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풍선을 불어줄게
나는 올라가 붕붕
나른한 오후를 배회해
피아노의 ‘라’는 무중력을 걷는 발자국 소리
오늘은 구름이 정육면체로 떠다니다 정십이면체로 변
하네
그 사이로
물오른 녹;綠의 가지를 섞고 있는 버드나무처럼
얽히고;絲 있는 빛의 그물;彖
나는 비행기야 비행기―, 비행기는 구름 위를 날 줄
아는 유일한 짐승이지
닥쳐, 커튼과 환풍기가 얘기하고 있잖아
소파는 가재미처럼 누워 있는 게 좋아
그만해,
곧 추락할 거 같애
술과 약이 필요해―손을 들어 만져봐
저 강을
허공에 떠서 흐르는
하나, 둘, 셋,
움직이지 않는 춤
현을 잃은 악기처럼
아직;未濟과 이미;毁濟에서 누워 있잖아
그러면 우리 좋아하는 음을 만들까?―양화는 남려南呂
에서 서강은 황종黃鍾으로 번지는,
출렁이는 음들로 색 고운 화장을 해줄게
우리는
작고 예쁜 솜털을 간지럽히는 파장을 듣자
노랑은 지금, 파랑은 나중, 초록은 방금 지나왔고,
빨강은 기억나지 않는 눈물
제일 아픈 색은 보라지―, 너무 뾰족해, 너무 뾰족해
울지 마
내가 풍선을 불어줄게
하늘 높이 올라가는 빨강 풍선
부풀어 곧 터져버리라 것 같은
우리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
보석으로 뒤덮인 나뭇가지에서 둘이
세상 모르고 잠든
(나중엔 우리도 그럴 수 있게)
비행기 날개에 씌워줄 모자를 짜자
너는 씨줄로
나는 날줄로
밤을 휘어서
별과 도시의 불빛을 녹여
개미들이 좋아하는 평면의 도시를 만드는 거야
―꽃잎처럼 숨어 있는
겹겹의 차원을 열어―
조심조심
서로 부딪치지 않게
라, 라, 라,
풍선이 풍선의 길을 가기 위해서
개미는 개미의 길을 가기 위해서
아무도 모르게
꼬이고 감겨 있구나*
* 승승혜불가명繩繩兮不可名: 새끼줄처럼 꼬이고 꼬여서 이름 부를 수
가 없구나―『노자』14장. 끈이론은 시공이 4차원이 아니라 적어도
10차원 이상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렇다면 네 개의 차원을 제외한 나
머지 차원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 그 나머지 차원들은 아주 작은 공간
속에 돌돌 잘 감겨 있다. 이 차원들이 감기는 방식은 수백만 개나 되고,
거기에서 다양한 우주가 허용된다. 그 개수는 무려 10⁵⁰⁰개에 달한다.
타지 않는 혀
함성호, 문학과지성 시인선 559
본문
[잡담] 오늘 시 (부- 병(病)(2))
2022.03.15 (11: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