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시골의 소작농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매일같이 밭을 돌봤고, 나는 옆에서 뛰놀거나 몰래 열매를 ㅁㅁ거나, 틈틈이 밭일을 배우기도 하였다.
아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즐겁고, 또 행복한 가정에 둘러싸여있을 적의 오랜 추억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아직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전쟁에 차출되고 나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부모님은 사실 저 먼 나라에서 이곳으로 도망쳐왔다 했다. 아버지는 이름 모를 나라의 기사요, 어머니는 왕의 따님이라 했다.
서로를 불길처럼 사랑한 나머지 도피하였다는데, 산적같이 생긴 아버지나 성격이 괄괄한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글쎄, 아무래도 거짓부렁 같았다.
그래도 주변에서도 알아주던 부모님의 금슬을 생각해보면, 언젠간 자신도 저런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하였지만.
나는 어머니의 목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팬던트를 보며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하였다.
눈물을 훌쩍이던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정말이지 검을 잘 다루신다고.
빛나는 흉갑과 눈빛을 가리는 투구, 예리한 검을 다루던 그를 누구도 이기지 못하였다고.
어머니는 그리 말씀하시며 아버지가 꼭 돌아오실 것이라 하셨었다.
'만약 내가 죽고 없거든, 부엌 바닥을 뜯어보거라.'
시간은 흐르고, 어머니의 고된 허리가 구부러져 성격이 한층 더 괄괄해졌을 쯤 나는 장성한 사내가 되었다. 어느샌가 어머니는 소중히 여기던 팬던트마저 잃어버리고 난 뒤였다.
그 사랑의 증거는, 어디로 간 걸까.
그러다 얼마 전, 어머니가 쓰러지셨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열이 들끓며, 밭은 기침만 내시다가, 어느 날 일어나보니 날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던 것이다.
혼자가 된 나에게 어느 날 지주가 찾아왔다. 마침 똑같이 열병으로 부모를 잃은 가여운 여인이 있다 하였다.
그는 나에게 결혼을 주선하고,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자신의 땅에서 소작농으로써 농사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 하였다.
고마웠다. 하지만 거절했다. 지주는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버지때도 그랬던 것처럼 위로금을 주고 떠났다.
어릴 때부터 들려오던 전쟁은 더 심해져서 이제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라 하였다. 온 세상을 불태울 기세로 저 밑까지 밀려 들어왔다고 하였다.
아버지또한 전쟁에 나가 어머니와 나를 두고 가버리셨다. 나 또한, 곧 전쟁에 참여하게 될 것이었다.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버지가 먼저 가신 탓에 어머니께서 그리도 고통스러웠던 것을. 전부 불타고 남은 한줌 재가 바스라지듯 흩어져버리고 말았던 것을.
전쟁의 불길은 곧이어 산너머까지 치밀었다. 나 또한 병사로써 소집되었다. 가족이나 연인이 있다면 말을 남기고 오라 하였다.
...나는 부엌으로 가, 바닥을 뜯어내었다.
'병사. 자네는 누구인가?'
어머니마저 돌아가신 후,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나는 줄곧 분노로 가득 차있었다.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 불타는 사랑을 하다 타버린듯 재가 된 듯 스러졌던 어머니.
그리고 나에게 웃으면서 해주던 그 허세 가득했던 거짓말들.
부엌의 바닥 밑에는 가죽과 천으로 돌돌 싸여 소중히 보관된, 그러나 빛이 바랜 흉갑과 투구, 검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애틋한 사랑을 속삭이듯 어머니의 팬던트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 모든 말이 마냥 거짓은 아니었다. 내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슬픔이 가득찼다.
아버지한테 이 칼이, 투구가, 하다못해 흉갑이라도 있으셨었더라면! 어째서 챙겨가시지 않았던 걸까?
그랬다면 아버지는 어머니께, 어린 나에게 웃으면서 돌아왔을 수도. 그랬을 수도... 어째서?
어째서였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의 흉갑을 입고, 투구를 쓴 뒤, 검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팬던트는 내 목에 걸어 흉갑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 어떤 날붙이나 화살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도록.
그리고 집을 한 번 둘러 보고는 바깥을 나섰다. 내가 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은 아마 다시 오지 않겠지.
나는 마을의 광장에 서있는 마차를 보았다. 마부는 한시가 급하니 어서 타라고 종용하였고. 나 외에도 누군가의 아버지, 형제가 마차에 올라탔다.
그들은 내가 입고 걸친 것이라도 부럽다는 듯이 보았으나, 별다른 말은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집결지로 향하였다.
집결지는 영주의 성이었다. 그것은 굉장히 거대하고 위압적이었다. 권위와 권세가 그 모습을 빌려 나를 짓누르는 듯했다.
그 밑에선 병사들이 쓸 무장을 지급하고 열을 갖춰 서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서 좀 떨어진 곳에, 병사들의 것보다는 내 아버지의 갑옷을 닮은 듯한 갑옷을 입은 자들은 기사인듯 싶었다.
그리고 영주. 영주님은 자신의 갑옷과 검으로 무장하고 투구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말을 타고 있었다. 영주님은 영지 각각의 마을에서 속속들이 모이는 영지민들을 하나하나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어떠한 굳센 의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가 나를 보았다. 그 슬픔에 찬 눈동자. 그 눈동자에 이질감이 깃들었다. 그는 나를 불러세웠다.
"병사. 자네는 누구인가?"
무엇을 묻는 것인지 몰라, 나는 떠듬떠듬 대답하였다.
"저는 저 산끝 마을에서 왔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소작을 하셨고, 저 또한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대답은 영주님이 바라던 바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지는듯 싶더니, 이윽고 말한 것이다.
"내가 과거, 어느 한 전쟁에서 맞닥뜨린 것이 병사가 지금 걸치고 있는 그 무장일세. 그것은 으뜸가는 자의 무구요, 가장 앞서서 달린 자의 것이며, 그 흉갑에 새겨진 것은 빛나는 자의 상징이다.
병사. 자네가 어디서 그 갑옷을 손에 넣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쟁과는 연이 없던 소작농의 아들이 쥐고 있을 법한 것이 아니란 말이네."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의 부모님께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먼 왕국의 기사이셨으며 빛나는 흉갑과 눈빛을 감추는 투구, 예리한 검을 들었고, 그 누구도 당해낼 자가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자네 부모의 이름이 무엇인가?"
"《》입니다. 저의 어머니께선......"
"....."
오랜만에 입 밖으로 내뱉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은 어째서인지 생경하였다.
영주님은 내 부모님의 이름을 듣고 나서 잠시간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말에서 내려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세게 움켜 쥐었다.
"병사, 자네나 그 부모가 사기꾼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라지. 내가 널 지켜보겠다. 진실로 그의 아들이라면 공훈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야 할 것이다."
어깨가 아파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저는 그렇게 할 겁니다."
영주가 왜 이러는지는 아리송하여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이 자가 날 사기꾼으로 보지 않게 되도록 놀라운 공훈을 세우고야 말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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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맞다 원랜 이거 넣으려고 했는데 | 20.04.26 14:07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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