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아암, 하고 유진은 늘어지도록 기지개를 킨다.
"턱 빠지겠다. 그냥 보건실에 쭉 드러눕고 오지 그랬냐?"
"그러다 밤까지 학교에서 보내라고?"
"잘 됐네. 따로 등교할 필요도 없고."
그거 정말로 괜찮은 방법 아닐까. 이런 생각이나 하는 스스로의 머리에 유진은 제정신이냐는 반박을 날려준다.
양호실에서 잠이라는 금기를 해방한 결과, 결국 유진은 교사가 오기 직전까지의 순간을 대놓고 퍼질러 자는 데에 보내버렸다.
물론 가끔씩 이미 와버린 교사가 핀잔을 주기는 했지만 아직 피곤에 절어있던 유진의 귀에는 제대로 들려오지 않았다. 만나는 교사마다 이 지경이면 학생 평가는 서서히 떨어지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미 평소부터 높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유진은 걱정을 놓기로 한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수업이 끝나는 종이 귀에 들리자 마자, 유진은 몸을 풀듯이 거한 기지개를 시작한 참이다.
팔을 땡겨서 겨드랑이로부터 관절까지 찌릿찌릿하게 땡겨오는 감각을 맛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목뼈에 적당히 압박을 가해주니 어떻게든 정신은 들었다.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도착할 때까지의 정신력만 남아있으면 그만이리라.
"뭔 소리래. 모자란 잠은 집에 가서 잘란다."
"잠은 무슨, 또 밤새고 학교 와서 쳐 잘 거면서."
아니라고는 할 수 없지, 하며 유진 본인도 수긍한다.
생체 리듬 한 번 무너져서 올빼미 생활을 보내며 아침잠과 괴로운 싸움을 이어간다는 것은, 평소에도 그럭저럭 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깐깐한 교사들도 못마땅한 눈초리를 보내왔을 터.
"그렇게 듀얼이 좋아? 잠까지 포기할 정도로?"
"…글쎄, 좋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요새는 모르겠다."
유진은 안구에 파고들 기세로 눈을 비빈다. 손가락을 치우고 드러난 눈은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는 못한 듯 나른한 기미가 남아 있었다.
"근데 이제 와서 때려치라고 하면 그것도 안 되고."
"장르가 뭐든 간에 프로게이머는 아무나 못 하지."
한숨을 공유한다.
무슨 고민인지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코드가 있으면 기분이라도 나눌 수 있는 법이었다.
"저번에 기껏 돌려받은 덱, 다시 굴리자니까 못쓰겠더라."
"최근에 짠 거 아냐?"
"시험이 덜 된 거지. 몇 판을 들어가도 자꾸 말려."
"알지, 그 마음 알아. 초동에 패 몇 장 쓰는데?"
듀얼리스트 동지이기도 했던 타다노는 D-패드를 켜서 덱 리스트를 다시 확인해보았다.
"이 정도 들어가는데, 그래도 저번 거보다는 뺀 거야. 자리도 생겼으니까 이것도 넣었고, 잘 하면 첫 턴에 이걸로 이거 뽑아서 막 전개할 수 있다니까."
"잘 하면이잖아. 막히면 대처할 거리는 있어?"
"내 말이. 하…,"
그렇게 가차없는 평가를 내리면서 유진은 평소처럼 휴대 중인 자기 덱도 살핀다. 비판은 언제든 환영할 마음이 있었다. 언제 '실전'에서 쓰일지 알 수 없으니 수시로 체크하는 것은 중요하니까.
분명 든든하게 써온 카드들이 안에 잘 들어 있었지만, 유진은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만든 덱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듀얼리스트로서는 서글픈 일이지만, 이들을 무기로 써야하는 입장에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필요한 때에 제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튀어나온 변수를 얼마나 대처할 수 있을까. 그 의문에 카드는 말로 대답해주지 않는다. 그러니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보는 수밖에.
문득 엑스트라 덱의 '이방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유진은 떠올렸다.
'너네들은 어쩌면 좋겠냐?'
그러나 말을 걸어봤자 역시 대답은 없다. 지금 이 순간은 그들도 일개 카드에 불과하다는 듯이. 이들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덱을 짜는 것은 여전히 그의 몫이다.
영역에 직접 진입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그들은 늘 이런 식이었다. 정이라는 개념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그들에게 과연 충분한 신뢰를 베풀 수 있을까. 함께 싸울 동료라고 말을 꺼낸 것은 분명 그들이었을 텐데.
'뭘 기대하는 거람.'
지긋지긋하다. 그럼에도 이들을 덱에서 빼버린다는 선택을 못하는 그 스스로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여전히 정말로 무언가에 조종당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이 들 정도로.
무언가에 옭아매여 있다는 것을 자각한 순간, 어느 정도 풀려 있다고 머릿속은 다시금 턱 막혀오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듀얼에 대한 이야기를 꽃피우다 종례시간이 찾아오고, 여느 학생들이 기다리던 하교 시간이 뒤이어 찾아왔다.
하나 둘씩 우루루 교문 밖으로 나가는 가운데 유진은 설렁설렁 가방을 매고 일어섰다.
"정신 들게 노래방이나 가지?"
"됐어. 요새는 밖에서 놀고 다닐 처지가 아니다."
"왜? 또 판 돌려야돼? 아님 성적 때문에?"
"그렇… 다고 치자."
평소보다는 꽤 높은 성적이었기에 귀신같이 눈치채고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에게도 솔직하게 알려줬지만, 돌아온 답변은 '그걸로 만족할 생각 말고 더 열심히 해라'라는 것이었다.
전과목 만점을 받아오는 순간까지 피할 수 없는 대답이 아닐까. 그렇다면 애매한 노력은 큰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 내일 봐.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뭐?"
"어디 가다가 누가 이상한 소리 떠들거든 그냥 모른 척 해."
그 이상한 소리를 방금 들었다는 듯 어리둥절한 시선이 클래스메이트에게서 돌아온다.
"갑자기 뭐냐?"
"그냥. 모르는 사람이 말 건다고 따라가면 안 된다? 하다못해 그냥 뛰고 보던가."
"부모님이세요?"
나름 진심이 담긴 충고라는 것을 얘는 알아주기나 할까. 유진 본인도 회의적인 감상을 품으며 교실을 나왔다.
저녁이 오기 전까지 태양이 하늘을 수놓는 얼마 안 되는 시간. 아직 낮이라고 부를 수 있는 순간.
그게 얼마 안 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유진은 답답해진다. 그마저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버렸으니 이대로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아까 말했던 대로 빨리 돌아가서 모자란 잠이나 취하는 수밖에.
먼저 떠난 유노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아마도 태스크 포스로서의 임무를 떠났다고 생각해 두는 것이 좋겠지.
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그나마 평범한 일상이 되는 그녀와 비교하면서 지금 자신이 할 일을 생각해보았다.
'이 정도면 평범한 걸까?'
유노와 비교하자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자신은 수상한 조직에 들어가서 누군가를 잡아 족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있지 않으니까.
평범한 사람은 일일이 발로 뛰어다니면서까지 세상의 악을 소거시켜버리겠다는 배짱을 발휘할 수 없겠지.
D-패드 화면에 무언가가 떠 있었다.
-Juno: 집 가는 중?
웬일로 먼저 연락을 보내왔다. 아까 나눈 대화로 걱정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적어도 보호자 노릇을 그녀는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겠지.
평소대로 하던 답변을 출력시키려는 순간이었다.
찬바람이 스치듯, 피부에 소름이 돋아왔다.
그것을 직감한 유진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졌다.
'설마, 벌써?'
-Eugene_S: ㅇㅇ 지금
-Juno: 알았어
-Juno: 곧장 들어가
-Eugene_S: 그래야지
그렇게 되어준다면 좋겠지만 하굣길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차라리 잠이라도 자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유진은 속도를 높였다.
피부에 돋아오는 소름. 그것이 기분 탓이 아님을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
유진은 감이 가리키는 방향과 어긋나도록 즉시 뛰었다.
'이번에도…!'
최대한 인적이 많은 곳을 골라 달리고 있음에도 주택가에 가까워질 수록 인파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기척이 여전히 잦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자신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후방은 아닌 어딘가에서 빠르게 콩콩콩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이 발소리인 것을 확인하고서야 기척의 정체를 실감했다.
발을 잠시 멈춘 그는 어디로 뛰어야 할지 헤맨다. 나아가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간다고 해결 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그는 똑똑히 확인했다. 무엇보다 거리가 아직 남아 있다.
대중 가득한 거리로 돌아간다면? 온갖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가운데서도 결국 듀얼은 치러졌다.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가는 과정에서 문제의 적과 마주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뿐이다.
어디로 가든 다를 바는 없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어떻게든 도망치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만약에 가까운 누군가가 인질로 걸리기라도 한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자신도 남도 지켜내고 무사히 일상을 영위한다는 난제에 유진은 아무런 답도 떠올릴 수 없다. 머리를 굴릴 수록 '도망칠 수 없다'는 결론과 부딪혀야 했다. 어쩌면 자신의 결심은 애초부터 모순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품어버린다.
그러나 가만히 잡혀줄 생각도 없었던 그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그저 어딘가를 뛰고 보아야 했다.
숨을 조절하면서 그는 소지품을 확인했다. D-패드는 고장나지 않았다. 덱 케이스는 제대로 만져진다. 그 동안 해왔듯이 오늘이라고 싸우지 못할 것은 없다.
자신은 맞서 싸울 수 있다는 자기위안으로 바로 앞일에 대한 공포를 잠재울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면 맞서자. 유노에게도 말했던 그 뜻은 변함이 없다.
이건 더이상 도망이 아니다. 적을 유인하는 과정일 뿐. 다른 누구에 한눈 팔 일 없이 자신에게 뛰어들게 만들도록 스스로가 미끼가 되는 것이다.
고층 건물이 그늘을 만들고 있는 가운데 길은 좁아지고 사람의 왕래가 극히 적어지는 골목. 하지만 담배꽁초 따위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본 유진은 이곳도 엄연히 인적이 있는 곳이리라 깨닫고 낮은 돌담을 딛고서 침엽수가 자라있는 지대로 빠졌다.
이대로 쭉 가면 공원을 통해 다시 시내 외곽의 대로변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방금 전에 걷고 있던 곳과 그리 멀지 않으니 결과적으로 같은 곳을 뱅뱅 돌아버린 꼴이었다.
열심히 뛰어다닌 결과는 그저 본인의 체력 소모 뿐. 아까부터 지붕이나 난간을 자유자재로 뛰어다니고 있는 인간과, 힘이 좀 생겼을 뿐인 학생이 지구력을 겨뤘을 때 누가 우세할지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그 자리를 가만히 걷고 있었더라면 추적자의 정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 다니는 한 가운데서 결투를 치른다는 것도 결코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었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가 최선이리라 보았다.
그렇기에 그는 멈춰서 그냥 외치기로 했다.
"누구야!?"
그 직후 실루엣 하나가 하늘에 떠오른다.
바닥으로 포물선을 그리던 그것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잔디밭에 사뿐히 착지했다.
"도망을 포기하셨나."
뚜렷해진 실루엣의 정체를 유진은 두 눈으로 확인한다.
전신을 꽁꽁 감싸고는 있지만 유진의 눈으로도 그 인물이 일단 남성이라 확신할 수는 있었다.
닌자라도 나타났나 하고 의문을 품기도 잠시, 인상착의를 더 자세히 살펴보니 척 봐도 단련된 몸에 딱 달라붙는 독특하고도 세련된 무늬의 스포츠 저지, 그리고 코스프레 용도로 주문 제작한 듯한 헬멧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뭐지'라는 물음이 절로 나올 법한 황당한 광경에 유진이 벙쪄있는 사이 사내가 먼저 물음을 던졌다.
"네가 서문유진이겠지?"
유진은 이내 긴장을 바로잡는다.
이름을 알고 찾아온, 아무리 봐도 심상치 않은 낯선 인물. 그런 자가 뭐하러 왔을지 벌써부터 알 것 같았으니까.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문 유진 앞에서 복면의 사내는 또다시 자기가 알아서 말을 꺼냈다.
"망설일 것 없다. 이미 네놈의 신상을 전해들었으니까. 이건 단순한 확인이다."
"전해듣다니, 누구한테?"
"악당 녀석에게 알려줄 의리 따윈 없지."
"악당?"
"나는 '시빌리언'. 일개 민간인이다."
별 것 아닌 뜻을 가진 예명을 거창하게 소개하고 앉았다니. 민간인이라면 그냥 갈 길이나 가라며 유진은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뭔가 골치아픈 부류의 인간이라는 확신이 더욱 더해져 왔다.
"민간인…?"
"그래. 특별하지 않아도, 힘이 부족해도 상관없어. 한 줌의 정의만 있다면, 거리에 만연하는 어둠을 타도하러 움직이는 게 도리겠지."
"그러니까, 그런 어둠이 나라고?"
"그렇다."
