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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카의 인생은 급변의 연속 끝에 그나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스스로가 그야말로 떠밀리듯 지내왔음을 자각한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은 없겠지만.
그 안정기를 가져다 준 것은 '못찌'라고 자칭한 남자였다.
그 날 거리에서 그가 처음 앞에 나타났을만 해도 니카는 막연히 '손님'일 것이라 생각했다.
젊은 청춘을 데리고 놀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외모만 따지면 잘생긴 사람이 한 두 번 나타난 것은 아니니까.
화려한 염색에 자신보다도 고워 보이는 피부. 그 위에 걸쳐진 산뜻한 배색의 옷차림과 부드럽다 못해 초연한 느낌마저 주는 시선. 자신 같은 사람을 일시적으로 압도하는 듯한 화려함이었다.
꾸미는 것 쯤이야 주변 녀석들 중에서도 저 정도 하는 애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 자에겐 어색함이랄 게 딱히 느껴지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외모에 초면부터 익숙하게 접근해 오는 태도만 봐도 제법 많은 여자들한테 말을 걸어왔으리라 싶었다.
그래봤자 자신은 그런 부류와 깊이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쯤은 니카도 알고 있다. 이런 백사 같은 인간이라고 해도 조금이라도 노골적인 멘트가 들려오는 순간 꺼지라는 소리를 꺼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말을 꺼낼 수록 분위기는 조금씩 가라앉더니 그는 그제서야 본래 취지를 밝혔다. '같이 일 할 생각 없냐'고.
자잘한 아르바이트 경험이야 있는 그녀였지만 딱히 좋은 기억이랄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발언도 꺼림칙하게만 들려온다.
여태까지 그래왔듯 무시해버릴까 생각했으나, 이런저런 사탕발림 같은 소리를 늘어놓던 못찌는 불현듯 화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혹시 찾는 사람 있지 않아요?'
마치 자신에 대해 조사를 다 끝내놓았다는 듯이. 지금도 지겹게 접하고 있는 그 순진무구한 백사 같은 미소를 당시에도 짓고 있었다.
그녀는 직감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자신에게는 거부권 역시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까지 이상으로 험한 일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어차피 되는 일 없던 인생 뭐 달라질 게 있을까. 덜컥 하던 심장을 그렇게 억누르며 체념했다. 그 길을 받아들인 그녀는 면접이라 할 것도 없이 수상한 인간의 거처를 업무처로 삼고, 이따금씩 심부름에 가까운 잡일을 맡고는 했다.
나머지로 주어진 일과는 의외로 조용한 은둔&동거 생활이었다. 그러고만 있어도 급료가 들어온다. 숙식은 무료 제공이고, 심지어는 같이 게임하자거나 애니를 봐달라는 부탁을 일거리랍시고 내민 적도 있었다.
생산성이라고는 눈씻고 찾아보기 힘든, 소위 '꿈의 니트 생활'이라는 것을 한동안 누려 온 것이다. 눈을 질끈 감으며 이곳으로 향했던 자신이 바보같아지는 순간이었다.
못찌, 다른 별명으로 '캔필드'라고 하는 그 남자의 일과도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다.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그야말로 '폐인'이었다.
방 안에서 모니터나 쳐다보고 있다가, 이따금씩 어딘가로 쏘다니면서 뭔가로 꽉꽉 채운 가방을 히히덕거리며 들고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 갖고 돌아온 물건들은 방 안에 즐비한 컬렉션 중에 하나로서 자리잡는 경우가 다반사.
저러고 생활비가 남아도나. 남아돌지 않았다면 자신 같은 인간을 불러들였을리도 없으리라. 부러운 인생이라 시샘하기도 했지만 일단 뭔가 일이라는 것을 정말 하고 있다는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다. 엄청나게 수상해보이는 일이라는 것도.
이런 일상에 적응해 나가는 가운데 니카는 생각해 보았다. '사람 찾는 일'이란 미끼에 불과했을까. 그냥 저렴하게 같이 덕질하면서 보낼 수 있는 동거인이라도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기분 나쁘다. 최악이다. 하지만 막상 여길 뛰쳐나가서 뭘 하겠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도 현실이었다.
점점 심부름 다운 일을 맡게 되면서 내막을 알아갈 수 있었다.
주요 업무 분야는 '듀얼몬스터즈'라는 카드게임. 거기에 쓰이는 놀이용 카드나 관련 굿즈를 거래하면서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
카드샵의 축소판이 아닌가 싶지만, 어쩐지 어디서 구하기 힘든 엄청난 레어 카드들까지 유통하고 있다는 모양이었다. 일반적인 택배마저 이용하기 곤란하다고 할 정도로. 그런 것을 취급하면서 몇 번이나 주의를 주던 그는 어느 때보다도 심각해 보였다.
이런 아늑한 일상의 지속 여부가 직결된 수입처일 테니,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하며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런 일을 왜 자신한테 시키냐는 의문과는 별개로.
문제는 거래인과 대면하면서 듣게 된 이야기.
자신이 그런 분야에 완전 문외한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서, 그들은 이따금씩 수상한 키워드를 흘리고는 했다.
'어둠'이니, '에너지'니, 그리고 '디젠'이라느니 어디 픽션에서 쓰일 법한 고유명사들이 튀어나온다. 중2병스러운 망상도 정도가 있다. 썩 상태가 좋지 못한 사람들이 보이고는 했기에 헛소리라고 흘려넘기면 그만이었으나, 험악한 그들의 반응을 대하고 있다 보면 슬슬 생명의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 전후에도 엮이는 크고 작은 트러블은 덤이다.
카드 게임에 저렇게까지 심각한 사람들이라니, 이런 놈들한테서 돈을 뜯어내는 일이라면 자신 같은 총알받이가 필요할 만도 하겠구나.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교훈을 되새기며 그녀는 욕을 하면서도 심부름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머저리들 천지다. 그리고, 저런 게임이든 무엇이든 빠져들다 보면 머저리 중에 머저리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머저리들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빠져 있다 보면 못찌 같은 인간이 되고도 남겠지.
성실함과 건전함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는 삶에 길들여진 이상, 자신이 털어놓을 수 있는 불만은 말 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체념 속 나날, 여느 때처럼 잔심부름으로 밖을 돌아다니면서 SNS로 심심함을 달래고 있을 무렵이었다.
[실시간 다이빙 현장.jpg]
[나 사람 뛰어내린 거 첨봄ㄷㄷㄷ]
[그 쫄쫄이 맞지? 미친]
[히어로냐]
[히어로 덱 짰는데 평가 좀]
[무슨 코스한 건지 아는 사람]
[어디 로컬 히어로?]
[도미노 하면 카이바맨이잖아? 뭔데 이건]
[근본도 없는 쫄쫄이면 그냥 도둑이지 좀 프로페셔널하게 가고 싶었던]
[덱 갖고 있었다며 카드 도둑 아님?]
[내가 생각하는 거 맞나? 저러고 그냥 위에서 다이빙한거?]
[퍼포먼스 모르냐 갈땐 가더라도 간지 넘치게]
[히어로라면 망토로 하늘 정도는 날아줘야지 열정 ㅇㅈ한다]
[아니 탈락이지]
[망토라도 두르던가]
[히어로 덱 평가 좀]
이번에도 과몰입하다 인생을 달리 한 파란만장한 이야기인가. 커뮤니티를 떠돌다 보면 자주 접하기 마련이다. 장본인한테는 심각한 이야기일지라도, 새빨간 타인한테는 한낮 안주거리로 소모되기 적당한 화젯거리. 동정이든 조롱이든 그 반응은 대개 단락적이다.
그런 반응을 장본인이 들었다면 어떨까. 딱히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기분이 거슬리는 것부터 시작될 것이다. 얼마나 여유가 넘치길래 그렇게 남의 인생에 참견들일까.
아니면, 오히려 여유가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 자신보다 더 불행한 인생을 보고 싶어서 씹고 뜯을 거리가 필요한 것이다.
'가려면 혼자 곱게 갈 것이지. 거리 한복판에서 뛰어내리고 난리야.'
남의 인생 따위 알 바인가, 라고 생각하는 그녀마저도 그런 씹고 뜯을 만한 것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불행이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알고서 '세상은 요지경'이라며 자신을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커뮤니티를 통해서가 아니라도 요새 들어 육안으로 접할 일이 늘어난 느낌이었다. 자칫하면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런 면에서 화면을 통해 접하는 소식은 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상 딱 적당한 간식거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그런 화제가 들어왔으니 헉, 하는 맞장구라도 치고 넘어가주자. 어차피 뛰어내린 사람은, 만에 하나 살아 있더라도 이런 사소한 반응 따위 알 바 아닐 테니까.
그러나 인증을 위해 첨부된 사진에 니카는 눈길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긴…?'
확인된 건물이 유난히 눈에 익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가까운 곳이 아닌가. 안 그래도 사이렌 소리를 들은 것도 같기에 일이 벌어진지 정말로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태껏 얼굴도 모르던 지인들이 의외로 이 근처에 있다는 뜻이겠지. 그들이 누구인지보다 궁금해지는 것은 따로 있었다.
