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Erste Weltkrieg
데어 에르슈테 벨트크리크 / 제1차 벨트크리크
Jahr 44 7월 28일 ~ Jahr 48 11월 11일 / 1914년 7월 28일 ~ 1918년 11월 11일
독일 제국은 중립을 지키며, 살아갔습니다.
오헝은 높은 공업력으로 대타협의 미래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의 황태자가 한 세르비아인에게 권총으로 저격되어 사망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왕국에 선전포고하기에 이릅니다.
빌헬름 2세는 전쟁에 참전하는 걸 원했지만 비스마르크는 전쟁에 참전하지 않고 중립을 원했습니다.
둘은 이야기 끝에 합의를 보았습니다....비스마르크의 중립을 지키되, 양 진영에 전쟁 채권을 발행하여 전쟁 자금을 지원하고 군대가 통행할 수 있도록 통행권을 주는 것...물론 통행권이 말 그대로 통행권이라 독일에서 머물거나 쉴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독일 제국은 막대한 부를 챙겼고, 협상국과 동맹국 양국에 많은 돈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프랑스는 독이렝서 통행권 받고 넘어오는 오헝군 및 오스만 그리고 불가리아군에 열받아 독일에 항의했지만 독일 제국은 프랑스의 불만을 인지하고 더 많은 전쟁 채권을 제공해주면서 일단은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프로이센 왕국군과 독일 제국군의 장성들의 불만을 가져왔고, 결국 프로이센 반란이 벌어지면서 독일은 전쟁 채권은 계속 발행되면서도 국가는 흡사 준내전 사태에 휩싸이는 상황까지 오게됩니다.
영국은 독일의 붕괴가 협상국의 위기로 다가올 거라는 예측을 하고, 독일 제국 정부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포젠과 베스트팔렌에서 저항하던 프로이센 반란군은 결국 토벌되고, 다시 양국에 정상적으로 채권을 발행하게됩니다. 그 사이에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불만이 넘쳐나면서 알자스 로렌 지역을 침공하면서 잠시 독일 제국군과 프랑스군간의 충돌이 벌어집니다.
다행히 알자스 로렌을 사수하는데 성공한 독일이지만 상황이 영 좋지 않으니 이 책임을 묻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비스마르크는 빌헬름 2세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일한 실책인 벨기에를 침공하게됩니다.
결국 벨기에 침공으로 벨기에는 함락되고, 벨기에 식민지로 관리됩니다.
한편 러시아 제국은 오헝 제국과 치열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젠의 프로이센 반란군이 세력을 확장하면서 러시아 제국과 함께 싸우게되었고, 결국 러시아 제국은 포젠의 프로이센 반란군과 조약을 통해 전쟁에서 이탈하게됩니다.
그후 러시아 제국은 적백내전에 휩싸이게됩니다.
독일 제국은 포젠의 프로이센 반란군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포젠의 프로이센 반란군이 만든 괴뢰국들인 폴란드 왕국.리투아니아.발트 3국에 대한 지배권을 넘겨받고, 괴뢰국체제를 유지하게됩니다.
한편 조선에선 독일과 동맹을 맺고, 주조선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대전쟁이 터지자, 일본 제국군은 계획대로 조선을 침공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고, 이 소식을 들은 빌헬름 2세는 조선에 많은 지원을 보냈습니다.
동래과 경남 일부만 일본 제국이 차지하고, 대전쟁이 끝날때까지 싸우게됩니다.
결국 대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 해전에서 독일 제국의 황립 해군이 일본 제국 해군을 상대로 승리하면서 동래와 경남 지역 일부는 다시 조선과 독일군이 함께 수복하였고 일본 제국의 1차 조선 침공은 그렇게 실패로 끝나게되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의 반격으로 패전하고 말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러시아 제국간의 전투로 공세 능력을 상실하고 패전하게됩니다.
독일은 협상국의 제안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시스라이타니아를 가져가게됩니다.
이는 빌헬름 2세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로 같은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인을 지배해야한다는 이유였습니다.
물론 비스마르크는 문제를 제기했지만 독일이 승전국인 만큼 시스라이타니아를 가져가면서 독일 제국의 영토는 넓어지게됩니다.
이로써 제1차 벨트크리크는 종전을 맞이했습니다.
독일의 세계가 구축되는 발판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