사를 맡은 사람에게 발각된 뒤 영주관에서
서동으로서 잡일을 하며 공부를 할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영주관의 가정교사가 그를 서동으로 발탁하고 글을 가르쳐 준것은 사실 그가 비밀결사의 일원으로 제국을 전복하기 위해 마법에
재능이 있는 인재를 찾기 위해 그동네로 파견되었던 것입니다. 수십년전 마왕네자르가 생명의 고리에 던져지는 형태로 죽은 뒤 그 영향으로
대륙 곳곳에 마왕의 영혼의 일부 - 파편(?) 을 가진 소년들이 마법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는데 그들이 가진 영혼 파편들을 모아서
마왕을 소생시킬수 있을 거라는 뭔가 허황되고 어쩐지 발더스게이트 사가를 연상시키는 음모가 있었던 겁니다. (적어도 어느정도 영향은
받았을 거 같습니다. )
예지를 통해 찾아낸 카를은 기대한 대로 무서운 속도로 지식과 마법을 습득하지만
점차 바트리에 갖혀 사는 자신의 처지- 잘나봐야 결국 하인 - 를 비관하고 극복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게레니움의 학림원으로 유학을 가려 합니다.
그러나 전세계에는 수많은 마왕 징후자 - 마왕의 파편을 갖고 태어난 자들이 있었고 비밀결사에 끈이 닿은 인물중 하나가 카를을 죽여서 그 혼에
섞인 마왕의 파편을 빼앗고자 나타납니다. 카를은 그와의 싸움 끝에 승리하지만 자신의 운명이 싸움의 연속이 될거라는 걸 깨닫고 자신의 연인이었던
에델- 영주관의 메이드- 을 다른 도시로 피난 시키고 자신은 제도 , 게레니움의 학림원으로 향합니다.
이소설은 좀 특이한게 카를의 성장과 활동무대가 함께 바뀌어 나갑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바트리 - 청소년기를 보낸 제도 게레니움 - 드렉노르 수용소 시절
- 방랑시기 - 남부 사막 지대 - 이세계 드리패스 등으로 무대가 바뀌면서 그때마다 주인공은 점차 강해지고 , 주변에서 활약하는 등장인물들도 함께
성장해야 하는데... 주인공은 무대가 바뀔때마다 계단에서 계단으로 건너가듯 강해지고 물론 잠시 시련을 격어 약해지기도 합니다.
등장인물들은 배경이 바뀔 때마다 물갈이 되버립니다. 그래서 한번 무대가 바뀌면 그이전에 레귤러였던 이들이 몇권씩 등장하지 못하기도 하고
아예 잊혀져 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계단식 성장을 통해 주인공은 혹독한 시련을 끝날때까지 거듭하게 되는데 , 재밌는 것은 그 시련을 주는 주체가 꼭 적이나 타도할 악당이라고
보긴 애매하다는 겁니다. 처음 주인공을 괴롭힌 것은 양아버지 안톤이었지만 성장하면서 그도 결국 평범한 소시민에 불과하고 또한 주인공 카를에겐
못할 짓을 했어도 어머니와 여동생들에겐 좋은 아버지 , 가장이었다는 걸 카를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장한 뒤엔 어머니와 헤어진 뒤 홀로 남아
반 폐인이 되었던 안톤을 재기하도록 격려해주기도 하지요.
그외에도 어린 시절 자신의 주인이었던 바트리남작과의 대등한 입장에서의 대담이나 제도편에서 주인공 친척으로 등장한 세실과 수년후 사회(?)에서
재회한 - 현직 판사와 테러리스트로서 - 모습의 묘사 등 의외로 대하 소설 스러운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세월에 따라 성장하는
전개는 라노베 등에선 보기 힘든 장점이죠. 물론 위에서 언급했듯 어느순간 쩌리가 되어 잊혀지는 경우도 만만찮게 보이고요. 대표적으로
주인공의 어릴적 스승역할 이었던 가정교사 나 동네 제일의 무사였던 마부 도노반... 드렉노르 수용소 시절의 동료들 중의 생존자 등등
또하나의 특징이자 인상깊었던 점은 , 이소설의 어쩌면 진주인공일 수도 있는 캐릭터 - 황제 스캇 게르마쿠스 입니다. 오세니아 대륙의 최강국이었던
게렌제국의 태자로 성장해 무력을 쌓고 네자르가 미쳐서 마왕이 되기 전에는 그의 제자로 뛰어난 마법사 이기도 했던 황제 게르마쿠스는 미쳐버린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손을 더럽히고 , 그후 인간의 마음을 봉하고 철저히 철혈 군주가 되어 오세니아 전토를 정복 - 인류의 황제로 군림합니다.
