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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은 끝났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선 다시 방독면을 썼어. 그리고선 거기 잠시 거기 그대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어. 인기척이 느껴졌거든,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어.
“다시 죽으러 오실 줄이야”
어둠 저편에서부터 마리아가 걸어나왔어. 당연히 그녀도 여길 알고 있었겠지. 그녀가 바로 여기서 그 죽음의 통신을 보냈을 테니까. 지금 바깥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그녀가 못 봤을 리도 없고
“차라리 감사하군요. 이렇게 제발로 다시 먹혀주러 오시다니.”
찰칵, 하고 마리아의 샷건이 장전되는 소리가 들렸어. 오우. 소름끼쳐라.
그런데 나도 준비해 둔 수가 없는 건 아니거든.
“누가 먹혀 준대?”
“허튼짓하지 마세요. 당신 총보다 장전된 제 총이 빠를 거랍니다”
그건 그렇겠지. 특히 이런 좁은 실내에서는 내 로켓포보단 샷건이 더 민첩하지. 하지만 나는 마리아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 저놈들은 살아있는 것만 먹으니까. 그리고 마리아에게 샷건이 있다면, 내겐 이게 있거든.
나는 손을 드는 척하며 내 방호복 조끼 주머니를 슬쩍 건드렸지. 그 안에서, 내가 미리 준비해 둔 자그마한 수류탄 하나가 흘러나와 굴러떨어졌어. 하이에나가 내게 줬던 두 개의 발연수류탄 중 하나가.
통, 통, 통, 뗴구르르. 거의 들리지도 않을 만지 작고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수류탄이 굴러갔어. 내 뒤통수 너머의 마리아의 발치로.
“의외로 고분고분하시군요. 포기한 건가요?”
워낙 작은 물건이고 또 방안이 어두워서 그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어. 모르면 당해야지. 나는 방복면 아래서 씩 웃었어.
“오, 그럴 리가”
수류탄이 터졌어. 푸확! 무지막지한 연막과 함께.
“악! 이런 파렴치한!”
“당신이 할 말이야?”
나는 내뱉듯 대꾸하는 동시에 몸을 던졌어. 마리아가 방아쇠를 당겼어. 하지만 늦었어. 난 이미 그 자리에 없었거든. 파팍!하고 그년의 벅샷(샷건의 산탄)은 엉뚱한 곳에 박혔지. 당연하지. 수류탄이 터졌을 때 그녀는 파편세례가 쏟아지는 줄 알고 기겁하며 물러났거든. 아, 나도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는데, 수류탄에서 나온 게 정말 아쉽게도 마리아를 피투성이로 만들 파편이 아니라 두꺼운 연막이라서 아쉽네. 어쨌든 나도 그녀도 각자 위치가 바뀌었고, 연막도 자욱하니, 당연히 그녀가 날 제대로 조준할 수 있을 리가 없었어. 연막 속, 방독면을 쓴 채 나는 씨익 웃었어.
“살아 있어? 그래도 그거 불꽃 좀 튀는데?”
“치마가 좀 탔네요...가 아니라!”
“저런. 말 할 여유가 있는거 보니 무사한가보네. 아쉬워라.”
목소리로 보아 머리 끝까지 화가 난 게 분명해 보였지. 아무렴. 잘못하면 앞으로 자기 ‘애’들에게 밥 못 주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 원대한 계획을 망치는 게 어찌 이리 즐거운지. 이제 자욱한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찼어. 덕분에 나는 뛰쳐나갈 시간을 벌었지.
“하지만 그 전에.”
마저 하고 갈 일이 있지.
“앞으로 다시는 네년이 무고한 이들을 못 납치하게 할 거야”
물론 나도 저 뭉글거리는 하이에나 특제 연막 너머 어디에 마리아가 있는진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바로 내 옆에 있는 통신장치들은 보이거든. 나는 내 머신건을 줄지어 늘어선 통신장비와 전산설비들에 겨눴어. 연기에 가려 보이진 않았겠지만, 마리아는 내가 뭘 하려는 건지 눈치챈 듯했지.