혹시나 하고 두리번거리던 그녀는 유난히 떠들썩한 현장을 목격한다. 구급차나 경찰차까지 와 있는 것을 보면 저쪽에서 사고라도 터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마른 침을 삼키고 니카는 살펴보고 오기로 한다.
현장에는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로 시트로 대충 덮어놓은 무언가가 보인다. 인증샷으로 올라왔던 것이 맞았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구급대원들이 들것으로 옮기기에 앞서 시트를 걷는 순간,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의 신원을 니카는 잠시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증언대로 타이즈차림이다. 얘기가 나왔던 헬멧은 신원과 생사 확인을 위해서인지 진작에 빼놓은 상태였기에 잠시동안이나마 맨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니카는 저도 모르게 호기심이 돋아난 나머지 발을 서둘러 접근했다.
폴리스 라인에 멈춘 상태에서 니카가 본 것은 피얼룩이 진 채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 거기서 니카는 기시감을 일으킨다.
고층에서 떨어졌기에 다소 깨져있기는 하지만 이목구비는 어떻게든 알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저, 저 사람…. 설마…….'
구역질이 찾아왔다. 시체라는 것을 처음 본 것도 아닐 텐데. 그 사람과는 겨우 몇 마디 나눈 것이 고작일 뿐인데.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남의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부딪히는 것이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이 마치 죽음이 근처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이라도 해버린 기분이다. 그 경험을 딱히 잊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적응에 지장이 생기는 모양이었다.
설마 저 사람은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을 했을까. 거기서 지는 바람에 저렇게 된 것이라면. 그런 의혹을 맞이하던 니카는 이내 마른 침을 한 번 더 삼키며 진정해 보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뭘 어떻게 해야 히어로 놀이하듯이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최후를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역시 억측에 불과할 것이다. 저 사람은 그저 분에 넘치는 시도를 했다가 저 꼴이 났을 뿐.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다 클대로 큰 사람이 겨우 저 정도로 하늘을 날 생각을 했다니. 역시 저 사람도 다른 방향이나마 머저리였다는 뜻이다. 저건 뭣도 아닌 촌극이다.
역시 안주거리 수준이 맞았다. 이제 평소처럼 시덥잖은 화제로 떠들면서 긴장을 풀어보도록 하자. 그런 마음에 다시 SNS 화면으로 눈을 옮기고는 알림을 확인한다.
그 가운데에는 처음 보는 계정에서 온 포스트도 섞여 있었다. 자신에게만 가도록 되어 있는 그 메시지의 내용은 사진이 몇 장. 그것은 사복 차림이던 아까 그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함께 떠 있는 글귀는,
[아는 사람인가요?]
한 순간 손에서 놓칠 뻔한 폰을 겨우 붙잡았다.
분명 잘못 보낸 메시지 따위가 아니다. 이 지경이 되어도 우연이라고 넘겨짚는 것은 어리석을지도 모른다. 높은 확률로 이 계정의 주인은 자신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다.
도사리고 있는 죽음이 이번에는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다니. 그것은 생각만으로도 싸늘한 손이 심장을 천천히 움켜쥐는 듯한 감각이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나 휴대폰이나 D-패드를 들고 있는 사람이 어디 한 두명이랴. 소용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폰으로 눈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이걸 대답해야 해, 말아야 해? 니카는 고민에 빠진다.
가장 기대해 마지 않는 것은, 무시하고 넘어가도 아무 일 없을 가능성이었다. 만약 망할 깡통 양반이 기강 잡기의 일환으로 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것이라면, 돌아가서 또 한 바탕 시원하게 욕을 쏟아주면 된다.
문제는 그게 아닐 경우. 정말로 제 3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면 어째야 좋을까. 만에 하나 그 사람이 저 남자를 죽게 만든 범인이라면.
벌써 그 시체가 누워있던 자리와 거리를 제법 좁혀 버렸으니 눈에 들어오고도 남았을 것이다. 즉, 이미 늦었다.
그 동안 니카가 익히 깨달은 것 중 하나는, 매사에 침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요하는 기색을 보였다가는 끝장이다.
그 시점에서 그녀가 택한 행동은 폰을 가방에 슬며시 집어넣고, 적당히 속도를 잡은 걸음으로 자리를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뜸해질 무렵에서야 그녀는 곧장 달려나갔다.
"시빌리언이라고 했지?"
"응? 뭐가?"
"저번에 덱 주문한 사람."
"아아, 그 히어로 지망생. 근데 왜?"
"죽었어. 빌딩에서 떨어졌더라."
"저런."
돌아와서 최대한 별 것 아닌 척 경과를 보고.
그리고 정말로 별 것 아닌 듯한 캔필드의 반응이 돌아온다. 웬 일로 남정네 소식치고는 아쉬워하는 편이었지만.
"덱도 같이 수거됐겠네?"
"그렇겠지. 카드 갖고 있었으면."
"아이, 아까워. 챙길 수 있으면 챙기지."
"경찰도 와 있는데 뭔 수로 슬쩍해."
"그러니까 당신이…, 에이, 됐다. 요금이야 받았으니까."
혀를 살짝 차고는 관대하게 넘어가는 그 모습을 어떻게 여겨야 좋을까.
이 남자가 화를 내는 포인트가 가끔씩 이해가 가지 않는 면은 있었다. 그나마 카드에 흠집이 난다거나 파손될 뻔한 일이라면 혼이 나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
"이 일 몰랐어?"
"방금 처음 들었는데?"
"SNS에 떴잖아."
증거 자료로서 사진 자료를 보여주자 캔필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진짜네."
이미 거래가 끝났다고는 해도 고객의 일에 이렇게나 무심하다니. 과연 브로커라는 양반이 보일 반응인가.
"아까 연락 보내지 않았어?"
"아니, 우리 애들 보는데 그럴 시간이 어디있어."
대답과 함께 벽걸이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킨다.
거기에 연결된 스트리밍 사이트 화면에는 꺼진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늘 그가 챙겨보던 버추얼 인플루언서 2인조가 노가리를 까던 시간이 막 끝이 났는지, 야간 시간대에 또 보자는 메시지를 남기고 대기 상태에 들어가 있었다.
거실 테이블에 놓인 노트북에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주식시장 화면 따위가 띄워져 있다.
정말 아무 정보도 확인 못했을까 싶지만 일단 그의 대답은 'No'. 즉 아까 그 메시지를 보낸 인물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나 마찬가지.
하지만 저런 것들을 보면서 다른 걸 하고 있을 가능성이야 얼마든지 있으니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요 사진 보낸 거 아냐?"
귀찮은 듯 눈을 찌푸려가며 작은 화면을 들여다 보는 캔필드는 이내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 놈 사진이잖아. 얼굴도 알 텐데 뭐하러 보내? 애초에 직접 봤을 때 이 차림도 아니었거든."
"그래."
대답은 여전히 'No'. 물론 100% 믿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알아두는 것이 좋으리라 판단했다. 이렇게까지 욕을 먹기 싫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어차피 물어볼 것은 많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그거, 혹시 어둠의 듀얼하고 관련있는 일이야? 거기서 지면 이 꼴이라도 난다던가."
"글쎄. 벌칙을 내린 놈 마음이지."
"벌칙으로 그렇게까지 된다고?"
"그럼. 이긴 쪽이 진 쪽의 몸과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한다. 즉, 운명을 손에 넣는다 이거지. 말 안 했던가?"
자해로 위장하는 살해까지 가능하다니. 막연히 목숨을 거는 게임이라고만 알고 있던 정보가 새롭게 갱신된다.
왜 굳이 그런 듀얼을 하는지, 목숨을 걸어가면서까지 그런 일에 매달리는지에 대한 이유는 설명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살인광다운 심리는 도저히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거기에 엮이게 될지라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디젠이라는 거 없으면 꿈도 못 꾸는 능력이야."
"알아."
"그럼 왜? 누구 묻어버리고 싶은 놈이라도 있어?"
"몰라서 물어?"
애매한 대답과 함께 눈을 지긋이 노려본다. 그 속에 담긴 살의가 진심이라는 것쯤은 캔필드도 잘 알고 있는 바.
"알았어, 알았어. 릴랙스. 이러면 디젠이 있어도 못 주겠잖아."
"진짜로 그거 없으면 어둠의 듀얼이라는 걸 못해?"
"절대라는 건 없지. 그치만 뭐, 보통은 그렇다고 보면 될 거야."
"절대라는 건, 없어…?"
"일방적으로 피해자를 만드는 케이스도 있다니까. 상대한테 디젠이 있든 없든 그냥 덤비는 거지."
"뭐야 그게, 큰일이잖아."
"그래서 몸을 사리라는 거거든. 바깥은 위험하단다. 이걸 가져가거라. 어머, 없네?"
아무렇지도 않게 심각한 정보를 흘려놓고는, 캔필드가 빈 손을 펼쳐가며 뭘 주려는 시늉으로 약을 올렸다.
하지만 평소와는 달리 입을 꾹 다물 뿐이던 니카는, 잠시 후가 되어서야 생각을 마친 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없어도, 듀얼은 할 줄 아는 게 좋겠지?"
"그럼. 적어도 도망갈 시간은 벌 수 있을지 누가 알아?"
더 떨어질 것 없는 인생이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살아갈 가치는 있으리라.
