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에 10~30대를 보내신 분들이라면 '초콜릿폰'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LG 싸이언의 최전성기를 풍미한 상징적인 모델이죠. 저도 어릴 때 사촌누나걸 만지작대며 참 예쁘다고 생각하던 게 기억나네요. 이게 싸이언 '블랙라벨 시리즈'의 첫 모델이었습니다.
둘째는 '샤인폰'이었어요. 샤인폰은 얼핏 보면 밋밋한 회색 바디에 별 거 없어보이지만, 실제로 손에 쥐어 보면 묵직하고 서늘한 금속 소재감과 위아래 방향키를 스크롤 휠로 대체한 과감성이 인상적인 모델이었지요. 이것 때문에 당시 제 또래들 사이에서 "이 폰으로는 게임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했죠 ㅋㅋㅋ
네 번째 모델은 경악스러운 21:9 비율 디스플레이를 품은 풀터치폰, '뉴 초콜릿폰'이었습니다. 에프엑스와 소녀시대가 광고음악도 불렀었죠.
세 번째를 건너뛰었는데, 바로 그게 이번 글에서 다룰 '시크릿폰' 되겠습니다.
2008년에 출시된 이 모델은 개인적으로 출시일 전부터 엄청 기대하던 모델이에요. 디자인이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웠거든요. 하지만 한국에 출시된다 한들 제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습니다. 2008년이면 제가 13살이던 때인데, 이 때 저희 집 형편에 비해 69만원이라는 시크릿폰의 출고가는 너무 부담스러웠거든요. 저희 집 핸드폰은 무조건 '꽁짜폰'이 국룰이었기에 시크릿폰은 제가 부모님께 암만 졸라도 절대 안 사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어영부영 지내다가 피처폰의 시대는 저물고 스마트폰의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시크릿폰을 향한 열망이 항상 타오르고 있었고...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드디어 손에 넣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풀박스 상태로요! 정말 믿기지가 않습니다. 나온지 13년이나 지났는데도 모든 구성품이 온전히 갖춰진 상품이라니ㄷㄷ
마음을 진정시키고 찬찬히 둘러봅시다. 기기에 '찐' 카본 파이버가 사용돼서 그런지 박스 표면에 카본 패턴을 형상화 한 엠보싱 처리가 돼 있고, 나머지 로고들에는 각각 은박과 편광필름(느낌 나는 오묘한 코팅?)까지 적용해 고급진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하긴 한두푼하는 물건도 아니고 무려 69만원짜리 물건인데 응당 이래야죠. 생각해 보면, 너무 당연하게 100만원이 넘어가는 2020년대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패키지가 비상식적인거에요ㅋㅋㅋㅋ
그런데 충전기는 별매라니 대체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있던 거냐 엘지...
측면엔 핵심기능 소개가 간단히 적혀 있고
뒷면은 앞면과 동일합니다. 5MP 카메라! 무빙터치! 강화유리! 카본 파이버! 네온 터치 방향키! 그리고 그놈의 DMB!
가개통을 위해 봉인씰은 뜯어져 있었습니다. 참고로 이 시절 피처폰들은 통신사별로 다른 코드명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제 폰은 'LG U+'용 모델이라 'LG-LU6000' 이고 SK 텔레콤은 'LG-SU600', KT는 'LG-KU6000' 으로 각각 다릅니다.
그럼 이제 꺼내봅시다. 크으으 고급진 패키징
타이레놀 포장박스와 진배없는 얇은 겉박스와는 달리, 본체는 딴딴한 하드보드지로 만들어졌습니다. 고급스러운 가죽 질감의 텍스처가 입혀졌네요.
와... 심지어 이런 곳의 보호비닐까지 그대로 붙어 있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내가 뜯어야징
비닐을 뜯는 이런 행위까지 포함한 모든 경험을 위해 풀박스를 구입한거그등요.
초딩 시절의 내가 꿈꿨던 일을 대딩이 된 내가 이뤄 준다니 로망 그 잡채
S E C R E T
크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 이 모습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될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중고매물 들여온다 해도 그냥 단말기 단품만 손에 넣을 줄 알았지 이렇게 박스에 고이 포장된채로 마주하게 될줄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감격스럽다
옆의 손잡이를 당겨 폰을 들어올립니다.
폰이 담겨있던 트레이를 들어내면 마구잡이로 뒤섞인 구성품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2000년대 갬성ㅋㅋㅋㅋㅋㅋ
뭐가 되게 많습니다. (저는 나~중에 훨씬 싸게 사긴 했지만) 발매 당시에는 69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인 보람이 있었겠어요. 이 지점에서 제가 가진 130만원짜리 폰의 구성품을 보고 오겠습니다.
에라이 ㅆ
파우치는 카본 파이버(탄소섬유) 패턴 기조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무광 마감이라 표면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네요.
