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를 살짝 넘긴 시각.
아직 수업이 진행 중인 교실은 평소와 비교해도 대체로 조용한 편이었다. 정석대로 교과서나 D-패드에 시선을 향하고 있든,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든, 아니면 아예 옆자리 학생과 수근거리고 있든 간에, 학생들 사이에서 딱히 소음이라고 할 만한 수준의 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업 중이던 교사는 이미 책상 사이 곳곳에서 삐져나온 발끝을 인지하고 있었다. 곧 점심 시간을 앞둔 지금이기에 이뤄지는 준비 동작이리라. 이런 시간대가 아니라면 지금쯤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학생의 모습이 보였을 터.
종이 땡 울리는 대로 책상 사이의 다리들은 잽싸게 본체가 되는 몸뚱아리들을 교문 밖으로 이끌었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한 순간 교실 내를 들끓는다.
먼저 나갈 순서를 빼앗긴 교사가 한 순간 허탈한 표정을 지은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유진 역시 이들과 다를 것 없이 당장 교문 밖을 뛰쳐나갈 채비 중이었으나, 수업이 끝나는 대로 D-패드를 끄기 직전에 알림이 오는 것을 확인한다. 그냥 무시하고 다음에 확인하려니, 보낸 이의 이름은 결코 그럴 수가 없게 만드는 것이었다.
-Juno: 밥 먹었어?
갑자기 뭐지. 유진은 잠시 다리를 멈춘다.
왜 느닷없이 다른 반에 있는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던졌을까.
-Eugene_S: 아직
-Juno: 잘 됐네
-Juno: 매점 같이 가자
단순히 같이 점심이나 먹자는 안부 인사지만, 어째 뜬금없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이는 단순히 명분을 삼은 호출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불러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어둠의 듀얼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리라.
"안 가고 뭐해?"
"오늘 메뉴 뭐였지?"
"방어조림이랑, 버섯 크림 스파게티랑, 텐동이랑…"
"패스. 매점이나 갈래."
"와, 맛알못."
무슨 얘기가 나올지 불안을 품으면서 일단은 매점 가는 길로 향했다.
마침 유노가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뒤를 따르듯이 합류한다.
"마침 잘 됐네. 오늘 학식 메뉴도 썩 내키는 건 없더만."
"그래. 뭐 먹을래?"
"사 주게? 됐어."
안타깝게도 매점에서도 먹을 만한 빵은 벌써 다 털린지 오래였기에, 남은 것 중 적당히 무난한 것과 우유 한 팩을 고르고 빠르게 나온다. 줄까지 서서 고르기엔 손해가 아닌가 싶었지만.
이후 자판기가 세워진 구석 옆에 선 채 자리를 잡았다. 금연 구역일 텐데도 묘하게 담배 냄새가 풍겨오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리라. 빵 나눠먹으면서 하는 이야기는 옥상 같은 곳에서 나누는 것이 제격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출입 금지가 된지 오래였다.
모처럼 사놓은 빵 봉투를 뜯지도 않은 채 유노는 바로 화제를 꺼내기 시작한다.
"그 동안 별 일 없었어?"
역시나. 유진은 말을 꺼내도 될지 망설인다.
"솔직하게 얘기해도 돼?"
"그러라고 묻는 거잖아."
안부를 묻는 동시에 가벼운 심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진은, 불안을 달래 보듯 한숨을 내쉬었다.
"했었어. 어둠의 듀얼."
바로 유노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는 것이 보인다.
"언제 어디서?"
"그저께 밤에. 집에 쳐들어왔더라고."
"왜 그걸 얘기 안 했어?!"
덜컥, 하며 가슴이 철렁이는 감각에 유노는 저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 한 순간 유진은 내심 저렇게 소리 지를 줄 아는 아이였구나 하는 평가를 내렸다.
그리고는 뒤늦게 주위를 살피며 다시 작게 목소리를 낮췄다.
"하다못해 어제 얘기 했어야지."
"아니아니, 이겼으니까 됐잖아."
"내가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너도 일하느라 바쁜데. 내 앞가림은 내가 해야지."
너무 신경쓰지 말라는 뜻으로 한 말이 내 일에 상관 말라, 라는 뉘앙스로 들렸는지 유노는 입술을 살짝 깨문다.
"그것도 한계가 있는 거잖아."
"미안."
