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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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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미국도 그 동안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미 대륙이 가진 생산력을 총동원하고 대영제국제 무기들을 어떻게든 구해와 역설계하면서 나름의 무기 체계를 발전시켜 군사적으로 철저히 대비하려 하였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가진 가능성이었다. 풍부한 자원, 넘쳐나는 인재들. 어떻게든 흘러들어오는 선진적 기술들 덕에 미국은 그럭저럭 대영제국의 기술력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에 더해 아시아 국가들이나 아프리카와는 달리 대서양과 태평양이라는 커다란 방벽이 보호해주고 있었기에 그 정도의 기술력의 차이만 가지고 대영제국이 미국을 정복하러 나서기는 부담스러웠다.
카를이 가장 먼저 한 것은 기술력의 격차를 벌이는 것이었다. 그의 장기말들에게 자유를 주면 결국 그만큼 기술 유출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SIPHILIS를 보다 발전시켜, 성애의 감정뿐만 아니라 이를 뒤집어 혐오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2기 SIPHILIS를 만들었다. 외국인과의 접촉을 매우 강하게 혐오하도록 하여 공식적인 명령 없이도 실질적으로 쇄국정책을 도입하였다. 그저 나라가 금지했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들 스스로가 외국인과의 접촉을 피하고자 했던 것이기에 공식적인 쇄국 명령보다도 그 효과는 훨씬 강력했다.
한편, 혐오와 금기를 불러 일으키는 2기 SIPHILIS는 쇄국 정책 외에도 많은 면에서 카를에게 유용했다. 애정과 혐오 양 방향의 감정을 적절히 배분함으로써 그는 모든 국민들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종할 수 있었다. 카를은 사회 구조를 질서있게 정리하고 그가 생각하는 바대로 각자의 자리를 지키게끔 하였다. 덕분에 기술의 발전은 다시 한번 가속되었다(카를이 유라시아 대륙과 아프리카를 전부 통일한 1865년경 이후 50여년 이상 아무런 전쟁도 없는 역사상 유례없는 평화기가 계속되었던 것도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
1920년에는 최초의 컴퓨터 에니악이 완성되었으며, 그 후 트랜지스터 컴퓨터, 집적 회로 컴퓨터 등이 순식간에 개발되었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은 다시 로켓 기술을 급격히 발전시켰으며 1931년 대영제국의 바이코누르 우주연구소에서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우주에 쏘아 올리는 데에 성공한다.
카를의 쇄국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기에 대영제국이 1936년 최초의 통신위성을 쏴올리기 시작하였을 때까지도 인공위성은커녕 우주에 도달할 수 있는 로켓조차 아직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1942년, 대영제국이 5년여간 쏘아댄 수십개의 통신위성에서 뿌려대는 SIPHILIS에 미국도 속절없이 무너졌다. 더 이상 지상에서 S.S.E.X를 위한 기반 시설을 건설할 필요도 없었기에 미대륙을 정복하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1944년 7월 4일, 미국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미국이 다시 대영제국에 복속됨을 선언하였다. 남아 있는 오세아니아 대륙과 그 주변의 섬들은 처음부터 대영제국의 식민지였기에 별다른 저항도 없었다. 다만, 카를이 원하는 것은 단순한 통일이 아니라 완전한 복속이었기에 오세아니아 지역에도 인공위성을 통해 SIPHILIS를 퍼트렸으며, 1945년 9월 2일 카를은 공식적으로 대영제국이 전 지구를 통일하였음을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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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은 집무실 벽의 빨간 불을 잠시 쳐다보다 창 쪽으로 눈을 돌렸다. 한쪽 벽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창문 밖에는 이제 전 지구의 중심지가 된 제1도시 런던의 전경이 펼쳐져 있었다. 환한 낮에는, 지난 100여년의 기간 동안 급격하게 발전했기에 전통적인 건축물들과 현대적인 건축물이 마구 뒤섞여 있어, 실제 그 속에 사는 이들과는 정 반대로 자유로우면서도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이지만, 지금처럼 해가 저물어 어둠이 찾아오면 도시는 서서히 한가지 빛의 물결에 뒤덮여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은 통일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도시 이곳저곳에서 붉은 빛을 발하는 수백, 수천개의 십자가들. 카를이 잉글랜드를 넘어 전세계로 나아가게끔 한 1853년의 암살 미수 사건. 카를을 노린 간악한 암살범의 앞을 막아선 제니 여신은 두발의 총탄을 맞아 온 몸이 붉은 피로 뒤덮일 때까지 두 팔을 벌린 채 十字 모양으로 서 있었고 이에 감화된 암살범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것이 프리드리히가 퍼트린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에 감명받은 이들이 우리를 위해 희생한 제니의 붉은 십자가(JEnny Sacrificed for Us Scarlet Cross) – JESUS Cross를 여신의 상징으로 삼아 도시 곳곳에 붉게 빛나는 십자가를 세웠다.
