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참으로 개같지. 하지만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내가 너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려고 해.
콘크리트 공간에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검은 머리와 인디고색 눈동자를 지닌 장난스러운 표정의 여성이 다가온다 깨름칙함을 느끼지만 소년은 그녀의 제안을 거부할 입장이 아니다
네 영혼을 내게 파는 대신, 난 네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들어주는 거지. 어때?
소년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여성의 손이 다가와 소년의 가슴팍을 향해 오른 손의 검지를 댄다 곧 소년의 가슴팍에는 뭔지 모를 낙인이 찍힌다
*
"아...!"
낙인이 찍힘과 동시에 소년이 눈을 뜨니, 알람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제일 먼저 자신의 방 천장이 보였다. 소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알람을 끈 후 자신의 기억을 재차 더듬어보았다. 분명 스스로를 '애이미 블랙'이라고 밝힌 여성의 제안을 받아들여 약 1개월 전에 여동생들을 데리고 본토에서 지금의 장소인 '스틸볼 아일랜드'로 건너와 그녀가 제공한 새로운 보금자리인 '어번 팰리스'에 자리를 잡은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에게 영혼을 판 적도, 자신의 몸에 무슨 낙인 같은 것이 찍히거나 한 적도 없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소년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에 놓인 거울을 살펴보았다. 잠결에 헝클어진 갈색 머리와 카데트 블루의 눈동자를 가진 앳되며 동양적인 외관의 소년이 거울 속에 있었다. 잠옷 상의를 풀자 몇 년 동안 온갖 경험을 겪으며 만들어진 군살없는 몸매가 드러났지만 낙인같은 건 없었다.
"이상한 꿈이야..."
고개를 좌우로 두 어번 저으며 중얼거리던 소년은 시계를 재차 보았다. 현재 시간은 새벽 여섯시. 소년은 아직은 어둑한 방을 밝혀줄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고서 자신의 방에 마련된 별도의 욕실로 들어섰다. 욕실에 달린 거울을 재차 확인해봐도 소년의 가슴은 커녕 자신의 몸 그 어디에도 낙인 같은 건 없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로 이상한 꿈에 대한 기억을 씻어내며 샤워를 마친 소년은 이후 옷장에서 며칠 전에 수령받은 "스틸볼 듀얼 아카데미아"의 교복을 꺼내고 있었다. 듀얼 아카데미아의 엠블럼이 가슴 포켓에 금색 실로 재봉되어 있는 검은 블레이저와 프러시안 블루 색상의 바지, 듀얼 아카데미아의 엠블럼과 그 아래에 소년의 이름, '무라이 세이아'가 금색 잉크로 새겨진 군청색의 상자, 그 안에 들어있는 하얀 셔츠, 프러시안 블루 색상의 넥타이와 같은 색상의 듀얼 아카데미아의 엠블럼이 금색 실로 작게 재봉된 민소매 스웨터. 누락된 것 하나 없었고, 상태 역시 모두 이상없었다. 세이아는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동시에 긴장과 함께 블레이저를 제외한 교복 세트를 차근차근 입어보았다. 옷은 본인에게 잘 맞았고, 생각보다 무난히 어울렸다. 아직 잠들어있을 여동생들이 깨지 않게 문을 조심히 열자 어둑한 분위기의 거실이 눈에 보였고, 뒤이어 베란다 너머로 스틸볼 시티의 주거 구역인 '팰컨즈 뷰'와 그 너머의 여러 지역들이 일출을 눈앞에 둔 하늘과 함께 보였다. 스틸볼 아일랜드로 건너온 이후 한 달 이상을 봐온 풍경이었지만 세이아에게는 여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스스로 선택하고 겪었던 고생들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은 접어둔채 아침 식사를 위해 부엌으로 향한 세이아는 소매를 걷어올린 후, 앞치마를 매고서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내 능숙하게 재료들을 손보고 있었다. 6년 전의 사고로 부모를 일찍 여읜 이후로 세이아는 여동생들의 오빠이자 가장이며 어머니였다.
"흐아암... 벌써 일어난 거야...?"
세이아가 한 참 요리 준비를 하는 동안, 졸음 가득하지만 다소 하이톤이고 장난스러운 소녀의 목소리가 소년의 귀를 건들었다.