유노는 한숨을 삼킨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봤자 상황만 곤란해질 뿐이라 판단한 것이다.
"…나야말로 화내서 미안. 어쨌든 딱 한 번 경험한 거긴 하지만, 전해둬야 할 게 있어서 불렀어."
"어떤 건데?"
"너, 네가 쓰러뜨린 상대들이 누구누구였는지 기억해?"
아픈 기억을 들쑤시는 꼴이 되기는 했지만, 그 승리들이 있기에 자신은 아직도 이렇게 살아있을 수가 있었다.
"그야, 아직은."
"그래. 조심하는 게 좋아."
그리고 왜 그런 소리를 했는지, 경험에 기반하여 미리 답을 알아낼 수가 있다.
"혹시, 쓰러뜨린 적이 다시 나타난다던가, 그런 얘기 하려고?"
"그걸 어떻게?"
"그 때 쳐들어온 것도 그런 놈이었거든."
"……."
늦었다.
그렇게 느낀 듯 더욱 심란해져가는 표정을 보고서 유진은 그녀를 달래려 들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 한 번 흔적도 없이 해치운 놈이 다시 집에 기어들어와서 덤빈다니. 호러도 아니고 솔직히 그걸 어떻게 예상해?"
기껏 도와주겠다고 말해놓고, 그녀가 없는 사이에 유진은 다시 만난 상대를 제 손으로 쓰러뜨려야 했다.
물론 이렇게까지 대화를 나눠놓고 그녀를 탓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자신에게는 자신의 일이 있듯이, 그녀에게는 그녀의 일이 있으니까.
"태연하게 말하네."
"도망쳐도 소용없다는 거 알고 있으니까."
경험에 기반한 확실한 깨달음. 그것을 입에 담는 유진은 이상할 정도로 태연해보였다.
그 대답에 유노의 표정이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아직도 싸우기 싫어. 근데 싸우는 것 말고 뭔 답이 있는지도 몰라. 그럴 바엔 그냥 각오하고 있는 게 낫지 않나 싶거든."
"다른 친구는? 아린이는 어떻게 할 건데?"
그렇게 그나마 태연해 보이던 유진의 표정도 질문 한 번에 다시 무거워진다.
그 무게를 덜어보려는 듯이 유진은 한숨만을 내쉴 뿐이었다.
"그러게. 어떡하면 좋냐."
여전히 그런 무책임한 대답이나 할 수밖에 없는 제 스스로에 속이 터질 것만 같다.
목숨에 위기가 찾아와도 답을 찾지 못한다니.
이를 무마해 보듯 유진은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는 숙업을 제시해본다.
"일단, 너처럼 나쁜 놈들을 하나씩 해치우다 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서문유진."
"아니, 그것말고 답이 없잖아. 너도 그러고 있고."
"………."
분을 삭히듯이 유노가 입을 다문다.
"나도 알겠어. 그 놈이 내가 계속 싸우길 원한다는 거. 죽은 놈 살려서라도 그러고 싶다는데, 누가 지켜봐 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겠지. 너도 잘 알 거야."
자신이 싸우기를 원치 않는 그녀는, 어차피 싸움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해줄 수 없다. 제 스스로 싸우느라 바쁠 테니까. 자기가 아린을 완전히 보호할 자신이 없듯이.
그 속이 터질 듯한 마음에 동병상련이라도 느껴버릴 것 같다.
"누굴 탓하겠어. 그 재버워키라는 놈을 탓해야지."
그렇다고 은인의 가슴에 못을 박아버리는 소리를 계속 늘어놓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앞으로도 얼마나 고맙다는 소리를 해줘야될지 모를 애한테 밉보여서야 곤란하니까.
"아니면, 그 애를 빨리 찾아내던가."
"노력하고 있어."
"알아. 그리고, 네가 나 도와주고 싶어하는 거 잘 알고 있으니까, 나도 뭔가 도움이 될 건 없을까 하는데."
"됐다고 했잖아."
곧 유노에게는 도와줄 동료라는 것이 있음을 떠올린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 매몰찬 대답이 아닌가 하며 서운함을 느끼기도 잠시, 악의는 없음을 알고 그냥 화제를 돌리기로 한다.
"그 태스크 포스에 있는 사람들, 유능하겠지?"
"검증된 사람들이니까. 목숨 거는 일에는 나보다도 익숙하겠지."
