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왔다. 에바 양산기!
에반게리온 양산기는 엔드 오브 에바에서 등장하는, 마지막으로 건조된 에바 ‘시리즈’이다. 넘버링으로 따지면 5호기부터 13호기까지, 총 아홉 대의 기체를 제레에 의해 일곱 국가에서 건조한 것인데, 이미 언급한 대로, 양산기는 서드 임팩트 발발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었고, 때문에 원래 계획으로는 총 12대가 건조될 예정이었다고 한다.(예수의 12사도를 재현하기 위한 목적인 것 같다.) 그러나 인류 보완 계획의 일정이, 앞에서 본 것과 같이 의도치 않게 얽히는 바람에 ‘숫자가 좀 부족하지만’ 제레는 양산기 아홉 대로 서둘러 의식을 거행했다.
"S2 기관 탑재형을 9대 모두 투입하다니!"
양산기의 특징이라 하면, 그 특유의 거대한 날개도 있겠지만, 역시 모든 모델에 S2 기관이 정식으로 탑재되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하겠다. 초호기가 S2 기관을 섭취한 것과는 별개로, 이 S2 기관은 앞서 4호기에 설치하려 했던 샴시엘의 코어를 추가 연구를 통해 보완한 결과로 보인다. 비록 4호기는 네바다 지부와 함께 증발했어도, 해당 자료는 제레의 의장, 킬의 본국인 독일에 온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든, 양산기에 S2 기관을 넣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후에 양산기가 서드 임팩트의 도화선 역할을 맡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세컨드 임팩트
2.5 임팩트 (뻥)
그런데 S2 기관과 서드 임팩트 발발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어서 그러는 걸까? 잠깐 기억을 되살려, 세컨드 임팩트 당시에 아담이 지닌 S2 기관이 ‘자폭’하는 바람에 남극이 증발했단 사실을 상기하자. 그것은 아담이 가진 S2 기관이 안티 AT 필드를 방사했기 때문이었다. 하나 더, 에바 4호기의 코어 실험 중에도 S2 기관에 의해 미국 네바다 지부가 증발했단 사실도 잊지 말자. 그리고 엔드 오브 에바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양산기들은 후에 그들이 지닌 S2 기관을 스스로 ‘개방’하여 안티 AT 필드를 방사, 네르프 본부 아래의 ‘검은 달’을 드러내는 역할 등을 맡는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앞서 있었던 4호기의 사고 역시, 제레의 ‘S2 기관 개방의 모의 실험’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도 나온다. 진실은 불명이나, 그에 대한 제레의 직접적인 반응이 작품에 나오지 않고, 또 양산기 건조 계획이 4호기 건조와는 별도로 있었던 걸 생각하면, 4호기에 S2 기관을 무리하게 넣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는 가설이다.
아무튼, 양산기는 이 S2 기관 덕분에 엄빌리컬 케이블이나 내부 전원의 도움 없이도 2호기와의 전투에 나설 수 있었다. 게다가 S2 기관이 담긴 코어라니, 그것은 사도의 코어 그 자체이다. 즉, 양산기는 코어의 완전한 파괴 없이는 죽지 않는다. 2호기가 ‘Air’편의 전투에서 간과했던 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코어 안에 S2 기관이 남아 있었던 양산기는 다시 부활했고, 2호기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18화에서 초호기에 쓰인 더미 시스템. REI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또 하나 양산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파일럿이 없다는 사실이다. 에바의 기동을 위해 꼭 필요한 두 가지는 ‘파일럿’과, 기체와 파일럿을 매개하는 ‘영혼’이다. 그런데 어떻게 파일럿 없이 에바가 움직일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바로 더미 시스템에 있다. 더미 시스템이란 쉽게 말하면 ‘인공 파일럿’ 기술이라 할 수 있다. 18화에서 나온 것과 같이 파일럿이 타고 있는 에바에 더미 시스템을 씌우는 방식도 있고, 아예 더미 플러그를 만들어 에바 속에 넣는 방식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양산기에 활용된 더미 시스템이다.
더미 플러그 레이 버전이다.
더미 시스템의 핵심은, 사람의 사고 패턴이 유발하는 신호를 에바에게 보내 ‘안에 사람이 타고 있어요.’라고 속이는 것이다. 그 방법은 특정 대상의 영혼을 디지털 정보로 환원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영혼을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따라서 더미 시스템은 ‘에바를 움직이는 정도’의 기능만 가지고 있다. 어쨌든 더미 시스템은 모방할 대상이 필요하며, 네르프의 경우 ‘레이’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레이가 겐도우 보는 앞에서 노란 액체에 잠기는 것도 문제의 더미 시스템을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하기 위한 것이었다. 물론 레이의 더미는 한 번 엄하게 쓰고 난 후엔 보기 좋게 (아마도 유이에게)거부 당했고, 그 후엔 쓸 기회도 없었지만.