하지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갈 수 없는 게 사람 인생이다. 그런 당연한 법칙을 그 동안 외면해 왔으리라 반성해 보았다. 듀얼에 엮인 시점부터 필연이었던 것을 받아들일 차례인 것이다.
"결심했어."
"무슨 결심?"
"듀얼, 해볼래."
드디어 원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듯, 캔필드는 흐뭇해하며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D-패드를 가져오더니 앱 하나를 틀어서 내민다. D-패드의 기본 기능 중 하나인 듀얼 앱. 그 중에서도 여전히 최신이자 현역으로 쓰이고 있는 '마스터 듀얼' 버전이였다.
"천 리 길이라도 한 걸음부터, 돌처럼 단단한 그 의지로! 기초부터 배우는 거야."
그 동안 KC가 펼친 마케팅으로 인해 '듀얼 디스크'라는 판때기를 찬 상태로 이런저런 괴물딱지를 내보내서 싸우는 것이 세간에서 인식되는 '듀얼'이었지만, 본질은 어디까지나 카드를 놓고 싸우는 게임일 뿐. 솔리드 비전이니, 뉴런즈 기어니 하는 것은 그저 듀얼을 실감나게 즐기기 위한 보조 기능에 불과한 것이다.
D-패드를 사용한다고 해도 그런 기능 필요없이 단순히 비디오 게임을 하듯 듀얼을 즐길 수가 있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만 즐기는 유저(듀얼리스트) 역시 적지 않다는 모양이었다.
메뉴 창에서 '솔로 모드'를 선택한다. 일반적인 대전 모드와는 달리 혼자서만 진행하는 듀얼, 즉 연습을 위해 준비된 기능이었다.
먼저 시작할 것은 '튜토리얼'. 듀얼의 기본 진행을 배워가는 과정.
그 다음은 '듀얼 트레이닝'. 이런저런 룰이나 전략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고 실습을 통해 익혀 나가는 과정.
또 그 다음은 일종의 심화 과정. 샘플로 주어지는 각종 테마 덱으로 연습, 실전 단계를 거쳐가며 듀얼을 '마스터'해나가는 단계였다.
덤으로 수능 평가라 할 수 있는 검정 기능까지.
한 때 듀얼리스트를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시설 기획이 카이바 코퍼레이션에서 세워졌다는 모양이지만, 언제부턴가 흐지부지되고 대신 이런 식으로 듀얼에 더 간단히 접근할 수 있는 기능이 추진된 것이다.
이것만으로 실력을 마스터한다는 것은 무리수겠지만, 서비스가 이뤄지고 난 뒤로 다수의 입문자들을 확보하는 데에 성공하면서 듀얼의 수준이 한 단계 진보되었다는 성과가 발표되었다.
이런 것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카이바 코퍼레이션이 얼마나 접근성에 목이 메었는지 알 수 있으리라. 효율성까지 챙겼으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을 터.
그 효능을 니카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를 이렇게 쳐다본 것이 언제 적 일이던가. 나아가 집중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일이 얼마만이던가. 하지만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끼어드니 집중에 도움은 되었다.
저녁까지 앉은 자리에서 대충 때워가며 니카는 화면에 열중했다. 그 사이 여느 때처럼 업무와 취미 생활을 병행하던 캔필드는 잠시 방을 나와 흐뭇한 미소로 학습 현장을 슬쩍 지켜보고는 했다.
심야에 이르도록 프리 듀얼까지 연전으로 치르고 있자니, 어느 덧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캔필드는 무언가를 또 가져와서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 이걸로 기초는 대충 익힌 모양이니까. 최후의 시련이 필요하겠지?"
보이는 것은 덱 케이스 여섯 개.
"이 아이들 중 하나를 데려가렴."
색상은 제각각.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 무슨 덱일지 짐작하기는 힘들다.
"이걸로 듀얼하자고?"
"그럼. 선택권은 특별히 당신 먼저 주고, 그 다음은 나머지 하나를 내가 골라서 당신하고 한 판 치르는 거지."
보라색, 하늘색, 하얀색, 검은색, 녹색, 파란색.
찬찬히 덱 케이스를 번갈아 보던 니카는 어렴풋이 그 배색의 의미를 알아차린다. 여태까지 프리 듀얼을 치르면서 가장 손에 잘 맞던 덱은 어떤 것이었는가. 생각 끝에 그녀가 고른 것은 하얀색이었다.
"오케이, 난 이걸로."
그리고 캔필드가 고른 것은 파란색.
카펫으로도 쓸 수 있을 법한 고가형 플레이 매트를 테이블에 펼친 뒤, 각자 고른 덱을 자기 자리에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카드까지 케이스와 깔맞춤으로 된 프로텍터에 씌워져 있음을 알고는, 그 쓸데없는 정성과 사치에 니카가 혀를 내둘렀다.
듀얼 순서 배정은 아날로그식. 즉 가위바위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자 간다, 듀얼."
"듀얼."
[니카: LP 8000, 패 5장]
[캔필드: LP 8000, 패 5장]
덱을 살펴 보니 역시 싱크로 소환 주축이 맞았다. 이거라면 그나마 해볼 수 있겠지.
"내 턴, '상검사-막야'를 소환."
[상검사-막야: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1700 / DEF 1800]
"소환한 '막야'의 ①의 효과로, 패에 있는 '상검' 카드 1장을 공개하면 내 필드에 '상검 토큰'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상검사-태아'를 공개."
'상검' 카드의 효과로 튀어나오는 '상검 토큰'은 튜너. 즉, 카드 1장만으로 싱크로 소환이 가능해진다. 그러니 나온 싱크로 몬스터를 통해서 무언가를 더 전개하기 전에 싹을 잘라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럼 패에 있는 '무한포영'으로 체인. '막야'를 지정해서 무효로."
"큭."
카드 한 두 장만으로 간단히 전개할 수 있는 덱은 초보자가 다루기 쉽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런 카드가 막히는 순간 승산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상검'이라는 테마 역시 그렇다. 소환권을 써서 나온 '막야'의 효과가 막힌다면 그 다음 전개를 이어가는 데에도 지장이 생긴다. 운이 나쁘면 그대로 턴을 넘겨야 한다는 우려마저 있었다.
"그럼 마법 카드 '용상검현'으로 덱에 있는 '상검' 몬스터 하나를 추가. 그리고 가져온 '상검군사-용연'의 ①의 효과. 패에서 '상검' 카드나 환룡족 몬스터 1장을 버리고 필드에 특수 소환. 마찬가지로 '상검 토큰'도 불러낼 수 있어."
[상검군사-용연: 환룡족 / 화염 / 레벨 6 / ATK 1200 / DEF 2300]
[상검 토큰: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0 / DEF 0]
[니카: 패 2장]
하지만 다른 수가 있다면 돌파는 가능. 패를 더 쓰게 되니 비록 어드밴티지는 밑지고 들어가는 셈일지라도 그냥 막히는 것보다야 낫다.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그리 운이 나쁘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결국 싱크로 소환은 못 막은 거네. 그럼 레벨 4의 '막야'에 '상검 토큰'을 튜닝. 레벨 8 '상검대사-적소'를 싱크로 소환."
[상검대사-적소: 환룡족 / 빛 / 레벨 8 / ATK 2800 / DEF 1000]
"'적소'의 ①의 효과, 여기에 싱크로 소재로 묘지로 간 '막야'의 ②의 효과를 체인. 먼저 1장 드로우. 그리고 '적소'의 효과를 처리해서 덱에 있는 '상검' 카드인 '상검암전'을 제외."
[니카: 패 3장]
"계속해서 제외된 '상검암전'의 ②의 효과로, 이번에도 '상검 토큰'을 특수 소환."
[상검 토큰: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0 / DEF 0]
"그럼 두번째 싱크로 소환이야! 레벨 10 '상검대사-칠성용연'! 이어서 '용연'의 ②의 효과! 싱크로 소재가 돼서 묘지로 가면 상대에게 1200 데미지를 준다!"
[상검대사-칠성용연: 환룡족 / 화염 / 레벨 10 / ATK 2900 / DEF 2300]
[캔필드: LP 8000 → 6800]
"아직 안 끝났어. 마법 카드 '대령봉상검문'. 묘지에서 '상검'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용연'의 효과로 묘지로 간 '상검사-태아'를 부활."
[상검사-태아: 환룡족 / 바람 / 레벨 4 / ATK 1800 / DEF 1500]
"'태아'의 ①의 효과로 묘지에서 '상검' 카드인 '용연'을 제외, 그리고 '상검 토큰'을 특소 소환."
[상검 토큰: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0 / DEF 0]
"이번에도 레벨 4 '태아'에 '상검 토큰'을 튜닝해서, 레벨 8 '마구의 기적(아다마시아 라이즈)-드라가이트'를 싱크로 소환!"
[아다마시아 라이즈-드라가이트: 암석족 / 물 / 레벨 8 / ATK 3000 / DEF 2200]
"이어서 싱크로 소재가 된 '태아'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 1장을 묘지로 보낸다. 이쯤 하고 넘길게."
"내 턴."
[캔필드: 패 5장]
[니카: 패 2장]
'이 정도란 말이지….'