상단부의 끈은 파우치에 핸드폰 넣고 입구 조이라고 저렇게 달려 있는 건데, 직접 해 보니 핸드폰이 너무 타이트하게 들어가는지라 조여질 공간이 없더군요ㅋㅋㅋㅋ
배터리 충전 크래들에는 추억의 TTA 규격 단자가 있습니다.
와... 이런 형태의 악세사리는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져 있었는데 정말 반갑네요. 요즘 친구들은 모르겠지만 이건 핸드폰고리 구멍에 매어두고 쓰는 액정클리너랍니다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여기서도 보이는 카본 패턴
아 그런데 루리웹에는 요즘 친구들이 없겠구나
얼핏 보면 스타일러스 펜 같지만
뚜껑을 따고
반대편 끝을 쫙 잡아늘리면 DMB 안테나가 되지요!
핸드폰을 가로로 들고 있을지 세로로 들고 있을지에 따라 여기를 굽힐 수도 있답니다.
배터리는 두 개가 들어있고 하나만 개봉된 상태입니다. 아직도 밀봉씰이 멀쩡하다니 으메이징하네요.
이건 이미 하나가 개봉돼있으니 나머지 하나는 굳이 뜯지 않겠습니다.
충전단자의 파편화로 인해 꼭 필요했던 젠더... 이것도 추억이 됐네요.
이어폰입니다. 아니 핸즈프리라고 해야 하나?
3.5mm 플러그를 갖춘 이어폰이 핸즈프리 모듈(?)에 끼워진 형태입니다. 저 모듈에 전화수신 버튼과 볼륨조절부, 그리고 마이크가 탑재돼있죠. 그 와중에 핸즈프리 모듈은 폰에 18핀 단자로 연결됨
여기에도 보호비닐이 있군요?
편-안
이런 마감이 처음 볼때는 참 예쁜데 쓰다보면 먼지 잔뜩 껴서 금방 더러워지곤 했죠.
이제 진짜로 시크릿폰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정말 온갖 군데에 보호비닐이 붙어 있습니다. 위 사진만 해도 강화유리, OK버튼, 하단 버튼에 꼼꼼히도 발라놨죠.
키패드도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뒷면이 압권입니다.
카본 배터리 커버는 물론이고 카메라 옆의 간이 거울, 적외선 통신 창(?), 그리고 상판 안쪽에도 비닐이 붙어 있습니다.
개운허다
이제 온전한 모습의 시크릿폰을 감상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와중에 비치는 아이폰
시크릿폰은 발매 초기에는 위의 단일색상만 존재했으나,
이후 바이올렛과 골드 색상이 추가됐습니다. 모두 실물로 본 입장에서 다 예쁘긴 하지만 역시 근본은 실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이올렛 진짜 예쁘긴 함 골드도 상당하고...
옛날에 처음 봤을때부터 들었던 생각이지만, 이 전면부 하단의 디자인은 그냥 완벽한 것 같습니다.
물리버튼과 터치버튼을 가장 아름답게 구성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어요. 일체감있게 쭉 이어져 헤어라인 마감이 더해진 세 개의 버튼을 스테인리스 스틸 테두리가 두르고, 그 속에는 마치 호수를 연상케 하는 맑고 고운 강화유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오직 OK버튼만이 강화유리의 수면 위에 고요히 떠 있죠. 그래서인지 (나중에 보겠지만) 터치버튼은 마치 수면 위의 파동을 연상케 하는 비주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단부 디자인도 만만찮습니다. 아래쪽에서 올라온 스테인리스 스틸 테두리가 끝나는 사이에는 가죽 질감이 들어찼고, 그것과 강화유리의 틈에 자연스럽게 끼어든 스피커에는 시크한 크롬 엑센트가 더해졌습니다. 완벽하다 정말
한편 제가 LG 버전 단말기를 선택한 이유가 사진 속에 있습니다. 당시 SK는 T, KT는 SHOW, LG는 OZ 브랜드를 밀고 있었지요.
이 로고를 시크릿폰에 적용했더니...
완벽한 디자인에 자기주장 강한 추노마크를 때려박자 디자인이 갑자기 확 구려진 거에요.
그나마 LG의 OZ 마크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나 싶습니다.
한편, 계속 보호비닐이 붙어있던 신품급 물건이지만 재질 자체의 노화를 피할 수는 없었나봅니다...
가소제 관련 문제인지 하판의 검은 플라스틱이 찐득찐득해지고 말았어요. 오래된 자동차 내장재에서도 흔히 보이는 현상이죠. 이건 뭐 돈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라 안타깝습니다. 이걸 어릴 적에 쓸 수 있었다면 뽀송뽀송한 재질감을 만끽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먼지만 잔뜩 달라붙고 있네요.
아무튼 그 찐득찐득한 기운이 위로 타고 올라와 스테인리스 스틸 테두리 하단부와 표면 중간중간에 자국이 생겼습니다. 저건 닦아도 안 없어지더군요.
그리고 표면의 마감은 몸의 때 마냥 점점 떨어져나가고 있었습니다ㅠㅠ
시크릿폰의 측면부 구성은 참 푸짐합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반셔터를 지원하는(!) 카메라 키, 멀티태스킹 키, 무빙 터치 키, 볼륨키, DMB 안테나 삽입구 되겠습니다.