지금은 더미 패치 중….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네르프의 더미 시스템이 ‘레이의 마음을 지녔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더미는 인간의 ‘감정과 무관’한, ‘본능적인 사고 패턴’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미를 사용한 에바의 전투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더미 시스템은 실제로 전투에 있어선 인간 파일럿에 비해 월등한 효능을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인간 파일럿이 에바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더미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동시에, 싱크로 이후 에바가 느끼는 고통 역시 일종의 ‘기계’인 더미는 느낄 수 없기 때문이겠다. 양산기가 엄청난 부상을 입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싸울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익숙한 그 이름, 카오루
참고로 양산기가 탑재한 더미의 모델은 레이가 아니라 카오루였다. 엔드 오브 에바에서 양산기에 투입되는 더미 플러그에 ‘카오루’라고 친절하게 쓰여 있다. 즉, 양산기의 더미 시스템은 ‘타브리스의 사고 패턴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작품 내에서 더미 시스템은 결국 레이, 아니면 카오루 기반이다. 왜 굳이 저 두 사람의 사고를 모방하는 것일까? 그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지만, 두 사람이 각각 릴리스와 아담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담과 릴리스는 닮은 부분도 많으니까, 레이와 카오루(의 더미)라면 코어의 혼과 무관하게 모든 에바와 호응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영혼을 지닌 모든 생명에겐 AT 필드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양산기 안에 파일럿이 없다고 하여 영혼도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영혼이 없는 에바는 움직이지 않는다. 또 AT 필드도 생산할 수 없다. AT 필드를 더러 카오루가 ‘영혼(마음)의 빛’이라고 표현한 것을 잊지 말자. 양산기 역시 엔드 오브 에바에서 AT 필드를 생성하기 때문에, 그 안에는 ‘정체를 모를 뿐’ 반드시 영혼은 있다. 그 정체에 대해 내 사견을 붙이자면, 나는 그것이 제레가 ‘세계 곳곳에서 특수한 기준으로 선택한 영혼’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굳이 양산기를 여러 나라에서 건조했던 이유가, ‘인류의 보완’이라는 중대한 의식을 위해 다양한 인종과 유형의 인간들을 양산기들로 하여금 대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다만 제레의 더미 제작 능력이 너무나 우월하여, 더미로 AT 필드 생산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또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해석하면 게임 설정 텍스트와 상충하는 부분이 되기 때문에 정설로 두기엔 무리가 있다.
뭐 하는 물건인고?
마지막으로 양산기가 들고 있는 특이한 무기 얘기도 좀 하자. 참고로 이 무기, 실제 대본에는 ‘重い槍(무거운 창)’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거운 창이 필요에 따라 롱기누스의 창이 되기도 하며, 후에 초호기의 두 손을 뚫는 긴 창이 되기도 하는 둥, 그 형태가 자주 바뀐다는 점에 있다. 이 부분은 에바의 설정 중 가장 설명이 빈약한 부분인 탓에 늘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확실히 잡고 가자. 사실 이 무기의 정체는 공식 설정에 의해 나와 있다. 97년 엔드 오브 에바를 극장에서 상영하던 때, 에반게리온 제작 스태프들이 공동 집필한 공식 팸플릿 ‘Red Cross Book’ 안에 이 무기에 대한 설명이 있다. 다음은 해당 부분을 번역한 것이다.
EOE 팸플릿 Red Cross Book
롱기누스의 창 (카피) : 양산기가 사용하는 비행 무기. 롱기누스의 창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며 그 형태와 길이를 바꿀 수 있다. (중략)이 창은 릴리스의 보완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는 없으나, 공격력에 있어선 오리지널 롱기누스의 창과 같은 위력을 발휘한다.
물론 제레가 대체 어느 시점에, 또 어떤 능력으로 신의 도구인 롱기누스의 창을 복제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워낙 보통이 아닌 노인들이니 그러려니 하자. 공식 설정이 그렇다고 하는 이상, 다른 가설은 힘을 쓸 수가 없겠다. 사실 위 설명에서 중요한 부분이 하나 더 있는데, 팸플릿에 따르면 오리지널 롱기누스의 창은 ‘사도 제어’를 위한 도구인 동시에 ‘보완’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여태 저 설정의 근거를 밝힌 적이 없기에 언급했다.
양산기가 다친 부위는 아예 설정 컷으로 나와 있다.
양산기는 제레의 모든 기술을 집약한 기체인 동시에 그들의 음모를 아주 충실히 담은 기체이다.(결국 나중에는 초호기의 의지에 복종하는 녀석들이지만.) 문제가 많은 기체가 아닐 수 없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바로 아야나미 레이의, 에바 영호기이다.
[에반게리온] 14. 아야나미 레이, 에바 영호기 ①/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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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늦은 저녁에 다시 오겠습니다. 텀이 좀 길긴 하지만 바쁜 주간이 될 것 같아요...ㅠㅠ 아무튼 재밌게 봐 주시는 분들 항상!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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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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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병.신 어글댓글에도 장문의 답을 하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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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갤 최고의 애니 연구글을 쓰시는 엄디저트 님께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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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양산기에 카오루 더미가 들어가는 건 몰랐네요. 이건 몰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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