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슈대 생체 해부 사건:「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마지막 목격자가 말하다”
1945년 5월, 쿠마모토에 추락한 B29에 타고 있던 미국 병사 8명이 차례차례로 구 큐슈 제국대(현 큐슈대) 의학부에 옮겨져 이윽고 사망했다. 연합국군 총사령부(GHQ)가 「유례 없는 야만스러움」이라고 표현한 「큐슈대 생체 해부 사건」.
의학생으로서 입회했던 후쿠오카 시의 의사, 토우노 토시오 씨(86)는 무엇을 목격해, 무엇을 생각했었는가.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비참함과 추악함밖에 남지 않는다」.67년이 지난 지금, 토우노 씨는 다시금 평화의 고귀함을 호소한다.
토우노 씨는 1945년,큐슈 대학 의학부에 입학. 약 1개월 후, 배속된 해부학 교실에서, 사건이 일어났다.
「수술하는 장소를 빌려 주었으면 한다」.외과의인 해부학 교실의 교수에게 연락이 있었다. 며칠 후, 미국 병사인 포로 2명이 옮겨져 왔다.
마취를 한 뒤 폐수술이 시작되었다. 투명한 액체가 몸에 넣어졌지만, 그 액체가 대용 혈액으로서 시험된 바닷물이었던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실험 수술이었다. 군의 입회 아래,4회에 걸쳐서 8사람에 달해, 토우노 씨는 두 번 목격했다. 상처가 없는 포로에게도 행해져 끝나면 혈액이 뽑혀 숨이 끊어졌다.「단지 너무나 무서워서, 긴장으로 몸이 굳어졌다」.
토우노 씨는GHQ의 조사를 받았으며, 재판의 증언대에도 섰다. 해부를 주도하고 있었다고 여겨지는 군의관은 공습으로 사망, 집도했던 외과의도 구치소에서 자살했다.
「군인과 의사가 잔인하기 그지없는 짓을 했지만, 이것은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토우노 씨는 독자적으로 조사 중, 깨달았다.「당시의 심리 상태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한 상태였다」.
전쟁 말기의 분위기와 혼란은 의사도 미치게 했다.
사건의 목격자가 토우노 씨만 남게 된 뒤, 강연에도 힘썼지만, 체력이 쇠약해져 몇 년 전부터 어려워졌다.
시대는 지나가지만, 평화에의 믿음과 소망에 변함은 없다.
「평회에의 비전을 맹세한 헌법 9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리고 포로에게 대학의 의사가 메스를 들이댔다는 사실을 똑바로 받아들여 모교의 부지에 8명의 위령비를 만들었으면 한다」
큐슈대 생체 해부 사건
1945년5월, 추락한 B29를 타고 있던 미군 포로 8명이, 구 큐슈 제국대 의학부에서 실험 수술을 받아 사망했다.
서부 군사령부는 8명에 대해, 히로시마에 이송 후 피폭해 사망했다고 했지만, GHQ의 조사 과정에서 발각.
28명이 기소되어 5명의 교수형을 포함한 합계 23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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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이해할려면 일본인 특유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이해해야 할것 같습니다.
지금 일본인의 감정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 대통령이 난리 치고 있어서 자신이 피해 봤다는 심리하고,
일본은 한국을 좋아 하는데, 한국인들은 일본을 싫어 한다는 피해자 심리를 가지고 있어요.
즉, 역사속에서 자신들이 저지른 행위는 모두 망각하고 지금만 보고 있다는 거죠.
이같은 신문 기사에도 미국이 원폭을 투하 했기 때문에 포로들이 저렇게 된게 당연하다는 글이 달리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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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에게 731부대 얘길해줬더니 "아 그거 나도 알어 예전에 위안부 때문에 매독에 걸린 병사가 많아져서 매독 백신을 만들려고 중국에 세운..." 처음으로 살인충동이라는걸 느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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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일본인에게 731부대 얘길해줬더니 "아 그거 나도 알어 예전에 위안부 때문에 매독에 걸린 병사가 많아져서 매독 백신을 만들려고 중국에 세운..." 처음으로 살인충동이라는걸 느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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