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경 조선 임금 선조는 윤승훈과 이수일등에 명하여 동해 여진의 중심점중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던 노토를 토벌한다.
세간에는 이 노토 부락 토벌로 인해 누르하치의 건주 세력이 힘을 키웠다고 알려져 있으며,
이 때문에 선조가 여진 세력의 다툼 구도를 모르고 괜히 노토를 정벌하여 누르하치가 힘을 키웠다고 까인다.
그러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인데
누르하치 역시 노토 토벌에 영향을 받긴 했으나, 선조의 노토 정벌로 인하여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실질적으로 누르하치의 라이벌격인 부잔타이였기 때문이다.
부잔타이는 1593년의 구국지전 당시 누르하치에게 포로가 되었다가 이후 누르하치에 의해 울아의 버일러가 된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초반에는 누르하치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얼마 뒤에 누르하치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동해 여진을 공격하며 세력을 키워나갔고, 예허와 몽골 세력들과 연대하는등의 행보를 보였다.
이후로 부잔타이의 울아는 급속도로 재성장했는데, 중간중간 누르하치와 반목도 일으키고 할 수 없이 화해도 하면서 이룬 결과였다.
1600년 조선의 동해 여진 공격은 부잔타이에게 있어서 새로운 기회였다.
노토의 힘이 급속도로 약해지면서 부잔타이가 동해 여진에 보다 쉽게 진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잔타이는 노토의 힘이 약해진 뒤로 보다 쉽게 지속적으로 동해 여진을 공격,
이후에는 국경을 넘어서 조선까지 공격하는 일을 저지르고 이후 조선 조정으로부터 직첩까지 받아 자신의 권위를 상승시킨다.
덕분에 부잔타이는 일시적으로 누르하치와 어깨를 견줄만한 위치까지 다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