반대편에는 스트랩 연결구와 18핀 연결단자밖에 없어서 단촐하네요.
이제 후면부입니다. 플라스틱 끈적해진 게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서 마음이 아픕니다ㅠㅠ
스튜디오가 따로 없어서 그런지 저런 반사광이 사진을 자꾸 망치네요
시크릿폰의 후면부는 카메라섬 디자인이 참 아쉽습니다. 국내출시되며 너프된 부분이거든요
나름 택티컬하니 보기 좋구만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해외판에서는 이렇게 깔끔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답니다. 국내판으로 오며 DMB 부품을 때려박느라 불가피하게 디자인을 수정해야 했다고... 아까 본 측면부의 사진을 다시 확인하면 딱 카메라 위치에 DMB 안테나 삽입구가 자리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ㅠㅠ
선녀같던 해외판을 보고 나니 국내판이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죠? 아무튼 카메라의 구성요소로는 5MP 카메라와 플래시, 간이 거울, AF 보조광 등이 있으며 핸드폰 상단에는 적외선 통신을 위한 창(?)이 뚫려 있습니다. 핸드폰끼리 저 부분을 맞대고 파일 주고받았을겁니다 아마... 전 친구가 없어서 안 해봐서 몰라요
추억의 스트랩 연결구. 시크릿폰은 저기에 DMB 안테나 달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카본으로 덮인 배터리커버는 정말 멋집니다. 그러고 보니 이 핸드폰에는 강화유리, 스테인리스 스틸, 카본, 플라스틱(크롬, 매트블랙, 가죽질감, 헤어라인)까지 정말 다양한 재질과 마감이 사용됐군요! 그런데 전혀 난잡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운 점입니다.
배터리커버 하단의 이 버튼을 누르면
마치 자동차의 본넷이 열리듯 배터리커버가 튀어올라옵니다.
어 그런데 유심칩 꽂는데가 없네
요건 마이크로SD카드 슬롯입니다.
커버를 밀어올려서
들어올리면 열립니다.
배터리 장착!
슬라이더를 열었습니다. 손맛이 죽여주네요. 역시 물리적인 요소가 있으니 물건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하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요즘 핸드폰엔 물리버튼이라고는 볼륨키랑 잠금키 정도가 전부라 영 재미가 없어요. 그나마 아이폰의 음소거 버튼이 흥미로운 정도?
키패드는 얼핏보면 개별 키가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마감만 다를 뿐인 한 장의 부품입니다.
하단에는 마이크가 주변의 가짜 구멍들 사이에 숨겨져 있습니다.
고급기종답게 상판의 안쪽은 깔끔한 편입니다. 저렴이 모델 보면 여기 마감이 날림인 모델도 많던데
인상깊었던 점은 스테인리스 스틸 부품이 단순한 데코레이션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슬라이드 레일이라는 엄연한 기능 또한 수행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완벽하다 정말
이제 전원을 켜 봅시다.
아주 정겨운 OZ 시작화면
전원 다 켜지니까 셀프 홍보영상을 틀어주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시절 갬성
확 깨는 부분입니다. 외관 디자인은 정말 기깔나게 잘 뽑아놨지만 아직 UI디자인 발전이 더딘 시기인지라 정말 촌스럽습니다.
'오늘은? 기분좋은변화' 크으으으으으으으으으 구수허다
어?
그래서 시킨 TTA 충전기! 집에 있는 놈은 맛이 갔더라고요. 와 2021년에 내 돈 주고 TTA 충전기를 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ㅋㅋ 근데 판매자가 저걸 완충제도 없이 비닐봉지에 넣어 보내준지라 박스 상태가 말이 아니네요
아무튼 충전 잘 되네요. 충전기 케이블에 충전상태 불빛 들어오는거 진짜 오랜만이네
다시 전원을 켰습니다.
번져나가는 파문을 연상케 하는 터치버튼의 디자인이 아름답습니다. 이렇게 보니 OK버튼이 더욱 섬처럼 보이는군요.
설정을 통해 이런 모양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불 끄고 보면 이런 모습. 시크릿폰은 전설이다 진짜ㅠㅠㅠㅠ
이런 재미진 물건을 혼자만 갖고 놀 수 없는 노릇이라 대충 영상으로도 담아 봤습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그럼 20000
ps. 예전에 시크릿폰과 함께 이 애니콜 소울폰도 참 눈길이 갔었는데 말이죠... 이를 어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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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간한 최신 취미용품 개봉할때보다 훨씬 두근거렸습니다 ㅎㅎ | 23.06.04 23: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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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벗겨지는거 아니에요? ㄷㄷ | 23.06.14 18: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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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기분이죠ㅋㅋㅋㅋ 진짜 이럴 때 쓰는 말이 '가슴이 웅장해진다'가 아닐까 싶네요 | 23.06.17 17:5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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