그후 마왕징후자 - 마왕 네자르의 환생으로 의심되는 인간들을 모조리 마법을 쓸수 없는 드렉노르 분지의 수용소에 가둔 뒤 그곳에서 노동력을 찾취
하는 식으로 써먹죠. 일견하면 그냥 악당같지만 , 간간히 묘사 되는 그의 심리나 독백을 보면 원래는 선량하고 전쟁으로 고통 받는 민중을 구원하고
자하는 영웅적인 기질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존경하던 스승이 미쳐서 마왕이 되자 그를 제거 하는 와중에 정신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네자르의 경우 처럼 지나치게 돌출된 힘은 위험하다는 판단하에 마왕폭거이후 인류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세계에 남아있던 신들의 흔적 - 신들이 남긴 혈통이나 그 유물등을 모조리
제국의 통제하에 두려고 합니다. 반발하는 이들은 죽거나 수용소에 보내지게 되죠.
그러한 제2의 마왕 같은 행보를 보이지만 그래도 황제 등장 이전의 오세니아 상황이 워낙 개판 - 별로 넓지도 않은 대륙에서 사방에서 싸움질에
제국내부에선 궁중 모략극 등 - 이여서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별로 없습니다. 예전에 왕가 였던 이들은 제국의 귀족으로 편입되면서 공작파 라던가
분리주의자 등의 파벌을 만들긴 했지만 제국에 공식적으로 황후 나 황태자가 없는 관계로 언젠가 황제도 늙으면 죽겠지... 라는 기대하에
본격적으로 반제국 활동을 벌이기 보단 눈치를 보는 중입니다.
카를은 제도에 온 이후로 마왕징후자로 감시당하다가 결국 계속되는 황제의 위협에 끝내 참지 못하고 힘을 키운 뒤 도전하지만 결국 황제의 세력앞에
패하고 마법을 못쓰게 된 뒤 드랙노르 수용소에 갖히죠. 여기서 탈출 하고 점차 잃어 버린 자신의 힘을 되찾고 황제에게 재도전하는 이야기가 대충
중후반 까지의 전개인데 , 문제는 황제 입장에서 카를은 그저 또하나의 골치거리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학림원에 들어가 수재로서 주목을 받게 되고 기밀에 접할수 있게 되면서 카를은 세계도처에 보이드라고 불리우는 괴현상이 빈발하며 이계의 존재들이
침투해와 세계가 통일된 이후로도 제국군이 막대한 군비를 유지하며 강력한 군사독재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흘러갈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게됩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자신의 적인 "황제"의 입자에 대해 공감하게 되죠. "적에게 공감하면 어쩌자는 거냐!" 라고 스스로를 꾸짖는 장면까지 나옵니다.
거기에 황제를 도와 마왕을 타도했던 9영웅은 각각이 제멋대로라 그 일로 상처를 입고 행패를 일삼은 칼린드라 , 다른 제국 오호장의 멸시로 열폭하는
게라드 , 피도 눈물도 없는 시온 루카스 등 뭔가 참신하게 맛이가 있는 등장인물들이 줄줄이 나오면서 바트리시절에 단순했던 주인공의 삶은 점점
변해갑니다.
주인공이 힘을 갖게 되면서 9영웅이 인류를 구했다고 해서 멋대로 포학을 일삼아도 되는 건가? , 세상 살아오면서 계속 핍박만 받았던 내가
왜 세계를 구하기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 등등의 고민을 계속하고 여러 인물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의 변한 모습을 보고 느끼며
계속 주인공의 내면은 단련을 거듭하고 성장합니다. 결국 끝에서는 멸망의 위기에 선 세계를 구하게 되는 업적을 남기게 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이들- 그공을 기려주는 인물은 별로 없죠.
단순히 액션과 스릴이 넘치는 판타지 소설일 뿐 아니라 단편적이지만 시대의 변화 (마법과 신화가 대포와 증기기관으로 대표되는 과학으로의 ) 와
등장인물들의 변화 성장이 볼꺼리인 대하 소설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래도 분량의 한계 등으로 인해 진정한 대하 판타지 소설이라고 보기엔
좀 아쉬운 부분도 많습니다.
카를이 적대자였던 황제와 어느샌가 공감하는 입장에서, 다시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그러나 무작정 미워할수도 없는 사이로 변해가는 모습은
실로 재밌는 인간 관계를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느낌은 카를과 황제의 관계는 카를와 양아버지와의 관계를 확대한 느낌입니다. 양부 안톤과
황제는 둘다 처음 등장할 때는 카를의 생사를 쥐고 흔들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로 카를을 압박하지만 , 그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해 카를은
목숨걸고 자신을 단련해 나가서 결국 그들을 넘어서죠. 성장한 이후에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그들의 진실된 모습에 공감하고 나름대로의
배려를 하는 모습을 보면 황제야 말로 진정한 카를의 "양부" 였다고 생각합니다.
이소설을 읽고나니
왠지 황제가 카를에게 "내가 네 '양'어버지'다! " 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군요. 그럼 카를은 그에 맞춰서 " 제위를 계승중입니다!" 라고
외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