"그래. 그런 사람들이 달라붙어도 이렇다는 거구나. 그럼 나 있어봤자 소용없겠네."
다시 한숨.
"얼마나 어려울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런 걸 상대해야 된다는 게."
"…그러게."
"도시 세울 때부터 예상은 했어야 됐는데. 진짜 뭐든지 할 수 있나 보네. 그런 놈이 왜 세상에 있는 거냐고."
"응."
"근데 내가 한 번은 이겼잖아. 그럼 역시 나도 거드는 게…."
"두 번 이긴 상대가 있잖아."
"아…."
"몇 번 이겨야 완전히 쓰러질지 상상은 가?"
"으음…."
과연,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는 문제다.
그 검증된 사람들을 모았다는 집단마저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여전히 아마추어 듀얼리스트 신세이자 일개 학생인 자신이 떠올릴 수 있을리가 없다.
"이건 듀얼 몇 번 잘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냐. 그런 놈들이 듀얼로만 도전한다는 보장도 없고. 특히 재도전의 기회가 생기면, 듀얼로는 소용없다는 걸 알고 다른 수를 쓴다는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어."
"그러, 려나…"
그 얼빠진 대답은 아직 자신의 처지를 잘 깨닫지 못했다는 것으로 들렸기에 유노는 더욱 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그런 놈이 주시하는 너는 당장 맞서는 것보다 제 간수부터 잘 하는 게 급선무라고."
"그건, 리퍼도 마찬가지 아냐?"
"그거야 노릴 만한 힘이 리퍼한테 있을 테니까. '동포'라고 했었지?"
"그랬던 것 같기도."
"너는 그게 아니잖아. 너희 아버지께서 특이한 카드를 선물해준 것 말고는 다른 게 있어?"
"그래도, 그 카드가 실마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너 혼자 그 카드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겠어?"
유진은 반박하지 못한다.
세계의 침략자를 막아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고 얘기했을 텐데, 영역을 빠져나온 뒤로 그 'ET레인저'들은 대화라는 것을 거의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전처럼 어둠의 듀얼을 겪는 순간의 미세한 전율을 통해서나 그들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것을 소통이라 할 수 있을까. 이래서야 그 만남의 순간이 단순한 꿈이나 환상이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어진다.
"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쪽이야. 더이상 안전한 데도, 도망칠 데도 없잖아."
"도망칠 수 없으니까 싸워야 되는 거잖아."
"맞아. 그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니까. 아예 싸우지 말라는 게 아냐. 단지, 그 놈이 원하는 대로 넘어가지 말라는 거야."
"그건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럼 잘 생각해 둬. 넌 지금 철저하게 장난감 취급 당하는 거니까. 망가질 때까지 험하게 굴리기 좋은 장난감. 다른 어둠의 듀얼리스트라고 다를 것 없겠지. 그렇게 살기 싫잖아?"
"그건 그래."
"응. 중요한 건 너 자신의 마음이 어지럽히지 않게 조심하는 거야."
"그래도 아직은 멀쩡해."
"정말? 상대한테 죽어버리라고 진심으로 생각한 적이 정말로 없어?"
"……."
그저께 밤에 자신에게 패배해서 불타 사라지던 상대의 모습을 떠올린다.
지옥에서 돌아온 적을 다시 지옥으로 보내버렸다는 어렴풋이나마 통쾌한 기분. 그것을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가슴 속이 무언가에 찔린 듯한 느낌이다.
자신보다 더 먼저 싸워 왔던 그녀는 분명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내다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평범하게 살려는 사람이 할 생각은 아니잖아. 나중에 가까이 있는 사람한테도 그런 생각을 안 할지 어떻게 알아?"
착잡한 마음이 더해간다.
상대한테 살의를 품고 전력으로 공격한 자신이, 정말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됐던 것일까.
재버워키가 자신한테 원했던 것이 그런 살의였다면, 이미 때는 늦어버린 것이 아닐까.
그런 자신을, 아이바 유노는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최대한 관용을 베풀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정도로 자신이 신뢰를 받고 있다는 말인가.
나대지 말고 짜져 있으라는 말을 들으면 섭섭하지 않을리가 없다.
그러나 그런 진의가 내다보인다면 무작정 반발하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싸우다 보면 그럴 수 밖에 없잖아. 그렇게 안 되려면 내가 더 몸사리는 것말고 다른 방법이 있어?"