니카의 필드에는 이미 최상급 싱크로가 3체. 하나같이 견제 능력이 있는 만만찮은 장애물들이지만, 이는 치워주는 보람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라이트닝 스톰'. 이걸로 몬스터를 전부 파괴할게."
"'드라가이트'의 효과를 체인! 묘지에 물 속성 몬스터인 '막야'가 있으니까, 마법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한다."
"하하! 걸렸어. 그럼 두번째 마법 '시크릿 패스프레이즈'. 이걸로 덱에 있는 '라이브트윈' 마법 하나를 가져오지."
"'라이브트윈'…."
'Live☆Twin(라이브트윈)', 그리고 이를 뒤집은 'Evil★Twin(이빌트윈)'. 프리 매치를 통해 몇 번 접한 바에 따르면 특정 몬스터로 링크 소환을 비롯한 전개를 이어나가면서 어드밴티지를 벌어들이는 테마다.
하얀 케이스의 덱이 싱크로 소환 덱이었으니 파란 케이스의 덱을 골라간 그가 링크 소환을 구사하려는 것은 당연한 일. 미소녀 캐릭터로 이뤄진 테마인 만큼 취향에 따른 선택이리라.
무엇보다 이렇게 생긴 캐릭터가 나오는 인터넷 방송도 틈틈이 챙겨보고 있었으니까.
"가져온 지속 마법 'Live☆Twin(라이브트윈) 트러블상'을 발동. 효과 처리해서 덱에 있는 '라이브트윈' 몬스터 하나를 패에 추가."
"'칠성용연'의 ②의 효과를 체인! 상대가 마법을 발동했을 때, 그걸 제외하고 1200 데미지를 준다."
[캔필드: LP 6800 → 5600, 패 3장]
"이야, 장난 없네."
"그럼. 듀얼이 장난이야?"
"네네."
필드 마법이나 지속 마법처럼 발동하고도 필드에 남는 카드가 발동시 효과를 처리할 때, 체인을 당해서 필드를 벗어나는 순간 그 효과는 무효 처리된다. 마스터 듀얼 앱으로 연전을 치르면서 그것까지 숙지했을까. 아니면 단순히 얻어걸렸을 뿐일까.
"그래도 우리 애들은 이미 와 있으니까. 'Live☆Twin(라이브트윈) 키스킬' 쨩!"
[Live☆Twin 키스킬: 사이버스족 / 빛 / 레벨 2 / ATK 500 / DEF 0]
[캔필드: 패 2장]
"'키스킬' 쨩이 소환됐을 경우, 다른 몬스터가 내 필드에 없으면 '리일라' 쨩을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누구 맘대로. 이번엔 '적소'의 ②의 효과를 체인. 묘지의 '용상검현'을 제외하고, '키스킬'의 효과를 무효로 한다."
견제 능력에 연신 얻어맞으면서 어드밴티지만 낭비한 나머지 남아 있는 패는 고작 2장. 마스터 듀얼 앱이었다면 이 쯤에서 기권하고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
손익이랄 게 없는 듀얼이라면 그저 즐길 뿐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캔필드였으나, 패에 남아 있는 카드들은 아직도 더 기회를 달라고 부르짖는 것만 같았다. 애착이 있는 카드(아이)들이 그렇게 부탁한다면 들어줄 수밖에.
"그럼 몬스터 효과 발동했으니 '삼전의 재'. 첫번째 효과로 2장 드로우."
[캔필드: 패 3장]
'칠성용연'에게는 아직 특수 소환된 몬스터를 제외하고 1200의 효과 데미지를 주는 효과가 남아 있다. 링크 소환이든, 그 소재로 쓰일 몬스터를 불러내는 순간이든 치명적인 견제로 작용할 테지만, 다행히도 이를 틀어막을 카드가 딱 잡혀준 참이다.
"다음은 '마음의 변화'. '칠성용연'의 컨트롤을 받아갈게."
"아."
하얀 프로텍터가 씌인 카드를 낼름 집어가는 캔필드를 니카는 잡아먹을 듯 노려본다.
"이걸 어쩌나. 그럼 '키스킬' 쨩을 소재로 링크 1 'Evil★Twin(이빌트윈) 키스킬 딜'을 링크 소환."
[Evil★Twin 키스킬 딜: 악마족 / 빛 / LINK-1 / ATK 100 / 링크 마커 →]
"덱에서 '리일라' 하나를 묘지로 보내고 '키스킬 딜' 쨩의 ①의 효과를 쓸게. 이번 턴에 '키스킬', '리일라' 효과 발동에 당신이 효과를 쓸 때마다 1장씩 드로우할 수 있어."
"'증G'도 아니고…."
그럼 안 쓰면 그만이지. 애초에 효과를 쓸만한 카드가 지금 상황에서 남아있지 않았다.
애초에 저 카드를 꺼내는 것은 카드를 코스트로서 묘지로 보내는 것이 목적이렷다. 니카는 의도를 파악한다.
"그럼 계속해서, '키스킬 딜'과 '칠성용연'을 소재로 링크 소환, 'Evil★Twin(이빌트윈) 키스킬'!"
[Evil★Twin 키스킬: 악마족 / 빛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Evil 키스킬' 쨩의 ②의 효과. 내 필드에 '리일라' 몬스터가 없으니까, 묘지에 있는 '리일라'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Live☆Twin 리일라 트리트: 언데드족 / 어둠 / 레벨 2 / ATK 500 / DEF 0]
"다음 애도 나와줘야겠지? '리일라' 쨩과 '키스킬' 쨩을 소재로, 이번엔 'Evil★Twin(이빌트윈) 리일라' 쨩의 등장!"
[Evil★Twin 리일라: 악마족 / 어둠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엥? 하고 니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 아까까지 마스터 듀얼을 하면서 처음보는 카드들은 아니었다. 단지 일러스트 칸에 그려져 있는 모습에 차이가 있었을 뿐.
그녀가 기억하는 'Evil★Twin' 2인조는 괴도 컨셉이라기엔 다소 화려해 보이는 의상과 악마의 날개, 꼬리를 달고 있는 모습이었거늘, 그가 꺼내든 카드에는 아무리 봐도 조금 요란한 수준의 사복 패션을 차려입은 소녀들이 그려져 있던 것이다.
그가 자주 챙겨 보던 버추얼 스트리머들처럼.
"이쁘지? 그치만 아직이야. 'Evil' 콤비 둘을 소재로, 이번엔 'Evil★Twin's(이빌트윈즈) 트러블 써니'를 링크 소환!"
[Evil★Twin 트러블 써니: 악마족 / 어둠 / LINK-4 / ATK 3300 / 링크 마커 ↑←→↓]
"바로 배틀. '트러블 써니'로 '적소'를 공격."
[니카: LP 8000 → 7500]
"끝나지 않았어요. '트러블 써니'를 릴리스하면, ①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키스킬' 쨩과 '리일리' 쨩을 하나씩 데려올 수 있다는 말씀."
[Evil★Twin 리일라: 악마족 / 어둠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Evil★Twin 키스킬: 악마족 / 빛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그리고 여기서 'Evil' 콤비의 효과를 발동. '리일라' 쨩이 있는 상태에서 특수 소환된 '키스킬' 쨩은 드로우를 시켜줘. 그리고 '키스킬' 쨩이 있는 상태에서 특수 소환된 '리일라' 쨩은 ①의 효과로 카드 1장을 파괴할 수 있지. 대상은 '드라가이트'를 지정."
[캔필드: 패 3장]
남은 몬스터 하나마저 공격력 3000이라는 타점이 무색하게도 터져나간다. 카드를 치우고 나니 필드는 깔끔하게 비어버렸다.
"아직 배틀 페이즈였지? 'Evil 콤비'로 다이렉트 어택!"
[니카: LP 7500 → 5300]
화들짝. 방금 접한 감각에 니카는 졸다 깨기라도 한 듯이 움찔거린다.
그냥 카드만 매트 위에서 옮기고 있을 뿐인데도 저절로 그림 속의 소녀 콤비가 빠지고 다른 콤비가 난입해서 태클을 걸어오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던 것이다.
단순한 상상이라기엔 느낌이 묘하게 뚜렷하다.
"방금 그거 뭐야?"
"배틀 페이즈에 특수 소환한 몬스터는 그대로 공격…."
"아니, 그거 말고! 그러니까…."
이 녀석이 뭐라도 했나? 속으로 의아해하면서도 니카는 일단 태연하게 넘어가기로 한다.
이건 듀얼 디스크 따위를 쓰지 않는 단순한 딱지치기니까 솔리드 비전이라는 것이 개입할 일 따위는 없다. 그만큼 스스로가 이 듀얼에 몰입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나 있을 뿐.
니카는 잡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흔들었다.
"됐어, 하던 거나 해."
"그래, 릴랙스하라니까. 그냥 게임인데 뭘 그렇게 흥분을 하고 있어."
즐기기 싫은 것을 '즐긴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하는 꼴이라니. 그런 강인하신 이성의 소유자들에게 캔필드는 '피곤한 인생'이라는 감상을 품어보고는 했다. 자신 뿐만 아니라 남한테마저도 피곤하게 만드니까.
"메인 페이즈 2. 'Evil' 콤비를 소재로 또다른 링크 4를 꺼내도록 하겠어요, 이름하여 '빛 없는 그림자 아=바오 아 쿠'!"