히어로 행세를 하는 시점에서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어딘지 익숙한 것도 같은 자기소개다. 정확히는, 그런 의도로 움직이는 인물을 유진은 알고 있었다.
그런 인물은 지금 자신의 편으로서 도와주고 있으니, 뭔가 설득을 한다면 이 사람도 물러나주지는 않을까.
"아니, 무슨 소리래. 미안한데 사람 잘못 보셨어요."
"변명 따위가 통할 것 같으냐?"
"변명 아니에요. 여기가 어둠의 듀얼이라는 거 하는 사람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데라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나쁜 짓 같은 거, 할 생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요. 당신처럼 활동 중인 사람도 알고 있으니까 쓸데없는 짓 한다고 생각 안 해요. 솔직히 고맙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흐음."
"싸워야 할 사람도 따로 있을 거고…, 그냥 가 주시면 안 될까요?"
팔짱을 낀 채 잠시 침묵. 고글 너머의 눈은 긴장에 위축된 채 한 층 유약해진 유진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으리라.
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시 확인한다. 네가 서문유진인 게 맞겠지?"
"네."
"카이바 랜드에서 개최된 도내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었지?"
"…네."
"큐브 고등학교 1학년생이고?"
"……네."
"부친은 부재, 모친은 카이바 코퍼레이션의 영업부 소속으로서 해외 근무 중."
"………네."
"거주지는 큐브역 역세권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 당연히 혼자 지내고 있겠지만 또래의 이성친구와 거의 식구나 다름없이 지내고 있음. 맞나?"
"…………네."
메신저나 소셜 네트워크에서 공개용으로 등록해놓은 프로필로 사전 정보를 취하고 왔다 해도, 그런 시시콜콜한 신상까지 어디서 전해들었다는 말인가.
이미 자유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임을 자각하고는 있다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들으니 유진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이 심문을 부정하지 못한 채 답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집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는 선택을 했어도 이 자와 마주할 운명은 피하지 못했으리라.
그렇다. 이번에도 자신은 도망칠 수 없다.
"일단은 어엿한 민간인이군. 그런 네녀석이 'ABC'의 우승자라는 정보를 들어서 말이지."
"……그것까지 어떻게?"
헬멧 너머로 코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럼 그렇지! 말했을 텐데. 네놈이 무슨 짓을 해왔는지 전부 들었다고."
"……"
"'어드밴스드 배틀 시티'. 듣자 하니 결투(듀얼)로 사람의 운명을 농락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살인극이라고 하더군. 그런 곳에서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우승까지 했다니, 네놈이 어떤 녀석일지 불 보듯 뻔하지. 그런 작자가 심판받지 않고 태연히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피가 끓어서 잠도 이룰 수 없다!"
삿대질과 함께 들려오는 설명이 대부분이 틀리지 않았다고 해도 유진은 호소해야 했다. 거기에 자신의 뜻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고.
"내가 가고 싶어서 간 줄 알아!? 가던 안 가던 위험하다는데, 안 싸우면 거기서 빠져나가지도 못하는데! 못 이기면 살지도 못하는데! 나더러 뭐 어쩌라고!!"
분노와 억울함이 유진의 언성을 드높였다. 그렇게 악을 쓰고난 유진이 잠시 숨을 헐떡인다.
다시 그 때의 기억이 떠오를 것만 같다. 이를 끄집어내려는 상대에게 분이 올라오지만 이를 이유로 싸우기는 싫다.
과연 진심이 전해지기는 했을까. 저렇게 얼굴을 가리고 있으니 유진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소리 지를 정도로 억울하다 이거냐?"
"……그래."
"느껴진다. 네놈한테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쌓여 있다는걸. 얼마나 많은 피를 봐왔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군."
"그건 내가 원해서 가진 게 아니라…."
"그렇겠지. 원해서 이 길에 들어선 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야. 무슨 수를 써서든 이겨내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라며 유진은 생각해보았다.
이 바닥을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 어떤 계기로든 그도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에 엮였다는 것을 의미할 터. 그러니 리퍼처럼 그런 것으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막으려고 제 발로 나서기를 택했을 것이다.
아직 열이 채 식지 않은 유진의 머리로도 그 정도의 짐작은 가능했다.
어찌 됐든 공감의 여지를 보였다는 것은 설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유진이 긍정적으로 여겨보려는 찰나,
"지금도 그런가?"
"그래."
의혹이 서린 질문에 유진은 망설임없이 대답한다.
"대답이 빠르군. 준비라도 된 것처럼."
"진짜니까."
"말로는 뭔들 못할까. 내가 확인하고 싶은 건 그 진의다. 너 자신조차 외면할지도 모르는 진의."
"굳이 듀얼을 하겠다고?"
"그래야겠지."
여전히 싸울 마음을 드러내는 상대에게 유진은 경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것만은 안 돼."
"왜지?"
"내가 이기면 어떻게 될지 몰라."
"호오. 어째서지?"
"그건…, 벌칙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
"왜 그렇게 되지?"
"나도 몰라. 디젠 준 놈이 그렇게 정해놨겠지."
"모른다고……."
석연찮은 대답에 시빌리언은 다시 팔짱을 낀다. 고글 너머의 눈은 아마도 유진을 지긋이 쳐다보고 있으리라.
그리고는 다시 복면에 가려진 입을 열기 시작했다.
"힘을 가진 자가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상은 지옥이나 다름없지."
"뭔 소리야?"
"…이런 질문 들은 적 없나? 쓰레기가 떨어져 있는데, 그걸 알고도 안 주운 놈과 몰라서 못 주운 놈. 어느 쪽이 더 나쁜지."
갑자기 또 뭐냐, 고 따지려던 유진은 참고서 차분히 생각해본다.
그리고는 상식적으로 도달하게 되어있는 대답을 내뱉었다.
"그야, 알고도 안 주운 놈이지."
그러나 그 대답을 시빌리언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틀렸어. 쓰레기가 있다는 걸 안다면 언젠가는 주울지도 모르지. 하지만 모르는 놈이 쓰레기를 주울 가능성은 영원히 찾아오지 않아."
그는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답을 내린 듯, 팔짱 낀 손을 풀고 또다시 삿대질을 날려들었다.
"그리고, 그런 쓰레기를 알아채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네놈이다!!"
어째서.
유진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이미 그런 질문을 대신하기라도 한 듯 시빌리언이 알아서 대답한다.
"모른다고? 자기가 자기 능력도 어쩌지를 못하다니. 어둠의 의지에 몸을 맡겨놓은 주제에 어둠을 이겨내겠다고?"
"………."
"천만에, 네놈은 그저 속이 빈 꼭두각시다. 자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려 들지도 않고 자신을 속일 뿐인, 그런 기만자란 말이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반박할 수가 없었기에, 유진은 한 풀 꺾인 기세로 힘겹게 반문하려 들었다.
"그건, 단서가 아무 데도 없으니까…."
"없을리가. 그런 피비린내 나는 의식에서 돌아온 네녀석이,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것이 통하지 않는 이상 유진은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다.
"…능력이 안 되는데 어떡해."
"같잖은 변명이다. 그런 에너지를 모아온 녀석이 할 소리가 아닐 텐데."
"……."
입술에 파고든 송곳니가 그대로 살을 뚫어버릴 것만 같다.
그 상태로 노려보는 유진의 시선을, 시빌리언은 분노를 넘어 살기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역시, 편하게 지내면서 싸울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 아닌가. 무슨 희언으로 또다른 동지를 속여넘겼는지는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 이 외도 녀석아!"
틀렸다. 말이 도저히 통하지 않는 인간이다.
이 자는 이미 자신이 쓰러뜨려야 할 악이라는 결론을 내려버린 상태고, 바꿀 생각 따윈 없어 보인다.
짜증이 폭발한 유진은 그 자리에서 머리를 쥐어잡은 채 괴성을 질렀다.
"듣자듣자 하니까 진짜! 이 놈이고 저 놈이고 왜! 하나같이 지들 얘기만 하는데!!"
주위는 어둡다. 이미 영역이 침범한 상태이리라. 그것은 이미 도망칠 기회 따윈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주변에 들리는 일은 없을 터.
악에 받힌 표정으로 유진은 그 복면을 노려보았다.
기억에 있는 말을 떠올린다. 상대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려면 이기라고. 이겨서 원하는 걸 얻으라고.
이기고 나서 상대가 어떻게 되는지는 자신이 따로 고려할 처지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유진의 디젠이 내릴 벌칙은 자기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그저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
어서 이 지긋지긋한 악몽같은 순간으로부터 벗어나고만 싶다.
"그렇게 못 잡아서 안달이면, 그래. 해 보던가."
지금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그 말을 곱씹을 여유조차 없다.
상대는 기다렸다는 듯이 D-패드를 시동하고 있으니까.
"바라던 바다."
D-패드의 화면은 유진에게 선공을 표시했다.
[서문유진: LP 8000, 패 5장]
[시빌리언: LP 8000, 패 5장]
저번 듀얼 이후로 또다시 덱에 개수를 거친 상태였다. 선택한 것은 자신이기에 이번에도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다.
문득 저번처럼 이방인(étranger)의 목소리를 기대하던 유진은 말 걸기를 관두기로 한다.
어차피 이것은 자신이 자초한 싸움. 싸워서 이겨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저번 같은 대답이나 들어야 한다면 굳이 말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으리라.
"내 턴. 패를 1장 제외하고, '미니멀리언'을 특수 소환. 제외된 '멘탈프로시저'의 효과로, LP를 1000 지불해서 이 카드도 특수 소환."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2.jpg](https://i1.ruliweb.com/img/25/04/12/19628c9817f20b132.jpg)
[미니멀리언: 사이킥족 / 물 / 레벨 4 / ATK 100 / DEF 100]
[멘탈프로시저: 사이킥족 / 빛 / 레벨 3 / ATK 1100 / DEF 1100]
[서문유진: LP 8000 → 7000, 패 3장]
'멘탈프로시저'를 자기 효과로 특수 소환하면 그 턴에 '텔레포트' 마법 카드를 가져오는 효과를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유진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어차피 1장 마련되어 있으니까.
"속공 마법 '긴급텔레포트'. 이걸로 덱에 있는 '차원동이체 바리스'를 특수 소환. 다음은 '미니멀리언'의 ②의 효과. 필드의 몬스터를 제외하면, 그보다 종족하고 속성이 일치하고 레벨이 2개까지 낮은 몬스터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미니멀리언'은 사이킥족에 물 속성, 그리고 레벨 4. 따라서 레벨 3의 '초량사 블루레이어'를 특수 소환."
[차원동이체 바리스: 사이킥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초량사 블루레이어: 사이킥족 / 물 / 레벨 3 / ATK 1200 / DEF 2000]
"특수 소환한 '블루레이어'의 효과로 덱에 있는 다른 '초량' 몬스터를 패에 추가. 이어서 '바리스'의 효과로 자기 속성을 물 속성으로 변경, 그럼 물 속성인 '블루레이어'와 '바리스'를 소재로 링크 2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를 링크 소환! '블루레이어'의 효과로 덱에서 물 속성 이외의 레벨 4 이하 몬스터도 추가로 특수 소환한다. 여기에 '그린레이어'가 특수 소환됐을 경우, 패에 있는 '초량' 몬스터를 하나 더 특수 소환할 수 있어."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 사이킥족 / 물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초량사 그린레이어: 마법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천사족 / 빛 / 레벨 7 / ATK 1600 / DEF 1400]
[서문유진: 패 2장]
"특수 소환한 '화이트레이어'의 효과. 덱에서 '초량'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면 자기 속성과 레벨을 거기에 맞춘다. '초량사 블랙레이어'를 묘지로. 그리고 묘지로 간 '블랙레이어'의 ③의 효과를 발동해서 덱에 있는 '초량' 마법 하나를 패로 추가. 이어서 내 필드에 '초량' 몬스터가 있으면, 패에 있는 '초량요정 제탄'을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이 효과로 나온 '제탄'은 내 필드의 '초량' 몬스터 하나와 같은 레벨이 된다."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빛 → 어둠 / 레벨 7]
[초량요정 제탄: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1 → 7 / ATK 0 / DEF 0]
[서문유진: 패 2장]
"'하이드로블루'의 효과. 내 필드의 링크 몬스터 하나의 링크 수만큼 덱을 넘겨서, 그 중 카드 1장을 내 패에 추가. 그 다음 하이드로블루'와 '그린레이어'를 소재로 링크 3 '진초량기신 블래스터 매그너'를 링크 소환. 묘지로 보내진 '그린레이어'의 효과로 패를 1장 버리고 1장 드로우. 여기에 묘지로 간 '초량사 레드레이어'의 효과로 묘지에서 '초량사' 몬스터를 특수 소환."
