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수정예의 미스터리 동호회에서 파견한 식량 조사대. 그 인원은 설립자 본인에 추가 합류 인원 2명. 즉 총 3명.
그들이 이동 중에 또다른 적을 맞이하는 일은 다행히도 없었다.
굳이 적이라고 한다면, 양손이 무거운 이들의 정신을 시험하게 만드는 언덕길 정도였을까.
그 시련을 견디면서도 모두가 정적을 유지하고 별다른 소동에도 휘말리지 않은 덕분에, 세 명은 땀이 차는 몸으로나마 아지트로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
"다 왔다."
유진은 무심코 눈에 비쳐오는 그 건물을 '집'이라 인식할 뻔했다.
그러나 길 사이사이 잔디밭을 수놓은 희뿌연 비석들을 둘러보자니 그 인식은 곧바로 부정당한다.
손에 잡힐 만큼 한정된 식량만 가지고 이렇게 흉흉하고 좁은 곳에서 지내라니. 여기서 제 집처럼 죽치다 시간을 날리는 것은 역시 사양하고 싶어진다.
물론 그나마 안전한 장소라는 인식은 아직 변함이 없었지만.
"사방이 무덤이야……."
"뭐 어때, 진짜도 아닌데."
트릭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리는 말에 가볍게 대답한다.
개최자가 시신을 생물로 분류하느냐 마냐에 따라서 흙 밑에 뭐가 있을지도 달라지겠지만, 아무도 직접 파볼 생각까지는 하지 않는다.
그런 호기심을 붙들고 있을 여유도 없거니와, 돌아와서 한 숨 돌리는 것이 급선무니까.
토우키는 손을 압박하던 비닐봉지를 잠시 내려놓고 철제 문을 노크한다.
"고블린."
"좀비."
사전에 맞춰둔 암구호를 댔음에도 바로 문이 열리지 않고 다른 질문이 날아온다.
"미스터리 동호회가 포럼을 개설한 날짜는?"
아무래도 한 층 더 경계를 세운 모양이지만, 같은 동호회원 입장으로서는 어려울 것 없는 질문이다.
"10월 15일."
"그럼 처음 결성된 장소는?"
"도미노 대학 제 1캠퍼스 공용 컴퓨터실."
"…들어와."
문답도 클리어했으니 그제서야 무사히 문이 열렸다.
"다녀왔…"
그리고 어디든 뻐근해진 몸을 기댈 거리를 찾으며 토우키가 귀환 인사를 하려는 찰나, 갑작스럽게 문 너머의 하츠카가 유진을 와락 끌어안는 것이었다.
"어서 와!"
유진은 한 순간 까무러칠 뻔했다.
아까 들었던 토우키의 체험담이 그대로 체감이 되는 순간이었다.
"진짜 고마워! 다 네 덕분이야!"
두 명은 그렇게 한 순간 굳어있어야 했다.
때아닌 이성과의 접촉은 유진의 사고를 한순간에 어지럽혔고, 토우키는 '뭘 잘못 먹었냐'는 표정으로 벙쪄있을 뿐이었다.
정말로 잠깐 밖을 서성이다가 못 먹을 것을 주워먹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유통기한 지난 컵라면은 정말로 먹을 것이 못되는 것이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눈가를 살펴보니 다소 벌개져있는 것을 깨닫는다. 이 도시에서 겨우 재회하던 무렵처럼.
뭔가 큰 일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예상한 상황에서 토우키가 물어보았다.
"왜 그러는데?"
그제서야 이성을 차렸는지 하츠카는 유진을 품에서 놓고 대답했다.
"아니, 실은 아까 한 놈이 진짜로 쳐들어왔었거든."
"진짜…!?"
"응, 그래서 어떻게든 듀얼로 상대했더니 이겼어. 얘가 한 말이 도움이 됐다니까."
"저기, 그럼 상대는 어떻게 됐는데?"
"어, 뭐라 해야 되지. 그냥 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까 사라지던데. 그 다음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몰라. 아, 그리고 얘 말대로 카드도 갑자기 생기더라."
그녀는 듀얼의 패자인 상대에게 벌칙을 내리고 보상을 취해갔다. 상대했다는 사람의 모습조차 남아있지를 않으니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니면 그 일 자체가 사실인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살펴보니, 그녀 곁가 앉아있던 자리 곁에 못보던 물건이 떨어져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그것이 벌칙을 받은 상대의 유품이리라.
그녀가 어느 정도 침착할 수 있는 것도, 유진의 ABC 첫 결투 때와는 달리 시신이랄 것이 남아있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무사했다니 다행이네."
"그렇겠지. 아무튼, 그 때 했던 말 또 사과할게."
"아니. 도움이 됐으면 다행이네요."
목숨을 건졌으니 기뻐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이들로서는 마냥 기뻐할 상황이 되지 못했다.
결국 이곳이 안전하지만은 않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니까. 그리고, 안전하지 않을지 모르는 외부인이 동행하게 되었으니까.
한 편 장본인인 그 아이는 방금 전의 광경을 포함한 실내의 모습을 신기한 듯이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 낯선 사람의 등장을 발견하고 나서야 하츠카는 바로 표정을 굳혔다.
"근데 얘는 또 누구야?"
"트릭스래."
"트릭스?"
"편의점에서 만났어. 얘 혼자 있더라고."
방금 전의 행동에 대한 자각은 아직 없는 듯 하지만, 생존과 재회에 대한 기쁨의 반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승리와 재회의 기쁨으로 잠시 묻어뒀을 복잡한 심정이 다시금 하츠카의 만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긴 거 축하해. …저기, 나도 잘 부탁할게."
"으, 응."
그리고 아이가 다시 주변을 살펴보는 사이, 하츠카는 토우키를 붙잡아 귓속말로 톡 쏘아붙였다.
"뭐하러 데려왔어?!"
"만났는데 어떡해? 거기다 쟤 덕분에 살았는걸?"
"뭔 일이 있었길래?"