“그만둬...그만두세요!”
“이, 피해자 코스프레나 하는 년아”
컨셉충 워울프보다 더 질이 나쁜 코스프레지. 워울프의 개뻘짓은 아무도 죽이지 않지만(내 정신을 죽여놓으니 문제지), 저년의 위선된 코스프레는 그간 얼마나 많은 죽음을 정당화했을까.
드르르르륵!!나는 속시원하게 사방팔방에 머신건을 갈겨댔어. 나는 마리아가 총알에 맞아 죽는다 해도 하나도 아쉬울 거 없었고, 그녀와 달리 여기 통신장비가 작살나는 걸 오히려 바라마지않았으니까. 볼 것도 없이 미친 듯이 기관총탄을 뿌려댔지. 펑! 치치칙! 온갖 전자장비들이 산산조각나며 스파크를 흩뿌렸어. 오래 전의 기계들도 이 연기 파티에 동참했지.
“안 돼!!! 무슨 짓을!!!”
썩을 년, 눈먼 총알에라도 맞길 바랬는데, 너무 큰 꿈이었나 보네. 그래도, 두 번 다시는 도시 바깥에서 바이오로이드들을 ‘조달’하지 못하겠지.
절규하는 마리아를 뒤로 하고, 뭉게뭉게 퍼지는 매캐한 연기를 뚫고서 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건물 바깥으로 달려나갔어. 이젠 정말 시간이 없었거든. 그리고 연기 풀풀 나는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렸지. 보통 인간이면 다리가 부러졌겠지만, 헤, 나는 퀵 카멜이야. 지상 기동의 여왕...아니지, 여왕은 칸 대장이지. 지상 기동의 여백작 쯤이라고 해두자. 다리의 강화 외골격에 좀 무리가 갔겠지만(실제로 갔어), 단박에 뛰어내린 나는 곧바로 달렸어.
악전고투를 치르고 있는 두 호드를 향해.
“대장! 연락 마쳤어요! 이제 튑시다!”
“알았다! 워울프! 활로를 뚫어라!”
“아 진짜 대장은 시키면 다 되는 줄 알어!”
투덜거리면서도 워울프는 바지춤에서 하이에나가 내게 줬었던 마지막 발연수류탄을 꺼내들었어. 암튼 살아야 했으니까.
“사랑한다! 하이에나!”
수복실에 들어가 있는(그리고 수복이 끝나면 영창에 들어갈) 사고뭉치 하이에나를 위하여. 그래도 우리에게 이걸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워울프는 그걸, 이제 기름이 다 소모되고 타닥타닥 불길이 잦아들어가는 놈들의 코앞에 내던졌어.
펑! 다시 한 번, 매캐한 연막이 퍼져올랐어. 두꺼운 연막은 놈들의 시선을 가리기에 충분했고, 그 연막의 매캐한 냄새는 후각이 예민한 놈들을 혼란스럽게 했고, 수류탄이 터지며 나는 폭음은 놈들을 잠시 멈칫하게 만들었지. 이게 무슨 의미냐? 도망가려면 지금뿐이다 이거지. 달려라 호드! 꽁지가 빠지게 튀어라!!
“멈추지 마라! 내달려!”
지당하신 명령. 따르겠슴다. 우리는 달렸어. 탈론페더와 만나기로 한 도시의 남쪽 외각으로. 우리가 들어왔던 방향이었으니, 그나마 우리가 지리를 잘 아는 방면으로. 페더와 조금이라도 빨리 조우하고 이 망할 도시를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려면, 가능한 한 도시의 바깥쪽으로 나가야 할 테니까.
“아, 생각보다 좀...빠르지 않니, 이것들아?”
하지만 도시 외곽을 향한 우리의 필사의 질주는 오래가지 못했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분명히 우리 뒤에 있었어야 할 그것들이 우리 눈앞에 나타났거든.