[진초량기신왕 블래스터 매그너: 기계족 / 빛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초량사 블루레이어: 사이킥족 / 물 / 레벨 3 / ATK 1200 / DEF 2000]
[서문유진: 패 3장]
"레벨 7의 '화이트레이어'와 '제탄'을 오버레이, 랭크 7 '초량기수 라스터렉스'를 엑시즈 소환! 그리고 레벨 3의 '블루레이어'와 '멘탈프로시저'를 오버레이, 랭크 3 '초량기수 그랜펄스'도 엑시즈 소환. '초량' 몬스터가 엑시즈 소환에 성공한 순간 '블래스터 매그너'의 효과로 1장씩 드로우할 수 있어."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12.jpg](https://i1.ruliweb.com/img/25/04/12/19628d5e5ac20b132.jpg)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기계족 / 빛 / 랭크 7 / ATK 2700 / DEF 1900 / ORU 2]
[초량기수 그랜펄스: 기계족 / 물 / 랭크 3 / ATK 1800 / DEF 2800 / ORU 2]
[서문유진: 패 5장]
이번에도 아무런 방해가 들어오지 않은 덕분에, 시작부터 유진은 제법 든든한 필드를 세워놓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경험을 떠올리며 유진은 긴장을 놓지 않는다.
"카드 2장을 세트. 턴 엔드야."
"내 턴이군."
[시빌리언: 패 6장]
[서문유진: 패 3장]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면 패에서 마법 카드 '고스트 싸이크론'을 발동할 수 있다. 이걸로 상대의 마법이나 함정을 1장 파괴할 수 있지."
시빌리언이 고른 카드는 다행히도 발동 타이밍을 놓칠 일이 없는 것이었다.
"그럼 파괴되기 전에 발동한다. 속공 마법 '제19레이어 "습래간섭! 칠흑의 초량사!!"' 이걸로 내 필드에 있는 것들과 겹치는 속성이 아닌 '초량' 몬스터 1장을 덱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초량사 블랙레이어' 2장째!"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16.jpg](https://i3.ruliweb.com/img/25/04/12/19628d8315920b132.jpg)
[초량사 블랙레이어: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블랙레이어'의 ②의 효과. 특수 소환된 자신을 오버레이 유닛으로 삼아, 엑스트라 덱에 있는 '초량기수' 하나를 엑시즈 소환으로 취급해서 불러낸다.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기계족 / 화염 / 랭크 5 / ATK 2600 / DEF 2000 / ORU 1]
"그리고 묘지에 있는 '레드레이어'를 '매그너라이거'의 오버레이 유닛으로 변환. '초량' 엑시즈 몬스터가 나왔으니까 '블래스터 매그너'의 효과로 또 1장 드로우."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ORU 1 → 2]
[서문유진: 패 4장]
"어쨌든 '고스트 싸이크론'의 효과를 마저 처리하지. 내 묘지의 몬스터가 3장 이하일 경우 1장 드로우."
아직 패의 매수에 변동이 없는 것을 확인한 시빌리언은 유진의 필드를 잠시 바라본다.
"그게 네녀석의 히어로냐?"
"……."
유진은 그 말에 자기가 세워놓은 거대로봇들의 모습을 흘깃한다. 'ABC'에서 꽤 신세를 졌던 '초량' 테마의 주요 멤버들이었다. 휑한 어둠 속에서도 그들 하나하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어째서일까. 요전까지 충분히 잘 쓰던 덱을 놔두고 이 덱을 골라버린 것은.
"그럼 진짜 '히어로'를 보여주마. 아직도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으니까, LP를 절반 지불하고 마법 카드 '히어로 얼라이브'를 발동하지. 이걸로 덱에서 레벨 4 이하의 '엘리멘틀 히어로'를 특수 소환."
[시빌리언: LP 8000 → 4000]
그가 쓰는 것은 그야말로 진짜 '히어로'. 유진이 모를리가 없는 테마 이름이었다.
'ET레인저' 카드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가 써왔던 카드들이었으니까.
'하필이면….'
'히어로'를 자처하는 자에게 저것만한 선택도 없을 테니, 유진은 어렴풋이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한 편으로는 지금이 대응에 들어갈 타이밍이라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패에 있는 '하루 우라라'로 체인!"
[서문유진: 패 3장]
"'히어로 얼라이브'는 무효. 이걸로 LP만 날아간 거야."
"히어로는 불멸이다. 맞서싸울 의지만 있다면 말이지. 상대가 몬스터 효과를 썼으니까 '삼전의 재'를 발동. 이걸로 2장 드로우."
[시빌리언: 패 6장]
또 저거야, 하고 유진은 속으로 푸념했다. 저걸로 돌파할 수 있는 카드를 챙길 확률이 더 늘어났다는 의미니까.
"'엘리멘틀 히어로 에어맨'을 소환. 효과로 덱에 있는 '히어로' 몬스터를 가져온다."
그래도 다음에 나온 것 역시 유진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다. '히어로' 덱을 쓴다면 빠질 일이 없는 카드니까.
당연히 효과를 쓰게 놔둘리가 없었다.
"'라스터렉스'의 효과를 체인! 오버레이 유닛을 1개 사용해서, 상대 몬스터 하나의 효과를 무효로 한다!"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ORU 2 → 1]
적(히어로)이 동료를 불러내려는 순간, 그 움직임을 막고자 '라스터렉스'의 새하얀 몸체가 한 층 더 발광한다. 거기서 방사된 빛에 눈이 멀어버리면 무력화시킬 수 있을 터.
이런 식으로 상대의 전술을 하나하나 틀어막아서 턴을 받아낸다면 승리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유진이 그런 희망을 가져보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에어맨'과 패 1장을 코스트로 속공 마법 '금지된 일적'을 체인하지. 이걸로 네놈의 '매그너라이거'와 '블래스터 매그너'의 공격력을 절반으로 하고, 효과를 무효로 하겠다."
"칫!"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ATK 2600 → 1300]
[진초량기신왕 블래스터 매그너: ATK 2500 → 1250]
[시빌리언: 패 3장]
그러나 이를 예상했다는 듯 '에어맨'은 제물이 되어 사라진다는 방법으로 빛을 피해가버린다. 뒤이어 나타난 잔이 물방울을 떨구자, 그로부터 일어난 파문이 필드를 조용히 휩쓸고 지나가면서 지명받은 '초량' 몬스터 2체를 그대로 무력화시켜버렸다.
이걸로 다음 견제책이 날아가버렸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필드를 벗어났으니 '에어맨'의 효과도 무사히 처리되지. 그럼 '히어로' 몬스터를 패에 추가. 그리고 방금 패에서 묘지로 보낸 '엘리멘틀 히어로 섀도우 미스트'의 효과를 발동. 역시 다른 '히어로' 몬스터 1장을 패로 가져온다."
[시빌리언: 패 4장]
"패에서 다른 '히어로' 몬스터 하나를 버리고, 패에 있는 '비전 히어로 화리스'의 효과를 발동한다. 자신을 특수 소환."
[비전 히어로 화리스: 전사족 / 어둠 / 레벨 5 / ATK 1600 / DEF 1800]
[시빌리언: 패 2장]
"특수 소환한 '화리스'의 ②의 효과. 덱에서 다른 '비전 히어로' 하나를 지속 함정으로서 내 마법 & 함정 존에 놓는다. 그리고 묘지에 있는 '데스티니 히어로 디아볼릭 가이'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2장째 '디아볼릭 가이'를 덱에서 특수 소환."
''데스티니 히어로'!? 어떻게 저걸…?'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카드명을 유진의 귀는 놓치지 않았다.
'데스티니 히어로'. '히어로'를 써본 경험이 있는 입장으로서, 통칭 'D 시리즈'라고도 불리는 그 '히어로' 테마 역시 들어본 적은 있었던 것이다.
어느 미국 출신의 프로 듀얼리스트가 세계 대회에서 사용하며 모습을 알린 다크 히어로 컨셉의 테마. 최초의 '히어로' 테마인 '엘리멘틀 히어로'의 상징이 E라면, 그 E를 능가하는 D라고까지 떠받들여졌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니크 카드로서의 자리는 내려왔지만 여전히 쉽게 볼 수 있는 카드는 아닐 터.
[데스니티 히어로 디아볼릭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6 / ATK 800 / DEF 800]
효과로 튀어나온 몬스터는 '디아볼릭'이라는 이름처럼 악마의 뿔과 날개를 달고 있는 흉폭한 인상의 거한이었다. 적어도 '히어로'라 불리기에는 이질적인 모습이다.
"환영 상태인 '인크리스'의 ①의 효과를 사용. '디아볼릭 가이'를 릴리스하고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하지. 이어서 덱에서 레벨 4 이하의 '비전 히어로' 하나를 특수 소환."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26.jpg](https://i2.ruliweb.com/img/25/04/12/19628e3370920b132.jpg)
[비전 히어로 인크리스: 전사족 / 어둠 / 레벨 3 / ATK 900 / DEF 1100]
[비전 히어로 바이온: 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200]
"특수 소환된 '바이온'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히어로' 몬스터 하나를 묘지로 보낸다. 이어서 묘지에 있는 '히어로' 몬스터, '섀도우 미스트'를 하나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사용. 덱에서 '융합' 하나를 패에 추가하지. 그 다음 '화리스'와 '인크리스'를 소재로 '엑스트라 히어로 크로스 가이'를 링크 소환. '크로스 가이'의 ①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데스티니 히어로'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히어로'의 효과로 특수 소환됐으니 '데스티니 히어로 드로우 가이'의 ①의 효과 발동. 각자 1장 드로우한다. 묘지에 있는 2장째 '디아볼릭 가이'를 제외하고 3장째도 특수 소환."
[엑스트라 히어로 크로스 가이: 전사족 / 어둠 / LINK-2 / ATK 1600 / 링크 마커 ↙↘]
[데스티니 히어로 드로우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600 / DEF 800]
[데스니티 히어로 디아볼릭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6 / ATK 800 / DEF 800]
[시빌리언: 패 3장]
[서문유진: 패 4장]
"그리고 '융합'. 필드의 '드로우 가이', '디아볼릭 가이', 패에 있는 '엘리멘틀 히어로 리퀴드맨'을 소재로 융합 소환하겠다. 세 영웅의 의지가 이 자리에 하나로! 나타나라, '비전 히어로 트리니티'!''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30.jpg](https://i3.ruliweb.com/img/25/04/12/19628eeb0ca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31.jpg](https://i2.ruliweb.com/img/25/04/12/19628eeaf1220b132.jpg)
[비전 히어로 트리니티: 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000]
육중하고 견고해 보이는 붉은 슈트의 전사가 허릿짐을 진 채 나타난다. 등장만으로 땅이 갈라지는 연출은 위풍당당한 박력을 전하고 있었다.
"융합 소환된 '리퀴드맨'의 효과로 덱에서 2장 드로우하고 패 1장을 버린다. 여기에 '트리니티'는 소환된 턴에 공격력이 2배가 되지!"
[비전 히어로 트리니티: ATK 2500 → 5000]
[시빌리언: 패 3장]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33.jpg](https://i3.ruliweb.com/img/25/04/12/19628f6543420b132.jpg)
"다음은 '퓨전 데스티니'. 덱에 있는 '대시 가이', '디나이얼 가이'를 소재로 삼아 'D-HERO(데스티니 히어로)' 하나를 융합 소환하겠다. 죽음과 파괴의 운명을 초월하여, 불사조처럼 내려앉아라!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그 다음에 나타나는 것 또한 타오르듯 붉은 갑주를 두른 영웅. 그러나 등에 달린 검은 깃털이 달린 날개와 칼날 같은 발톱은 이름처럼 '피닉스'를 형상화한 듯한 모습이었다.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100]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②의 효과! 내 묘지의 '히어로' 하나 당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을 200씩 내린다."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ATK 2700 → 1300]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ATK 1300 → 0]
[초량기수 그랜펄스: ATK 1800 → 400]
[진초량기신왕 블래스터 매그너: ATK 1250 → 0]
시빌리언의 묘지에 있는 '히어로'는 7장, 따라서 깎여나가는 유진의 몬스터들의 공격력은 1400. 기껏 필드에 도배해놓은 몬스터들이 전부 그만큼 약체화되는 광경에 유진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더구나 링크 몬스터인 '블래스터 매그너'는 수비 표시 개념이 없으니 당연하게도 공격 표시. 이 상태로 공격력 5000짜리의 공격을 얻어맞는다면 피해가 얼마나 될지는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아직이다! 내 필드에 '데스티니 히어로'가 있으면, 묘지에서 '데스티니 히어로 디나이얼 가이'를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데스니티 히어로 디나이얼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3 / ATK 1100 / DEF 800]
"특수 소환된 '디나이얼 가이'는 제외된 '데스티니 히어로' 하나를 덱 맨 위로 되돌려준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겠나?"
"'디아볼릭 가이'를 또 불러내겠다고…?"
"그래, 정답이다!"
[데스니티 히어로 디아볼릭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6 / ATK 800 / DEF 800]
"이어서 속공 마법 '마스크 체인지'! 필드의 '히어로'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같은 속성의 '마스크드 히어로'를 특수 소환하지. 어둠 속성의 '디아볼릭 가이'는 '마스크드 히어로 다크 로우'로 변신한다!"
