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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들과의 거리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좁혀졌어. 거야 당연히 나는 놈들을 향해, 놈들은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혹시라도 나를 무시하고 대장과 워울프에게 달려가는 놈이 있을까봐 나는 짐짓 크게 소리치면서 허공에 머신건을 쏴댔어.
“여기다, 새끼들아!”
날 무시하고 지나치면 좀 아플 거라는 명백한 신호였지. 놈들도 그 정도는 알아먹는 거 같더라고. 나는 놈들과 대장네 사이와의 거리를 벌리기 위해 일부러 그녀들과 먼 쪽으로 기동했어. 놈들은 따라오더군. 내 로켓탄에 죽지는 않더라도 그게 꽤 아프다는 것 정도는 학습했을 거야. 날 무시하고 둘을 향해 달렸다간 자기들 뒤통수가 좀 간지럽겠지, 안 그래?
“와 근데 좀 위압감 쩌네”
청사 아래서 놈들에게 잡아먹힐 뻔했을 때도 느낀 거지만, 놈들의 속도와 덩치는 상상 이상이었어. 그런데 나는 놈들을 따돌릴 상황도 아니었어. 내 다리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고, 너무 빨리 내달렸다간 ‘놈들을 유인한다’는 내 계획 자체가 어그러지니까. 그래도 조금 후엔 그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게 되었어. 이 술래잡기, 얼마 가지도 못하고 난 포위당했거든.
“아씨, 멀리 가지도 못했는데”
나름대로 비장하게 폼 잡았는데 벌써 붙잡히다니. 그래도 뭐, 어느 정도 거리는 벌려 놨고. 가진 걸 다 쏟아부으면 최소한의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어차피 잘 되었어. 요 머칠 간 놈들에게 쌓인 원한이 어디 한둘이어야지.
펑! 한 놈이 휘청했어. 아, 알아. 그 정도로는 안 죽는다는 거. 하지만 시간을 벌기엔 충분하지. 그러니 한 발, 두 발, 세 발 더 처먹어라. 펑! 펑! 펑!
끼엑! 께엑! 꽤액!
살 생각을 포기하고 마구 날뛰니까 오히려 맘이 편해지고 아주 즐거워졌어. 어, 나도 혹시 하이에나처럼 폭발성애나 트리거 해피(*총을 마구 난사하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증상) 같은 거 있었나? 아니면 그냥 나를 가로막은 저 괴물들이 고통스러워하는 게 즐겁나? 나 혹시 S성향 있었나? 음, 나중에 사령관이랑 잘 때 시험해 봐야겠다.
...그럴 날이 온다면 말이야.
“에잇! 에잇! 먹어라, 먹어!”
하지만 나의 난동은 오래가지 못했어. 나는 하나고 놈은 셋. 한 놈이 내 공격에 아파서 코를 감싸쥐면 그 새 두 놈이 내게 접근했지. 내가 아무리 뒤로 물러나며 놈들과 거리를 유지하려 해도 한계가 있었지. 다시 말하지만, 젠장. 포위 당한 건 내 쪽이거든. 아마 놈들은 영리하게 나를 몰아놓은 게 분명했어.
“이씨, 오지 마!”
아 하기야, 놈들이 내 부탁을 들을 이유는 없지. 한 놈이 앞발 - 앞발이겠지? 놈들한테 다리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규칙적으로 달려 있는 것도 아니고 - 을 휘둘렀어. 거기에 걸려서 갈가리 찢긴 고기조각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그만 본능적으로 내 대포를 돌려서 그걸 막았지.
“아악!”
다행히 덕분에 다진고기가 되는 건 피했지만, 내 사랑스러운 캐논포는 보기 흉하게 우그러지고 말았어. 포츈이 엄청나게 화내겠는데! 지금은 살아 돌아가서 그 화난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 앞발을 휘두른 걸 막기만 했는데도 엄청난 충격으로 나가떨어진 나 자신을 보면 미래가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았어. 나는, 그렇게, 헝겊인형처럼 나동그라졌어.