"더더욱 몸사려야지."
그게 무슨 대답이냐, 하고 따지려니 뒤이어 대답이 돌아왔다.
"힘을 합치자."
"어떻게?"
"네 집에 가 봐도 될까?"
나올 만한 이야기라는 예상은 있었다. 그러나 막상 진짜로 들으니 유진은 무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안 될 거야 없긴 한데. 갑자기 왜?"
"아무리 몸을 사려도 학생 신분으로 달리 지낼 데를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집에 있을 수밖에 없잖아. 한 군데라도 안전을 확보해야지."
"어떻게?"
"만약을 대비해서 대신 싸워줄 사람을 마련하는 거지."
"설마, 거기서 지내려고?"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네."
"…집에서 뭐라고 안 할까?"
"그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아니, 걱정이 되잖아, 솔직히! 갑자기 여자애 집에 들여놓으라 그러면 이상한 생각밖에 안 들지! 그러다 소문 돌면 어떡하게?"
"소문? 무슨 걱정을 해. 너 이미 아린이하고…."
"뭐?"
"…아니, 아무것도. 아무튼 그러네. 프라이버시도 무시 못할 문제겠지."
무모하고 당돌하다는 것이야 이미 만나면서 알고는 있었다만, 이런 소리를 아무렇게나 꺼낼 수가 있을 줄이야. 학생 신분에 본업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까지 뛰고 있는 녀석이 묘한 데서 상식이 떨어지는 듯 보인다.
유진 입장에서는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있는지 신기하게 여겨질 지경이었다.
"그렇게까지 내가 신경쓰여?"
"응,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냐?"
"나하고 넌 상황이 다르댔잖아."
더구나 같은 또래의 아이가 보호자 노릇을 자처하겠다니, 무안해지는 일에도 정도가 있다.
여태까지 살아남는 데에 그녀, 그리고 리퍼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여지없는 사실. 그런 호의를 차마 싫다고 거절할 수는 없어도 선뜻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아직 자립도 하지 않은 자신이 또 누군가의 짐이 되어버리는 것은 찜찜한 일이니까.
"뭐, 그거야 그렇지만. 가족이든 직장 동료든, 너한테도 걱정해주는 사람들 있을 거잖아. 너 다음엔 그 사람들 신경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너도 걱정해 주는 거야?"
유노의 대답에 갑자기 무안해진 유진은 대답을 꺼내지 못하고 잠시 침묵한다.
"아무튼,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해. 진짜로야. 그치만, 웬만하면 마음만 받을게."
유노의 시선이 아까부터 섭섭해하거나 주눅들어 하는 듯한 반응으로 보이는 것은 유진의 착각이었을까. 그렇기에 한 마디를 더 덧붙이기로 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가 부를 거니까."
"그냥 불안하다 싶으면 연락해. 나든 누구든 올지 모르니까."
그제서야 유노는 빵봉지를 뜯는다. 같이 먹을까 하고 유진이 봉지를 뜯으려니, 그녀는 꺼내든 빵을 반씩이나 떼어서 유진에게 내민다.
"자."
"어, 왜 나 줘?"
"식욕이 별로 없어서."
"그렇… 겠지만, 그것만 갖고 돼? 적어도 움직일 힘은 챙겨야 되지 않겠냐?"
잠시 곰곰히 생각하던 유노는, 나눠준 반에서 또다시 반을 쪼개고 다시 나눠주었다.
"이거면 돼?"
"그래그래. 나 챙겨주기 전에 너부터 좀 챙겨."
조심스레 받아든 빵조각을 유진은 한 입에 우겨넣는다. 그렇다고 딱히 간에 기별이 가는 것은 아니었다.
"힘이라고 했지. 너, 전보다 기운이 넘치거나 하진 않아?"
역시, 마찬가지로 디젠을 소지한 자로서 그런 경험을 모를리는 없었다.
"그렇긴 해. 잠도 설칠 정도라니까. 남의 디젠에서 나온 에너지를 빨아들이면 그런 거야?"
"그런가 봐. 혹시 그것 때문에 싸운 보람을 느끼고 있지는 않아?"
"딱히. 솔직히 좀 꺼림칙하지. 이런 힘 없다고 세상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응, 그럼 됐어."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은 듯 유노는 살짝 끄덕였다.
유진은 내심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녀의 태도는 어떻게 변할까.