“지름길을 타고 온 게 분명하다”
칸 대장이 짧게 평했어. 그래. 우리는 이 도시의 길을 다 모르지만 놈들은 지름길이나 더 동선이 짧은 길도 훤히 알고 있겠지. 그리고 놈들의 발도, 다리 한 쪽이 박살난 칸 대장과 함께 달리는 우리보다 빠를 테고. 발연수류탄이 놈들 발을 오래 묶어둘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워울프가 날 돌아보았어.
“계획 입안자 카멜 씨, 머리 좋은 낙타님은 당연히 이것도 다 대비했을 거야, 그지?”
“어.....”
솔직히 말할게. 페더랑 연락을 마친 다음에 도시 바깥 쪽 방향으로 죽어라 달린다는 계획만 있었지, 그 과정에서 일어날 일에 어떻게 대처할진 생각해 둔 게 없었어.
“.....”
“저기, 내 능지를 저놈들이랑 비교하는 그 눈빛 좀 거두어 줄래?”
갑자기 내가 저 괴물딱지들보다 멍청한 것 같다는 패배감이 드네! 아, 인정해! 나 그렇게 똑똑한 바이오로이드 아니라니깐! 내가 뭔 아르망이나 마리 대장 혹은 레오나 대장쯤 되는 줄 알아? 하지만 굳이 쟤네들이랑 비교해야겠어?
“계획이 없다면, 쳇, 저기, 우리 죽기 전에 방안 강구해 줄래?”
느물느물하게 말하곤 있었지만 워울프 말이 틀린 건 아니었어. 칸 대장이 착검한 리볼버 캐논을 앞세우고 달려나갔어. 그리고 우리 앞을 가로막은 놈들과 맞섰지. 놈들도 우리 셋 중 대장이 가장 강한 건 눈치채고 있었는지 두 놈이서 달려들었어. 양쪽에서.
“대장! 위험해요!”
“으큭!”
언제나 여유로운 대장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나왔어. 신속의 칸은 과연 명불허전 강력했어. 그 와중에도 정면에서 달려드는 놈의 면상에 대검을 꽂아넣고, 투쾅! 하고 나가떨어지게 만들었으니. 하지만 그놈에게서 대검을 빼내느라 그녀는 측면에서 달려드는 다음 놈에게 대처할 시간은 벌지 못했어.
“크윽!”
대장이 반쯤 반사적으로 휘두른 라볼버 캐논의 총신과 그놈의 게걸스럽게 쩍 벌린 이빨들이 충돌했어. 그 엄청난 힘에 칸 대장조차 일순간 뒤로 밀려났어. 투쾅! 쾅! 결국 대장은 놈에게도 대검을 박고 영거리 사격을 하는 데는 성공했어. 과연 칸 대장이야. 저놈들을 둘이나 정면에서 맞상대할 수 있다니. 하지만 거기까지였어. 놈의 이빨에 휘어진 리볼버 캐논의 총신이, 결국 사격을 버티지 못하고 찢어져 버렸거든. 우리 중 가장 강한 자, 신속의 칸의 무기가 무력화 된거야.
“대장! 대장! 괜찮아요?”
“난 괜찮으니 이동해라!”
“젠장, 이쪽은 나가는 길이 아닌데!”
놈들이 나동그라진 틈을 타, 우리는 도시를 나가는 것과는 엉뚱한 방향으로 기수를 틀어야만 했지. 명백했지. 놈들은 우리가 도시를 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어. 간신히 다시 거리를 벌리고 다음 블록 코너로 숨어든 우리는 헐떡였어. 이건, 끝이 없는, 그리고 절망적인 추격전이야. 이젠 못 쓰게 된, 총신이 망가져버린 리볼버 캐논을 쥐고선 대장이 침통하게 중얼거렸어.
“이런 술래잡기가 계속 반복되면 지는 건 우리 쪽이다”
맞아. 이런 식으로 가면 지치는 쪽도, 무기가 소모되는 쪽도 우리 쪽이야. 우린 이길 수 없어. 놈들에게.
“제기랄, 페더가 너무 늦는데”
우리 힘만으로는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어. 저 괴물들은 흉측하게 생긴 것과는 별개로 꽤나 영리한 게 틀림없었지. 수십 년 동안 여길 나간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뭘 의미하겠어? 놈들은 여기 지리를 다 꿰고 있을 테고, 한 명도 탈출하지 못하게 막아 왔지. 반대로 우린 여기가 생소한 동시에 칸 대장의 기동력도 떨어져 있었지.