"먹을 걸 뺏으려고 총들고 설치는 놈을 쟤가 해치워줬어."
눈앞의 상대와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행적에 자신이 방금 뭘 들은 것이냐는 듯한 시선으로 침묵.
그리고 뒤늦게 질문을 꺼낸다.
"아니, 어떻게?"
"뭐긴 뭐야? 듀얼이지."
더더욱 믿기 힘든 대답에 하츠카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진다.
"사실이에요. 똑똑히 보고 왔어요."
아무리 믿기 힘든 신비를 탐구하는 동호회라지만, 그런 설명을 쉽게 믿지 못하는 반응도 당연하리라고 토우키는 생각한다.
"너도 유진이한테 배운 게 있으니까 살았잖아? 우리도 방금 막 얘 실력을 보고 온 참이야."
"그러니까 네 말은 쟤도 같이…."
하츠카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보려는 순간, 충분히 둘러봤는지 아이는 아지트에 대한 감상부터 꺼낸다.
"보기보다 아늑하네. 여기라면 지낼만 할 것 같아."
"아니 그게, 미안한데… 여기도 오래 있을 만한 곳을 못 될 것 같아."
"응. 누가 쳐들어왔댔지."
아이는 방금 전 일어난 일을 이해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 근심이랄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치만 오히려 잘 된 일 아냐? 이기기만 하면 새로운 걸 얻을 수 있는데. 그 때까지 마음 편히 준비하고 있기는 충분한 자리일 거 아냐."
"…어, 그래."
자신들이 생각하는 위기를 그다지 위기로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 정도로 이 아이는 어둠의 듀얼에 익숙한 것일까.
말뽄새를 보니 아무래도 이런 듀얼에 익숙한 모양이다.
편의점에 홀로 있던 순간부터 경계하는 태도가 별로 보이지 않는 점에서부터 알아차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일행은 서서히 경계에 들어가면서 질문을 던져본다.
"그러니까, 고마워. 날 여기까지 데려다 줘서."
"어, 응."
또 한 번 무안하게 만드는 감사인사를 꺼낸다. 그런 트릭스의 표정은 전보다 살짝 밝아진 것도 같다.
"역시 사실이었어. 이기다 보면 소중한 걸 얻을 수 있다는 건. 삶이 있고. 보금자리가 있고. 양식이 있고. 만남도 있고."
그러면서도 담담히 내뱉는 말은 어쩐지 짠해지기까지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쥘 수 있을 정도로 거칠고 험난한 과거가 있었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것에 눈도 깜짝하지 않게 될 정도로 정신적인 변화를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일행이 되어주기를 선택했으니, 적어도 그 꼴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서로 돕고 돕는 게 있어야 한다.
그 끝에 서로가 이 지옥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더 좋다.
토우키가 조촐하게나마 파티라도 열어볼까 하는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트릭스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 만남이 있으니까, 이번에도 난 이길 수가 있어."
그 잔잔한 말에 세 명은 곧바로 위화감을 느껴버렸다.
"…이번에도?"
"응. 이번에도."
"누굴 이기는데?"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다른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듯이 트릭스가 묻는다.
그 가능성이 이어지는 결론이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불길한 예감에 대한 단서는 이미 갖춰졌다. 이미 다들 짐작을 마친 가운데, 토우키가 방금 전까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서, 설마, 우리하고 싸우겠다고?"
"응."
"아니, 왜?"
"말했잖아. 살아갈 거니까 이길 거야."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대답이다. 적대할 생각 따위 없다는 것을 충분히 알 텐데. 분명 저쪽도 적대할 생각은 없을줄 알았는데.
이래서야 암호를 맞춰가면서 경계를 세운 의미가 전혀 없었다. 제 스스로 적을 요새로 들인 꼴이라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네이토 때처럼 토우키는 다시 한 번 대화로 설득해보려 들었다.
"설명이 부족했으면 미안한데, 애초에 우린 싸우려고 널 데려온 게 아냐. 그러자고 여기까지 데려올 이유도 없고."
"알아. 그치만 난 처음부터, 이런 외딴 데에서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틀어박힐 생각 없었는걸."
"그럼 여기 오기 전에 굳이 총알을 버린 건…"
"또 말해야 돼? 승부는 카드면 충분하다니까."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 누군가의 생이 끝나버리는 순간만큼은 미룰 수 있다.
불이 더 퍼져나가는 것을 막아보듯이.
그렇기에 토우키는 되는 대로 떠올린 말을 최대한 다듬어서 전해보았다.
"저기, 산다는 건 이기고 지는 게 전부가 아냐. 듀얼이라고 꼭 목숨 걸고 할 필요도 없고. 그러니까, 지금이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보면 안 될까?"
"……."
트릭스는 대답 대신, 느닷없이 가방의 한쪽 귀퉁이를 열더니 바닥으로 털었다.
대충 세어봐도 수 십개는 되어보이는 아이템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개중에는 쇠붙이로 보이는 물건들이 짤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부딪혔다.
아까 하야구치와의 듀얼에서 입수한 것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섞여있다.
"……이건 설마?"
"응. 내가 이겼다는 증거. 아는 애들도 다 이렇게 모으고 있어. 여기 와서는 얼마 못 얻긴 했지만."
디젠(D-GEN). 눈앞의 물건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임을 세 명은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한 사람에 하나씩 생기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저만한 것들을 어떻게 계속 들고 다니느냐는 것보다도, 저렇게나 모았다는 사실에 더욱 경악했다.
디젠 하나가 적의 수급이라고 친다면, 대체 몇 개의 목을 달고 다니는 셈이란 말인가.
그렇게 한동안 얼어붙는 사이, 트릭스는 자기가 떨어뜨린 물건들을 다시금 가방으로 주워담으며 말한다.
"그래도 다행이야. 한 번에 세 개, 아니, 네 개를 챙길 수 있으니까. 그치만 한번에 상대하는 데에는 이 정도가 한계겠지."