그러나 아무리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를 꺼내는 모험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잠자코 사온 빵이나 먹기로 했다.
그 전에 유진은 봉지를 뜯자마자 빵을 반으로 가른다.
"자."
"식욕 없다니까."
"말했잖아. 너부터 챙기라고. 나보다 더 빡세게 살고 있으면서."
대뜸 내미는 빵조각을 유노는 마지못해 받아든다. 정말로 먹어도 되는지 살피는 양 그걸 잠시 쥐고만 있는 듯 싶더니, 이내 조금씩 떼어서 입에 넣기 시작한다.
"저번에 메이드 카페 일은 더 안 해?"
"안 하지. 본업도 있는데 뭐하러."
"아린이 섭섭해 하겠다."
"오래 할 것도 아니었는데, 뭐. 미안하다고 걔한테 전해."
"그래. 이 참에 아린이하고 주소 교환하지 그래?"
"그래야겠네. 걔도 위험해질지 모르니까."
"응, 잘 부탁해."
입에 밀어넣은 빵조각 다음에는 입가심하듯 흰 우유를 삼킨다.
여차하면 그냥 아침 식사로 때우기도 했던 그것을 유진은 막힘없이 쭉 들이켰다. 그리고는 빈 우유팩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넣는다.
"먼저 갈게."
"응."
유노는 따라서 교실로 돌아가기보다는 그 자리에서 잠시 더 생각하고 있기를 택했다.
역시 자기 자신만의 일이 있는 입장으로서 타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그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만약에 그 동안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기라도 한다면.
그런 애를 결국 자기 손으로 처리하는 일이 생긴다면.
모든 것이 헛수고였다고 한다면.
그런 애한테 자기 간수나 잘 하라는 말을 들으면 뭘 어째야 하는가.
'적에게 살의를 품었냐는 물음에, 저 애는 부정하지 못했지.'
여태까지의 대화를 듣고 있던 리퍼 역시 비슷한 의견을 품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싸우기 싫다고 했잖아. 고민하는 건 진심 같던걸.'
'재버워키가 그렇게 놔둘리가 없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싸움을 강요해 올지도 몰라.'
되살아난 적과의 리벤지 데스 매치.
자신에게만 해도 충격이었던 일을 거의 동시기에 유진 역시 겪고 있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만큼 그 역시 당황했으리라. 방금 전까지 보였던 모습 역시, 애써 태연한 척 하는 것이 뻔했다.
'위태롭군. 정말 두고만 봐도 괜찮을까?'
자신과 같은 의문을 머릿속에서 던져 온다. 그것은 조용히 지울 수 없는 생각이 되어 머릿속을 떠돌았다.
해치우려면 진작에 해치울 수가 있다. 승패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무시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러는 편이 덜 귀찮고 후환도 덜 하겠지.
몇 번이고 그럴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으니 지켜보길 택했을 뿐이다. 아마도 유진 본인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자신의 처지에 자포자기를 할지언정, 즐기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선택은 끝까지 하지 않으려 들고 있었다.
어둠에 대항하겠다는 마음이 그에게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최소한 자신의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주고 있다.
그런 아이를 두고 편리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선택을 반대하는 마음은 분명 죄악감일 것이다.
그것을 존중해서 리퍼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겠지.
뭘 어째야 하는가.
유진이 품고 있는 고민을 자신 역시 품고 있었다. 그 애의 지적대로 자신 역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서로가 다를 것이 없는 셈이다. 입장이 반대였다고 해도, 역시 다를 것 없는 상황이 펼쳐졌으리라.
그러던 유노는 다른 실루엣을 확인하고 흠칫한다.
한 명의 여성이 서있었다.
이국에서 온 사람인지 흰 천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그 인상착의로 보건대 학생은 커녕 교직원으로도 보이지가 않는다.
유노는 싸움의 예감을 감지하며 긴장한다.
그러나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순간, 환각이었다는 듯이 그 사람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아까 그 사람…'
'기척이란 건 없던데.'
리퍼조차 제대로 감지할 수 없다면, 환각이라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유노는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D-패드를 챙겨들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 봐도 식당이나 매점에서 돌아오는 다른 학생들 말고는 딱히 보이지 않았다.
'누가 언제 적으로 찾아올지 몰라. 지금 이 순간에도 긴장해야겠지.'
'잘 알아.'
