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저런 잡설, 카더라 이야기가 나올때면 18-19세기 당시를 기준으로 인도를 하나의 나라로 본다거나, 혹은 인도어라고 하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언어를 두고 영국이 말살했다는 등의 논지가 종종 보여서 그 가운데 후자를 두고 짧게 이야기 해보려 합니다.
맞다고 생각하시는 분 또는 영국이 어떠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리 없다고 단언하시는 분들께는 꽤 불편한 사실을 이야기 하는 내용이오니 뒤로 가기 누르셔도 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의 통치권을 확립하기 전, 인도 아대륙의 공용어이자 행정 언어는 페르시아어였습니다.
11세기 무렵부터 투르크-페르시아 및 아프간 왕조에 의해 유입된 페르시아어는 무굴 제국 시기에 이르러 법령, 외교, 고등 교육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각 왕국과 토후국 등을 중심으로 14~16개의 언어, 그리고 그를 기반으로 수 백개의 지역어와 방언들이 빼곡히 존재했지만 페르시아어가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고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 모두가 공적으로 사용하는 초정파적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로 기능했다는 사실입니다.
(동인도 회사 통치기 직후인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보다 정밀한 조사인 '인도 언어 조사(Linguistic Survey of India, 1894~1927)'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는 179개의 언어와 544개의 방언이 존재하는 것으로 공식 집계되었습니다, 여기서 '모국어(Mother-tongue)'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 그 숫자는 훨씬 늘어납니다. 후대의 기록이긴 하지만 1961년 조사에서는 약 1,652개의 모국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기도 했습니다.)
네 페르시아어 = 라틴어 / 현대의 영어 / 일본어 포지션이라고 보셔도 좋습니다.
18세기 말 무굴 제국이 쇠퇴하고 마라타 동맹이나 시크 왕국과 같은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을 때도, 이들은 외교적 문서와 행정 체계에서 페르시아어의 권위를 유지하거나 이를 자국어와 병행하여 사용했습니다.
동인도회사의 초기 통치기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t)' 정책으로 특징지어집니다. 워런 헤이스팅스와 같은 초기 총독들은 인도인들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고유한 법과 관습,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은 1781년 캘커타 마드라사, 1791년 베나레스 산스크리트 대학 등을 설립하며 전통적인 지식 체계를 지원했습니다.
이 시기의 영국 관리들은 페르시아어와 산스크리트어를 학습하여 현지 권력층과 소통했으며 북인도 전역에서 널리 통용되던 힌두스타니어(Hindustani)를 일종의 공용어로 삼아 통치 도구로 활용하였습니다, 이는 언어 말살보다는 기존의 언어 질서에 영국의 권위를 편입시키려는 전략적 순응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며 영국 내에서 자유주의적 개혁주의와 복음주의적 기독교 세력 (아편전쟁 당시 영국 정부와 동인도회사의 비 도덕적인 행보와 비 효율적인 체제를 비판하고, 전쟁의 무의미함을 설파하였으며, 아편 재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 분들 맞습니다..)이 득세함에 따라 인도 정책의 기조는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인도인들의 '낙후된' 전통을 서구적 합리주의와 기독교적 도덕관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그 핵심 도구로 영어 교육을 상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s)'와 '앵글리시스트(Anglicists)' 사이의 논쟁은 인도의 미래 언어 지형을 결정짓는 중대한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단순히 교육 언어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를 넘어, 인도의 고유 문명을 존중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폐기하고 영국적 문명을 이식할 것인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투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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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26.02.18 11:29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