“켁, 케헥"
볼썽사납게 넘어진 채 일어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 삐걱대던 다리쪽 외골격이 드디어 맛이 갔나? 아님 발목이라도 삐었나? 아니면 이 빌어먹을 방독면 떄문에 숨차서 그런 건지도. 하여간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어.
"젠장, 여기까지군”
무기를 제압한다라. 놈들은 영리한 게 틀림없었지. 칸 대장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포는 놈들의 발톱 아래 무참히 휘어졌고 머신건도 찌그러졌어. 쓰러진 채 남은 머신건 하나로 발악하려 했지만, 꽈작!놈들의 발톱이 스치자 그것도 부질없이 박살났어.
‘이젠 진짜 끝장이네’
나동그라진 내 눈에, 건너편 저 멀리에서 옥신각신하는 칸 대장과 워울프가 보였어. 아니, 내가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얼척이 없네.
“빨리, 가버리라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대체 저기서 뭘 하는 거야? 또 워울프가 지1랄하나?
그러나 내 생각과는 정반대였나봐. 내 쪽으로 달려오려고 발버둥치는 쪽은, 존나게 믿기지 않게도, 칸 대장 쪽이었으니까. 오히려 워울프가 대장을 끌어내려고 애쓰는 쪽이었지만, 힘의 차이가 차이라 쉽지 않아보였어.
“카멜! 카멜! 이 바보자식!”
와.
나는 칸 대장의 그런 표정을 난생 처음 보았어.
그 신속의 칸이 우는 걸 본 적 있어? 난 없어. 그 날카로운 눈매가 그렇게나 일그러지고 눈믈이 흐르는 걸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단 말이야. 거리가 꽤 떨어져 있어 작게 보였지만, 나는 보았어. 눈물 때문에 대장의 워페인트가 지워질 정도인 걸. 언제나 냉철하고 여유넘치던 대장이, 울고 있다고? 눈물 때문에 방독면까지 벗어버리고서? 왜? 나 때문에? 어째서?
“개1자식아! 돌아와라! 돌아오란 말이다!! 명령이다!”
무리한 요구십니다. 그녀가 이렇게 거칠게 말하는 것도 이제껏 들어본 적 없었어. 늘 침착하게, 늘 든든하게 우릴 앞서나가던 칸 대장이 이렇게 표정을 구기고선, 감정을 드러내는 걸, 난 한 번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어. 그래도 나도 대장 옆에서 꽤 오래 지내왔는데도 말이야. 당장이라도 엎어져 있는 날 향해 뛰어들어올 기세였어. 옆에서 워울프가 그런 그녀를 잡아끄느라 무진장 고생하는 게 보였어.
“대장, 왜 이래! 우린 가야 한다고! 그리고 방독면 써!”
“놔라, 워울프, 젠장, 더는 죽게 하기 싫다!”
‘더는...?’
멸망 후 개체인 나는 대장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어.
“더는, 내 곁의 누구라도, 윽, 으윽”
대장의 뒷말은 거의 울먹이는 투였어.
“죽는 꼴 보기 싫단 말이다! 이거 놔라!”
뭐야, 이거, 내가 지금 이세계에 온 건가? 진짜 페더 말대로 뇌에 방사능 들어가서 환각 보나? 거리가 멀면 없던 신기루도 생기나? 칸 대장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고? 그 신속의 칸이 운다고? 것도 나 떄문에?
“아, 씨, 마지막인데 괜히 죄책감 느끼게 하네”
나는 중얼거렸어. 이젠 다른 수가 없었거든. 나는 품에 남은 마지막 로켓탄을 만지작거렸어. 대포가 망가져서 이젠 쏠 수도 없게 된 그 로켓탄을. 나름대로 많이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사흘 만에 다 써버리다니.”
흥, 그래도. 놈들에게 으적으적 씹할 때 놈들 뱃속에서 터뜨리면 좀 많이 아프겠지. 낙타고기는 좀 뜨거울 거야. 나는 로켓탄을 손에 쥐고 다가오는 놈들을 노려보았어. 놈들이 날 지나쳐 가지 못하도록, 골목 한복판에 버티고서.
“허튼 생각하지 마라! 카멜!”