유노는 환각이라고 판단한 것을 다시금 의심해본다. 단순히 피로가 누적된 탓이었을까.
요새 들어 쉴 수 있는 순간이 별로 없었음을 떠올린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누적된 피로 때문에 갑자기 쓰러져서는 곤란하다.
유노는 기운이 빠진 듯 잠시 간이 의자에 다시 주저앉았다.
조비스 "조브" 하스웰. 프로 듀얼리스트 겸 카이바 코퍼레이션 산하 조직인 '듀얼 태스크 포스' 소속의 카드 프로페서.
그는 여기 처음 왔을 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일들을 해야 하는 처지였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시점부터 각오하고 있었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말 그대로 카드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얼마나 헛웃음이 나왔는지 모른다.
지금 하는 일도 그렇다. 자신은 이런 곳에서도 듀얼리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참, 웃기는 일이 다 있다니까. 아니, 딱히 안 웃기지.'
그는 감시원의 안내를 따라 어떤 남자가 구류되어 있는 취조실로 향했다.
여느 경찰서에 있는 시설과 다를 것 없어보이는 구조의 방에 들어서며 조브는 눈앞에 남자를 마주한다.
"잘 있었어? 어때, 처음에 간 유치장보다 지낼만 하던가?"
책상 너머의 그 남자는 수갑과 족쇄로 손발을 구속당한 상태.
아무렇게나 뻗친 산발한 머리와 수염은, 그가 자기 관리를 할 수도 없는 처지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 남자는 인사에 대꾸도 없이 퀭한 눈매로 쳐다만 보고 있을 뿐.
"……."
"별로였나? 썩 쾌적할 텐데. 너같은 놈들한테 과분할 정도로."
그는 몇 주 전 '카이바 랜드'라는 유원지에서 테러를 시도했다는 혐의로 아직까지 이곳에 구속되어 있는 상태다.
다만 그 신병의 구속이 경찰이 아닌, 유원지를 운영하던 카이바 코퍼레이션 자체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특이 사항이었다. 보아하니 전부터 회사의 사유지에서 일어난 문제는 사측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 특권이 주어져 있다는 모양이다.
웬만한 대기업이라도 시도도 못할 월권이나 다름없어보이는 행위를 이곳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그 회사에서 얼마 안 되는 단서로 눈독들이고 있는 이 남자는 벙어리라는 듯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돌고 돌아 자신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는 것이고.
"억울할 거야, 그치? 낙서 좀 한 다음에, 놀이공원에서 가방 하나 던졌을 뿐인데 사람을 한 달 가까이 잡아넣고."
"……."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으니까 이러는 거거든."
조브는 한숨을 쉬고는 손을 깍지 낀다.
"당신 잘못 걸린거야. 다른 데 같았으면 적당히 입 다물고 있어도 진즉에 풀어줬을지 모르는데, 본사에서 감을 잡아버렸단 말이지. 뭔가 다른 일을 펼치기 전에 연막을 치는 건 아닐까, 하고. 선전포고도 할 겸."
몇 년 전, 이미 지금만큼이나 보안에 열을 올리던 시절에 희한한 능력으로 감시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도시의 질서를 위협하던 집단이 있었다.
그들을 사실상 놓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기에, 본사는 다음에 걸리는 녀석이라도 가만 안 두겠다며 벼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곳을 운 나쁘게 이들이 기어들어온 것이다.
"내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지, 여긴. 세상에 어떤 기업이 도시 전체를 제 영지 주무르듯이 할 수가 있냐고. 보아하니까 예전엔 사람 잡으려고 용병은 물론이고 청부업자에 고문기술자에 연쇄살인범까지 고용했다더만. 이게 첨단기업의 민낯이란 거거든."
자신이 언급한 소문을 도미노 시티 사람들 중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기업의 정보 은폐 능력은 수집력 만큼이나 뛰어나다.
언론의 접근까지 별에 별 수를 동원해서 막아가며 통제하고 있으니까. 듣자 하니 행방불명 처리된 언론인까지 나왔다는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를 대놓고 꺼낸다는 시점에서 곱게 보내줄리가 없다는 것을 알 텐데. 그러고도 여전히 그는 입을 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최대한 인도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는데도 댁은 입을 꾹 다물고 있지. 불리한 진술 내뱉어서 동료들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 이건가? 대단한 동료애구만."
"…………."
