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眼手術執刀錄
―執刀 第25
이 시는 첫 문장부터 곰팡이가 피어 있다 청주시다 산
남동 법원 정문에 곰팡이 핀 노부부가 목발을 짚고 서 있
다 눈도 코도 입도 모두 곰팡이 핀 어휘들이다 허공을 떠
도는 찬 눈발처럼 이 시는 상징도 은유도 없다 얼굴이 없
다 청주시다 이 시에서 나는 폐허가 된 말의 유적지를 떠
도는 먼지이고 제거된 마침표다 소송을 소송할 수 없고
심판을 심판할 수 없는 검은 입술이다 도로엔 찢어진 법전
이 뒹굴고 힘없는 날벌레들의 주검만 자동차 바큇자국에
짓눌려 있다 찢어진 하늘에 꽃눈이 흩날리고 뱀처럼 바닥
을 사는 자들의 메마른 몸과 침묵 들, 누가 또 불길한 징
역을 선고 받고 말을 잃는다 곰팡이 핀 내 시의 음부처럼,
법원 울타리 따라 울음들이 노란 개나리 꽃빛으로 은폐되
고 있다 노부부의 울음이 4월의 눈발처럼 흩날리는 도시
다 이 시는 마지막 문장까지 곰팡이로 덮여 있다
개안수술집도록
함기석, 민음의 시 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