"그래야 식사 준비를 하지, 아스카. 얼른 씻고 준비해. 사야카도 준비해. 오늘이 입학식이니까 신경 더 써야하는 거 알지?"
"응..."
아스카라 불린 작은 소녀는 세이아와 같은 머리 색과 눈동자를 지녔지만, 목덜미를 덮을 정도의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사야카라고 불린, 그 옆에 있는 다른 소녀도 역시 마찬가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둘은 목소리를 들어보기 전에는 언뜻 봐서는 누가 누구인지 전혀 분간할 수 없었다.
"오늘 아침은 뭐야...?"
"미국식 아침 식사. 아침도 든든하게 챙겨 먹어야지."
"그렇구나..."
사야카의 차분한 목소리가 잠시 세이아의 귀를 스쳐지나가고, 쌍둥이 자매가 있는 곳을 잠시 바라보던 소년은 다시 자신이 하던 일에 집중했다. 부모 생전에도 틈틈이 부모의 곁에서 둘을 도와준 세이아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부모를 여읜 이후 동생들에게 부모가 자신들을 위해 준비해주던 식사를 계속 만들어주겠다며 미숙하게나마 홀로 시작하고, 그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이제는 왠만한 요리는 스스로 할 수 있었다. 여동생들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첫 등교 준비를 하는 사이, 세이아는 요리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오빠, 오빠! 우리 좀 봐줘! 예쁘지 않아?"
"언니, 오빠가 아직 요리 중이잖아! 조금만 참아봐!"
"접시에 올리기만 하면 돼. 조금 기다려줘."
세팅까지 마무리한 후, 정리까지 끝낸 세이아는 아카데미아 교복으로 환복한 여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블레이저는 동일했지만 체리를 연상케하는 검붉은 색상의 치마와 넥타이가 눈에 띠었다. 쌍둥이의 구분을 위해 아스카는 검붉은 색의 조끼와 넥타이를, 사야카는 같은 색상의 민소매 스웨터와 나비 넥타이를 착용했으며 그 외에도 별개로 아스카는 단발 머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 사야카는 트윈 테일로 머리를 묶어놓았고, 아스카는 검은 색의 니삭스를, 사야카는 허벅지까지 다소 덮을 정도의 길이를 가진 하얀 색의 오버니삭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든 각자의 매력이 있어 세이아의 눈에는 보기 좋았다.
"둘 다 예쁘네. 정말 잘 어울려."
"아쉬운 건 말이야, 오빠도 교복이 잘 어울리는데 그걸 2년 정도만 입고 바로 졸업한다는 거야."
"언니 말이 맞아. 좀 더 일찍 여기로 왔으면 그만큼 더 오래 입고 다녔을텐데 말이야."
"그건 좀 아쉽네. 그래도 같이 아카데미아에 다니는 거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자, 어서 밥먹자고."
여동생들의 아쉬움 섞인 칭찬에 조금은 멋쩍어하면서도 세이아는 살짝 웃으며 대답했고, 곧 세 사람의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오늘이 처음으로 듀얼 아카데미아에 등교하는 날인데,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몰라도, 사야카가 걱정인데."
"그렇게 따지면 언니도 걱정되는데. 여기 오기 전에도 언니 때문에 나까지 덤으로 욕먹고 다녔잖아."
"그건 욕한 사람이 나쁜 거야."
"언니 잘못은 없다는 듯이 말하네."
"내가 뭐 어때서?"
"정말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나름의 장난이라고는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는 척 서로를 까내리는 모습에 세이아는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내 눈엔 둘 다 걱정이야. 나야 무슨 짓을 해서라도 여기저기서 돈벌고 살 수 있으니까 만에 하나 쫓겨나도 괜찮지만, 너희도 전에 들었듯이 스틸볼 듀얼 아카데미아는 듀얼 몬스터즈의 성지 중 한 곳으로 불릴 정도로 최고의 듀얼 아카데미아로 유명한 곳이니까. 적응하는 시간을 가졌다지만 외지인이랍시고 소위 '친구들'이 너희들을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야."