방금까지 쏟아져내린 디젠의 갯수가 그 자신감의 근거를 대변해주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마냥 허세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었다.
여전히 세 명이 굳어있는 가운데, 그나마 가장 아이를 오래 본 유진 쪽이 꺼림칙한 태도로 정체를 물었다.
"너, 진짜로 뭐 하는 애야?"
"말했잖아. 트릭스."
"아니, 정체가 뭐냐고?"
"트릭스는 디젠과 카드를 찾아다니는 '컬렉터'야."
제법 솔직한 자기소개다. 확실히 저만큼 수집을 해댔으니 '컬렉터'를 자칭할 만도 할 것이다.
"왜 그런 걸 모으는데?"
"내 일이니까."
"일이라고?"
"응. 디젠이라는 물건 덕분에 살아갈 힘을 얻었어. 그 디젠을 얻으려면 게임을 이겨야 돼. 그러니까 게임을 할 거야. 거기에 필요한 카드도 모아야겠지."
"그게 다야? 겨우 그것 때문에?"
"……겨우?"
짧은 마디의 대답에 유진은 알 수 없는 압력을 느낀다.
여전히 피곤해보이는 눈초리 너머, 유진은 깊은 호수처럼 잔잔한 눈동자를 마주한다.
"말했잖아. 디젠 덕분에 이어진 삶이라고. '트릭스'라는 이름을 얻고 나서 그 삶을 지키기로 했어. 나한테는 '겨우'라고 치부될 일이 아닌 거야."
지극히 알기 쉬운 대답들임에도 유진의 머리에 와닿지를 못한다. 이런 경험이 잦아지다 보니 유진은 자신의 이해력을 의심해야 할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내뱉은 말들은 전부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일까.
그 의문을 바로 꺼내봤자, 이번에도 납득이 갈 만한 대답이 돌아올리는 없다.
"그 삶을 웬만하면 달콤하게 누려보고 싶어. 그런 나한테 이 만남은 행운일지도 몰라."
분명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겠지. '제정신'으로 숨길 필요도 없는 진심을 내뱉고 있는 것이겠지.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생각 자체를 하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확실히 알 수 있는 점은, 자신들이 무슨 소리를 꺼낸다 해도 이 아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피할 수 없는 사태를 앞두고서 하츠카는 결국 한탄하듯 소리쳤다.
"그러니까 뭐하러 데려온 거냐고!"
"불만이면 먼저 상대할래?"
그리고 돌아오는 트릭스의 대답에 바로 나머지 둘처럼 얼어붙는다.
셋 모두가 굳어있는 것이 트릭스로서는 살짝 못마땅해보인다.
"당신들도 살고 싶으면 이겨. 당신들은 셋. 난 하나잖아. 누가 먼저 붙을지는 상관없어. 뭣하면 셋이 한꺼번에 덤벼도 좋아."
알아서 3대 1을 자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머릿수가 많은 쪽이 유리한 승부가 되겠지만, 저렇게 당당히 말을 꺼내는 걸 보니 그런 싸움을 거친 경험이 있기는 한 모양이었다.
학교 축제 때 이후로 태그 듀얼 같은 변칙 룰로 이뤄지는 듀얼을 치뤄본 일이 없음을 떠올린다. 하물며 3대 1이라니. 지는 순간 세 명이 한꺼번에 끝장이다.
턴이 돌아오기 전까지 자신의 운명을 2명의 타인에게 맡길 자신이 과연 있단 말인가.
유진은 긴장 가득한 시선으로 나머지 둘을 흘겨보았다. 토우키는 열심히 머리를 굴리느라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츠카는 마찬가지로 흘겨보는 중이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한다.
"자신 없어? 1대 1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그럼 누가 먼저 나올래? 적어도 두번째부터는 기회가 있겠지."
역시 싸우지 않는다는 선택은 주어지지 않는다.
긴장과 갈등이 전염이라도 된 듯이 유진 역시 선뜻 움직이기가 힘들다.
이번에도 가장 익숙한 자신이 먼저 움직여야 할 텐데. 그래야 나머지도 살릴 가능성이 있을 텐데.
속전속결로 적을 처리했던 상대를 앞에 두자니 공포에 온몸이 마비되어버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어봤자 해결될리는 없다. 상대는 기다려줄 수는 있어도 물러나줄 생각은 없어 보이니까.
그렇기에 어차피 나서야 할 속으로 자신을 부추겨보았다.
그 설득을 받아들이면서 유진은 희미하게 숨을 고른다.
그리고는 힘겹게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그럼 나 먼저."
그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토우키 쪽이었다.
"…토우키 형?"
"데려오자고 한 건 나야. 내 책임이니까 내가 수습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너도, 하츠카도 듀얼에서 한 번 이상은 이겼잖아. 결국은 내 차례라는 거겠지."
하츠카가 그 결정에 납득하지 못했는지 따지고 든다.
"무슨 이유가 그래?"
"괜찮아. 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유진이한테 배운 걸 써먹을 기회가 온 거야."
남을 안심시킬 만한 대답으로서는 한참 실격이다.
상대의 실력이 얼마 정도일지 모르는 마당에 그걸로 충분할리가 없다.
"아니, 방금 그 디젠 양을 보고도 모르겠어? 그 정도로 될 것 같아?"
"혹시 알아? 가짜일지. 그냥 애가 허세를 부리는 걸지."
"허세는 네가 부리는 거고! 정신 좀 차려!"
"역시 당신이 먼저 할 거야?"
"………."
중간에 끼어드는 트릭스의 말에 하츠카는 도로 입을 다문다.
잠시 후, 이들 모두 건물 밖으로 나왔다.
그저 잔디밭과 타일 사이에 있는, 잘 깎인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가짜에 불과한 무덤의 풍경이다. 실재하지 않는 유해, 혹은 아예 삭아서 흙이되어버린 것이 여전히 비석 아래에 묻혀있을 터.