[빛 없는 그림자 아=바오 아 쿠: 악마족 / 빛 / LINK-4 / ATK 2800 / 링크 마커 ↑←→↓]
"이름이 뭐 그래?"
"넘어가. 그리고 2장 세트. 당신 턴이야."
[니카: 패 3장]
[캔필드: 패 1장]
"끄으응."
첫 수부터 있는대로 때려부어서 세운 빌드가 다음 턴이 오기도 전에 전멸해버렸을 때, 그 여파는 다음 턴이 돌아온다고 해도 쓰라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전보다 자원이 더 한정되어버린 이상, 반격은 커녕 수습하기도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으니까.
이럴 때는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것이다.
"'욕망과 탐욕의 항아리'. 덱에서 10장 뒷면으로 제외하고 2장 드로우."
당장 해야 하는 전개를 위해 코스트로서 소모되는 자원을 아까워해서는 안 된다. 덱의 카드라면 더더욱. 어차피 요새 듀얼이라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까.
니카가 부딪혀보며 깨달은 결론이었다.
과연, 패는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고 있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38_25.jpg](https://i2.ruliweb.com/img/25/06/07/19747963983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38_26.jpg](https://i3.ruliweb.com/img/25/06/07/1974796378e20b132.jpg)
"내 필드의 몬스터가 상대보다 적으면, 패에 있는 '순백의 성녀 에클레시아'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순백의 성녀 에클레시아: 마법사족 / 빛 / 레벨 4 / ATK 1500 / DEF 1500]
[니카: 패 3장]
"'에클레시아'를 릴리스하고 효과 발동. 덱에서 '상검' 하나를 특수 소환."
"그럼 세트한 '무덤의 지명자'를 발동. '에클레시아'를 제외하고 효과도 무효로."
또 잡아먹으려는 표정이 날아든다. 캔필드는 어느 샌가 '쬐끄만 강아지가 으르렁대는 느낌'이라는 평가를 매기고 있었다.
"카드가 앞면으로 제외됐으니까 묘지에 있는 '심연의 상검룡'의 효과를 쓸 수가 있어. 이걸 특수 소환."
[심연의 상검룡: 환룡족 / 화염 / 레벨 4 / ATK 3000 / DEF 2900]
일단 어태커가 될 수 있는 몬스터 하나는 확보. 이제 다음은 싱크로 소환으로 이어갈 차례였다.
"뭐, 잘 됐어. 2장째 '막야'를 소환. 효과로 패에 있는 '혁성의 상검'을 보여주고, '상검 토큰'을 특수 소환."
[상검사-막야: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1700 / DEF 1800]
[상검 토큰: 환룡족 / 물 / 레벨 4 / ATK 0 / DEF 0]
[니카: 패 2장]
특수 소환된 몬스터의 효과만 제한이 걸리니 통상 소환으로 나온 몬스터한테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중요한 것은 상대한테 다른 견제 수단이 잡혀 있느냐.
"그럼 패를 1장 버리고 '아=바오 아 쿠'의 효과를 체인. '막야'를 파괴."
또다시 으르렁. 입꼬리가 올라간 저 얼굴을 한 대라도 치고싶어지는 충동을, 니카는 그냥 억누르기로 한다.
'아=바오 아 쿠'의 ①의 효과가 1턴에 1번만 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자신의 카드를 터치할 걱정은 잠시 놓아도 되겠지.
지금 필드에 있는 몬스터들의 레벨 합계는 12.
마침 그녀가 쓰고 있는 엑스트라 덱에도 레벨 12의 싱크로 몬스터는 있지만, 이걸 꺼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계산해낸다.
"'심연의 상검룡'을 릴리스하고 '상검서수-순균'을 특수 소환. 특수 소환된 '상검룡'은 묘지로 안 가고 제외돼."
[상검서수-순균: 환룡족 / 땅 / 레벨 6 / ATK 2400 / DEF 1800]
"호오."
'순균'은 전투시 상대 몬스터와 공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지금으로도 '아=바오 아 쿠'를 처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바엔 차라리 공격력으로 때려잡을 수 있는 '심연의 상검룡'을 남겨두는 것이 나았으리라.
더 좋은 계산이란 그 다음에 있는 것이었다.
"그럼 레벨 4 '상검 토큰'에 레벨 6 '순균'을 튜닝, 레벨 10의 '상검대공-승영'을 싱크로 소환. 그리고 제외된 카드 1장당 '승영'의 공격력은 100씩 상승! 더불어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은 100씩 내려가."
[상검대공-승영: 환룡족 / 물 / 레벨 10 / ATK 3000 → 4600 / DEF 3000 → 4600]
[빛 없는 그림자 아=바오 아 쿠: ATK 2800 → 1200]
드디어 '상검' 테마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몬스터를 꺼내들었다.
"뿐만 아니야. '순균'이 싱크로 소재가 되서 묘지로 가면 ③의 효과를 쓸 수 있거든. 세트한 당신 카드부터 제외할게."
치워진 캔필드의 카드는 'Evil★Twin 이지게임'. 현 시점에서는 쓰일 일 없는 블러핑이나 다름없는 카드지만 상관없었다.
"또 있어. 내 필드에 싱크로 몬스터가 있으니까 마법 카드 '혁성의 상검'을 발동. 당신 묘지에 있는 '트러블 써니'를 제외할 거야."
"필드에 있는 걸 제외해도 되는데?"
"그럴 역할은 따로 있으니까. 카드가 제외된 순간 '승영'의 효과도 발동. 당신 필드와 묘지에서 카드를 1장씩 제외한다. 이걸로 묘지의 'Evil 키스킬'하고 필드의 '아바오'…, 아무튼 그것도 끝이야. 제외된 카드 수만큼 '승영'의 공격력도 추가로 상승."
[상검대공-승영: 환룡족 / 물 / 레벨 10 / ATK 4600 → 5000 / DEF 4600 → 5000]
그렇지. 그렇게 하는 거야. 캔필드는 속으로 맞장구쳐주었다.
그 동안 주워들은 것이 있더라도 문외한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을 텐데. 아무리 방금 전까지 열심히 듀얼을 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모니터 너머로 상대하는 것과 직접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면서 상대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주어진 덱을 최대한 활용해가면서까지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다니. 더 적응만 할 수 있다면 분명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에도 발을 들일 수 있을 테지.
과연 피는 못 속인다고 하는 것일까.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니카는 평소처럼 흉한 것을 보는 시선으로 째려본다.
"뭘 빤히 쳐다봐? 기분 나쁘게."
"대견해서 그렇지."
"또 맞을 준비나 하세요. 배틀, '승영'으로 다이렉트 어택!"
[캔필드: LP 5600 → 600]
"아야."
모처럼의 진심도 전해질 수가 없다니, 하며 캔필드가 한탄해보이지만 역시나 무시.
"LP가 남았네. 아깝지만 이대로 턴 엔드야."
"알았어."
[캔필드: 패 1장]
[니카: 패 0장]
"2장째 '트러블상'을 발동. 덱에서 '키스킬'이나 '리일라' 쨩 하나를 데려오지."
지금 니카에게는 다른 견제 수단이 남지 않았다. 즉 '이빌트윈즈'의 퍼포먼스를 방해받을 일이 없다는 의미였다.
"2장째 '키스킬' 쨩을 소환. 효과로 덱에 있는 '리일라' 쨩을 특수 소환."
[Live☆Twin 키스킬: 사이버스족 / 빛 / 레벨 2 / ATK 500 / DEF 0]
[Live☆Twin 리일라: 사이버스족 / 어둠 / 레벨 2 / ATK 500 / DEF 0]
"더 있어. 내 필드에 '키스킬' 몬스터가 있으면, 묘지에서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할 수가 있거든. 'Live☆Twin(라이브트윈) 리일라 스위트'!"
[Live☆Twin 리일라 스위트: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2 / ATK 500 / DEF 0]
'아=바오 아 쿠'로 묘지로 보내놓은 카드를 재활용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여분의 '리일라 스위트'가 있었더라면 차라리 저번 턴에 '키스킬 딜'의 효과로 묘지로 보내서 전개에 써먹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설마 봐주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찌릿한 의혹의 시선이 캔필드에게 날아들었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38_34.jpg](https://i3.ruliweb.com/img/25/06/07/19747a26cc020b132.jpg)
"다시 간다. '키스킬', '리일라' 쨩을 소재로 2장째 'Evil 키스킬' 등장. '리일라 스위트' 쨩이 있으니까 드로우하도록 하겠어요."
[Evil★Twin 키스킬: 악마족 / 빛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캔필드: 패 1장]
"그 다음 'Evil 키스킬', '리일라 스위트' 쨩을 소재로 2장째 'Evil 리일라'도 등장. 그리고 ②의 효과로 묘지에 있는 'Evil 키스킬'을 부활."
[Evil★Twin 리일라: 악마족 / 어둠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Evil★Twin 키스킬: 악마족 / 빛 / LINK-2 / ATK 1100 / 링크 마커 ↓→]
이번에는 익숙한 버전의 'Evil★Twins' 콤비가 등장했다.
