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향의 테러,
작품에서 중요한 건 메시지보다 전달력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촬물 가면을 쓰고 폭탄 테러 예고를 하는 두 명의 소년.
사상자를 남기지 않는 범행 수단은 무언가를 전하기 위한 메시지 전달형 범죄임을 암시한다.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뒤에는 어떤 것들이 감춰져 있는가.
잔향의 테러는 사회문제에 대한 고발을 함에 있어 굉장히 노골적인 스탠스를 취하는 작품입니다.
그나마 은유적으로 표현한 건 아테네 프로젝트의 피해자인 세 명의 존재정도이고 나머지는 위험할 정도로 터프하게 소재를 다루죠.
다만 이게 제대로 전달되었는가 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메시지의 날카로움과 전달력은 별개의 문제거든요.
이번엔 잔향의 테러가 다뤘던 사회문제 중 메인이 되는 일본의 정치적 상황과 재무장이라는 민감한 주제가 어째서 제대로 된 메시지 전달에 실패했는지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작품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정확히는 대단히 큰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2-30년 뒤에도 유효하겠죠.
일본의 재무장과 핵무장은 그들이 쌓은 과오에 의한 현 상황을 부정하는 일이자 철 지난 영광이라는 이미 흩어진 과거에 대한 미련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걸 적극적으로 다룬 잔향의 테러는 다소 거칠게 느껴지는 감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감상은 메시지를 이야기로서 자연스럽게 풀어내기 보단 현실적인 톤을 가지고 감에도 개연성을 뭉개가며 억지로 전달하려 한다는 점 때문일 겁니다.
주인공 일행의 설정은 기성세대의 그릇된 행동으로 다음 세대가 유린당하고 고통 받는다는 일본이 가진 사회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는 요소입니다.
트웰브와 나인이 아테네 프로젝트로 인해 수명에 제한이 생기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실험에까지 밀려들어간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죠.
모종의 이유로 고아가 된 것도 테스트를 거쳐 실험대상이 된 것도 전부 어른들의 문제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전쟁, 버블경제의 붕괴, 유토리 교육과 같이 윗세대의 잘못임에도 아랫세대가 더 큰 고통을 받아야했던 여러 사회문제들을 떠올리게 하죠.
그러나 이 작품의 전달력이 유효한 건 딱 여기까지인 거 같습니다.
아테네 프로젝트로 인해 고통 받은 트웰브와 나인이 테러를 통해 자신들이 처했던 상황을 폭로한다는 플롯은 개연성을 충분히 챙겼어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게 가능한 능력을 쥐어주는 바람에 반대로 테러를 해야 할 당위성을 헤치는 자가당착에 빠져 버립니다.
이게 단순히 하이스트 무비 같은 장르물이였다면 뭉개고 넘어갈 부분일 수 있지만 현실적인 톤을 바탕으로 진짜 사회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는데 있어서 치명적으로 작용하죠.
일본의 우경화와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아베 신조가 주장하던 집단적 자위권과 재무장은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위험한 주장이고, 대놓고 우회적 헌법 회피를 이용한 무장을 표현한 인체실험 ‘아테네 프로젝트’는 이를 비판하는 강력한 설정으로서 작용해야 했죠.
하지만 이 지점에서 작품이 헐거워져 버리니 뒤로 이어지는 주장들이 엉성하게 느껴지는 겁니다.
게다가 여기에 미국을 대표해서 온 일본인 파이브의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감정선 까지 겹쳐놓으니 난잡함만 더 심해지고 정작 전달해야 되는 메시지는 옅어져만 갑니다.
정작 그렇게 끼워놓은 파이브가 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얀데레 코스프레만 하다 자폭하는 건 덤이고요.
썩은 윗세대를 상징하는 마미야의 입으로 빌려서 제국주의 영광에 대한 찬양을 하고 정면에서 이를 부정하는 시바자키의 장면을 넣을 정도로 노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회 비판물이
미국을 대표한다고 나와서 거의 테러에 가까운 패악질을 부리는 파이브를 등장시키고 무인 비행기 테러를 막는다고 미션 임파서블 찍는 녀석들을 주인공으로 두면 결국 현실을 찔렀어야 하는 메시지가 무디게 느껴지게 됩니다.
현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척하는 판타지처럼 보이게 되니까요.
캐릭터의 모에 요소를 강조하여 상품으로서 소비하는 것이 기조가 된 지금보면 나름 신선하게 느껴질 만한 작품이긴 하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과감함과 정당성에 비해 너무나도 미약한 전달력을 가진 아쉬운 작품.
끝내 어떠한 잔향도 남기지 못한 작품, ‘잔향의 테러’에 전합니다.
그것으로 우리들도 먼지가 되네
-잔향의 테러 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