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때: 코로나 바이러스 시절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곳: 버스 안 뒷좌석
맨다리에 짧은 주름치마를 입고 두툼한 기모 점퍼 안에 흰 셔츠를 받
쳐 입은 열여섯, 열일곱 살가량의 소녀가 마스크 너머로 통화하고 있
다(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무대는 관객들 전부가 소녀의 앞좌석에 앉아 운전석을 향하고 있는 풍
경을 보여준다 소녀의 목소리는 무대가 아니라 객석 뒤편에서 들린다
응~ 남자친구가 바람피워서↗ 헤어진 적 있지―
어↺ 걔 핸드폰을 봤는데↷ 그 여자애랑↗ 다섯
시간 넘게 통화했더라↺
딱! 걸렸지↝ 나랑 통화할 때는↺ 십 분도 괴로워
했어↗ 코 고는 흉내 내고, 엄마가 부른다고 거짓
말하고 끊고 했거든― 그런데 걔랑은 다섯 시간
이나 통화한 거야↺
아냐! 화 안 냈어↗
울었어―
버스가 대화역사거리를 지나 삽다리를 돌아 동패중고
등학교에 이르는 데에 어김이 없었으므로
틀림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타지 않는 혀
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