저 둘이 합쳐서 2장째 'Evil☆Twins'(이빌트윈스) 트러블 써니'가 나오든, 아니면 테마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Evil★Twins(이빌트윈즈) 키스킬 리일라'가 나오든 '승영'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 '트러블 써니'를 분리해서 'Evil 리일라'의 파괴 효과를 써도 '승영'의 ②의 효과로 막아버릴 수 있는데다, 효과 발동을 위해 묘지의 '상검' 카드를 제외했으니 또 ①의 효과를 격발시켜서 캔필드의 카드를 치워버릴 수가 있다.
설령 묘지에서 발동하는 '트러블 써니'의 ②의 효과를 써서 '승영'을 묘지로 보내도 니카의 LP를 전부 깎는 것은 불가능. 그 다음 턴이 오거든 새롭게 전개해서 결판을 내면 그만인 것이다.
그러나──
"이어서 내 필드에 '리일라'가 있으면 패에 있는 'Live☆Twin(라이브트윈) 키스킬 프로스트'도 특수 소환할 수 있지."
[Live☆Twin 키스킬 프로스트: 물족 / 빛 / 레벨 2 / ATK 500 / DEF 0]
"소환 조건은 효과 몬스터 4체 이상."
"어?"
분명 캔필드의 필드에는 아직 몬스터가 3체 뿐일 텐데.
"나는 'Evil★Twins' 둘, '키스킬 프로스트', 그리고 당신 필드의 승영을 링크 마커에 세트."
그걸 보충하고자 캔필드는 마음대로 '승영' 카드를 소재로 찍더니 묘지로 옮겨버란다. 이러는 게 어디있냐고 따지기 직전에 니카의 머리는 떠올렸다.
그런 카드가 진짜로 있다는 것을. 하필이면 '이빌트윈' 시리즈와 서포트를 공유하는 악마족이라는 것까지.
"링크 소환, 닫힌 세계의 명신(사로스=에레스 쿠르누기아스)!"
[사로스=에레스 쿠르누기아스: 악마족 / 빛 / LINK-5 / ATK 3000 / 링크 마커 ↑↗→↓↘]
과연. 그렇다면 쓰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덕분에 효과 파괴 내성이라는 능력이 발휘될 새도 없이 '승영'은 손쉽게 공략당한 것이다.
"배틀, '사로스=에레스 쿠르누기아스' 씨로 다이렉트 어택."
[니카: LP 5300 → 2300]
큭, 하고 니카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이제 당신 턴이야."
필드 / 패도 전부 비어버린 상태에서 다시 한 번 다이렉트 어택을 맞으면 패배. 모든 것은 다음에 뽑힐 카드에 달려 있었다.
그러나 2장째 '대령봉상검문'을 써서 '상검' 몬스터를 되살리려 해도 '쿠르누기아스'에게는 묘지에서 되살리는 효과를 무효로 하는 효과가 달려있다.
뭘 뽑아야 전세를 역전할 수 있을까.
"그럼 드로우."
[니카: 패 1장]
[캔필드: 패 0장]
덱이 가져다 준 그 답에 니카는 절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됐어! 나는 속성이 다른 몬스터 3종류를 제외하고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다. '아크네메시스 프로토스'!"
[아크네메시스 프로토스: 환룡족 / 어둠 / 레벨 10 / ATK 2500 / DEF 3000]
이 특수 소환 몬스터에게는 기사회생의 능력이 달려 있었다. '상검'과 같은 환룡족이라서 투입된 듯한 이 카드야말로 히든 카드나 다름없는 역할이겠지.
"그럼 '프로토스'의 효과 발동. 선언한 속성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하고 다음 턴까지 특수 소환을 못하게 만든다. 내가 선언할 건 빛 속성!"
'전부 파괴하는 효과'에는 호쾌한 맛이 있다. 역시 골치 아픈 것은 깔끔하게 치워버리는 것이 그만이니까. 통하는 순간 중독되어버릴 듯한 쾌감마저 드는 것이었다.
지금 목표에 해당되는 몬스터는 단 하나 뿐이지만, 없애버리는 순간 승리가 찾아온다.
니카가 그렇게 확신한 순간이었다.
"텍스트 좀 확인해줄래?"
"뭐?"
"'쿠르누기아스' 씨는 ②의 효과로 대상을 지정하지 않는 상대 카드 효과를 받지 않아."
"아."
뒤늦게 카드를 들여다보고나서 니카의 표정이 다시 굳어간다.
"…진짜네."
분명 안다고 생각했던 카드를 상대로 실수를 저질러버린 것이다.
일발역전일줄 알았는데.
"그, 그럼 '프로토스'를 수비 표시로…."
"뭔 소리야? 방금 공격 표시로 꺼냈잖아. 표시 형식을 바꾸려면 다음 턴 부터 해야 돼."
더구나 이번 턴이 끝일 것이라는 생각에 무심코 '프로토스'를 공격 표시로 꺼내고 말았다.
수비 표시였더라면 전투로는 버틸 수 있었을 터.
초보로서의 한계를 실감하며 니카의 머리가 잠시 멍해져 왔다.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해도 패나 필드에 다른 카드는 없다.
"…그럼 턴 엔드."
"오케이."
[캔필드: 패 1장]
[니카: 패 0장]
승산도 없는데 기권(서렌더)를 외치지 않는 것은 듀얼리스트로서의 긍지로 봐야 할까.
아니면 LP 계산이 안 되는 머리로 무슨 희망이라도 품고 있었던 것일까.
'그나저나… 이번에는 안 나와줬네. 하는 수 없나.'
캔필드에게 더 유감스러운 사실은 마지막까지 이 덱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Evil★Twins(이빌트윈즈) 키스킬 리일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편안하고 즐거운 듀얼이라면 찾아와 봐도 재미있었을 터.
그렇다고 대신 나와준 카드한테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지금 이 순간에 찾아와준 그녀는 오히려 칭찬을 해줘야 마땅했다. 이 덱이 마지막까지 자신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셈이다.
"링크 몬스터인 '쿠르누기아스' 씨를 릴리스하고 패에 있는 'L(릴)매지머지'의 효과를 발동. 그리고 특수 소환."
[L매지머지: 사이버스족 / 어둠 / 레벨 2 / ATK 0 / DEF 1200]
"뭐하는 거야? 링크 5나 되는 애를 왜 자기 손으로…?"
"'매지머지' 쨩은 묘지에 있는 링크 몬스터의 마커 수 곱하기 400 만큼 공격력이 올라가지. 어디 보자, 다 합해서 12개네."
[L매지머지: ATK 0 → 4800]
그저 입을 벌리고 있을 뿐인 니카를 보며 캔필드는 생각했다. 역시 얘는 아직 멀었구나 하고.
그런 아쉬움을 품으며 마무리에 들어가기로 한다.
"배틀, '매지머지' 쨩으로 '프로토스'를 공격."
"아…, 잠깐만."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소녀가 자기 키만한 지팡이를 쇠망치 마냥 휘두르자 용이 얻어맞고 뻗는 광경이겠지.
막을 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얻어맞는다는 것은 두렵고도 불쾌하다. 하필이면 두 몬스터의 공격력 차이는 딱 니카의 남은 LP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니카: LP 2300 → 0]
듀얼리스트 본인의 머리도 망치를 얻어맞은 듯 얼얼해진다.
이런 게 어디 있어, 그렇게 따지는 듯한 얼떨떨한 시선을 앞두고 캔필드가 한 마디.
"안타깝구나, 이게 듀얼이란다."
단순한 입문자였다면 적당히 져가면서 상대해도 되겠지. 하지만 그녀가 준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듀얼.
그렇다면 주어진 카드에 한해서라도 조금이나마 실전처럼 임할 필요가 있다.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모든 과정이 즐거울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둬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지는 기적이 남한테도 주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 따위 없으니까. 그녀는 이걸 '장난'으로 여길 단계는 아닌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지면…, 끝이란 거지?"
"그런 셈이지. 근데 이건 실전이 아니잖아. 이 정도면 잘한 거니까 괜찮아."
아직 즐길 수 없는 그녀를 달래며, 캔필드는 아까 보였던 훈훈한 미소를 또다시 드러낸다.
한 동안 그리 드러낼 일이 없었지만 처음 봤을 때도 보여주던 그 표정. 분명 다른 여자들 상대할 때도 저런 마스크를 선보여왔을 터.
이러니까 친절하고 부드러운 사람처럼 보인다. 듀얼을 시작한 무렵부터 어쩐지 이 미소를 더 자주 보여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시작의 의미로 그 덱은 당신한테 주도록 할게. 강화해도 좋고, 자신만의 덱을 새로 마련해봐도 좋겠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캔필드는 어쩐지 손을 내밀며 까닥까닥하고 있었다.
"뭐야?"
"덱 값은 내야지."
"공짜 아니었어?"
"그 동안 준 게 있잖냐. 돈은 쓰라고 있는 거야. 그거 짜는데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그래. 인심 썼다. 이 정도만 받을게."
D-패드의 계산기 화면에 써넣은 숫자를 보고서 니카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벼룩의 간을 떼먹어라, 이 나쁜 놈아."
"기브 앤 테이크 몰라? 당신이 나한테서 받아간 것에 비하면 극히 일부라고."
"살아남으려면 듀얼 익혀야 된다고 말한 건 당신이잖아?"