“젠장”
최소한 페더와 만날 수 있을 만한 장소까진 가야 하는데. 그 정도까진 버텨야 하는데. 거의 다 왔는데. 나는 결단을 해야 했어.
“놈들이 오는군”
칸 대장의 말마따나 놈들의 그 질질 끄는 듯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어. 그래. 놈들은 여기 지리를 잘 알지. 우리를 추적하고, 몰아넣고, 유도할 수 있지. 영원히 여길 못 나가게.
‘페더가 올 때까지. 시간이 필요해’
하아, 별 수 없나. 계획 입안자인 내가 책임져야지. 나는, 오히려 자신이 미안해하는 대장에게 고개를 돌렸어.
“대장”
“미안하군. 나 때문이다. 내가 뒤쳐져서다.”
미안해 할 거 없어요. 내가 방안을 생각해냈어야 하는 거지. 하지만 나는 짐짓 대장을 원망하는 척을 해 보았어.
“그래요, 맞네요. 대장이 이번엔 짐덩어리네.”
워울프가‘오잉? 얘가 감히 하극상스럽게 대장에게 뭔 망발을?’하는 눈으로 날 돌아보았어. 야, 워울프. 평소에 대장에게 위아래 없이 안하무인으로 구는 건 네 쪽이거든? 하지만 난 거따 대고 말하진 않았어. 대신 대장에게 물어보았지.
“대장. 오르카에 더 중요한 쪽은 절까요, 대장일까요?”
“?”
“당연히 대장이죠. 그죠?”
당연하지. 나야 양산형이지만 대장은 사실상 원 오프 개체라고. 내 혼잣말에 칸 대장의 목소리가 떨렸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냐, 카멜”
“대장은 절 한번 구했어요”
“너, 설마....”
방독면 아래로 보이는 대장의 눈매가 묘하게 변했어. 솔직히 좀 신기했어. 대장이 이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보거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지. 받은 게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하찮은 미물도 은혜는 갚을 줄 알아. 그러니.
“그러니까 이번엔 내 차례에요.”
나는 대장에게 씩 웃어 보였어. 비록 방독면에 가려졌지만 부디 전해졌기를 바라며.
“워울프! 방안 생각났어!”
“오...! 뭔데?”
그리고는 칸 대장이 뭐라 하기도 전에 그녀를 잡아 일으키고선 워울프에게 내던졌지.
“대장 잡고 달려! 시간은 내가 번다!”
“엥? 엥? 카멜? 니가 어떻게? 야?”
“워울프 너 말야,”
“응?”
이왕 이리 된 거 원없이 말하고 가야지.
“너는 진짜 개 씹 돌대가리 썅1년 골칫덩이야”
“어?”
“너 뒤치다꺼리 하느라 존나 힘들고 짜증났다고.”
“응?”
“오르카 돌아가면 별 헛짓거리 좀 하지 마라, 알았냐!”
앞으로는 내가 니 바보짓에 츳코미 못 넣어 줄 테니까. 그리고, 여기서 욕 한사발 하고 가야 나중에 덜 슬퍼하겠지. 나도 속 후련하고.
워울프가 뭐라 하기도 전에 나는 달렸어.
....우리가 달려온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우릴 쫒아오는 괴물놈들을 향해.
<계속: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14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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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낙타는 그런 계획을 짤 정도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칸 공인 워울프와 동일지능(?)아니겠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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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낙타는 그런 계획을 짤 정도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칸 공인 워울프와 동일지능(?)아니겠읍니까 | 21.12.18 03:10 | |
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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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자추종자
흑흑 호드의 뒤치다꺼리는 모두 카멜에게로... | 21.12.18 16: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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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자기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 한이었을 것입니다 ㅎㅎ | 21.12.18 16: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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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이 시간을 잘 벌어줘야 하겠지요 ㅎ | 21.12.19 14:25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