[마스크드 히어로 다크 로우: 전사족 / 어둠 / 레벨 6 / ATK 2400 / DEF 1800]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ATK 1300 → 1100]
[초량기수 그랜펄스: ATK 400 → 200]
[시빌리언: 패 1장]
"마지막으로 링크 2의 '크로스 가이', 그리고 '바이온'을 소재로 링크 3 '엑스트라 히어로 드레드 버스터'를 링크 소환."
[엑스트라 히어로 드레드 버스터: 전사족 / 어둠 / LINK-3 / ATK 2500 / 링크 마커 ↙↓↘]
"'드레드 버스터'는 묘지의 '히어로' 몬스터 종류만큼 공격력을 100씩 올리지. 여기에 묘지에 '히어로'가 늘어났으니,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효과로 네놈 몬스터의 공격력도 추가로 다운!"
[엑스트라 히어로 드레드 버스터: ATK 2500 → 3500]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ATK 1100 → 700]
[초량기수 그랜펄스: ATK 200 → 0]
승부수를 던지기 위해 몬스터를 늘어놓는 것은 결코 유진 혼자만의 특권이 아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마련된 소재로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에 유진은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이름은 달라도 모두가 어둠의 힘을 가진 '히어로'들.
"E(엘리멘틀), V(비전), X(엑스트라), D(데스티니), 거기다 M(마스크드)…. 모든 '히어로'를 있는대로 다 끌어다 쓸 작정이야?"
"영웅의 본질은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길에 섰다고 해도, 쓰러뜨려야 할 악을 앞둔다면 하나가 되는 법."
저런 소리를 하면서 왜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 왜 일을 이 지경까지 오게 만들었는가.
그 소리를 내뱉어봤자 저 자의 귀에는 여전히 들리지 않겠지.
차례차례로 전개되는 '히어로'들의 위압이 더해지면서, 이제 유진의 필드에 남은 것이라고는 공격력이 1000조차 넘지 못하는 덩치만 큰 약골 몬스터들 뿐이었다.
'트리니티'는 몬스터에 3회 공격이 가능한 몬스터인 만큼, 이대로 저들의 총공격을 맞았다간 끝장이라는 것은 기정사실.
"그럼 심판의 시간이다. 남길 말은 없느냐?"
"…아직이야."
이 자리에서 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생각에 매달린 채 유진은 그렇게까지 당황한 기색은 없어보였다.
"끈질기군. 그렇다면…,"
"아직 메인 페이즈. 그리고 그쪽은 몬스터를 5번 이상 소환했어. 맞지?"
"………."
그 특유의 조건만으로도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지, 순간 시빌리언의 말이 끊긴다.
"그럼 효과 발동.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를 전부 릴리스하고 패에 있는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다. '원시생명체 니비루'!"
됐다. 이걸로 상대가 깔아놓은 필드를 전부 엎어버리고 다음 턴에 역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렇게 넘어가려는 순간,
"'그 전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②의 효과를 체인! 자신과 상대 필드의 카드를 1장씩 파괴하지.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자신과 네놈의 세트 카드를 파괴하겠다."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불태우듯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가 자신의 온몸을 불사르기 시작한다. 자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지는 동안, 그 거센 불길은 유진이 세트해 놓은 '초량요청 알팡콜' 카드에까지 번지더니 양쪽을 모두 재로 만들어버렸다.
아직 필드에 남은 '다크 로우'의 효과에 의해 묘지로 가지 않고 제외되어버렸으니 재활용하는 것도 힘들어진 상태.
'지금 상황이라면 상관없겠지.'
뒤이어 예정된 효과가 발동될 차례. 순간 어둠을 쫓아내버리는 강렬한 섬광이 더한 열기를 띄고 찾아오더니, 있지도 않은 땅을 울리는 충격과 함께 필드를 강타했다.
두 사람이 무심코 눈을 질끈 감고 나니, 서로의 필드에는 어느 샌가 낯선 외계생명체들이 한 마리씩 자리잡고 있었다.
[원시생명체 니비루: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3000 / DEF 600]
[원시생명체 토큰: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9200 / DEF 8700]
"얕은 수법을 쓰다니."
"마음대로 떠들어. 이제 오버레이 유닛 상태로 묘지로 간 '초량'들의 효과를 발동할 차례야. 먼저 '블루레이어'의 효과로 묘지의 '초량' 카드 3장을 덱으로, 그 다음은 '화이트레이어'의 효과로 덱에 있는 '초량요정 알팡'을 패에 추가, 마지막으로 '레드레이어'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초량' 몬스터 1장을 특수 소환."
[초량사 그린레이어: 마법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서문유진: 패 4장]
"심판의 시간이니 뭐니 한 걸 보면 꺼낼 수 있는 건 다 꺼낸 모양인데, 지금 남은 건 수비 표시의 토큰 하나잖아. 이제 어쩔 거야?"
남은 패 1장을 흘겨보던 시빌리언은 못마땅한 듯 턴 종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효과는 발동됐다. 턴 엔드."
"그럼 내 턴."
[서문유진: 패 5장]
[시빌리언: 패 1장]
세트 카드도 없으니 남은 것은 쓸데없이 불어난 공격력을 가진 토큰을 치우고 그대로 몰아붙이는 일 뿐. 이를 위해 유진이 뽑은 카드를 확인하던 순간이었다.
"카드를 뽑았구나. 이 순간 발동했던 '디스트로이 피닉스'의 효과가 적용된다. 파괴된 다음 스탠바이 페이즈에 묘지에 있는 '데스티니 히어로'를 필드로 특수 소환할 수가 있지."
당황하며 문제의 카드 텍스트를 다시 확인해보니 분명 그가 방금 언급한 효과는 제대로 적혀 있었다. 아까 발동했다고 선언한 효과가 이거였겠지.
"선택하는 건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자신이다. '리바이브 프롬 인페르노'!"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100]
[원시생명체 니비루: ATK 3000 → 1000]
여전히 온몸에 붙어 있던 불꽃을 떨쳐내고,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가 붉은 날개를 펼치며 재림했다.
등장과 동시에 아군 몬스터의 공격력이 다시 팍 깎여나가는 것을 보며 유진은 쉽지 않은 벽임을 실감했다.
"뭐 저런 게 다있어…."
"말했을 텐데, 히어로는 불멸이라고. 뛰어넘을 수 있으면 뛰어넘어 봐라!"
섣불리 카드를 꺼냈다간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파괴 효과가 다시 발동되면서 터져나갈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고서는 돌아오는 그의 턴에 다시 부활하여 공격을 가하겠지.
거기다 토큰을 치우는 데에도 실패하면 역시 다음 턴에 흉악한 적으로 돌아와버린다. 이 상황에 대항할 수 있을 '크샤트리라'는 덱에 들어가지 않았다.
유진은 갈등한다. 과연 자신의 선택은 잘한 것이었을까.
일단 뭐라도 하고 봐야 했기에 유진은 다시금 패를 살펴본다.
"'초량요정 알팡'을 소환."
[초량요정 알팡: 천사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서문유진: 패 4장]
여기서 섣불리 레벨 조정 효과를 써봤자 '디스트로이 피닉스'의 효과가 저격해 올 테니 의미는 없다. 소환권을 써서 꺼낸 몬스터가 헛되이 날아가지 않으려면 무슨 수를 써야 하는가.
그것은 카드에 적힌 대로 따르면 되는 일이다.
"'알팡'을 릴리스하고 ②의 효과 발동. 덱에 있는 '초량' 몬스터 3종류를 보여주면, 상대가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서 내 필드에 특수 소환할 수 있어."
"그럼 패에 있는 '증식의 G'의 효과를 발동!"
"큭…!"
[시빌리언: 패 0장]
그럼에도 넘어야 할 고개는 여전히 있다. 제법 많이 잡혀 있는 이 패에, 하필이면 '하루 우라라', '무덤의 지명자', '말살의 지명자' 처럼 저 카드를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뭐가 나왔든, 이번 턴에 네놈이 특수 소환할 때마다 1장씩 드로우하겠다. 고르는 건 내 쪽이랬던가."
잠시 심호흡. 어차피 저쪽에게 패를 내줄 수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손해를 덜 보는 선택을 해야 한다. 아예 이 턴에 이기는 선택으로 간다면 좋겠지만, 그건 이번에 상대의 손가락이 무슨 카드를 고르느냐에 따라 다르다.
[초량사 블루레이어: 사이킥족 / 물 / 레벨 3 / ATK 1200 / DEF 2000]
[시빌리언: 패 1장]
"좋아, '블루레이어'의 효과로 덱에 있는 '초량' 카드 1장을 패로 추가!"
[서문유진: 패 5장]
"이어서 '그린레이어', '블루레이어', '니비루'를 소재로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링크 소환!"
[트로이메어 유니콘: 악마족 / 어둠 / LINK-3 / ATK 2200 / 링크 마커 ←→↓]
[시빌리언: 패 2장]
"패를 1장 버리고 '유니콘'의 ①의 효과 발동. 상대 필드의 카드 1장을 덱으로 되돌린다. 이걸로 '피닉스' 뭐시기를 지정."
"가소롭긴. 그 전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로 체인, 이번엔 자신과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지정하고 파괴하겠다."
[서문유진: 패 4장]
턴이 지나자 마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는 다시 자신의 몸을 불살라버리기를 택한다. 동시에 유진이 방금 불러낸 몬스터 역시 길동무삼아버렸다.
"이어서 '디스트로이 피닉스'의 ③의 효과는 다시 발동. 어디 계속 해 봐라."
엑스트라 덱 몬스터와 패 1장이 그대로 공중분해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유진이 예상한 대로다.
어쨌든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는 사라져줬으니 이제 남은 것은 '원시생명체 토큰' 뿐. 방해물이 남지 않은 상태라면 저걸 치우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더구나, 이번에도 그는 손해를 덜 보는 선택을 하고 난 참이었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45.jpg](https://i1.ruliweb.com/img/25/04/12/196290c04ba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46.jpg](https://i2.ruliweb.com/img/25/04/12/196290c028320b132.jpg)
"방금 버린 '초량지원 알팡볼'을 묘지에서 제외하고 ②의 효과를 발동한다. 덱에 있는 '초량기함 매그너캐리어'를 발진!"
별이 없는 우주를 배회하듯 흑백 기조의 단조롭고도 미래적인 디자인을 띄는 우주전함 한 대가 출동한다.
"내 필드에 몬스터가 없어졌으니까, 패에 있는 '초량사 레드레이어'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초량사 레드레이어: 전사족 / 화염 / 레벨 5 / ATK 2000 / DEF 800]
[시빌리언: 패 3장]
"이어서 '매그너캐리어'를 묘지로 보내고 ②의 효과를 발동. 묘지의 '라스터렉스', '매그너라이거', '그랜펄스'를 오버레이 유닛으로 변환한다!"
선체의 정면과 측면의 갑문 세개가 열리더니, 이전에 '니비루'의 등장 여파로 사라진 '초량기수' 3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필드까지 도착할 여유조차 없다는 듯이, 그들은 도중에 전함 밖으로 뛰어내리더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초량합체, 슈퍼 퀀텀 디멘션!"
이윽고 주인인 유진의 호령에 맞춰 3체 모두 공중으로 풀쩍 뛰어올랐다. '합체'라는 지시를 이행하기 위해 그들의 몸은 서로가 있는 고도를 맞추며 철컥 철컥 뒤틀려나간다.
그렇게 '매그너라이거'는 흉부, '그랜펄스'는 각부, 그리고 '라스터렉스'는 실루엣이 뒤바뀌더니 자리에 없는 '에어로보로스'를 대신하여 상체 파츠로 변형했다.
육중한 충돌음과 함께 세 기가 한 데 모여 '블래스터 매그너'를 연상시키는 사람의 강철로 이뤄진 몸뚱아리가 만들어지고, 마지막으로 상체 부분에 사람의 머리 파츠가 튀어나옴으로서,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거대 로봇이 되었다.
"완성, '초량기신왕 그레이트 매그너스'!"
[초량기신왕 그레이트 매그너스: 기계족 / 빛 / 랭크 12 / ATK 3600 / DEF 3200 / ORU 3]
[시빌리언: 패 4장]
그 스케일에 시빌리언은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은 채 위를 올려다본다. 과거 TV에서 틀어주던 전대물의 로망을 구현한 이 테마를, 히어로를 동경하고 있던 그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얼굴이 가면에 가려져 있기에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그레이트 매그너스'의 오버레이 유닛을 1체 사용하고 효과 발동! 필드의 카드 1장을 덱으로 되돌린다."
[초량기신왕 그레이트 매그너스: ORU 3 → 2]
주변을 돌던 오버레이 유닛이 하나 소멸하자, '그레이트 매그너스' 두 주먹을 목표물에게 뻗는다. 곧 벼락과도 같은 빛줄기가 뻗어나오면서 외계생명체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어둠을 주름잡던 양쪽 필드의 거대한 실루엣 중 하나가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이걸로 '원시생명체 토큰'도 소멸."