탕-. SIPHILIS가 살인 욕구는 철저히 제거해왔기 때문에 살인 사건이 벌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광신도들은 제니를 기리기 위해서인지 가끔씩 해가 저물 무렵 허공을 향해 총을 발사하곤 했다.
SHIPILIS와 사건,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이 섞여 만들어진 광적인 신앙이 퍼져나가 여신의 대리인 카를의 지위는 더더욱 공고해졌다. 통일 이후에는 보다 노골적인 신격화가 이루어졌다. 인류에게 평화와 질서를 가져다 준 제니 여신, 인간이지만 여신의 대리인인 카를, 카를을 보좌하는 프리드리히. 더 이상 카를이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광신도들은 스스로 그들에 관한 신화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여정이 끝난 줄로만 알았지만 아직 카를에게는 더 가야할 길이 남아 있었다. SIPHILIS는 애정이든, 혐오든 사람의 감정을 극대화하여 사람의 행동을 간접적으로 조종하는 장치였기에 공감능력이 완전히 결여된 이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칠 수 없었다. 물론, 그러한 자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보통은 특유의 성격 탓에 중요한 자리에 있지도 않았기에 국가를 통합해나가는 과정에서는 카를의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영연방에 가입하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게 되자 그들도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그리고 1958년, 카를이 140세 되던 때에 비로소 그들은 가짜 여신의 압제에서 벗어나 진정한 신의 뜻을 전달하겠다며 자신들의 단체명은 로마 신화에서의 전령의 신, 머큐리라고 선포하며 궐기하여 각지에서 SIPHILIS 관련 기반시설들에 대한 테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결국 SIPHILIS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자들의 수는 너무나도 적었고, 그들이 활용할 수 있는 자원도 너무 적었다. 또한 카를은 SIPHILIS를 이용하여 모든 대영제국민들의 행동을 강력하게 통제할 수 있었고, 혹시라도 이에 따르지 않는 자가 나오면 –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 머큐리로 낙인찍고 즉시 처형하였다. 머큐리는 10년간 끈질기게 버텼지만, 1968년 5월에는 드디어 그들의 마지막 근거지가 맨체스터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카를은 지겹게 끌어온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이 끝났음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다시는 그런 자들이 나타날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하고자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 여태껏 단 한 번도 쓰인 적이 없었던 무기인 핵폭탄을 맨체스터에 사용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러한 일은 비밀리에 신속하게 처리되어야 했기에 제니, 카를, 프리드리히 셋만 모여 결정하였다. 물론 1853년부터 이미 100여년 이상 유폐생활을 하며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말 한마디 한 적 없는 제니는 그 자리에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프리드리히는 카를에게 재고해달라고 하였지만 카를은 이미 모든 것을 확실히 끝맺으려 하였기에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결국 런던에까지, 제니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프리드리히의 간곡한 설득에 러시아 미사일 연구소에서 개발한 50메가톤급 핵폭탄 대신 미국의 로스앨러모스 왕립 연구소가 개발한 15메가톤급의 핵폭탄 – 캐슬 브라보-로 투하 대상을 변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투하일은 1968년 5월 5일 카를의 150번째 생일, 시간은 일몰 직전인 저녁 8시로 정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지금 캐슬 브라보를 탑재한 폭격기가 작전 공역에 들어갔음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카를의 방에서 울린 것이다. 카를은 책상 뒤에서 나와 런던 전경이 보이는 창 앞에 섰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창 앞에 붉은 빛으로 숫자판과 문자들이 떠올랐다.