그 풍경에 익숙해졌을 세 명은 문득, 이 상황에서 무덤가가 제 분위기를 되찾았다고 느낀다. 이 가짜들 사이에 진짜 무덤이 생기는 꼴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곳에서 듀얼에 패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아이 모습을 한 누군가는 어떤 벌칙을 내릴까.
그것이 셋 모두에게 불안을 안긴다.
"지켜나 보고 있어. 틀렸다 싶으면 둘 다 빨리 도망가고. 최대한 멀리."
"…아니, 형?"
"아까 빚을 갚은 거라고 생각해 둬."
왜 벌써 이런 소리를 꺼내는 것일까.
그야 가망이 없다고 느낄 수야 있다. 피해를 줄인다면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바이크의 추적으로부터 숨이 차도록 뛰었던 결과가 헛수고였음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도망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듀얼이 치뤄지는 동안, 아니, 지금 당장 두 발을 전력으로 구른다면 가능성은 있다. 트릭스한테 바이크 따위는 없으니까.
그럼에도 유진의 발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유대에 의존한 선택만은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도망이라는 행위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도망칠 수 있나? 나를 알아보고 잡으려드는 애를, 이 도시 안에서 피해다닐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 아이(자)는 자신한테 볼일이 있다는 느낌을 유진은 지울 수가 없다.
다른 사냥감을 거치더라도 결국 자신에게로 향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떨쳐지지 않는다.
도미노 시티는 넓고도 좁다. 그리고, 이 세계의 시간은 길고도 짧다.
얼마나 도망쳐다닐 수 있을지, 그 사이에 게임이 끝나줄지, 그 전에 다른 참가자를 마주치지 않을지, 모든 것이 불명이다.
위기를 피해다녀봤자 다른 위기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설령 도망치는 사이 게임이 끝난다고 해도, 그 편의점에서 마주쳤던 이 아이와 바깥 세계에서 다시 마주칠 일이 없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오히려 그렇게 재회함으로서 다시 되찾을지도 모를 일상이 또다시 꼬여버리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그 도주는 결론적으로 헛된 것이 아닐까.
'…내가 처음부터 나설 걸 그랬나?'
지금이라도 토우키 대신 자신이 상대하면 된다. 이미 네이토 때 그랬듯이.
토우키가 자신들에게 의도하는 바처럼, 못해도 자신이 싸우는 사이에 저 둘을 빠져나가게 할 수 있는 틈은 생길지 모른다.
그 뒤에도 저들은 쥐구멍을 찾듯이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리라. 이 아지트를 발굴해냈던 것처럼.
'아니, 그치만….'
그러나 발과 마찬가지로 입마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토우키에게 책임을 지게 한다는 선택을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을 뿐이다.
도망칠 용기도 나설 만용조차 없는 자신은 망설일 줄만 아는 어정쩡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리고 저주한다.
그 사이 토우키의 입이 열리며 트릭스에게 뜻을 전한다.
"미리 알아둘 게 있어. 만에 하나 내가 이겨도 널 해칠 생각은 없다는 거."
"흐음."
돌아오는 트릭스의 반응은 묘하게 시큰둥할 뿐.
그럼에도 토우키는 뜻을 전하기를 관두지는 않는다.
"네가 사실은 애조차 아니라도, 남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는 녀석이라도, 벌칙이랍시고 널 해치지 않을게. 적어도, 그렇게 해보도록 노력은 해볼게."
"어째서?"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렇게 단언하기 위해서였을지 모른다.
이미 나름 발견이라는 목적으로 목숨 좀 걸어봤던 몸이지만, 자신만이 아닌 남의 목숨까지 일방적으로 걸어버리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제 손으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걸 즐거운 일로 인정해버리는 순간, 여태까지 유지해왔던 인간으로서의 자신이 망가져버릴 것만 같다.
만에 하나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런 망가진 자신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재버워키가 의도하는 것이 그런 것이라면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묘하게 유진을 저격하는 발언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유진 쪽은 그의 뜻을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른 디젠처럼 벌칙이 사용자가 정할 수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따르고 싶었다.
벌칙으로 죽어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는 것은, 지켜보는 사람에게도 고통이니까.
순간적으로 유진은 고개를 떨구었다.
"아직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구나."
"그래. 너도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될 거야. 그러니까, 듀얼이 끝날 때까지라도, 아니, 듀얼이 끝난 다음이라도 계속 다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응. 생각해볼게."
그 대답에는 무게가 실려있지 않다.
제안같지 않은 제안을 한 토우키 본인조차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당신이 이긴다면."
어쩌면, 여전히 설득의 기회는 먼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선공 기회는 트릭스에게 넘어가버린 신세.
벌써부터 불안이 엄습할 것 같지만, 오히려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역시 품는다.
오히려 이전의 듀얼을 살펴보자면, 그리고 지금 준비한 덱을 고려하면 자신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 일말의 희망을 갖고서, 토우키는 결투에 임해보기로 한다.
""…듀얼.""
[트릭스: LP 8000, 패 5장]
[야마네 토우키: LP 8000, 패 5장]
"내 턴, '트리온의 충혹마'를 소환."
[트리온의 충혹마: 곤충족 / 땅 / 레벨 4 / ATK 1600 / DEF 1200]
"어?"
덱이 바뀌었다.
같은 땅 속성 몬스터라는 점 말고는 겹치는 것이 없어보이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트리온'의 효과. 덱에 있는 '홀', '함정 속으로' 함정 카드 1장을 패로 가져올게."
"그, 그럼 '하루 우라라!"
하지만 당황할 때가 아니라는 것은 토우키 역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추가 전개를 막아야 하는 이 상황에서 발버둥칠 기회를 잡는다. 이 상황에서 패에 '하루 우라라'가 잡힌 것은 그나마 다행인 듯 싶었다.
그러나 트릭스는 그 기회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체인해서 속공 마법 '무덤의 지명자'. '하루 우라라'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제외할게."
"이런…!?"
"'트리온'의 효과를 처리. '전망의 함정 속으로'를 패로. 그리고 '트리온'을 링크 마커에 세트.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링크 1 '세라의 충혹마'를 링크 소환."