그 말에 아스카와 사야카 모두 할 말이 없었다. 스틸볼 아일랜드로 이주하기 전까지, 세이아가 지난 5년의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자신들을 먹여살렸는지는 나름대로 짐작하고 있었던 쌍둥이였던 만큼, 둘 다 자기 오빠에게는 함부로 대하지 못 했고 그래서 세이아의 걱정에 둘 다 다소나마 진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야만 해. 그게 바로 가족이니까. 6년 전에 부모님이 먼저 돌아가셨을 땐, 내가 너희의 바람막이가 되었지만 내가 너희 곁에 없을 땐 너희 둘이 서로에게 의지하며 견뎌야 해. 특히 이런 외지에선 더더욱 말이야. 지난 5년 동안 그 정도는 배웠을거라 생각하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서로를 깎아내리는 건 아무리 장난이라도 자중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서도 세이아는 둘의 장난을 자신이 멋대로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들은 외지인의 입장이었고, 특히 섬 지역은 소위 말하는 텃세라는 것이 강한 만큼 아카데미아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고 힘들어할 수도 있을 쌍둥이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세이아는 쌍둥이에게 가족의 중요함을 역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는 알아, 오빠. 그저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긴장을 풀고 싶어서 그런 거야."
"우리도 둘이서 5년 내내 오빠가 어디서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안 들려오길 바라면서 밤을 버텨왔어. 그러니까 긴장 좀 풀어봐, 오빠."
"하하... 미안, 미안. 가끔은 나도 모르게 오빠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버리네."
멋쩍은 웃음과 함께 세이아는 머리를 잠시 긁었다. 장남이자 가장으로서 기합이 너무 들어갔다는 생각에 멋쩍음도 들었고, 한 편으로는 지난 5년 동안 자신의 무사안위를 바라며 불안한 밤을 견뎌왔을 여동생들을 너무 어린 아이 취급한 것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듀얼 아카데미아를 향해 첫 등교에 나서는 무라이 자매가 문을 열자 같은 건물의 이웃에서도 각자 등교를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오, 세이아. 오늘이 너희들의 첫 등교지? 앞으로는 내 동생도 같이 다닐텐데 사이좋게 잘 지내줘."
"문제 없어요, 아유무 씨."
세이아의 오른편에는 '아유무'라고 불린, 쌍둥이 자매보다도 키가 살짝 작은 백발벽안의 남성이 먼저 보였다. 언뜻 보기엔 중성적인 외모를 지닌 미소년이었지만 실은 세계의 여러 듀얼 리그들 중에서도 일명 '디비전 1'으로 불리는 최고 권위를 가진 듀얼 리그 중 하나인 'Ultimate Duel Club', 약칭 UDC의 컨텐더이자 작은 체구에 비해 터무니없는 체력과 지구력으로 '리틀 원더'라는 링 네임을 보유한 상위 컨텐더, '후지모리 아유무'였다.
"유키, 이번 학기도 잘 해보자."
"걱정 마, 아유무 오빠. 나, 늘 잘해왔잖아?"
"하하, 그렇게 말하니까 마음이 한결 놓이는걸."
아유무의 뒤를 따라 단발로 짧게 자르고 거기에 작은 붉은 리본 장식을 달아놓은 분홍 머리와 하늘색 눈을 가진 '유키'라는 이름의 소녀가 리본 넥타이를 맨 듀얼 아카데미아의 교복 차림으로 모습을 보였다. 역시나 아유무보다도 살짝 큰 키를 지닌지라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동생이 누나를 배웅해주는 모양새로 보였다.
"과연 UDC의 신비, '리틀 원더'네요. 마치 동생이 누나를 배웅해주는 것 같잖아요?"
"또 그 소리. 아주 사람 놀리는데엔 도가 텄구나, 조니."
세이아의 왼편에서는 '조니'라 불린 아카데미아의 교복을 입은 소년, 조니 애덤스가 그의 형과 함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애덤스 형제 모두 검은색에 가까운 짙은 청색의 머리칼과 흑단색의 눈동자를 지닌 미남이었지만, 형 쪽은 보이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성숙함이 묻어나오는 느낌이라면 동생 쪽은 조금 짓궂을지언정 왠지 미워할 수 없는 소악마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너, 올해가 반바지 교복을 입는 마지막 해였던가? 조금 아쉽네. 그거 잘 어울렸는데 말이야."