지금 필드에 차려진 몬스터의 총 공격력은 이미 상대의 LP를 넘어섰다. 이대로 공격이 성사되면 게임은 끝.
그럼에도 유진은 경계를 놓을 수 없었다. 바로 전 턴에 자신이 '니비루'를 꺼낸 것처럼, 상대가 그 카드를 쓰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으니까. 특수 소환을 한 번만 더했다간 그 발동 조건이 갖춰지고 말지도 모른다.
기적은 자신한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저쪽은 이미 턴을 받아들자마자,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몰아칠 수 있는 양의 패가 충분히 주어졌다. 공격을 선언하는 순간 그 기적이 진짜로 주어졌는지를 확인하게 되리라.
각오하기에 앞서 숨을 돌리고자, 유진은 문득 진작 했어야 할 질문을 떠올렸다.
"아까부터 그쪽이 떠드는 소리 듣다 보니까 뭘 추구하는지는 잘 알겠어."
시빌리언의 시선이 유진에게로 돌아온다.
"히어로물은 빌런이 없으면 성립 안 되잖아. 그러니까 뭔가 쓰러뜨릴 게 필요했겠지."
"…설마, 내가 값싼 동경으로 이러는 거라 생각하나?"
"아니라고? 그런 쫄쫄이 입고 다니면서?"
"이건 내 모습을 감추기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다. 신원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주변 사람이 어떻게 휘말릴지 알 수 없으니까.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알 바 아냐."
자신의 선택으로 주변 사람이 말려든다. 그 두려움을 유진 본인도 알고 있었다.
유노가 '리퍼'로서 분장을 하고 다니는 것도, 공포를 주기 위한 선택이라고 본인은 말했지만 그런 이유 역시 있었겠지.
"난 진심이다. 네놈 같은 악을 몰아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힘을 얻든, 어떤 꼴이 되든 상관없어."
아직까지도 악당 취급이구나. 기가 막힌 유진은 다시 한숨이 나왔다.
'어떤 꼴이 되든 상관 없다'니. 본인의 꼴이 어떤지 자각은 하고 있다는 뜻일까.
벌칙이 어떨지는 둘째치고, 상당한 질량을 동반한 공격이 통하기라도 한다면 정신이라도 차릴지 모른다.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저 시끄럽고 귀찮은 양반을 끝장을 내버릴 수가 있다.
그렇기에 유진은 일단 공격을 시도해보기로 한다.
"배틀, '레드레이어'로 다이렉트 어택!"
먼저 '레드레이어'가 뛰어들면서 클로를 휘두르자, 딱히 저항도 없이 공격을 맞은 시빌리언은 그대로 무릎꿇었다.
[시빌리언: LP 4000 → 2000]
"크윽!"
"끝이다, '그레이트 매그너스'로 다이렉트 어택! '슈퍼 퀀텀 크러시'!"
다음으로 '그레이트 매그너스'가 양손을 앞으로 뻗자, 엄청난 양의 불꽃과 전자파가 퍼져나오는가 싶더니 길게 뻗으면서 명백한 고체로 된 무언가가 생성된다. 기체의 거대한 크기에도 뒤지지 않는 장검 한 자루였다.
그것을 쥐면서 '그레이트 매그너스'는 공격할 채비를 마친다. 그리고 아래로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미물이나 다름 없는 적에게 전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패에 있는 '데스니티 히어로 다이너마이트 가이'의 효과! 상대 몬스터에 의해 전투 데미지를 받는 순간, 이를 버리고 그 수치를 0으로 만든다."
고열로 타오르는 불덩어리로 된 온몸을 굵은 케이블로 칭칭 감싼 외형의 거한이 검의 궤도로 난입한다. 번쩍이는 검신이 거한의 몸뚱아리를 밀어버리자, 위험한 빛이 퍼진 직후 필드에는 이름 그대로 다이너마이트가 터진 듯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양쪽 플레이어는 1000 데미지를 받지."
"큭…!"
[서문유진: LP 7000 → 6000]
[시빌리언: LP 2000 → 1000]
폭풍이 서로의 필드를 휩쓴다. 그 여파로 뒤로 밀려난 '그레이트 매그너스'의 검은 다시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채 사라졌다. 다시 서있는 자세로 돌아간 것을 보면 더 공격할 여지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목숨(라이프)을 건진 시빌리언은 유유히 일어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대로 쓰러질 것 같으냐?"
그 말대로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저쪽에게 패를 4장씩이나 바친 대가인 것이다.
마지막 일격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은 듀얼이 조금 더 길어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했기에, 유진은 미뤄뒀던 질문을 꺼내보기로 했다.
"그렇게까지 끈질긴 이유가 뭐야? 당신 보낸 놈이 누군데?"
"보냈다고?"
"내 정보를 알고 있었잖아. 누가 시키면서 당신한테 정보를 팔아넘겼겠지?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설마 또 재버워키야?"
"재버워키?"
"나한테 목걸이 줘놓고 자기가 연 게임에 나가라고 시킨 놈이 있어. 그 뒤로도 계속 당신 같은 사람들 보내서 싸움을 붙였다고. 정말 몰라?"
"그런가. 'ABC'의 개최자가 '재버워키'라는 이름이었단 말이지."
정말로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 잡아떼는 건지.
"적어도 확실히 따질 것은, 정의는 누가 시키는 게 아니다. 알아서 실천하는 것이지."
"뭔 소리야?"
"난 어디까지나 네놈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들었을 뿐. 어떻게 할지 판단한 것은 내 선택이야."
"날 끝까지 나쁜 놈으로 몰고 싶어?"
"부정해봤자 소용없어. 네놈은 심판받아 마땅한 악이다."
"말했잖아! 억지로 싸웠다고! 이딴 거 즐겁지도 않고, 계속 할 생각도 없어! 내가 왜 이런 취급이나 받아야 되는데!?"
"변명이 안 먹히니까 힘으로 찍어누르길 택한 네놈이 묻는 거냐?"
"……."
유진은 잠시 입을 다물고서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강요였을지 몰라. 너는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처지 속에서 어떻게든 버텨왔겠지."
"…알면서 왜?"
"누구나 사정이라는 건 있으니까. 그것이 면죄부인양 뭘 해도 괜찮다고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자들을 봐왔다."
"자기자신을 속여?"
"억울하다. 왜 나한테만 그러느냐. 어쩔 수 없었다. 몰라서 그랬다. 한 번만 용서해달라. 남에게 해를 가한 주제에 그런 무고의 가면을 쓰고서 속여넘길 궁리만 하는 녀석들을 나는 단죄해왔단 말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굴 속여넘기는데?"
"눈앞의 상대가 죽어버리길 바란 적이 정말 없다고 단언할 수 있나?"
익숙한 질문이다.
"그거야…."
"처음에는 맞서싸워야 한다는 의지였겠지. 그것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모되고 변질되버렸다면 어떨까."
"내가 그렇게 변했다고?"
"골치아픈 적 따위 어둠에 묻어버리면 그만. 그런 생각으로 강한 상대가 쳐들어와도 더 강한 힘을 얻어서 닥치게 만들었을 것이다. 자기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 뿐이라면서. 그렇게 유지해온 일상은 편하던가?"
왜 아는 척 설교해대는 것일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결론을 바꾸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뭐가 잘못되었단 말인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조리에 유진의 속은 계속해서 타들어갔다.
"편하긴 뭐가! 그런 식이면, 당신은 어둠의 듀얼을 하는 사람을 죄다 묻어버리겠다는 거잖아? 그게 나하고 뭐가 달라?"
"나는 나태에 굴하지 않는다. 하물며 그런 힘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악의 근원을 떨쳐낼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여전히 상대의 대답은 당당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잡아낼 만한 꼬투리를 유진은 찾아낼 수 있었다.
"뭐야? 그럼 지금은 답을 못 찾았다는 거네?"
"……."
"어떤 힘이든 상관없다고 했었지. 그래서 지금은 내 힘이 탐난다는 거야?"
"무슨 뜻이지?"
"내 힘이 뭔지도 모른다고 트집을 잡았잖아? 내가 이런 걸 가지고도 제대로 해내는 게 없으니까, 나라면 더 잘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 아냐? 그런 사람 내가 본 적이 있거든?"
"내가 그런 것에 현혹되기라도 할 줄 아는가?"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지금도 디젠 가지고 어 둠의 듀얼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그런 힘 없으면 잘난 영웅놀음도 못 해?"
이번엔 시빌리언 쪽에서 침묵이 돌아온다. 기가 막힌 나머지 올라가는 유진의 입꼬리는, 걸려들었다며 통쾌해하는 웃음으로도 보였다.
"…잘 알겠다. 이 순간까지도 반성의 여지 따윈 없다는걸."
"왜? 대답이 안 떠오르니까 자기 할 일로 돌아가시게?"
"마음대로 떠드시지. 끝까지 자신을 속여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야."
"내 턴. 드로우."
[시빌리언: 패 4장]
[서문유진: 패 2장]
"지금 이 순간 묘지에 있는 '데스티니 히어로 대시 가이'의 효과를 발동. 드로우 페이즈에 뽑은 카드가 몬스터였을 경우 그 카드를 내 필드로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내가 뽑은 건 2장째 '에어맨'."
[엘리멘틀 히어로 에어맨: 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300]
"효과로 이번에는 2장째 '섀도우 미스트'를 가져오겠다. 이어서 스탠바이 페이즈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는 다시 부활."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DEF 2100]
[시빌리언: 패 4장]
[초량기신왕 그레이트 매그너스: ATK 3600 → 1600]
[초량사 레드레이어: ATK 2000 → 0]
또다시 '디스트로이 피닉스'가 등장하자 마자 아군의 공격력이 팍 내려가는 꼴에 유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대로 다음에 꺼낼 '히어로'들의 공격을 맞았다간 간당간당해질 것이 당연지사. 성가시니 빠르게 치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라 판단한다.
"메인 페이즈겠지. 오버레이 유닛을 1체 사용해서 '그레이트 매그너스'의 효과를 다시 발동! 이번엔 그 '피닉스' 어쩌구를 되돌린다."
[초량기신왕 그레이트 매그너스: ORU 2 → 1]
"성급하긴,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효과를 체인! 자기 자신과 '그레이트 매그너스'를 파괴하겠다."
어차피 '초량기신왕'의 오버레이 유닛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기에, 지금의 본인은 자체 효과로 인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다. 따라서 이번 턴에도 어김없이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가 내뿜는 불꽃에 그 거대한 기신이 통째로 소실되어 버렸다.
그만큼 눈에 들어오는 어둠은 더 넓어졌지만, 대신 그가 남기고 가는 것이 있었다.
"'그레이트 매그너스'가 묘지로 갔을 경우에 ②의 효과 발동. 묘지의 '초량' 몬스터를 3장까지 특수 소환한다."
[초량기수 라스터렉스: 기계족 / 빛 / 랭크 7 / ATK 2700 / DEF 1900 / ORU 0]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기계족 / 화염 / 랭크 5 / ATK 2600 / DEF 2000 / ORU 0]
[초량기수 그랜펄스: 기계족 / 물 / 랭크 3 / ATK 1800 / DEF 2800 / ORU 0]
합체에서 벗어난 '초량기수'들이 벽이 되어주기 위해 귀환한 것이다.
이걸로 남은 몬스터는 총 4체. 다음 자신의 턴이 오기 전까지 얼마나 버텨주느냐가 관건이다.
"계속하지. '엘리멘틀 히어로 솔리드맨'을 소환. 효과로 패에 있는 '히어로'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특수 소환한 '섀도우 미스트'의 효과로 덱에서 2장째 '마스크 체인지'를 가져오겠다."
[엘리멘틀 히어로 솔리드맨: 전사족 / 땅 / 레벨 4 / ATK 1300 / DEF 1100]
[엘리멘틀 히어로 섀도우 미스트: 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500]
[시빌리언: 패 3장]
"소환 조건은 '히어로' 몬스터 2장. 나는 '에어맨'과 '섀도우 미스트'를 소재로 '엑스트라 히어로 원더 드라이버'를 링크 소환."
[엑스트라 히어로 원더 드라이버: 전사족 / 빛 / LINK-2 / ATK 1900 / 링크 마커 ↑↓]
"이어서 '마스크 체인지'. 땅 속성의 '솔리드맨'은 '마스크드 히어로 다이안'으로 변신한다. 마법 카드의 효과로 묘지로 보내졌을 경우 '솔리드맨'의 ②의 효과가 발동. 묘지의 '히어로'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하지."
[마스크드 히어로 다이안: 전사족 / 땅 / 레벨 8 / ATK 2800 / DEF 3000]
[엘리멘틀 히어로 에어맨: 전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300]
"특수 소환된 '에어맨'의 효과를 발동, 여기에 자신의 링크 마커 앞에 '히어로' 몬스터가 특수 소환되었으니 '원더 드라이버의 효과를 체인 발동하겠다. 묘지의 '융합'을 고르고 내 필드로 세트. 계속해서 '에어맨'의 효과를 처리한다. 내 필드의 다른 '히어로' 몬스터 수까지 필드의 마법이나 함정 카드를 파괴."