[세라의 충혹마: 식물족 / 땅 / LINK-1 / ATK 800 / 링크 마커 ↓]
"링크 소환에 성공했으니까, 패에 있는 '패러렐엑시드'를 특수 소환. 그 ②의 효과로 덱에서 다른 '패러렐엑시드' 하나를 특수 소환."
[패러렐엑시드: 사이버스족 / 바람 / 레벨 8 → 4 / ATK 2000 → 1000 / 2000 → 1000]
[패러렐엑시드: 사이버스족 / 바람 / 레벨 8 → 4 / ATK 2000 → 1000 / 2000 → 1000]
"'패러렐엑시드' 둘을 오버레이. 랭크 4 ''플레시아의 충혹마'를 엑시즈 소환."
[플레시아의 충혹마: 식물족 / 땅 / 랭크 4 / ATK 300 / DEF 2000 / ORU-2]
"카드 3장을 세트. 턴 엔드."
"내 턴, 드로우."
[야마네 토우키: 패 5장]
[트릭스: 패 0장]
어태커 하나 마련해놓지 않고 그대로 턴을 넘겼다.
자신을 얕보는 건가 싶지만 그렇다고 쫄아서 아무것도 할 수는 없는 노릇.
"마법 카드 '이웃집 잔디깎기'. 지금 네 덱 매수는 몇 장이지?"
"33장이네. 체인은 없어."
"좋아. 내 덱은 55장. 그럼 그 차이인 22장만큼 내 덱의 카드를 묘지로 보낸다."
덱의 최대 투입 매수는 60장. 토우키는 그 최대 매수에 맞춘 덱을 쓰고 있다.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많아지는 것을 좋을지 모르지만, 그만큼 원하는 카드를 가져오기 힘들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보통은 딱 40장 정도로 매수를 맞춰두는 것이 보통일 터.
하지만 '이웃집 잔디깎기' 같은 덱 덤핑용 카드를 활용한다면 덱이 메마르는 것을 방지할 수가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더구나 상대가 먼저 특수 소환을 실행해서 덱을 줄여준 덕분에 그만큼 깎아내릴 덱의 매수도 더 많아졌다.
그만큼 묘지 자원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8.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9b709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9.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9b5f220b132.jpg)
"이어서 묘지로 간 '와이트프린스(저주받은 하인 프린스)의 효과. 패와 덱에서 '와이트(저주받은 하인)', '와이트 부인(저주받은 하인 부인)'을 1장씩 묘지로 보낸다."
[야마네 토우키: 패 3장]
"그리고 마찬가지로 묘지로 간 '와이트베이킹(저주받은 하인 베이킹)'의 ③의 효과. 덱에서 '저주받은 하인', '와이트메어(저주받은 하인 메어)'을 패로 가져오고, 그 중 1장을 버린다."
[야마네 토우키: 패 4장]
묘지에서 제외하면 '언데드 월드'라는 필드 마법을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시체계의 밴시'는 아직 묘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언데드 월드' 자신이 묘지로 가버린 것이 확인된다.
덱을 무작정 갈아버리는 것은 필요한 것까지 같이 날려버릴 수 있는 양날의 검. 그래서 넣을지 말지 고민하던 카드를 유진의 설득 끝에 넣게 되었다.
어찌되었든 덕분에 묘지는 충분히 쌓였다. 전개할 수단도 패에 잡혀있다.
"묘지에 있는 '마두귀'의 효과. 이걸로 묘지에 있는 언데드족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사령왕 도하스라'를 특수 소환!"
[사령왕 도하스라: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8 / ATK 2800 / DEF 2000]
배배 꼬인 나뭇가지처럼 생긴 금빛 지팡이를 든 마왕이 '킹' 옆으로 나타난다.
두개골에서 따온 형태의 장식이 곳곳이 몸을 차지하고 있는 마왕은, 기품만으로는 '저주받은 하인'들이 다시 죽어도 따라잡지 못할 듯 보였다.
"그럼 함정 카드 '전망의 함정 속으로'를 발동. 묘지에서 특수 소환된 몬스터를 뒷면 표시로 제외."
그러나 등장이 무색하게 '도하스라'가 버티고 있는 바닥이 싱크홀처럼 갑자기 움푹 패인다.
그 구덩이의 출현에 '도하스라'의 거체가 곤두박질치며 무의 경계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함정 카드가 발동했으니까, '세라'의 ②의 효과로 필드에 없는 '충혹마' 하나를 덱에서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카즈라의 충혹마: 식물족 / 땅 / 레벨 4 / ATK 300 / DEF 2000]
'와이트(저주받은 하인)' 군단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도하스라'가 제 노릇조차 제대로 못한 채 허망하게 끝나버렸다.
전 턴에 패로 가져오는 것을 뻔히 본 카드가 쓰인 만큼, 이번 것은 토우키 역시 예상할 수 있는 사태다.
그러니 기죽을 것은 없다. 그 희생으로 본진은 아직 남겨진 셈이니까.
"그럼 '원 포 원'을 발동. 패의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레벨 1의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2장째 '마두귀'를 묘지로, 그리고 '와이트킹(저주받은 하인 킹)'을 특수 소환!"
[저주받은 하인 킹: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1 / ATK ? / DEF 0]
토우키가 꺼낸 또다른 몬스터 역시 이름은 왕이되, 그저 누더기를 걸친 앙상한 백골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그의 비장의 카드. 잘만 한다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가져다줄지 모르는 수였다.
"'저주받은 하인 킹'의 공격력은 묘지의 '저주받은 하인' 하나 당 1000이 된다. 묘지에는 '저주받은 하인'으로 취급되는 몬스터가 총 12장 있으니까 공격력은…"
[저주받은 하인 킹: 0 → 12000]
묘지로 떨어진 '와이트'의 원념들이 홀로 군림한 자신들의 왕에게 힘을 부여한다. 원념을 형상화한 듯한 안개는 '저주받은 하인 킹' 주위에 들러붙으며 그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투기, 어쩌면 살기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 기운이야말로 자신의 힘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의 덱은 '저주받은 하인 킹'의 공격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한 방에 끝내는 원턴킬 덱. 유진과의 정보 공유 및 교환 끝에 덱은 조금이나마 더 강해졌을 것이다.