"그럼 내년에 형한테 선물로 줄테니까 한 번 입어보실래요?"
"됐다. 이미 내 여자친구님이 한 벌 선물했거든. 예쁘다면서 어찌나 껴안던지, 원."
그 말에 세이아가 조니를 살펴보니 그가 입은 상의는 민소매 스웨터 대신 조끼를 입은 것을 빼면 세이아의 것과 동일했지만 하의는 무릎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올라온 길이의 프러시안 블루 색상의 반바지였고, 검은 색의 니삭스가 짙은 갈색의 로퍼화와 조화를 이루며 소년다움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선배 중에도 저처럼 반바지 차림인 선배들이 몇몇 있다는 거?"
"내겐 불필요한 정보로군. 그보다도 너는 등교 안 해?"
"그래, 어서 등교해야지. 그리고 엄연히 UDC의 상위 랭커 분이야. 넌 사람을 존중하는 법도 배워야할 것 같아."
"이웃집 형이니까 편하게 하는 거잖아. 하여간 우리 형은 너무 사람이 기계같아서 탈이라니까."
"버릇없어보여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 뿐이야."
이렇게 티격태격하던 와중, 아스카를 알아본 조니는 이내 그녀에게 눈을 돌리며 가감없이 반가움을 보이고 있었다.
"아스카! 그 옷, 잘 어울리는데!"
"안녕, 조니. 너도 그 옷 잘 어울리는걸?"
"하하, 칭찬 고마워. 내년부터는 너네 오빠처럼 멋진 교복을 입을 예정이지만."
"기왕에 내년에도 반바지 차림을 하는 건 어때? 진심으로 말이야."
"아쉽게도 나는 미스터 리틀 원더와는 다르게 성장판인지 뭔지가 멀쩡해서 말이야."
"조니!"
당사자인 아유무 그런 농담이 익숙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의 형은 자기 동생이 슬슬 선을 넘을 조짐을 보이자 바로 그를 꾸짖으려 했고, 그런 형의 눈치를 본 조니도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하여간 우리 형 앞에선 농담도 마음대로 못 한다니까..."
"농담도 선이라는게 있어. 카인 씨가 좀 고지식한 면은 있지만, 뭐든 정도껏 하자."
"알았어요..."
"그리고 또 그런 농담하면 그 땐 내가 한 대 때린다?"
"아니, 그건 좀... 으음, 미안..."
거기에 세이아도 같이 거들어주고, 유키가 자기 오빠를 놀려먹으려는 조니에게 자기 성질을 조금 드러내자 유키가 성질도 성질이지만 손맛도 매서운 걸 알고 있었던 조니도 더 이상 무어라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내 키로 농담 충분히 했으면 이제 등교들 하시라고. 유키, 잘 다녀와."
"알았어, 오빠."
상황이 정리되자 자신을 배웅해주는 아유무의 뺨에 유키가 가볍게 키스를 해줬고,
"아무튼 사고치지 마. 알았지?"
"알았어, 정말. 조심히 다녀와."
조니는 출근길에 나서는 카인에게 손인사를 해줬다.
"그럼 가보자."
그리고 세이아는 쌍둥이 여동생들과 동생이나 다름없는 두 아이들과 함께 듀얼 아카데미아를 향해 처음으로 등교에 나섰다. 길다면 긴 한 달간의 적응기를 거쳤음에도 명문 듀얼 전문 학원의 학생으로서 거니는 스틸볼 시티의 길거리는 또 다른 신선함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거 기억나, 오빠? 우리가 외지인이라고 대충 대하던 편의점 언니?"
"기억나지. 어디로 이사왔냐고 물었을 때, 어번 팰리스에 이사 왔다고 하니까 태도가 확 변하던 것도 다 기억나."
"그래서 섬 사람들은 원래 다 그런건가 싶었거든."
"그건 잘 모르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서로가 서로를 기대며 살아야해."
"하여간 형은 어떨 땐 형이 아니라 아버지 같다니까."
"어쩔 수 없어. 너희 형을 봐."
"그건 잘 모르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서로가 서로를 기대며 살아야해."
"하여간 형은 어떨 땐 형이 아니라 아버지 같다니까."
