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족들과 피난 생활을 겪은 이후 고베에 정착해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때 데즈카 오사무의 메트로폴리스를 보고 감동해 만화가를 지망하게 되어, 만화 소년, 모험왕 등 여러 잡지에 만화를 투고했었다. 졸업 후 은행원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만화 그리는 시간과 시간이 맞지 않아 얼마 안가 은행에서 나와, 영화사의 홍보부원으로 일하면서 동시에 전단지를 그리며 틈틈이 대본소 만화 작업에 임했다.
이후 1954년 '소리없는 검'으로 데뷔하였으며, 데즈카 오사무는 그를 "당시에 그 정도로 '혜성처럼'이라는 형용이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이 때문인지 몰라도 데즈카 오사무가 그린 철완 아톰에서 어시스턴트로 활동한 적도 있다. 영화사에서 나온 후 소년에 발표한 철인 28호가 인기를 얻으며 인기 만화가로 등극하였다. 당시 철인 28호는 소년에서 철완 아톰과 대립했던 히트 만화로써, 이 만화의 대성공으로 '내가 진짜 만화가가 된거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후 요술공주 샐리, 바벨 2세 등의 명작을 연재했다.
1991년에는 만화 삼국지로 제20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그 이전부터 일본,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만화들을 여러 차례 그려낸 바 있었고, 이로 인해 동료 만화가들과 독자로부터 '만화의 철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말년에는 질병을 앓아서 작품 활동을 잠시 쉬고 요양 중이었다. 2004년에 일본 만화가 협회상 문부 과학 대신상을 수상했다. 이해 4월 도쿄도 고서적 협동 조합이 개최한 시의회에서 요코야마의 미발표 작품이 입찰에 걸린 것이 보도되었는데 요코야마는 작품 매각에 대해 불쾌했다고 한다.
2004년 4월 14일, 갑작스럽게 도쿄 자택에서 화재가 발생, 화상을 입고 다음 날 사망했다. 이때가 향년 69세. 화재의 원인은 그가 피운 담뱃불로 인한 실화로 추정되며, 하필 2001년에 다리를 다쳐 몸이 불편한 상태였기에 대피가 늦어졌다고 한다. 봉신연의를 기반으로 한 '은주전설'이 최후의 장편 작품이 되었다. 요코야마가 세상을 떠난 후, 유산은 그의 장남과 장녀가 상속받았으며 생전에 단행본화되지 않은 작품들이 잇따라 단행본화되기도 했었다.
2009년 9월 고베역 인근의 와카마츠 공원 내에 철인 28호 기념물 동상이 설립되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오늘날의 다양한 만화 장르들을 개척하며 현대 만화로 이어지는 교두보를 놓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특히 인물의 특징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개성을 이미지화하는 화법이 매우 출중했으며, 이런 화법은 텍스트로만 이루어져 이미지적으로 정형화되지 않은 고전과 역사서에서 특히 큰 힘을 발휘하였다.
요코야마는 일본에서 활자 매체와 다소 멀어진 젊은이들에게 삼국지를 비롯한 동양 고전들을 읽게 만든 1등 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본인이 고전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핵심을 전달하는 노련한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으며
지금도 요코야마 이래로 그만한 고전 만화가가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독보적인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일본 만화 / 아니메의 주요 장르 중 마법소녀물, 거대로봇물, 소년 탐정물,닌자물,
능력자 배틀물이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일궈냈거나 발굴한 것이다.
만화의 신이라 불리는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 만화라는 커다란 지평을 열었다면,
요코야마 미츠테루는 그 안에서 다양한 길을 걸어가며 새로운 장르를 여럿 개척해낸 선구자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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