이대로 공격 표시의 '세라'에게 무사히 공격에 성공하면 게임은 끝난다.
토우키가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함정 카드 '나락의 함정 속으로'. 특수 소환된 공격력 1500 이상의 몬스터를 파괴하고 제외할게."
'전망의 함정 속으로'에 이어서 이번에도 출현한 몬스터의 발 밑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구덩이가 생겨난다. 그 바로 위에 있던 '저주받은 하인 킹' 역시 투기를 발산할 기회도 없이 무방비하게 아래로 추락하며 소멸.
몬스터를 집어삼킨 구멍은 이번에도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카즈라의 충혹마'의 효과. '홀', '함정 속으로' 함정 카드가 발동하면, 마찬가지로 덱에서 다른 '충혹마'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티오의 충혹마: 식물족 / 땅 / 레벨 4 / ATK 1700 / DEF 1100]
"'티오의 충혹마'의 특수 소환 성공시, 묘지에서 '홀', '함정 속으로' 함정 하나를 내 필드에 세트할 수 있어. '전망의 함정 속으로'를 세트할게. 그리고 '충혹마'의 효과가 발동했으니까, '세라'의 ③의 효과로 이번엔 덱에서 '홀'이나 '함정 속으로' 함정 하나를 세트할 수 있어."
"아직이야. 패에서 '저주받은 하인 메어'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이걸로 제외된 '저주받은 하인 킹'을 다시 특수 소환한다."
"그럼 함정 카드 '무덤 홀'. '메어'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2000 데미지를 줄게."
[아마네 토우키: LP 8000 → 6000]
"으악!"
이를 되살리려는 시도마저 실패하고, 갑자기 바닥이 없어지며 고공에서 추락한 것만 같은 오싹한 소름이 토우키를 덮쳐왔다.
다행히도 두 다리는 바닥에 아직 제대로 붙어있다.
뭔가를 시도할 때마다 틀어막히는 함정 지옥.
그런 '충혹마'의 전법에 얻어맞으면서도 토우키는 아직 희망을 놓지 않는다.
언데드의 주무대인 묘지에서 여전히 활약의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아직 방법은 남았어. 묘지에 있는 '저주받은 하인 프린스'의 ③ 효과. 자신과 '저주받은 하인' 2장을 제외하고, '저주받은 하인 킹' 1장을 덱에서 특수 소환!"
[저주받은 하인 킹: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1 / ATK 10000 / DEF 0]
"좋아. 이건 못 막았어. 그럼 계속해서 '저주받은 하인 프린세스'를 소환."
[저주받은 하인 프린세스: 언데드족 / 빛 / 레벨 3 / ATK 1600 / DEF 0]
"'프린세스'의 효과로 덱에 있는 '저주받은 하인 프린스'를 묘지로. 그리고 묘지로 간 '프린스'의 효과로 다시 '저주받은 하인'과 '부인'을 묘지로. 이걸로 공격력은 다시 올라간다!"
[저주받은 하인 킹: 10000 → 13000]
"아직이야! 3장째 '마두귀'를 제외해서 효과를 발동. '저주받은 하인 부인'을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한다."
[저주받은 하인 부인: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3 / ATK 2200 / DEF 0]
[저주받은 하인 킹: 13000 → 12000]
해골 가족 삼인방 가운데 대장격인 킹만이 투기를 유지한 채 싸울 태세를 마치고 있었다.
그 최고 전력이 든든하게까지 여겨지는 가운데, 토우키에게 트릭스가 한 마디 꺼낸다.
"필사적이구나, 당신."
"필사적일 수밖에 없잖아. 그래야 이길 수 있으니까. 여기 온 것도, 하츠카가 휘말린 것도 다 내 책임인데. 무사히 나가려면 적어도 계속 이기는 수밖에 없어. 뭐든지 해야 돼. 누구라도 보내주려면…."
"그래."
감흥이 있었던 건지, 별 관심이 없는 건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는 무표정으로 짧게 대답한 후, 트릭스는 무언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내 생각도 그래. 이기기 위해선 뭐든지 해야겠지."
아직도 저 소리인 것일까.
그야 이런 환경에서 버티다 보면 가질 수밖에 없는 생각일 것이다.
그것이 한편으로 토우키로서는 가련했다.
"그래도 얼마 걸리지 않을 거야."
"…그러게."
이 묘하게 힘빠진 대답은 망연자실해있기 때문일까.
"걱정 안 해도 돼. 생각을 바꿀 기회는 얼마든지 줄 테니까."
"………."
토우키로서는 나름 생각하고서 단언한 것이다.
트릭스가 세트한 '무덤 홀'은 어차피 이 턴에 발동할 수 없으므로 경계할 사항은 아니지만, 다음 턴이 되거든 분명 '저주받은 하인 킹'을 가만히 내버려둘리가 없다.
그 대책을 어떻게든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되도록 이 턴에 끝내야 한다.
다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했다.
세트한 카드가 그것 뿐이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자면 더이상 공격을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추가로 소환만 안한다면 '플레시아의 충혹마'의 효과가 작용할 일도 없을 것이고, 혹시나 발동될 함정에 대비해 막 '저주받은 하인 부인'을 필드로 불러온 참이다.
결과적으로 '저주받은 하인 킹'의 공격력을 깎은 결과만 남은 꼴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 공격력만으로도 충분하다.
한 번. 딱 한 번의 공격만 성공에도 단숨에 듀얼이 끝난다.
"배틀, '저주받은 하인 킹'으로, '세라의 충혹마'를 공격!"
그 말에 한 순간 트릭스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것처럼도 보였다. 당황의 눈짓일까.