그는 동정했다. 그가 그런 회사의 비위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한 편으로 평온한 일상을 어지럽히려 든 이 작자를 용서해주기도 힘들었던 만큼 인과응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나 함께 작전에 나선 인간들이 소중하다는 말일까. 체포에 실패한 이들은 여지껏 뒤져도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고 있지 않은데. 그냥 버리고 떠났을 가능성도 높은데도 말이다.
"묵비권이라. 근데 그건 일반적인 수사 기관들한테나 통하는 소리지. 우린 딱히 공권력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조브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든다.
"여기 들어오는 조건이 뭔지 알아? 듀얼 포함해서 '뭔 일이든' 수행할 것. 뭐, 주로 듀얼 관련이긴 한데, 가끔 각오 단단히 해야되는 다른 일이 있단 말이지. 카드 게임갖고 목숨 거는 일자리라는 게 있다는 걸 여기서 처음 알았다니까."
꺼내든 덱 케이스를, 그는 팔에 차고 있던 D-패드에 부착한다. 그렇게 듀얼 디스크의 세팅이 완료되었다.
그리고는 뉴런즈 기어를 남자의 머리에 부착시킨다.
"알겠지? 지금 이 자리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얘기야."
몇 주간이나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남자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죽일 테면 죽여."
남한테 죽여달라고 부탁하다니. 그야 스스로 죽지도 못할 것이니 당연하리라.
온몸에 숨겨놓은 흉기는 물론이요, 이빨에 껴놓은 청산가리 캡슐조차 회수해버렸으니까. 24시간 철저히 감시당하던 그는 어떤 행동이든 통제 당하는 처지다.
"이딴 곳에 더는 있기 싫어. 너네 같은 놈들에게 더 지껄일 이야기는 없으니 죽이란 말야."
조브는 코웃음이 나온다. 그것이 웃겨서 그런 것이 아님은 남자도 알고 있었다.
상대가 듀얼 디스크를 차고 있지 않음에도, 본인 혼자 준비를 갖춘 듯 조브는 세팅된 덱에서 뽑아든 카드들을 들여다 본다.
그 중 1장을 듀얼 디스크의 카드 슬롯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인식된 카드 이미지가 실체화되더니, 불꽃이 그려진 그림으로부터 진짜 같은 불꽃이 튀어올라 남자를 덮쳤다.
"끄윽……!"
"'스파크'. 상대에게 200 데미지를 준다."
[LP 8000 → 7800]
남자는 진짜 불꽃에 지져진 것 마냥 신음소리를 낸다.
"어때, 카이바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한 차세대 솔리드 비전의 위력이? 감도는 최대한 현실에 가깝게 재현했다지만 몸에 남지는 않거든. 사는 데에 지장은 없을 거야. 그래, 어둠의 듀얼이란 걸 할 때처럼 말이지."
온몸의 통각 기관을 도려내고 싶어질 정도의 실감. 이런 기능이 일반적인 듀얼에 쓰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고통을 주고받는 진짜 목숨을 건 결투라니. 그런 게 현대에 정식으로 인정받아서는 곤란하다. 비록 자신이 그런 일을 하고 있는 처지라지만.
"그 어둠의 듀얼에 대해서도 아는 거 있지 않아?
"…………."
대답이 없다. 다음 카드를 놓을 차례다.
이번에 나온 카드로부터는 더 거센 불덩어리가 튀어나와 남자의 몸뚱아리를 휩쓸었다.
"'파이어 볼'. 이번엔 500 데미지."
[LP 8000 → 7300]
"죽이라고…."
"만족이 안 되시나? 걱정 마, 카드는 많이 남았으니까. '화형'. 600 데미지."
[LP: 7300 → 6700]
"'대화재'. 800 데미지."
[LP: 6700 → 5900]
"'데스 메테오'. 1000 데미지."
[LP: 5900 → 4900]
협조에 불응할 때마다 카드에서 출력되는 불길은 가면 갈 수록 데미지 수치와 함께 더 거세져간다.
작열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심한 부류라는 정보가 있음에도, 그는 화상에 적응이라도 된 것인지 여전히 입을 열 기색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입을 카드로 열게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었기에 차마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
"아직도 말 못하시겠다? 다음은…, '파이어 소울'. 실례, 1장 뽑아주세요."
조브의 지시에 따라 별도로 배치된 감시관 하나가 별도로 마련된 D-패드에서 카드를 드로우한다. 이걸로 나머지 효과가 무사히 처리되었다.