벌써 한 턴에 필드를 두 번 찾아온 '에어맨'이 등에 달린 윙슈트를 기동한다. 날개 중앙의 프로펠러 2구가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더니 유진이 세트해 놓은 카드 1장을 날려버렸다.
선풍 속에서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은 '매직 실린더'. 통했더라면 그대로 듀얼을 끝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개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말로 통할지는 유진조차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다음은 '융합'. 필드의 '원더 드라이버'와 '에어맨'을 소재로 융합 소환하겠다. 새로운 내일을 향해, 붉은 태양이여 떠올라라! '엘리멘틀 히어로 선라이저'!"
[엘리멘틀 히어로 선라이저: 전사족 / 빛 / 레벨 7 / ATK 2500 / DEF 1200]
"'융합 소환한 '선라이저'의 효과로, 덱에 있는 '미러클 퓨전'을 패에 추가."
"이런…!"
"뭔지 아는 모양이군. 말 그대로 내일을 향해 떠오르는 기적이지. 그럼 '미러클 퓨전'을 발동. 묘지의 '리퀴드맨', '원더 드라이버'를 제외하고 또다른 '히어로'를 불러내겠다. 절대영도, '엘리멘틀 히어로 앱솔루트 Zero'!"
[엘리멘틀 히어로 앱솔루트 Zero: 전사족 / 빛 / 레벨 7 / ATK 2500 / DEF 2000]
열띤 구호와 함께 시빌리언의 전력이 하나씩 다시 채워지기 시작한다. 거의 어둠 일색이었던 저번 턴과는 달리, 이번에 행차하는 것은 갖가지 속성의 '히어로'들.
이번에는 유진의 눈에도 어느 정도 익은 것들이었기에 익숙한 위협으로서 다가오고 있었다.
"'선라이저'의 ②의 효과. 아군의 공격력을 내 필드의 몬스터 속성 1종류당 200씩 올린다. 지금은 3종류, 따라서 600 상승!"
[엘리멘틀 히어로 선라이저: ATK 2500 → 3100]
[엘리멘틀 히어로 앱솔루트 Zero: ATK 2500 → 3100]
[마스크드 히어로 다이안: ATK 2800 → 3400]
"배틀! 먼저 '다이안'으로 '라스터렉스'를 공격, 이 순간 '선라이저'의 효과를 발동한다. 다른 '히어로'가 공격 중이면 필드의 카드 1장을 파괴할 수 있지. 수비로 버티는 '그랜펄스'를 파괴!"
선봉으로 '다이안'이 망토를 휘날리며 뛰어드는 순간, '선라이저' 역시 거들겠다는 듯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어서 그 붉은 전신이 눈부시게 빗나더니, 샛노랗게 타오르는 광선이 발사되면서 '그랜펄스'의 기체에 직격했다.
"공격은 속행이다. '디스퍼전'!"
뒤이어 '다이안'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레이피어가 '라스터렉스'의 기체마저도 두동강을 내버린다.
그렇게 순식간에 벽 2체가 무너져내렸다.
[서문유진: LP 6000 → 5300]
"몬스터를 전투로 파괴했을 경우 '다이안'의 효과를 발동하지. 덱에서 레벨 4 이하의 '히어로'를 특수 소환. '에어맨'을 특수 소환했으니 이번에는 2장째 '리퀴드맨'을 패로 가져오겠다. 새로운 속성이 추가됐으니 아군들의 공격력도 추가로 상승."
[엘리멘틀 히어로 에어맨: 전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800 → 2600 / DEF 300]
[엘리멘틀 히어로 선라이저: ATK 3100 → 3300]
[엘리멘틀 히어로 앱솔루트 Zero: ATK 3100 → 3300]
[마스크드 히어로 다이안: ATK 3400 → 3600]
[시빌리언: 패 3장]
"다음은 '앱솔루트 Zero'로 '매그너라이거'를 공격한다. '순간빙결(Freezing at moment)'!"
차봉 '앱솔루트 Zero' 역시 망토를 휘날리며 적에게 달려든다. 곧 그 손길은 단번에 '매그너라이거'의 커다란 기체를 단숨에 얼음조각으로 만들더니, 스쳐지나가면서 아예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서문유진: LP 5300 → 4600]
"'에어맨'으로 '레드레이어'를 공격!"
'에어맨'의 선풍이 이번에는 '레드레이어'의 전신을 휩쓸어버린다. 이를 끝으로 유진의 '초량' 몬스터들은 전멸.
[서문유진: LP 4800 → 4200]
"'선라이저'로 네놈에게 다이렉트 어택이다! '샤이닝 너클 이그니션'!"
동료들이 싸우는 것을 지켜본 뒤에야 '선라이저'는 공중에서 다시 진정한 공격에 들어간다.
어디서 뜨는지도 알 수 없는 후광에 몸을 노을빛으로 물들이고는, 그 상태로 유진을 향해 뛰어들면서 빛에 뜨겁게 달궈진 정권을 정통으로 내질렀다.
[서문유진: LP 4200 → 900]
명치를 넘어 갈비뼈가 부러지는 듯한 충격이 유진에게 찾아온다. 그 동안 간접적으로 누적되던 데미지 이상으로 신경에 파고드는 격통이었다.
그대로 공중을 잠시 구른 채 바닥으로 나가떨어진 유진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진 빛덩어리에 잠시 눈이 멀어 눈마저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기침이 나오지만 다행히도 피 따위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맞은 부위가 타는 듯이 뜨겁다. 숨이 막힌다. 바닥도 없는데 굴러다닌 부위가 욱신거리는 느낌이었다.
살아 있기에 느낄 수 있는 고통을 맛보며, 그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낸 채 그대로 누워 있어야 했다.
"정신이 드나?"
시빌리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진은 잔뜩 찡그린 채 서서히 눈을 뜬다.
"내일의 태양은 네놈한테도 떠오르겠지. 하늘로 떠올라 어떤 것이든 비춰주니까 말이야."
"……."
'선라이저'가 물러난 지금 필드에 남은 빛이라고는 없다. 눈앞에 있는 서로의 모습을 제외한 모든 것이 칠흑.
마치 햇빛은 커녕 달빛도 별빛도 들지 않는 짙은 밤하늘 속 같다. 빛줄기 몇 가닥 따위로 거둬질지 알 수 없을 만큼.
이런 곳에서 내일의 태양이라니.
"그러니 얌전히 투항하고 심판을 받아들여라. 참회하고 반성하는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끝까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자신을 벌하겠다며 몰아세우고 있다.
그런 상대를 향해, 서문유진이 화가 치밀 이유로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누구 마음대로 심판이야? 댁이 뭔데?"
"끝까지 말로 해서는 안 통하는가. 좋다, 어디 또 발버둥쳐라."
끝까지 말이 안 통하는 상대가 누구인데.
유진의 머릿속이 계속해서 반박할 거리로 차오른다.
그의 말대로 발버둥치기 위해서라도, 하다못해 방금 받은 고통을 되돌려주기 위해서라도 유진은 일어서야 했다.
"카드를 1장 세트. 이걸로 마지막 턴이 되겠지."
"그럼 내 턴이야!"
[서문유진: 패 3장]
[시빌리언: 패 2장]
"스탠바이 페이즈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는 귀환. 속성이 하나 더 추가됐으니 '히어로'들은 더욱 힘을 얻는다."
[데스티니 히어로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 전사족 / 어둠 / 레벨 8 / ATK 2500 → 3500 / DEF 2100]
[엘리멘틀 히어로 선라이저: ATK 3300 → 3500]
[엘리멘틀 히어로 앱솔루트 Zero: ATK 3300 → 3500]
[마스크드 히어로 다이안: ATK 3600 → 3800]
[엘리멘틀 히어로 에어맨: ATK 2400 → 2600]
어느새 '영웅'이라는 이름의 장애물들이 적의 필드를 메우고 있었다. 반면 유진의 필드는 이미 텅 비어버린 상태.
처음부터 다시 세워나가야 하는 상황을 저들이 두고 볼리는 없다.
저들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패배하는 순간 벌칙을 내릴 장본인을 향해 직접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희망 운운하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도 그런 희망을 주겠다는 말이겠지. 적어도 죽일 생각까지는 없다는 것 쯤은 유진의 머리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건드려버린 자신의 운명은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그가 온전한 희망을 논할 정도로 제대로 된 사람일지 유진은 확신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대답도 바랄 수가 없었기에 일단 넘고 본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상대 필드에만 특수 소환된 몬스터가 존재하면, 마법 카드 '역경의 패'를 발동할 수 있어. 이걸로 2장 드로우."
[서문유진: 패 4장]
패를 확인한 유진은 또다시 숨을 골랐다.
이번에도 덱은 분명히 대답해 준 모양이었다. 자신이 충분한 신뢰를 주었든 말든.
"'초량요정 알팡'을 소환."
[초량요정 알팡: 천사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서문유진: 패 3장]
전에도 모습을 비춘 토끼같이 생긴 요정이 유진의 필드로 튀어나온다. 분명 자신을 코스트로 삼으면 덱에 있는 '초량' 멤버를 새롭게 불러와서 어떻게든 전개의 초석을 다져주는 카드였기에, 시빌리언은 두고보지 않았다.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의 효과를 또 발동하지. '알팡'은 사라져줘야겠다."
심판의 불꽃이 양쪽 필드를 불사른다. 모처럼 꺼낸 몬스터가 재조차 남기지 않으면서 유진의 필드는 다시 비어버리고 말았다.
"아직도 꺼낼 것이 남았다면 꺼내 봐라. 그게 진짜 마지막 발버둥이겠지."
"그래, 꺼내면 되잖아."
"…뭐?"
"아직 남았다고."
유진은 아직 엑스트라 덱에 대기하고 있는 '동료'들을 떠올린다. 이번 듀얼에서 내보낸 '이방인'은 단 하나. 이 상황에서 나머지를 부를 기회는 물건너갔다고 봐도 좋겠지.
"나는 전사족의 '레드레이어', 사이킥족의 '블루레이어', 마법사족의 '그린레이어'를 제외."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럴 필요조차 없으니까. 지금 상황에서 그는 쓸 수 있는 카드를 쓸 뿐이다.
카드의 신뢰니 뭐니 따지기를 이전에, 자신에게는 이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저 자가 말한 내일을 향하기 위해서라도.
애초에 이런 일이 한 두번인 것도 아니고, 남은 것을 꺼내라고 한 것은 저쪽이니까.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 중 합리적인 것을 따를 뿐이다.
"묘지에서 종족이 다른 몬스터 3장을 제외하고, 패에서 '아크네메시스 에스카토스'를 특수 소환!"
[아크네메시스 에스카토스: 드래곤족 / 빛 / 레벨 11 / ATK 3000 / DEF 2500]
묘지의 '초량'들을 코스트로 삼아 나타난 것은 그들과 전혀 관련이 없는 몬스터였다.
날개 달린 커다란 도마뱀 같은 모습은 틀림없는 용의 그것이지만, 혈관 처럼 체내를 퍼진 채 빛나는 수상한 에너지가 몸 구석구석에 독특한 무늬를 그리고 있다.
고무 케이블처럼 거뭇하고 질긴 꼬리 끝에는 하나의 행성처럼 생긴 구체가 유리막에 감싸인 채 달려있었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60.jpg](https://i1.ruliweb.com/img/25/04/12/19629229ff8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36_61.jpg](https://i3.ruliweb.com/img/25/04/12/19629229dd820b132.jpg)
"'에스카토스'의 효과. 필드에 있는 몬스터의 종족을 1가지 선언해서, 그 종족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난 '전사족'을 선언!"
"그렇게는 안 돼! 함정 카드 '무한포영', 이걸로 '에스카토스'의 효과를 무효로 하겠다!"
"속공 마법 '말살의 지명자'! 덱에 있는 '무한포영'을 제외하고, 그걸 무효로 만든다."
"크윽…!"
[서문유진: 패 1장]
용은 눈을 빛내며 눈앞의 적들을 주시한다. 그리고는 꼬리에 달려 있는 구체에 플라즈마 형태의 에너지를 응축해나간다. 행성의 궤도처럼 구체 주변에 있던 고리가 훌라후프 돌 듯이 돌아가더니, 고리의 빛이 전구처럼 유리막 전체를 밝히는 순간 필드 전체로 확산하는 파동이 되었다.
파동은 빠르게 뻗어나가 부딪히는 모든 것을 분해시켜 나갔고, 눈으로 보기에는 고요한 폭발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현상 속에서 '히어로'들은 저항조차 못하고 전멸했다.
그렇게 벽은 어이없을 정도로 단번에 허물어진 것이다.
"그럼 '앱솔루트 Zero'의 효과! 필드의 이 카드가 묘지로 보내지면 상대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
"'에스카토스'는 효과로 파괴되지 않아."