"망설이지도 않는구나."
"괜찮아. 해칠 생각 없다니까. 그러니까 무사만 해준다면, 같이 다니면서 여길 나갈 방법부터 찾아보자."
그런 트릭스에게 토우키는, 자신의 몬스터와는 달리 인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벌칙은 꼭 사람을 죽게 만들 필요가 없다. 그것까지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 공격이 한 순간 고통을 안길지라도 거기까지가 끝이다. 자신이 잘만 조치한다면 이 자는 무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번의 패배를 안겨준다면 이기는 것에 집착하는 이 아이에게도 어떠한 심정의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대화를 계속 시도하다 보면 차츰 생각을 바꿔주지 않을까.
"─당연히 무사할 거야. 그치만 지금은 딱히 나갈 생각 없어. 아직 모자라거든."
"모자라다니?"
"당신으로는 안 돼. 웬만하면 여기 있는 세 개를 다 차지하고 싶으니까."
필드 밖으로 넘어오는 그 시선에 유진과 하츠카가 흠칫한다.
적어도 저것은 패배를 눈앞에 둔 자가 보일 태도는 절대 아니다. 유진은 그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럼 '플레시아'의 ③의 효과. 조건이 갖춰진 '홀', '함정 속으로' 함정 카드 1장을 덱에서 묘지로 보내 효과를 쓸 수 있어."
"미안하지만, '부인'이 필드에 있으면 '와이트(저주받은 하인)'들한테 함정 같은 건 안 통해."
붉은 꽃 장식을 머리에 달고 있는 '플레시아의 충혹마'는 공격을 지시받은 '저주받은 하인 킹'을 향해 오히려 유혹하듯 손짓하고 있었다.
하지만 쳐다볼 눈조차 없이 안와 밖에 남지 않은 '킹'은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공격 대상으로 지정된 '세라'를 향할 뿐.
순진무구해보이는 인상의 소녀를 향해 '저주받은 하인 킹'은 다시 응축해놓았던 원념을 양손 끝에 모아 플라즈마처럼 일렁이는 에너지 덩어리로 전환한다. 이윽고, 충분히 크기를 키우고 나서 장풍의 형태로 발사해냈다.
헝겊을 두른 앙상한 백골의 것이라기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경외롭고도 강렬한 불기둥이 뻗어져나온다.
"함정이 아냐. '플레시아'는 그냥 묘지로 보낸 함정의 효과를 자신의 효과로 취급하는 것 뿐. 그러니까 이건 몬스터 효과야."
"…어?"
그 설명에 당황한 나머지 바로 토우키의 표정이 굳는다.
동시에 '플레시아'가 토우키를 향해 온화하다 못해 요염하기까지 한 미소를 내보인다. 하지만 직접 마주하는 토우키에게는 그저 조소로만 보일 뿐.
"그럼 '리플렉터 홀'을 묘지로 보내고, 그 효과를 적용. 몬스터에 대한 공격을 무효로 할게."
'플레시아'의 손짓은 기어이 무언가를 필드에 불러들였다.
'킹'의 손바닥에서 뻗어나오는 공격을 방해하듯이, 갑자기 그 궤도 바로 앞으로 검은 구멍 하나가 자잘한 스파크를 띄며 출현한다.
불기둥은 열차가 터널로 진입하듯 구멍을 지나가자마자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기둥은 다시 구멍을 빠져나오는 데에 성공한다. 입구가 되었던 방향을 통해서.
즉, 그 궤도는 공격을 뿜어낸 쪽으로 향하도록 바뀌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 몬스터의 공격력만큼의 데미지가 당신한테 갈 거야."
"어, 안 돼…!"
남은 LP의 두 배나 끌어올린 공격력은, 오히려 토우키의 숨통을 끊을 치명타가 되어 되돌아온 것이다.
되돌아와버린 최후의 일격을 앞두고 토우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실없는 절규. 어설픈 대비로는 막을 수단 따위 마련해낼 수가 없었다.
[야마네 토우키: LP 6000 → 0]
충돌 직후에 폭발이 뒤따른다. 그에 휘말린 토우키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무덤가에 널린 잔디를 깔아뭉개고 흙을 뒤집어쓰면서 바닥을 구른다.
그 말로 앞에서, 세라의 필드에 있던 '충혹마'들은 사라지기 직전까지 '플레시아'를 뒤따르듯 가벼운 웃음을 띄운다. 마치 자신들에게 덤빈 자의 최후를 일제히 조롱해오듯이.
"결국 당신이 믿는 건 공격력이었구나. 강함의 척도는 그것만이 아닌데."
그 비웃음 소리를 코러스 삼아 트릭스도 한 마디. 하지만 한 순간에 닥쳐든 격통에 신음하던 토우키는 이를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 머릿속에 좌절감이 들어찬다. 바로 전에 하야구치라는 남자를 보내버린 것처럼, 자신 또한 한 방에 당해버렸다.
한 방에 끝내버리기 위해 내달린 한 발이, 그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구덩이에 걸려들 운명의 방아쇠가 된 셈이다.
그럼에도 토우키는 그대로 쓰러져있기를 거부했다. 방금 전에 자신의 운명이 끝났음을 부정하려는 듯, 그는 욱신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견디며 일어서려 시도한다.
"토우키 형!"
유진이 그런 위태로운 모습의 토우키를 향해 소리를 질러본다. 그리고는 뛰어들려고 발을 움직이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다가와 있던 트릭스 쪽이 먼저 입을 열고야 말았다.
"벌칙. '무저갱'."
머리핀이 번쩍인 직후, '저주받은 하인 킹'에게 그랬던 것처럼 토우키의 발 밑이 갑자기 시커매진다.
변색이라기보다는, 땅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놀라서 발을 버둥거리기도 전에 그 몸이 중력에 휩쓸리며 아래로 떨어지려던 찰나였다.
"…뭐, 뭐야!?"