"그럼, 덱에서 화염족 몬스터 하나를 제외하고 그 공격력 절반만큼의 데미지를 줄 수가 있지. 공격력 3000의 '사악한 화염 제왕 테스탈로스'를 제외. 이걸로 1500 데미지야."
이번에 출력되는 불꽃은 무언가가 달라보인다. 마치 원근감을 뒤흔들 정도로 커다란 거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악한 화염(邪炎)'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인의 주변에는 해골을 연상시키는 시퍼런 원령의 아지랑이가 떠돌고 있다.
그런 불길한 기운을 풍기던 거인은 활활 타오르는 양팔을 벌리고는 그대로 남자의 몸을 서서히 안았다. 그렇게 시뻘건 불꽃이 천천히 남자의 몸을 침식해 온다.
[LP: 4900 → 3400]
"끄아아아아아악!"
꼼짝도 못한 채 불길 속으로 떠밀리는 듯한 감각. 그것은 눈이 흰자를 까 뒤집을 정도로 격한 고통이었으리라.
그런 그의 몸은 여전히 데인 자국 하나 남지 않은 상태다.
진짜가 아닌 충격에 고통을 받고 신음하다 쓰러진다니. 솔리드 비전이라는 입체 환상을 공유하지 않는 제 3자의 시점이라면 혼자 발작을 하는 광경에 불과하리라.
조브는 그런 그에게 또다시 일말의 동정을 품는다. 한 편, 그럼에도 입을 열 생각이 없어보이는 만만찮은 정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불은 질린다 이거지? 그럼 다른 걸로 가볼까?"
질문을 꺼낸 김에 고통에 허덕이는 남자가 다시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려준다.
그가 숨을 다 고른 끝에 꺼내는 말은, 난데없는 비아냥이었다.
"상대한테 카드 하나 안 주고…. 이런 듀얼은 처음인데."
"그러게."
조브가 무심히 내뱉는 동의는 어디까지나 진심이었다.
듀얼로 성립되지도 않는 일이기에 이런 덱을 챙겨나올 수가 있는 것이다. 전략이고 뭐고 할 것도 없이, 이건 순수히 고통을 주기 위해 마련된 고문기구나 다름없으니까.
그냥 전기봉을 쓰는 게 싸게 먹히지 않을까도 싶지만 회사의 방침이라면 별 수 없다. 설마 이것도 인도적인 조치라 여기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게나 자기들 기술력을 다방면으로 써먹고 싶었을까.
이런 일을 일단은 듀얼리스트인 몸한테 시키다니, 제정신이냐고 지금도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라이프가 0이 되면, 죽기라도 하는 거냐?"
"쇼크사할 가능성은 있을지도."
"잘 됐군."
남자는 여태까지의 고통이 우습다는 듯 미소를 띄울 뿐이었다.
그리고는 잠시 수갑이 묶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어서 그렇게 하시지. 이런 부자유한 육체에서 해방된 순간부터가 진짜니까."
사후세계를 믿기라도 하는 것일까.
그런 종교관의 소유자이기에 이렇게까지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것이라면 납득은 간다.
"하던 대로 불을 날리든, 총을 쏴버리든, 목을 베어버리든 죽이려면 죽여!"
"하스웰 씨. 계속 하셔야겠는데요."
"그러네요."
제발 다음 수를 쓰게 하지 마라.
조브는 애써 여유로움을 간직한 얼굴 너머로 그렇게 빌었다.
남자의 표정을 살펴 보니 어느샌가 무뚝뚝하던 얼굴은 여태껏 보이지 않던 미소로 번져 있었다.
마치 다음을 기대하듯이. 진짜로 죽고 나면 뭔가가 있으리라고 믿는 것처럼.
조브는 오히려 불안을 품는다. 그것이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면 어쩔 것인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없다는 것을 이곳에 오고나면서부터 깨달은 참이다. 그런 감이 해주는 경고는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업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조브는 다음 카드를 꺼내드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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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에피 부제가 그렇듯 악몽의 신기루는 안 나옵니다
오리카 완성하고 듀얼 다 짜야 다음 에피가 써지든 말든 할 터인데...
※얼마 보시는 분이 없다지만 뭘 어떻게 고칠 게 있는지 여러모로 지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발오네가이플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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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6.08 20:4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