'앱솔루트 Zero'가 사라진 자리로부터 눈보라가 몰아친다. 일반인은 물론 어지간히 강인한 몬스터들에게도 살을 에는 추위겠지만, 필드에 유일하게 남은 '에스카토스'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유진도 그저 눈을 부릅뜬 채 눈보라 속에서 상대를 노려보고 있을 뿐.
"그, 그래봤자, '디스트로이 피닉스 가이'는 효과로 파괴되면 다음 턴에…."
"안 돼. 아까 선언한 종족은 다음 턴까지, 양쪽 다 특수 소환할 수 없어."
얼굴이 가려져 있어도 그 자신만만하던 시빌리언의 태도가 단번에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어느 샌가 발버둥치는 것은 저쪽이 되어 있었다.
"애초에 그쪽이 지금 다음 턴 기대할 때야?"
그 말에 시빌리언은 D-패드의 화면을 쳐다본다. LP 게이지, 남은 몬스터의 공격력. 그리고 지금 남아 있는 자신의 카드.
그것을 다 확인하고 난 시빌리언은 이를 갈았다.
"'네메시스(천벌)'…. 감히 외도가 나를 벌하겠다는 거냐!"
외도(악)가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부터 떠들던 저 양반이 진짜 '영웅(히어로)'이라기도 한다면 그걸 때려잡고 있는 자신은 정말 '악(빌런)'이 되어버린다.
진지하게 생각하게 귀찮은 논제였기에 유진은 그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벌 받는 사람은 지는 쪽이니까."
애초에 이 영역은 선악 따위를 따진 적이 없다. 누가 살아남고 내일을 쟁취할지는 오로지 게임의 승부 결과에만 달린 것이다.
이곳에서 상대를 찍어누를 힘을 가진 듀얼리스트를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걸 악을 심판할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은 정도(正道)일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은 유진은 답을 내릴 수 없다. 분명 이 자에게도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지는 않겠지.
"잘못없는 사람이 져서 그 꼴이 되는 걸 봤어. 그렇게 만드는 게 싫고, 내가 그렇게 되기도 싫었어."
"자백하는구나. 오로지 자기만 살아남겠다고…"
"이딴 곳인데 뭘 어쩌라고! 자기도 그런 듀얼 처음 해본 거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설쳐서 때려잡은 게 정말 나쁜 사람 뿐이야?"
"뭐가 어째?"
"지 마음에 안 든다고 애먼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았냐고?"
"확실한 악이라 판단되지 않으면 건드리지 않아. 네녀석이 뭘 안다고…!"
"다 본인 판단이잖아. 상대방이 뭐라고 해도 귓등으로 들을 생각 않던데. 그런 식으로 생사람 잡은 적 없다고 자신할 수 있어?"
"진짜 무고한 사람은 내 눈에 들 일이 없다."
어쩜 저리 확신에 찬 발언이 있을까. 그는 분명 유진의 신상을 확인했다. 어둠의 듀얼을 이겨낸다는 고통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비규환이나 다름없던 어둠의 게임장에서 살아남아 돌아왔다는 이유 하나로 그는 유진을 확실한 악이라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지 정의 구현하겠답시고 남의 사정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고! 그게 무슨 히어로야?"
"소통을 시도해서 돌아오는 게 변명 뿐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나? 무분별한 관용은 답이 아냐. 네놈 같은 놈들이 있는 이상."
"뭐?"
"그런 식이지. 인간으로서 엇나가버린 주제에 아닌 척 발뺌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 악행을 꾸밀 기회나 간보면서. 그러기 위해서라면 자기를 속이는 짓조차 주저하지 않아."
"……."
"구제할 방법은 악한 본성 자체를 끄집어내는 것 뿐이다. 자기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러 왔는지 뼈저리게 느껴서 말이지."
그런 그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걸 위해 이런 극약처방까지 마다하지 않는 것이라면,
"내가 그 정도라는 거야?"
"아직도 부정하는가?"
"…그래, 솔직히 내가 별로 좋은 사람인 건 아냐. 당신이나 내가 알던 다른 사람처럼 영웅심 같은 걸로 움직인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순전히 목숨 아까워서 싸운 거야. 그 동안 애꿎은 사람도 때려잡았을지도 몰라."
본인이 내뱉은 말을 곱씹어 본다면, 그의 식견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던가.
사람은 자기 스스로도 보이지 않거나 무심코 외면하는 면모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저 자라고 예외는 아닐 터.
"근데 어떻게 해? 그 쪽도 알잖아. 이 힘을 노리는 놈들하고 맞서려면 어차피 싸워야 돼. 그런 힘이 있는데 제대로 알 생각도 안 했다고? 제대로 아는 놈이나 알려주는 놈이 없는데 어떻게 해? 나는 뭐 가만히 즐기고 있었는줄 알아? 몇 번이나 말하지만, 그 동안 한 번도 재미로 해 본 적이 없어. 하기 싫다고 얘기해도, 그만두자는 얘기까지 꺼내도 한 번도 좋게 끝난 적이 없다고!"
변명으로 들린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듀얼의 승패는 정해진 상태. 최악의 결말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다면, 저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든 바꿔서 듀얼을 무승부로 이끌어보는 조치라도 필요했다.
안 되더라도 양쪽이 어떻게든 무사하도록 끝날 수만 있다면, 그는 투항(서렌더)이든 뭐든 해서 자신의 패배로 끝나더라도 상관없었다. 벌칙을 내리지 않고 끝난다는 조치는 자신이 아닌 타인이라면 가능할 테니까.
적어도 피를 보는 승리보다야 훨씬 나은 것이었다.
"당신도 그래! 왜 그렇게까지 의심하는 거야? 내가 갖고 있는 게 얼마나 심각한 거길래? 여기까지 왔으면 뭔가 알 거 아냐?"
몇 초간의 정적 후,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는 어쩐지 더 낮아져 있었다.
"…지긋지긋하구나. 그런 자기변명으로 어디까지 시간을 주체할 셈이냐."
"나도 이런 식으로 살기 싫다니까! 이런 인생이 계속되면 주변 사람까지 휘말릴지도 몰라. 아니, 이미 휘말렸어. 근데도 막연히 싸운다는 방법 말고 떠오르는 게 없어. 어째야 될지 그쪽은 알아?"
"닥쳐!"
이미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분노는 어쩐지 더 끓어오른 듯 보였다. 무슨 말실수라도 했을까. 아니면 말을 하면 할 수록 그의 분노가 부채질되기라도 하던 것일까.
"네놈이 뭘 안다고 지껄여! 소중한 걸 잃는 아픔을, 피비린내 나는 힘으로 일상을 영위하는 네놈이 알기는 하냔 말이다!"
결국 유진은 소용없다는 결과를 맞이해야 했다. 꽉막힌 저자의 머릿속에 유진의 진심은 전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의문에 답해줄 생각이 그에게는 없다.
답답해지는 머릿속에서 유진은 아직 성아린에게 통화하지 못했던 사실을 떠올린다. 이 영역을 빠져나오지 않는 이상 D-패드는 아직 연결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가서 통화해봤자 이미 늦었다면, 나아가 D-패드의 화면 너머로 다시 그 녀석의 메시지가 뜬다면 이번에는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그를 유진은 때려부숴야 할 장애물로 여겨야만 했다. 그것이 재버워키 같은 자의 속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유진의 이성을 붙잡는다.
"잃기 싫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모든 걸 놓지 않으려는 그 시덥잖은 욕망,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걸 희생시켜야 직성이 풀리겠나!"
이렇게까지 버럭대는 그를 보며 유진은 슬슬 이상함까지 느껴지려 했다.
"그런 힘 자기도 쓰고 있으면서! 이러다 친구나 가족이 당하기라도 하면 당신이 책임 질 거야?"
"이 자식……."
"당신 때문에 지켜야 될 걸 못 지키고 있잖아!"
"…………."
직접 공격을 받은 순간 이상으로 충격을 받은 듯, 시빌리언은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유진이 슬슬 끝이 보인다고 희망을 느끼려던 찰나,
"내 탓이라는 거냐?"
"뭐?"
카드가 쥐어지지 않은 손으로 그는 주먹을 쥐었다.
"…용서 못 해. 네놈은 절대 용서 못 해!"
승산이 없음에도 더한 분노로 발광하기 시작한 상대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다.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됐다. 처음부터 이 자에게 소통의 여지는 없었다.
방금 전에 주고받았던 데미지를 되갚아줌으로써, 이미 결판이 난 듀얼을 끝나면 되는 일이었다.
"배틀, '에스카토스'로 다이렉트 어택!"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있던 용은 비로소 주인의 지시에 따라 다시 꼬리로부터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슴 중앙에 달린 구슬 역시 따라서 빛나기 시작하더니, 그 끝에서 공처럼 질량을 키우던 빛이 작은 태양처럼 불타올랐다.
이윽고 그 불덩어리는 발사되어 무방비 상태의 적을 향해 내리꽂히고,
[시빌리언: LP 1000 → 0]
폭발 속에서 시빌리언의 몸뚱이가 나뒹굴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됐을까. 그냥 이전의 거슬리는 적처럼 해치워버렸으면 되는 일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유진 앞에서, 쓰러진 시빌리언이 다시 일어서려 하고 있었다.
"소용없어, 무슨 짓을 하던…"
데미지 수치로만 따지만 방금 전 자신이 얻어맞았던 것보다는 견딜만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마지막 일격으로 얻어맞은 치명타였음에도 그는 쓰러지기를 거부한 것이다.
마치 바로 이후에 일어날 운명을 거부하려는 듯이.
유진은 지긋지긋했다. 영역이 걷혀도 저렇게 움직여서 쫓아 오면 어쩐담.
만에 하나 진짜로 그러기라도 하면 일상이 여러 의미로 귀찮아질지 모른다.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귀찮은지 그는 아까부터 실컷 체감하고 있는 참이었다.
어서 벌칙이든 뭐든 찾아와서 저 자가 닥쳐주기를 바란다는 생각이 머리에 찾아오고 있었다.
"절대 가만 안…"
거기에 반응이라도 한 듯 유진의 디젠이 번쩍인다.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뜻이었기에 유진은 눈을 질끈 감고만 싶어졌으나, 그 순간에도 낯선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라버린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던 시빌리언 역시 유진의 디젠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확인했다. 눈을 넘어 머릿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그 빛이, 자신에게는 매우 익숙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이건….'
눈에 담은 자에게 참회의 기회를 안기는 계몽의 빛. 그 동안의 과오를 되짚어보며 자신의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를 고찰시켜줄 일말의 자비.
자신은 이 능력을 믿고서 어둠의 게임에 몸을 던져온 것이다. 그것이 어째서 소년의 디젠으로부터 나오고 있단 말인가.
왜 소년이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변명했는지 뒤늦게나마 깨닫는다.
과연, 과정은 다르지만 어쨌든 자신처럼 상대의 어둠을 그대로 비춰내는 처벌인 모양이다. 상대의 벌칙을 모른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당연하겠지.
자신은 그걸 알려고 하지 않았다. 자신이 정의한 악인의 행위에 들어맞는 짓이 아닌가.
스스로의 죄를 헤아린다. 악당은 적어도 자신이 심판받아야 할 이유를 똑똑히 깨달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까.
그것을 자신이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빛은 은막삼아 어떠한 풍경을 투영해 나간다.
먼저 보이는 것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뒷바라지해주던 부모의 모습.
부족한 점은 있었을지언정, 자신이 정의감을 품고 자라기는 충분하도록 선량하고도 다정한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이어 보이는 것은 그런 부모가 거실에서 힘없이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바닥에 흐르다 말라굳은 핏자국은 그들이 살아나기는 글렀음을 의미했다.
그는 갑자기 집에 쳐들어 온 강도로부터 부모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럴 능력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 같은 아픔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 불러야 할 정도로 정신없는 일과 속에서 집에 늦게 돌아가는 날이 많아졌다.
현관문을 열고 부엌이나 거실에 들면 이따금씩 동생을 마주치고는 했다. 유일하게 남은 식구였던 탓일까. 돌아오면 적적한 방에서 혼자일 수밖에 없는 동생은 그렇게나마 자신이 왔다는 것을 의식해주고 있었다.
드물게 밝은 모습으로 맞이해올 때면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 부모자식 사이도 아니니 과하게 건드릴 것은 없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한 동안 제대로 얘기한 적이 드물었던 그는 이 참에 기회라도 잡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타인이 아니니까 서로간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더 알아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방문을 노크해 보자,
"오지 마!"
난간 너머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귀를 찔렀다.
자신이 다가가 뭐라 설득해 보기도 전에 동생은 돌아서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서 뛰어 내렸다. 지평선 밑으로 들려오는 것은 무게가 느껴지는 충돌음. 뒤이어 비명소리.
그렇게 떠나보내고서야 동생이 교내에서 지속적인 따돌림을 당해 왔다는 사실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친구였던 것이 한 순간 돌아선 순간부터 시작된 괴롭힘, 애써 그 현장을 모른 척하는 학생들 사이에 시달리는 고통스런 나날을 그는 더이상 버티지 못한 것이다.
