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락
식기를 닦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도련님과 여자 친구분이 드신 그릇들을 닦고 있었다. 콘스탄챠 언니는 식탁을 닦고 계셨으며 바닐라 언니는 닦아진 식기들을 마른걸레로 닦는 모습이 보였었고.
"하아-"
"왜 그리 한숨을 쉬십니까 모모양?"
"아니 그게요..."
아까전부터 답답한 마음을 지우려야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여자친구란 분의 얼굴을 본 뒤로 이상하게도 마음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먹먹하다고 해야 할까, 답답하다고 해야 할까.
모모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내 가슴속을 메우고 있었다. 푸른 하늘을 서서히 덥혀오는 먹구름 마냥.
"어어!?"
내 손에 쥐던 접시가 미끄러졌다. 땅으로 향하려는 순간 바닐라 언니가 그대로 잡아줘서 간신히 깨지는 것을 면하였다.
"모모 양-아까부터 왜 그러십니까?"
"죄…. 죄송합니다..."
"주인님 가족들이 아끼시는 접시인데 이게 깨지면 어쩔뻔 났습니-"
훌쩍-하는 목소리가 목에서 나오고 말았다. 눈가 쪽에서 흘러나온 뜨거운 액체는 언성을 높이려던 바닐라 언니를 멈추게 해주었고, 일을 하던 콘스탄챠 언니도 주방 쪽으로 모습을 드러내셨다.
"모모 양 같이 차 마실까?"
"하지만… 일이 남았..."
"쉬세요 모모 양."
상황을 살짝 훑어보신 뒤 언니는 내 등을 토닥이시는 사이 바닐라 언니도 고개를 약간 돌리면서 말하였다.
"나머지는 내가 다 할 테니까. 모모 양 부탁해도 되죠 언니?"
"물론 바닐라. 모모 양 들었지? 쉬어도 된다고."
"...네."
나는 콘스탄챠 언니의 부추김을 받아 메이드 전용 방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울고 있는 나에게 콘스탄챠 언니는 내 등을 살포시 두들겨 주며 손수건을 건네주었고.
"모모 양."
걸어가던 중간에 바닐라 언니가 말을 꺼내 고개를 돌려보았다. 언니는 주방일을 하시느냐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뒤 언니가 꺼낸 말이 내 귀로 들어왔다.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미안해요."
콘스탄챠 언니가 따라 준 홍차를 마시면서 양손으로 머그잔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내 손으로 전달되는 것을 느끼면서 한 모금 더 마시니 무거웠던 속도 많이 가라앉았고.
"혹시 도련님 때문에 그러는 거니?"
"네 언니."
방긋 웃는 콘스탄챠 언니를 향해 나는 짧게 대답하였다.
"그…여자친구분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감정이 혼란스러웠어요. 먹먹하면서도 답답하고….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 하여튼 모르겠어요. 그냥..."
"후후후 모모 양 혹시 도련님을 좋아하는 거니?"
"네!?"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내 손을 휘젓기 시작했다. 좋아한다고? 내가 도련님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건 절대 아니야! 난 마법 소녀라고!
"언니 그건 아니잖아요-도련님에게 거둬 뒀지만, 엄연히 마법 소녀라고요-무엇보다 저는 도련님의-"
"농담이니까 진정하렴. 쿡쿡-"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킨 뒤 심호흡을 몇 번 하니 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언니는 허둥대던 내가 귀여웠는지 입을 가리면서 웃고 계셨고.
"나도 알아. 도련님이랑 너랑 사이가 매우 각별하다는 거. 도련님이 어렸을 때부터 만나서 같이 지내온 시간이 긴 편이고. 하지만..."
말끝이 희미했지만, 왠지 모르게 목소리 톤이 바뀌신 듯 했는데 내 예감이 맞았다는 듯 언니의 표정 역시 조금 굳어져 있었다.
"도련님은 평생 어린아이일 수가 없는 법이야."
