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손님을 빼놓고 식사하는 스웨덴의 식사 문화에 대한 뜨거운 감자를 쥐게 됐을까?
과거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의 모든 나라들은 쌀이 화폐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쌀을 먹는다는 것, 그것은 생존을 의미했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많은 양의 쌀을 보유하는 것 그것은 많은 부를 의미했고 더 나은 삶을 의미했다.
비록, 혼식을 장려하며 조, 수수, 보리를 섞어 먹기도 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쌀밥 그 자체에
욕망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조선시대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함께하는 식사란 상대방과의 유대 관계를 만들고 정서적 교류를 의미하기도 했다.
흔한 인사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사하셨어요~?'라고 물어보는 것 역시 파트너 십을 의미한다.
영화 신세계에서 이중구와 정청의 대화를 통해 관객은 이 둘의 파트너 십이 맺어질 수 없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데 그 대화는 아래와 같다.
정청은 그룹 이사진과 함께 식사를 하자는 제의를 이중구에게 하고 이중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거 됐수다. 뭐 정답게 앉아 낯짝 맞대고 밥 처먹을 그렇게 살가운 사이도 아니잖소. 밥알이 목구멍으로 넘어나 가겠수?'
이 짧은 대화로 이중구는 정청의 식사 제의를 거부하며 모욕 아닌 모욕을 준다.
우리에게 있어 식사를 거부하는 것 이 행위 자체로 상대방과의 유대관계를 단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한국인을 화나게 하는 방법이 있는데 쌀밥에 담뱃불을 끄거나 그 위에 담뱃재를 털면 된다.
이 글을 본 많은 유저들이 분노했다. 생각만으로도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글도 있었다.
우리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미식을 즐기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생존을 의미한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다.' 이 속담은 완성된 일을 그르친다는 것을 뜻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쌀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쌀을 주식으로 했던 문화권에서 함께하는 식사란 생존 그 이상을 의미하고 파트너 십 정서적 교류와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손님을 불러놓고 함께 하지 않는 스웨덴의 문화가 이토록 이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발전해 왔던 문화를 중심으로 봤을 때 함께하지 않는 식사가 모욕으로 느껴져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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