"어쩔 수 없어. 너희 형을 봐."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 집엔 아빠가 살고, 옆집엔 엄마가 살고, 그 옆집엔 삼촌이 사는 것 같다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
"조니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아, 오빠. 물론 조니는 농담이랍시고 사람 놀리는 버릇부터 좀 고쳐야할 것 같지만."
"사야카가 그렇게 말하니까 왠지 상처받는 기분이 드는데."
그렇게 여러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어느새 무라이 일행은 스틸볼 듀얼 아카데미의 정문까지 다다랐고 이어서 세이아의 눈에 VIP 택시에서 내리는 민트색 머리의 쌍둥이가 눈에 띠었다. 한 명은 블레이저를 생략한 조끼 차림에 머리를 포니 테일로 묶어놓은 활발한 인상의 소년이었고, 그 뒤로 내리는 다른 한 명은 리본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얌전한 인상의 소녀였다.
"루아! 루카! 오랫만에 보는 것 같아!"
둘을 알아본 유키가 그 둘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내고, 그 인사에 둘이 고개를 돌리더니 먼저 루아로 불렸던 소년 쪽에서 세이아 일행에게 다가갔다.
"간만에 보네, 유키!"
"루아는 늘 건강해보여서 다행이야."
"당연히 그래야지. 여동생보다도 더 아프면 오빠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뭐래, 정말. 아무튼 다시 보니까 정말 좋은걸."
조니의 농담에도 루아는 그를 무시하고선 유키를 보며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방긋 웃고 있었다. 애초에 조니의 눈길은 루아가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해있었다.
"안녕, 루카! 형, 저 애가 바로 듀얼 아카데미아의 아이돌, 루카에요!"
조니가 꺼낸 아이돌이라는 말에 일행 쪽으로 다가오던 루카는 손사래를 치며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아이돌이라고 말하면 내가 더 부끄럽단 말이야."
"맞는 말 아냐? 남자여자 안 가리고 인기 많잖아."
"그래서 내가 고생인거야. 너같이 멋대로 들이대는 애들 막아낸다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고생인거야. 너같이 멋대로 들이대는 애들 막아낸다고 말이야."
"너한텐 너무 대단한 여동생을 둔게 탈이지."
"너한텐 그런 여동생도 없으니까 내가 더 낫지 않아?"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웃기지 마. 루카는 영원히 내 동생이고, 너같은 녀석한텐 특히나 절대로 내줄 생각 없으니까."
"무슨 딸 가진 아빠처럼 얘기하네, 정말.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포기할까봐?"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너였으면 좋겠다."
"웃기지 마. 루카는 영원히 내 동생이고, 너같은 녀석한텐 특히나 절대로 내줄 생각 없으니까."
"무슨 딸 가진 아빠처럼 얘기하네, 정말. 그렇게 말한다고 내가 포기할까봐?"
"포기해, 임마. 넌 절대 안 돼."
루아와 조니가 말다툼을 하는 모습을 보는 세이아가 보기에도 조니가 루카에게 마음을 두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보였고, 그와 동시에 루카는 조니에게 딱히 마음이 없어보이는 것도 분명해보였다.
"일단 조용히 해봐. 그나저나 루아라고 했지? 나, 아스카야. 무라이 아스카. 그냥 편하게 아스카라 불러. 옆에는 내 동생 사야카야."
일단 조니와 루아의 말다툼을 끊고 끼어든 아스카가 자신과 사야카를 소개하던 중, 사야카가 뭔가 멍한 듯 또 아닌 것같은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세이아도 곧 사야카의 반응을 알아차렸다.
"사야카? 사야카!"
세이아가 사야카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을 알아챈 그 사이, 아스카가 손뼉 한 번으로 사야카의 정신을 차리게해주고 있었다.
"정신 차려!"
"어, 어라...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런 건 없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그런 건 없지만, 너무 노골적으로 사람을 쳐다보면 누구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그 말에 세이아를 뺀 나머지가 아스카를 바라보다 이내 사야카를 바라보더니, 그녀의 시선이 가있던 루아를 향해 재차 고개를 돌렸고, 그 모습에 사야카는 이내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급히 세이아 뒤로 숨어버렸다. 루아도 얼굴이 살짝 붉어지더니 이내 자기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이며 시선을 돌리고 있었고, 그런 루아를 놀려먹을 각을 재보려던 조니는 이내 유키, 세이아, 그리고 루카의 시선에 그대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아, 나는 무라이 세이아야. 아스카와 사야카의 오빠되는 사람이고, 아카데미아에서 길어야 2년이지만 그래도 잘 지내보자."