"그럼. 그리고 생존엔 자본이란 게 필요하지. 이런 것도 일종의 소통이거든. 그 교육에 대한 대가라고 생각하는 게 어때?"
그 부드러운 표정은 어디 가고 듯 평소 때 보던 뺀질거리는 얼굴로 돌아가 있다니. 뭐 이런 인간이 다 있나.
그렇게 잔뜩 심술이 나있는 표정은 캔필드의 코웃음을 유발했다.
"이런 식으로 남의 목숨 갖고 벌어먹으시겠다?"
"싫으면 다른 데서 구하던지."
끄으응하며 노려보는 니카의 모습은 어느 새 강아지에서 맹견으로 진화해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 날이 서 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지만 여전히 사납다는 의미였다.
과연, 길들이는 데에 상당한 피로를 유발하는 부류가 이런 것이다.
"어쨌든 돈만 내면 카드를 구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 이것만큼 싸게 쳐줄지는 모르겠다만."
어찌 됐든 어엿한 듀얼리스트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니카는 잠시 생각에 빠진다.
캔필드 시점에서는 누구한테 혼날까봐 변명거리를 궁리하는 꼬맹이의 몰골로도 보였지만, 말했다간 실례일 것이 뻔했기에 입을 다물기로 했다.
한 편 덱 케이스를 쳐다보며 진지한 생각을 마친 니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덱, 당장 쓸 일이 있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이걸로 이길 수는 있나?"
"그건 모르지. 일단 쓰기는 나쁘지 않은 덱이지만 그 한계는 그쪽이 방금 전에 느꼈을 거야. 뭐가 문제인지 알려주지 못할 건 없지."
"그건 공짜야?"
"기분 따라서."
"아까 본 덱들 중에 나머지는 어때?"
"비슷할걸. 참고로 그것도 돈 받을 거야."
불편한 기색을 영 떨치지 못한 듯 그녀는 여전히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알겠어. 생각해 볼게."
"네, 자주 이용해주시고."
돈 문제는 나중이고, 일단은 더 알아둬야겠다 싶은 문제가 있었다.
"혹시, 시빌리언하고 듀얼했던 사람 누구인지는 알겠어?"
"알지."
"누군데?"
캔필드는 떠올리기 싫은 것을 떠올린 듯 뚱해진 표정으로 대답한다.
"서문유진이랬을 거야."
"이름 똑바로 기억하는 거면 여자애겠네."
"안됐지만 아니더라."
"뭐? 별 일이다. 남자 이름을 다 기억하고."
"기억해야지. 암만 찍어눌러도 안 죽고 튀는 바퀴벌레한테 이름이란 게 있잖아."
"무슨 비유가 그래?"
"내 감상이 딱 그래서. 저번에 피부 까진 놈 두번 죽인 게 걔거든."
"아…."
"평범한 고딩인 척 하는데 듀얼 한 두 번 해 본 놈이 아냐. 몇 명 더 보내도 그 놈은 아직 살아있다고. 계속 뒀다간 나한테 좋을 게 없지 않겠니?"
이유를 설명해주는 그의 얼굴에서 소셜 게임할 때 캐릭터 뽑기에 실패하던 순간만큼의 짜증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냥 킬러라도 보내는 게 낫지 않아? 당신 정도면 될 거 아냐?"
"그런 애들 얕보면 곤란해. 말했잖아, 몇 명을 담궜다고. 저번에 어둠의 듀얼 가지고 몇 십명이서 대회를 치렀다는 얘기 들었거든? 손가락 꼽을 만큼 남은 생존자 중에 걔가 있었다더라."
"설마, 걔가 우승한 거야?"
"글쎄, 어쨌든 몇 번은 치고받았을 텐데 지금도 보기 좋게, 아니, 보기 나쁘게 버티고 앉았지. 그런 걸 일반 상식으로 대응할 수 있겠냔 말이야."
아무렇지 않게 살인을 저지르고, 나아가 자신을 단죄하려는 정의바보(히어로)까지 빌딩 아래로 떨구고는 태연히 일상 속에 섞여들어갈 수 있다니.
뭐 이런 카멜레온 같은 악당(빌런)이 다 있나 하며 니카는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걸 설명해주는 캔필드한테 정의감이 있어보이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자애도 아닐 텐데 저렇게까지 신원을 집요하게 파고들 정도로 유진이라는 녀석은 그의 미움을 단단히 사고 있었다. 그것이 그를 노리는 이유가 되겠지.
그 건에 대해 뭔가 거슬리는 게 있었나? 아니면 손해라도 본 것이 있나? 니카로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 정도 뿐이다.
"뭐하는 놈이래?"
"아는 놈한테 듣자 하니까, 뭔가에 대단한 관심이라도 받고 있나 보더라. 특별한 힘이 있다나 뭐라나. 보정빨(치트)이라는 거지. 치사하지 않냐?"
"그걸로 거슬리는 놈은 뭐든 없애버린다는 거야? 왜 그런 놈한테만 있는 건데?"
"그치? 그런 놈을 상대하는 데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아마도 전자이리라, 니카는 마저 추측한다.
이쯤에서 니카는 불안 요소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는 것을 확인한 시점에서 뭔가 거슬리는 요소가 생겼으니까.
"설마, 내가 찾는 사람이 걔야? 나한테 듀얼 가르쳐서 걔한테 보내기라도 하게?"
캔필드는 순간 미간을 찡그리고는 바로 코웃음으로 대답한다.
"그럴 리가, 그런 사소한 일에 소중한 사람을 보내서야 쓰나."
"아, 뭐래. 깡통 주제에."
'소중한'이라는 표현에 니카는 질색하는 반응부터 보였다.
어디 찔린 기색도 없이 바로 저런 소리부터 한다면 진심으로 봐도 좋을지, 아니면 눈 깜빡 안하고 거짓말을 내뱉는 것인지, 니카는 아직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의 신용을 가질 일부터가 없으니까.
"적어도 당신이 찾는 사람은 따로 있어. 걱정 마. 원하는 건 이루도록 해줄게."
오늘따라 왜 이렇게 징그러운 소리를 해 댄담.
순수한 선의라는 것은 기대할 것이 못 된다. 이런 인간한테서는 더더욱.
달콤한 말을 내뱉는 입 안에는 칼날이 숨어 있을 수도 있는 법이다.
"그것도 누구인지 알고는 있다는 뜻이야?"
그런 자신에게 향하는 니카의 시선을 캔필드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나마 평온을 맛봐도 가라앉지 않는 저 험악한 눈빛.
야생에서 떠돌다 다쳐서 민가에서 돌보게 된 들개한테서나 볼 법한 느낌이다. 캔필드에게는 결코 낮설지 않았다.
"글쎄? 당신은, 자기가 찾는 사람이 어떤 인물일지 생각해본 적 있어?"
"그게 안 되니까 당신한테 왔잖아."
"머릿속에 대강 떠오르는 이미지라던가?"
그녀는 잠깐 머리를 굴리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필요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가 됐든, 어떤 놈이든, 절대 가만 안 둘 거야."
"그래."
참으로 막연하고도 강렬한 원한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과 함께 있는 지금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복잡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나고 싶겠지. 원하는 것만 쳐다보며 살고 싶겠지. 그 본성도 캔필드는 진즉에 살펴보고 있었다.
"이건 그냥 묻는 건데, 원하는 걸 이루면 뭘 할 거야?"
"뭘 하냐니?"
"집도 가족도 없지. 학교는 중퇴했지. 딱히 배운 기술도 없지, 의지할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지. 그래서 거리에 혼자 앉아있던 당신이 다음에는 뭘 할지가 궁금하거든."
빈정 가득 상한 니카가 얼굴을 더 찌푸린다.
"당신이 상관 할 바야?"
"상관 해야지. 내가 먹여살리는데."
"윽."
그러나 의외로 상식적인 답변에 곧 입을 다물었다.
"뭐, 다른 일자리 알아보라고 구박하려는 건 딱히 아니니까 걱정 마. 엄연히 계약 관계니까 말이지. 당신은 이미 내 피고용인이라 이거거든. 이런 사람이 또 어디 있겠냐고?"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일단 무시.
곧 그녀는 축 처진 상태로 힘겹게 대답을 꺼냈다.
"그런 거…, 생각할 겨를도 없었어."
"글쎄, 그 동안 제법 있었다고 보는데."
"당신 말대로야. 나한테 남은 건 아무것도 없어. 뭘 할 수 있는 힘도 의지도."
잠시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굳이 때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력한 자기 자신이었으리라. 방금 전 간단히 즐기듯 진행된 듀얼에서조차 이기지 못하는 자신.
이번에는 그녀가 대답 대신 물음을 던진다.
"그러니까 나야말로 궁금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뭐야? 뭘 원하는 건데?"
"당신이 원하는 일은 나한테도 원하는 일이 될지 모르니까."
또 오그라드는 멘트인가 하며 니카가 한껏 얼굴을 찡그린다.
"뭔 소리야?"
"말 그대로지. 밑지고 장사하는 사람은 세상에 없는 법이야. 그러니까 당신은 자기가 원하는 걸 이룰 수 있는 몸이 돼줘야겠어."
"내가 원하는 거?"