왜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했을까. 동생은 그 의문에 더 이상 답하지 못한다. 친구였던 아이를 찾아가도 뭔 일이 있었음을 알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얼마 후에야 그는 동생을 괴롭힌 주모자들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이전에 눈에 익었던 얼굴이다. 순진하고 분주했던 순경 앞에서 반성을 약속했던 그들은, 다시 찾아가보니 처음 봤을 때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경계와 도발을 해올 뿐인 그들을 때려눕혀봤자 원하는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더 잃으면 잃었지, 한 번 잃었던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혼자 남은 그에게도 다가와주는 사람은 있었다.
그 속마음은 어느 정도까지가 진심이었을지 알 수 없다. 더 잃을 게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더 살아갈 용기를 얻도록 호의를 베풀어준 것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동정일지 진심어린 동조일지는 상관없다. 그저 자신이 하는 일이 잘못되지만은 않았다고 격려하고 옹호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대화를 나눌 일이 많아지다 보면 점차 서로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상대방이 경험해 온 것, 깨달아온 것,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것. 그것을 받아들임으로서 그는 새로운 인연을 실감했다.
삶의 의미가 하나 더 생겨난다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었다.
그런 그 인연은, 이전에 단죄했던 학생이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패거리들에 의해 말 못할 짓을 당하고 말았다.
모든 것은 자신이 한눈을 판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설령 공권력이 주범들을 잡아 단죄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인연 역시 다시는 곁에 돌아와주지 않는다. 그들이 붙잡히는 순간 자신을 도왔다고 생각했던 하늘은, 다시 올려다 볼 무렵에는 황량하기 그지없을 뿐이었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이제 하나 뿐. 그렇게 생각하려던 그의 귓가에도 소식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알고 지냈던 전 동료의 순직, 단골 가게의 폐업부터 차에 치인 동네 강아지 소식까지.
주변의 무언가가 자꾸만 없어지고 바뀌어 나간다. 그런 순환 속에서도 거리는 딱히 바뀐 것이 없어보였다. 어쩌면 사람 한 두명 쯤 감쪽같이 사라져도 모르지 않을까 싶을 만큼.
그 가운데 뭘 해야 좋을지 물어보려고 해도 들어줄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전에도 그랬듯 스스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제서야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혼자랍시고 가만히 있는 동안에도, 잠깐 한 눈을 파는 사이에도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 원흉이 되는 것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 때마다 자신의 무력함을 실감한다.
무지가 상실을 초래하는 나날. 그 동안 구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계속해서 눈에 스친다.
소중한 사람들의 안위를 그는 한 번도 구해내지 못했다.
그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왜 구해주지 않는지, 이렇게 될 때까지 뭐 하고 있었는지, 눈빛으로 따지고 드는 것만 같았다.
이것이 환각(비전)임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차마 그 비난의 시선으로부터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영웅'이 되기를 택한 이유. 그것을 무시하는 순간 지금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무능도 무지도 죄다. 그걸 변명으로 삼아 빠져나가려는 이들을 자신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이러고 있어봤자 딱히 나아질 것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을 텐데.
이렇게 환각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것들은 더이상 돌아오지 않는다. 뭔가를 지키거나 구하려고 발버둥쳐봤자, 이 순간에도 자신은 잃어가고 있을 뿐이다.
의미를 찾는 일을 통해 보게 된 답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빌리언을 칭한 사내는 결국 눈을 가리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그 때도 그랬을 것이다.
이렇게 주저앉은 자신에게 '힘'이라는 것이 내려졌고, 자신은 기회라 여기며 그동안 바로잡지 못한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그 시작을 외면해버린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
같은 것을 지켜 본 유진은 어느 새 주저앉는 사내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한 편 영역이 사라지는 동안에도 둘 중 누구의 몸에도 이상이 생기는 징후는 없다.
여태껏 누구 하나가 곱게 끝나지 못했던 유진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게 벌칙이라고?"
"…………."
"설마, 방금까지 본 게 다……."
"…다 지난 일이야."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모습이 거짓말같을 정도로 사내는 침체되어 있다. 목소리에서부터 이미 처량할 정도로 무너져내려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여전히 헬멧으로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틈새로부터 눈물은 뚝뚝 흘러나왔다. 어깨도 부들부들 떨린다.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떡해야 되지?"
건장하게 보이던 남자가 갑자기 울어제끼는 꼴이 유진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색했지만,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본인이 전부 겪었다면 그 정도 이성이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자신보다 더 적극적으로 어둠을 몰아내려고 뛰어다닌 사람이 '어떡해야 되냐'는 질문을 던져봤자, 그저 방황할 뿐이던 유진에게 답이 있을리가 없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기억을 잊는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찾던 유진은 문득 벌칙이 끝났음에도 소통이 멀쩡히 이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벌칙, 설마 당신이?"
남자는 끄덕인다.
그는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질문에 대답할 여력까지 남아 있었다.
유진은 당황스러웠다. 이 듀얼은 패배한다고 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죄의 무게에 따라 .
그가 요구하는 것은 정말로 따끔한 반성이었다. 그렇게 강압적이던 사람과 붙은 결과가 이것 뿐이라고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한 거지? 그게 네 힘이었나?"
"…아마도. 제가 갖고 있는 건 상대가 내리던 벌칙을 돌려주는 거였나 봐요. 그래서 뭔 일이 생길지는 저도 몰라요. 먼저 상대쪽이 말하지 않는 이상."
이 자의 정의감은 나름 진심이었고, 살의로 변질된 것도 아니었다. 지금의 자신이 할 수 없는 심판을 그는 할 수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까 본 게 내 죄인가?"
"아니, 죄라니. 솔직히 뭘 잘못하신 건지도 모르겠고, 저였으면 버틸 수나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남의 인생, 그것을 본인 앞에서 함부로 판단하는 것에는 조심해야 함을 알고 있다.
"갑자기 어둠의 게임을 걸어온 건 용납이 안 되지만, 왜 그랬는지는 잘 알겠어요."
"…….……."
"나쁜 걸 바로잡고 싶은 건 진심이란 거잖아요. 그런 사람 또 하나 안다고 했었죠. 그 사람이 도와줘서 제가 버틴 거니까, 저는 고맙게 생각해요."
그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와서 충분히 말을 나누지 않은 것 뿐이다. ABC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의심하고 어둠의 듀얼을 걸어버린 남자처럼.
그러나 그 때와는 달리 지금은 둘 다 이렇게 무사히 끝날 수가 있었다. 오해도 풀렸으니 더이상 적대할 이유 따윈 없다. 서로에게는 다음 기회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로서는 어쩌면 진심어린 정의로 관용을 베풀어 온 응보가 되는 셈이다.
"네가 그 대회에 나갔다는 이유, 그게 사실이냐?"
"…네. 그런 거 아니면 관심도 안 가졌을 거에요."
"그 소중한 사람, 지켜낸 건가? 그렇게까지 싸워서?"
"네, 어떻게든. 거길 빠져나온 건 지금도 기적 같아요. 아직도 불안한데, 걔가 무사한 것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됐죠."
사내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미안하다. 나쁜 놈으로 몰아가서."
"네?"
"진짜 나쁜 놈은 따로 있었는데, 그 동안 내가 대체 뭔 짓을…."
"아뇨, 저도 잘못했으니까. 어쨌든 힘 내세요."
남자는 가까스로 표정을 정리한다.
"…그래, 힘 내야지."
소년의 말이 옳다. 여기서 주저앉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 몸이 멀쩡한 이상 자신에게는 아직도 정의를 실행할 의무가, 벌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그러니 더 움직여야 한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
"끝나지 않았다는 게…."
"내 사명. 내가 지켜온 의미를 이제 와서 부정할 순 없어."
남자는 기운을 되찾은 듯 보였다.
제 스스로 묻어둔 괴로운 기억을 다시 직면하고서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은, 한 편으로 유진에게 부러운 것이었다.
"이런 일만 또 없으면 어떻게든 되겠죠."
"없을 거다. 다시는."
어찌 됐든 승부는 이걸로 끝이 났으니 둘 모두 이곳에 더 있을 이유는 없었다.
"죄송했습니다. 그럼 무사하세요."
꾸벅 인사를 마치고 그 자리를 빠져나간다.
상상이나 했을까. 서로 어둠의 게임을 치른 상대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날이 오리라고.
잠시 후, 유진은 숨을 고르며 평범한 거리로 돌아와 있었다.
여전히 소란과 평온의 경계선에 있는 풍경 한 가운데에 그는 무사히 녹아든 것이다.
D-패드를 다시 켜 본 유진은 시간이 그리 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또다시 유노가 연락을 보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곧 집에 도착한다는 답변을 보냈다.
그리로 가겠다는 답신이 돌아오자 걱정도 팔자라는 감상을 품기도 잠시, 그녀의 걱정이 결코 괜한 것이 아님을 떠올렸다. 분명 방금 전까지 치르고 나온 듀얼은 다른 때였다면 목숨이 걸려있었을 테니까.
'진짜로 끝났어. 아무 일도 없이….'
끝났다고 해도 안심하기 이르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저번처럼 거리에서 갑자기 어둠의 듀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남아 있으니까.
방금 전 같은 기적이 또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 전에 빨리 집으로 돌아가서 다음 대책을 생각하는 편이 좋겠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다리가 다소 후들거렸기에 서루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낼 수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는 마음이 놓인다. 듀얼이 꼭 누군가가 죽는 꼴을 봐야한다는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혹시나 거기서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니까.
무작정 적의를 품고 상처를 줄 필요가 없다. 비록 한동안은 고된 싸움이 이어지겠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고 견디다면 분명 어둠의 듀얼로 고통받는 일은 끝나지 않을까.
어쨌든 메시지를 보낸 대로 집에만 도착한다면 그럭저럭 오늘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일이었다.
그러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어딘가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 시선을 따라가니 유진은 아까까지 있었던 자리 근처에 위치한 건물 옥상에 다다른다.
사람이 서 있다.
올라서기도 쉽지 않은 높이의 난간 위에 우뚝 선 채 위풍당당하게 자리잡은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것이 누구인지 유진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뭘….'
그냥 폼을 잡고 있을 뿐이겠지. 히어로로서 마음가짐을 다지고자 그는 으레 만화나 영화에서 다뤄지던 히어로를 따라하고 있을 것이리라.
유진은 그렇게 믿으며 넘어가고만 싶었다.
'설마…!?'
그 생각은 결론적으로 들어맞았다. 그는 어디까지나 히어로 행세에 충실했으니까.
망토를 두른 슈퍼히어로가 하늘로 도약하듯이, 난간을 시원하게 뛰어오른다. 그리고는 주먹을 앞세운 자세로 공중에 발을 딛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스런 비명이, 유진의 귀에는 어쩐지 함성으로도 들려왔다.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나 진짜로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은 광경이다.
그러나 슈퍼히어로가 아닌 그에게 비행 능력 따위는 없었다.
위풍당당한 도약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새도 없이, 그 일개 민간인의 육체는 빠르게 아래로 하강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것은 털푸덕, 하는 무게감 있는 소리.
그 귀에 익은 소리 다음으로,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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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듀얼도 짜는데 유난히 애를 먹었네요. 원래 작년 말에 이 파트로 끝을 맺으려고 했는데 뒤쳐지고 뒤쳐지다 4개월이나 잡아먹고야 말았습니다.
이게 처음에 주인공이 쓰려던 테마부터 다른 거였거든요. 일단 주인공 오리카하고 쓰기 좋겠다 싶어서 픽한 다음에 첫턴 로그도 짜고 대화도 막 짜고 있는데 나중에 지인 분께 검수를 받아보니 오류가 나와버렸단 말이죠. 아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예전에 주인공이 쓴 인연이 있겠다, 그냥 요번에 새 지원이 나온 초량 덱으로 바꿔버렸습니다. 한 번 굴려본 거라서 그런지 그나마 수월하게 진행될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 일단 대체된 테마는 다음 기회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대가 쓴 히어로 덱도 그래요. 자칭 히어로 캐릭터니까 히어로 덱을 줘야겠지 하고 막연히 시작했는데 주인공 카드는 웬만하면 배제해야겠다고 생각했더니 빼야될 게 좀 많았습니다. 정의로운 어둠의 상징인 주인공만의 에이스 네오스는 첫빠따로 아웃, 데스티니 히어로도 설정이 설정이니까 빼야되지 않나 하고 고심하다가 진짜로 빼면 만들어야될 오리카가 넘쳐날테니 억지 좀 써서 투입. 그래도 빠진 자리를 메우기 위해서라도 오리카... 만들어야겠지? 하고 디자인도 해가면서 진행해가고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 덱 바꾸고 듀얼로그 재개했더니 듀얼은 어떻게든 완성... 엣? 오리카 등장 도꼬? 하면서 나가리 엔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쨌든 뭔가 고비 하나를 넘긴 듯한 기분도 드는데 예정된 듀얼은 아직도 많이 남았습니다. 다 쓸 때가 또 언제일지 걱정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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