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眼手術執刀錄
―執刀 第38
붉은 배가 침몰해 있다 나의 입속에, 낮 동안 품었던
분노는 저녁의 음울한 파도 빛깔이다 두 입술은 등 돌리
고 잠든 알몸의 노부부, 등뼈 사이로 해안선이 길게 이어
져 있다 흑갈색 갈기의 말 적막이 혼자 걷고 있다 발자국
마다 흰 물거품들 노을에 반짝이고 빈 병과 죽지 않는 스
티로폼, 가방과 속옷이 널브러져 있다 벼랑은 백사장 끝
에서 유서 휘갈긴 병풍처럼 서 있고 낮게 출렁이는 수평선,
출입 금지 구역에서 중음신(中陰身) 아이 둘이 깔깔거리며
손으로 모래 무덤 만들며 놀고 있다 참살된 배를 품은 바
다의 턱을 쓰다듬는 소금 바람, 여기는 산 사람도 눈을 잃
고 말을 잃은 통곡의 땅, 팽목이다 물찬 폐처럼 출렁이는
구름아, 네 눈엔 보이니? 바다에 닿은 땅의 가파른 둔부가
흘리는 인간의 정혈(精血), 들리니? 해저에서 울리는 아기
고래들의 아리랑 허밍, 산 자와 죽은 입과 죽은 자의 죽지
않는 귀를 드나드는 파도, 물새 울음, 음(陰)의 비린 음들
개안수술집도록
함기석, 민음의 시 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