"지금으로선 그게 당신이 치를 값이라고 생각해. 걱정 마, 당신이라면 크게 어렵지만도 않을 거야."
이 동거 생활이 익숙해진 시점부터 그가 꺼내는 빈말의 빈도는 급격하게 줄어든 참이다. 자신과는 달리 대놓고 욕부터 날리지 않는 것이 그가 하고 있는 최소한의 배려겠지.
그런 그가 자신한테 무슨 아쉬울 것이 있어서 비위를 맞춰주는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그의 격려하는 발언을 니카는 순수하게 고마워하기 힘들었다.
"역시 어둠의 듀얼이겠지? 그걸로밖에 해결 안 되는 거야?"
"나는 나로서 익숙한 방법을 제안하는 거니까. 다른 방법이 있을지는 알아서 생각해 봐."
세상에는 두렵고 불합리한 일이 넘쳐난다. 그것을 니카는 예전부터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되는 일이 없다고 소리를 쳐봐도 들어줄 사람은 한 동안 곁에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라니…."
그런 걸 생각할 머리가 되었다면 진즉에 실행에 옮겼겠지.
어쩌면 자신이 이런 결론을 내리는 순간을 그는 계속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불안을 고려하고도 자신은 이 결정에서 물러날 수 없었다.
"…어차피 실패하고 끝나도, 나한텐 잃을 게 없는데."
본인한테는 득이 되는 소리라는 것을 확신할 만한데도, 캔필드는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네거티브하면 될 일도 안 돼. 시작조차 못한다고."
언동이 사나운 주제에 금방 이렇게 풀이 죽어버리는 녀석이었다. 그냥 기분 띄워주도록 일부러 져줄 걸 그랬나.
"무슨 일이든 하면 할 수록 느는 법이니까. 듀얼도 마찬가지야. 그런 의미에서 첫걸음은 결코 나쁘지 않았어."
"그럼 다시 도전해도 돼?"
"으음, 나중에."
그는 바로 테이블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왜? 시간 있잖아."
"방금 그걸로 오늘 내 목숨은 끝난 거구나 하고 생각해 둬. 그리고 다음 기회에 어떻게 해야 지금처럼 안 될까 궁리하는 거야. 물론 실전엔 그런 거 없지만."
나머지 덱 케이스들 역시 치워진 가운데 니카가 고른 하얀 덱 케이스만이 앞에 남아 있었다. 카드를 다시 집어넣으며 그녀는 덱 케이스를 집어든다.
이것이 자신의 무기렷다. 어떻게 굴리는지는 알았으니, 이를 더욱 보강해서 목숨을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주어진 과제인 셈이리라.
"알았어. 그러니까…"
니카는 문득 무심코 입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삼킨다. 그리고 해야 마땅하다 싶은 말을 내뱉었다.
"난 당신 충고대로 내 목숨 지킬 방법이나 알아가는 것 뿐이야. 혹시나 당신하고 동류로 만들 생각이라면 꿈도 꾸지 마."
"알았어. 도움이 필요해지면 다음에 또 말하고."
이 작자는 애초에 감사 인사를 들을 인물이 아니니까. 그는 거래를 제시할 뿐이다.
그렇게까지 '기브 앤 테이크'를 주장한다면 그대로 따라주면 될 따름이었다.
한 편, 방금까지 듀얼에 쓰인 컬렉션들을 다시 집어넣고 난 캔필드는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날은 이미 충분히 어둡지만 아직 그의 하루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아가는 것이 목표라도 귀찮은 일은 따르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다음에 있을 일정을 생각하면 또 일찍 일어나야하는 처지였기에 캔필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어본다.
'어휴, 피곤해.'
버려진 것을 길들이기란 쉽지 않다. 한 번 더 버려져서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배어있을지도 모르고, 애초에 길들이는 쪽이 마음에 안 들어할 가능성도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편한 관계가 되어준다면 이렇게 피로를 유발할 일도 없을 텐데 말이지. 캔필드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래봤자 본인은 모르고 있거나 알고서도 부정하고 있으리라. 이미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소통이라는 것에 엮인 이상 외부에서 고립되어 있던 그녀 역시 지금은 자신의 굴레 안에 들어와 있다.
저렇게 험한 태도로 부정하려 들어도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그녀는 언제쯤 자각해줄지.
생각없이 지낸다는 것의 편안함을 그는 알고 있다. 될 수 있으면 앞으로도 그런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그런 걸 세상도, 하물며 자기 자신의 몸뚱아리조차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리 남들에 비해 부족할 것 없이 지내는 인생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부자유라는 굴레에 엮여야만 하는 것이다.
어둠의 듀얼이라는 것을 시작하고서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그것은 이기기 위해 나머지 다른 것을 바친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위니까.
왜 그런 처지를 자처하게 됐더라. 그 이유는 다른 컬렉터들과 다를 것이 없을지 모른다.
그만큼 디젠이라는 물건이 가진 힘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영역을 불러들이는 에너지를 모으고 모으다 보면 자신, 나아가 세상을 바꿀 힘을 얻는다. 자신을 영역에 담가놓는다는 부자유한 고행에서 세상을 자신만의 영역으로 덧칠해나가는 자유로운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거라면 분명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있겠지. 그리고 그런 것을 편하게 모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쪽을 택하는 것이 좋은 법이다.
위저드 같은 능력이 없는 그는 더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다.
우선 손발이 되어줄 사람을 최대한 많이 마련해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투쟁을 북돋워주면서 야금야금 이득을 챙겨나가도록 하자.
지금 자신의 주요 업무는 그런 것이다. 위저드라는 녀석과 겹치는 느낌이었지만 해결의 실마리가 되어줄 방법이라면 가릴 여지 따위는 없을 터.
아무쪼록 듀얼에 막 입문한 그녀 역시 자신의 공략을 위한 열쇠가 되어주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슬슬 작업 하나가 잘 되어가고 있는지 체크할 차례다.
"네, 도착하셨어요? 방은 잡으셨고? 문제 없다구요? 알겠습니다."
일단 이번 세팅도 문제 없음. 이번에는 헛되이 끝나는 일이 없기를.
"수고하세요."
====
어떻게든 완성했으므로 올립니다.
쉬어가는 에피라고 하기에는 애매하고 아니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에피가 써졌군요. 어쨌든 덱마다 나와야 할 것 같은 애들은 전부 끌어다놓고 봤습니다. 한쪽만 신지원 왕창 때려넣은 건 불공평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일단 저 두 덱의 성능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해두지요.
한동안 대화 파트는 다 써놓고 듀얼 파트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새는 둘 다 막혀버리는 느낌이네요. 으어어
아무튼 주인공 마마마마인드 크러시 듀얼이 줄창 이어졌던 전개에서 변화가 찾아올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어둠의 듀얼은 앞으로도, 글 내내 계속되겠지만 그래도 이겨내고 성장하는 것이 주인공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못한 사례와 번갈아 가면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분량 완성되는 대로 찾아뵐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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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신규일러군요 역시 저건 못참치 무슨 새로운 취미 권하듯 디젠 권하는 것이 묘하게 사회문제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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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라면 신일러는 전부 겟하고 보는 게 인지상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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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나미가 공인한 초심자 친화 덱 상검.... 듀얼을 막 시작한 캐릭터에게 딱 맞는 덱 선정이였네요 마지막에 프로토스 효과를 써도 사로스의 효과 내성 때문에 전혀 안 통하지만 굳이 체인해서 다른 몬스터를 꺼낸 건 일종의 강자의 여유라고 보면 되겠죠? 로그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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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간의 옥에 티가 있다면, 캔필드의 첫 턴이 끝난 시점에서 패는 1장이였는데, 다음 상대 턴에 막야를 파괴하기 위해 아바오아쿠의 효과로 패 1장을 코스트로 버려서 돌아온 자신 턴의 패 매수는 드로우 후 1장인데, 이게 반영이 안 되어서 2장으로 되어 있더군요. 이 부분만 수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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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감사합니다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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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신규일러군요 역시 저건 못참치 무슨 새로운 취미 권하듯 디젠 권하는 것이 묘하게 사회문제 연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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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렉터라면 신일러는 전부 겟하고 보는 게 인지상정이므로 | 25.06.07 21: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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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코나미가 공인한 초심자 친화 덱 상검.... 듀얼을 막 시작한 캐릭터에게 딱 맞는 덱 선정이였네요 마지막에 프로토스 효과를 써도 사로스의 효과 내성 때문에 전혀 안 통하지만 굳이 체인해서 다른 몬스터를 꺼낸 건 일종의 강자의 여유라고 보면 되겠죠? 로그 잘 감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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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wer2024
그리고 약간의 옥에 티가 있다면, 캔필드의 첫 턴이 끝난 시점에서 패는 1장이였는데, 다음 상대 턴에 막야를 파괴하기 위해 아바오아쿠의 효과로 패 1장을 코스트로 버려서 돌아온 자신 턴의 패 매수는 드로우 후 1장인데, 이게 반영이 안 되어서 2장으로 되어 있더군요. 이 부분만 수정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5.06.07 2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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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감사합니다 수정 | 25.06.07 23: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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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수상한 사람 따라가면 안되는 거시에요 | 25.06.09 05:5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