차 한 모금 마신 뒤 머그잔을 테이블 위에 놓인 받침대에 놓으면서 말을 이어가셨다."
"도련님은 늘 항상 너에게 말한 거 있었지? 나중에 멋진 어른이 되고 싶은 게 꿈이라고. 그 과정에서 도련님은 자연스럽게 키가 커지시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짝을 찾으시는 거지. 그래 지금처럼 말이야."
"모모가 그럼 잘못한 건가요? 아까 전 여자 친구분이랑 사귀셨을 때 축하해야 했는데 그럼..."
"아아 모모 양은 잘못한 건 없어. 적어도 평소와 달리 도련님 앞에서 난리 피우지 않았잖니."
"제가 평소에 난리를 많이 쳤나요..."
"음-아마도?"
콘스탄챠 언니의 농담 섞인말에 우리 두 사람에게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 기록을 쓰면서 과거를 회상해보니 콘스탄챠 언니는 참 누구보다도 의지가 되주셨다. 고민이 있으시면 상냥하게 상담해주시면서 동시에 왠지 모를 진지함이 묻은 조언도 아껴주시지 않으셔서 나 말고도 바닐라 언니도 도련님도 상당히 언니에게 의지하셨다.
나한테 만약에 인간분들이 말하는 혈연적으로 맺어진 자매 즉 친 언니가 계셨다면 이런 느낌이었으려나.
"모모양이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게 있어."
웃음이 어느정도 가라 앉자 언니는 계속 해서 하시던 말을 이어가셨다. 아까전에 보이셨던 엄격한 표정을 다시 지으시면서.
"우리는 바이오 로이드야. 인간분 들을 섬기고 모시기 위해 만들어졌고 특히 우리 같은 메이드들은 주인님을 보필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알고 있어요 언니."
그건 내가 도련님에게 거둬지기 전, 내가 아직 마법 소녀 였을 때 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 매지컬 모모는 어린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단순히 바이오 로이드 로서가 아니라 매지컬 모모로서 그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아 방금 내가 무섭게 대했니 너무?"
"아니요 언니 전혀요. 괜찮아요 저."
언니랑 담화가 끝난 뒤 방으로 향하던 도중 여자 친구분이 복도를 배회하시는 것이 보였었다. 찰랑거리는 금빛이 감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아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
양손을 모아 다소곳하게 여자 친구분에게 인사를 했다. 여자친구분은 다정히 인사를 해주셨고.
"뭔가 도와줄 일이라도."
"도와줄 건 없고 미래 남편의 집이 어떤지 보는 거야."
"그럼 제가 안내라도."
"야 너 청각장애인이야 바이오 로이드?"
양쪽 눈이 크게 떠졌다.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장으로 변하면서 내 몸 역시 굳어버렸고.
여자친구분은 내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가면서...
"얼굴에 흉터난 폐기물 주제에 말이 많아. 퉤"
...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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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친구라는 분은 소년기 편 빌런이 될 예정입니다. 마법소녀물로 치면 일종의 악녀 포지션?
원래 고민 상담을 바닐라가 하는걸로 했지만 아무래도 상담쪽은 하우스 키퍼인 콘스탄챠가 어울린다 생각해서 콘스탄챠로 했습니다.
오타 지적 및 피드백 환영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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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도와드릴" 그리고 "도와줄"부분은 제가 높임말을 구분 못해 생긴 해프닝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전개가 가능했을텐데 이거 아쉽네요 허헛... 여자친구분 그야말로 속이 시커멓습니다. 도련님앞에서는 발랑한 이미지를 보이지만 없을테니 본색을 드러낸다랄까요. | 23.02.23 19:4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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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전의 인간들이 바이오로이드들을 어떻게 봤는지 묘사해보고 싶었다랄까요. 도련님이 워낙에 마음이 넓으신거. | 23.02.24 23: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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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만 해도 아직은 도련님과 메이드 관계 (혹은 친한 친구 사이) 정도였습니다. | 23.03.02 10: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