"아, 예..."
"잘 부탁드릴게요."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서 세이아가 최대한 상황을 수습해보고자 루아와 루카에게 자기 소개를 했지만 여전히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고, 사야카는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 세이아 뒤에 숨어있었다.
"루아? 루카? 둘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야?"
이런 어색한 상황에 이번에는 모범생같은 인상을 주는 갈색 머리의 안경잡이 소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루아와 루카의 친구로 보이는 소년은 주변 상황을 살펴보다가 사야카가 세이아의 뒤에 숨어있는 것까지 발견했고, 이런 상황에선 무어라 말을 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려보고 있었다.
"쟨 누구야?"
"하야노 텐페이. 루아랑 루카의 소꿉친구래."
"하야노 텐페이. 루아랑 루카의 소꿉친구래."
이런 와중에 아스카가 유키에게 소년의 이름을 물어보고, 이내 텐페이라 불린 소년도 세이아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그런데 처음보는 얼굴들인데, 이름이...?"
"무라이 아스카야. 아스카라고 불러줘. 그리고... 우리 오빠 뒤에 숨은 애는 내 여동생, 사야카야."
"아, 안녕..."
"무라이 아스카야. 아스카라고 불러줘. 그리고... 우리 오빠 뒤에 숨은 애는 내 여동생, 사야카야."
"아, 안녕..."
벌개진 얼굴 그대로 사야카도 텐페이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손 인사를 해줬고, 루아가 얼굴을 붉힌 채 애써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는 것까지 확인한 텐페이는 이내 뭐가 뭔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어, 그래. 유키가 말해줬듯이 나는 하야노 텐페이야. 유키의 친구라면 나나 루아, 루카한테도 친구인거야."
"그렇구나. 나는 무라이 세이아야. 길어야 2년 정도지만, 그래도 잘 지내보자."
"아, 네."
"편하게 생각해. 지금이야 무라이 선배고 세이아 선배지만, 나중엔 형으로도 보이고 아빠엄마로도 보일테니까."
"조니답네."
"조니답네."
조니의 허튼 소리를 가볍게 받아넘긴 텐페이는 겨우 얼굴을 내민 사야카에게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루아가 좀 덜렁대는 건 있지만, 분명 좋은 친구야."
"아니, 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되는데 말이야..."
"그리고 덤으로 듀얼리스트 최약체이니까 성적 올리는데엔..."
"그만."
"그만."
텐페이와 사야카 사이에서 루아를 또 놀려먹으려던 조니에게 세이아가 꿀밤으로 응징했고, 그의 매서운 손맛에 조니도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우우... 형이 때리는 건 반칙이잖아요!"
"때릴 만해서 때렸어."
"아우, 아파..."
조니가 세이아의 꿀밤에 눈물까지 찔끔 흘리는 모습에 둘을 뺀 나머지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고, 덕분에 조금은 어색하던 분위기도 날아가며 다시 아까의 그 분위기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자, 이제 이쯤에서 아카데미아로 들어가야지. 이러다 우리 정문 앞에서 지각생되겠어."
"그래야겠네. 그럼 가자, 오빠."
"그래."
"그래."
그리고 세이아의 말을 끝으로 마침내 일행은 아카데미아의 정문을 넘어 아카데미아 건물의 초입에 들어섰다. 9월의 첫째 날, 무라이 남매의 첫 등교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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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팬픽 이후로 정말 오랫만에 글을 써보는 건데 글의 퀄리티야 별로일테니 제쳐두더라도 과연 제가 무사히 스토리 완결을 낼 수 있을지는 몰?루것읍니다
X-POINT에서 X는 크로스라고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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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할 겁니다(무책임) | 23.02.13 1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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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고심고심하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마인드로 쓴 거라서요 | 23.02.13 1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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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 23.02.13 17: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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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리고 퀄은 기대 안 하시는게 신상에 이로울겁니다(...) | 23.02.19 03:0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