카를이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머뭇거리는 동안 똑똑- 거리는 노크소리가 나더니 카를이 대답하기도 전에 쉬익 하는 공기빠지는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옆으로 스르륵 열렸다.
「늦었군, 프리드리히. 예의상 하는 노크 같은 건 필요없으니 얼른 오게. 그런 거추장거리는 거 다 신경쓰지 말라고 모든 보안권한을 자네에게 주지 않았나. 벌써 TU-95는 작전지역에 들어갔다네.」 카를이 말했다.
「미안하네, 마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 이제부터 내가 할 일은 앞으로 영원히 기억될테니까.」 프리드리히가 침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 생각과는 달리 다음 세대들은 오늘을 구국의 결단으로 진정한 통일을 이룬 날로 기억할거야. 우리가 여태껏 이뤄온 인류의 발전과 번영과 질서를 이전의 불온한 상태로 되돌리려 한 반동분자들이 설 곳을 깔끔하게 지워버린 날로.」
「SIPHILIS가 계속 효과를 발휘한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자네가 떠난 뒤 그 때의 사람들도 자네같이 생각…」
카를의 말에 프리드리히가 다시 한 번 반박하려 하자 카를은 재빨리 말을 끊었다.
「이제 그만. 결국엔 자네도 동의한 거잖아. 이미 내린 결정에 다시 한 번 말싸움할 시간은 없어. 어서 와서 코드를 입력하게.」
집무실 문에서 창문까지는 기껏해야 스무 걸음도 안되었지만 프리드리히가 창문 앞까지 가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카를의 왼쪽에 선 프리드리히가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그 앞에도 숫자와 문자판이 떠올랐다. 카를과 프리드리히가 동시에 8자리 코드를 입력하자 삐빅- 하는 가벼운 신호음과 함께 화면이 사라졌다가 새로운 화면이 나타났다.
카를과 프리드리히의 정면에는 브리튼 섬의 항공지도 위에 조그마한 비행기 모양이 로지모스 공군기지에서 맨체스터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그 밑에는 타이머의 숫자가 매초마다 줄어들고 있었다. 항공지도와 타이머의 우측, 즉 카를이 서있는 곳 약간 오른쪽에는 오른손 모양의 사출 버튼이 점멸하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말했다. 「지금이라도 돌이킬 수는 없나?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이건 지나치게 잔인한 거야. 멀리서 단순히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을 죽게 한다니… 이런 게 반복된다면 우리가 지금껏 이뤄온 인류의 발전이 모두 무의미해질 수도 있는 거라고.」
「지금까지 해온 것도 다 그랬어. 처음에는 사람들의 욕망을 억지로 부풀렸다가, 다시 또 어떤 욕구는 완전히 거세해버렸지. 그리고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모든 욕구를 통제했고. 그게 인류를 어떻게 발전시켰다는 거지?」 카를이 되물었다.
「하지만 그 덕에 이런 가상 화면을 사용할 수도 있고, 저 앞의 도시도 자네가 해온 일 덕에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지. 인류의 발전, 우리가 해온 건 전부 그런 큰 뜻을 이루기 위한 거였다고.」
프리드리히의 항변에 카를이 다시 대답했다.
「자네는 그런 생각이었나보군. 나는 아니야.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제니를 위한 거였어. 인류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어. 인류를 위한다면서 그들이 마음껏 자유로이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게 하고, 마음껏 욕망하고 그 욕구를 표현하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어. 그게 인류를 위한 거라고!」
프리드리히가 카를을 쳐다보며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시작하려 하자, 카를이 왼손을 들어 잠시 멈추라는 표시를 했다. 타이머가 표시하는 숫자가 00:00:10이 되자 어디에선가 기계음으로 카운트다운이 들리기 시작했다.
「10」
「9」
「8」
프리드리히가 마지막으로 간청했다. 「카를 제발… 다시 생각해보게!」
「7」
「6」
「5」
카를은 오른손을 살짝 들어올릴 뿐 프리드리히의 말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4」
「3」
「2」
카를이 화면에서 점멸하는 손바닥 모양의 가상 사출 버튼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1」
마지막 카운트다운 소리를 듣고 난 후 카를은 손바닥을 한 뼘 정도 아래로 끌어내렸다.
「사출」
(4)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