갑자기 구멍을 연 트릭스 본인이 자신의 팔을 붇잡는다. 그 여린 몸집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기색없이 성인 남성의 몸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
토우키는 물론 유진도, 하츠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한 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그 가운데 트릭스가 마찬가지로 여린 목소리로 또 입을 열었다.
"당신하고 얘기하다 보니까 나까지 변했나 봐. 저마다 싸우기 위한 이유가 있는데. 이기는 게 끝이 아니었는데."
"트릭스…."
마음이 통한 것인가. 이제라도 생각을 바꿔준 것일까.
자신의 저항은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었다는 말인가.
한 순간이나마 마음을 놓으려던 그 순간, 트릭스는 그의 듀얼 디스크를 조작해서 팔에서 빼내간다.
어리둥절한 눈짓을 보내는 그에게 답을 알려주듯 트릭스는 태연히 말을 덧붙였다.
"잊을 뻔했잖아. 내 전리품."
그리고 여느 때처럼 볼일이 끝난 사냥감의 몸뚱아리를 구덩이로 밀어 떨어뜨린다.
더이상 잡아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는, 당황한 표정 그대로 비명 소리조차 남기지 못한 채 구덩이 너머로 사라져갔다.
유진이 뒤늦게 다시 뛰어가 그 자리를 밟았지만, 이미 구멍은 희생자를 삼킨 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었다.
토우키의 흔적이었던 자그마한 수정해골을 빼고는.
그 해골을 주워들면서 트릭스가 중얼거린다.
"이번에도 빨리 끝나서 다행이긴 한데, 역시 에너지는 있으나 마나한 수준이네. 약해. 그 주인처럼."
"……!!"
머리에 피가 쏠린 나머지 유진이 곧장 주먹을 휘두르려 했으나, 내밀려던 팔이 곧바로 가녀린 손에 붙잡힌다.
그 직후 갑자기 종아리에 충격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유진의 시야가 크게 회전했다.
곧이어 머리에서부터 어깨, 무릎이 바닥에 부딪히며 한 번에 통증이 찾아온다.
트릭스 쪽에서 잽싸게 안다리를 걸어버린 것이다.
"방해하지 말아줄래?"
"큭…!"
뜻밖의 통각에 유진은 한가득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시 쳐다본 트릭스의 얼굴은 여전히 변화가 보이지 않음에도, 그 눈길은 싸늘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진 사람은 벌을 받아야지. 제대로 게임에 참여할 의사가 없으면 바로 패자로 간주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는 게 좋아."
유진에게 이 상황은 부조리나 다름없었다. 나이도, 몸집도 자신보다 아래로밖에 안 보이는 아이가 자신을 옴짝달짝 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힘을 떨친다. 자신보다도 많은 경험을 선보인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디젠의 에너지가 선사하는 힘이 아닐까. 그렇다면 디젠을 그렇게까지 모으려는 이유도 설명이 될지 모른다.
이 힘을 얻기 위해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에 발을 들이고서 매진해온 것이라면.
그리고, 그 힘을 거저먹기 위해 자신들에게 접근했던 것이라면.
"이런 일을 막고 싶었으면 네 쪽에서 먼저 나를 이기는 게 낫지 않았을까?"
역시, 자신이 했어야 할 일을 저쪽도 고려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러지 않은 결과가 이것임을 서로가 알고 있다.
"……그래, 내 잘못이야."
유진으로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상대를 가볍게 이겨버리는 모습을 봤음에도, 그 상대로 제 몫을 해보겠다는 토우키의 고집을 허용하는 바람에 그의 명을 재촉하고야 말았다.
그걸 막지 않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내가……."
그러나 그렇게 침울과 분노에 뒤섞인 표정을 지은 유진에게, 트릭스는 어쩐지 한결 부드러워진 태도로 말을 바꿨다.
"아니, 네 잘못이라는 건 아냐."
"……."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려나. 상대가 뭘 했는지 조금이라도 눈여겨보고 대책을 세울 수 있었잖아.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입 다물어."
"그러니까, 넌 잘못한 게 아냐. 아직 지지도 않았고.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기회가 아직 남은 거야."
"다물라고!"
자책에 겨운 유진이라 해도, 사람을 사냥해버린 상대가 내뱉는 위로를 가장한 조롱만큼은 도저히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이미 한 번 제압을 당한 상대라지만, 조금이라도 분노 쪽에 비중이 쏠리다 못해 터질 것 같다.
그러나 트릭스는 그 소심한 인상에 걸맞게 행동하려는 듯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는가 싶더니, 시선을 어디론가 돌린다.
"…아니면, 저 여자한테도 기회가 있었지."
유진은 황급히 뒤에 서있을 하츠카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분통이 터지는 것은 하츠카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눈가가 더 발갛게 충혈된 채 아까부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제가 바로 자신에게 향하자 당황한 나머지 굳어버린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앗차 싶었던 유진이 바로 소리를 지른다.
"가요, 어서!"
그 말에 하츠카는 정신을 차린 듯 바로 숨을 죽이며 뛰쳐나갔다.
아예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인지, 숨을 곳을 찾아 뛰어간 것인지는 유진으로서 알 수 없다.
외친 직후까지만 해도 그런 건 생각 못했으니까.
어찌됐든 유진은 주저앉아버린 몸을 일으키며 잔디와 먼지를 털었다.
이어서 숨을 고르고는, 다시 트릭스에게 말을 전한다.
"저 사람 신경 쓰기 전에 나부터 상대해."
막아서는 유진의 표정에는 이미 분노가 가득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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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공개한 오리카 바로 써먹은 것
사실 내용이든 듀얼로그 쪽이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지적이 너무나 고픈레후에에에엥
진짜로 생기면 또 곤란해집니다만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1.pn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5828c320b132.png)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2.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48910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3.jpg](https://i2.ruliweb.com/img/22/12/11/1850045000c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4.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567be20b13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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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픽] 유희왕 D-GEN TURN-19_6.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92f56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19_7.jpg](https://i3.ruliweb.com/img/22/12/11/1850049b44220b13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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