뒤, 저 멀리에서 내 사랑하는 사막여우 대장이 뭐라고 소리치건 간에. 이젠 다른 수가 없었어. 존경스런 우리 대장이 뭐라건, 내 운명은, 이제 정해져 있었어.
“와라”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는 내게, 놈들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까지 가까이 왔어.
그리고 그제야 난 그 괴물의 몰골을 아주, 아주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었지. 징그럽고, 처참한.
빼곡이 들어찬 이빨을 가진, 온 몸 여기저기 달린 입들 사이로, 눈들이 보였어. LRL, 더치걸, 그 어린 아이들의 눈들과 똑같이 생긴. 그 눈들이 놈들의 온 몸에 점점이, 빽빽하게 박혀 눈알을 굴리고 있었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끔뻑이며 두리번거리는 그 눈들. 그 눈들에서 진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어. 울고 있는 걸까? 배고파서? 고통스러워서? 어쩐지 그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난 고개를 숙이고 말았어.
그제야 나는 새삼 다시 깨달을 수 있었어.
이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기 싫을 만큼 비틀리고 흉측하긴 해도.
우리와 똑같은, 바이오로이드라는 걸.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답은 이미 알고 있지. 방사능, 그리고, 인간들이.
원자력. 인간은 신의 힘을 손에 넣었나니.
그러나 그 신의 힘을 가지고서 인간은 괴물이 되었고 또한 온갖 추악한 것들을 낳았나니.
인간들은 그 힘을 더 좋은 데 쓸 수도 있었을 거야. 더 아름다운 데 쓸 수 있었을 거야. 아니면, 최소한 그 힘을 더 잘 이해하게 될 때까지는 조심스럽게, 신중하게, 안전하게, 그리고 평화적으로 쓰거나.
하지만 그들은 그 어느 것 하나도 하지 못했어. 그저 자신들은 그 힘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의 힘을 과신하며.
.....혹은, 자기 외의 다른 이들을 못 본 척 지옥에 밀어넣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신의 힘에 도취되어, 마치 망치를 든 어린아이마냥 그 힘을 휘둘렀으니.
결국 그들은, 그 힘으로 온 세상을 파괴하고, 자기들끼리 죽이는 괴물이 되었으며,
여기, 그 힘으로 또다른 괴물을 만들었나니,
이들은 과거의 뒤틀린 유산이요, 그 괴물의 자손이라.
‘그런데 왜 그 대가를 우리가 치러야 하는 걸까’
우리도 결국은 그 괴물들의 후손이라서? 우리가 그 괴물들의 유산 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그 괴물들을 다시 부활시키려 해서?
‘사령관....’
죽을 때가 되니까 갑자기 사령관의 얼굴이 떠올랐어. 사령관도 인간이지. 그러면 결국 그도 똑같을까? 그도, 혹은 그의 후손들도 똑같이 믿고 똑같이 행동할까? 그들도...똑같이 괴물이 될까?
‘지금의 내가 알 수도 없고, 미래에도 알 수 없겠지’
지금 당장의 나는 여기서 끝장날 판이니까. 곧, 놈들의 이빨이 날 으깨겠지.
"하아. 좀 더 오래 살고 싶었는데"
더 오래 살아서, 대장이랑 워울프랑 바보짓도 하고, 사령관이랑 야무지게 사랑도 해 보고, 페더가 좋아할 만한 므흣한 짓도 해 보고. 자식새끼들 손도 잡아보고 싶었는데.
세상일이란 역시 내 맘대로 되는 법이 없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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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된 사진은 원자력 사고로 유령도시가 된 프리피야트의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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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조만간에 올리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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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도 조만간에 올리겠습니다 ㅎㅎ | 21.12.18 03: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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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추종자
정확히는 카멜이 페더에게 시킨 계획이 늦지 않아야 하겠죠 ㅎㅎㅎ | 21.12.18 16: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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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여러 보로 칸은, 읭녀한 듯하면서도 멸망 전 전장에서 부하들을 잃어 온 PTSD 가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죠. | 21.12.18 16: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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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설정상으로도 칸은 부하들을 잃은 깊은 상처를 숨기고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 21.12.19 14:2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