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 관해 좀 심도있는 글 써봤습니다. 물론 틀린 부분도 있겠지요..
관심있는 분들께선 검색을 통해 용어를 이해해 가면서 읽어보면 나쁘진 않을 겁니다.
언어학사를 주욱 읽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관련서적도 꽤 나와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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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식별하면서 바로 익혀버린다.
사실 그것은 언어를 익히면서 세상을 분절하고 식별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언어는 분명 연구할 거리가 있고 체계를 지니고 있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태어나서 발음기관이 성숙해질 때 즈음해서 저절로 익히고 있으며
수학, 과학과 같이 기본적인 개념정립에서 활용으로 나아가면서 습득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전체의 통(通)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학문으로서의 언어의 발전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의사소통이란 굉장히 복잡하고, 또 상당히 많은 외움을 요하는데 아기가 발음기관이 굳어지고
세상을 식별하면서부터 이 의사소통을 익혀내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언어 자체가 규칙이 있고 변화가 있고 사람의 흔적이 있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질 때 조물주가 같이 만들어 성장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쓸 수 있게끔 했다고
생각하는 고대의 학자도 많았다. 그 뿐만 아니라 늘 마시고 있는 공기 중에서 우리가 산소만을
빼내어 호흡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듯 늘 하는 언어생활, 그 분절된 구조를 인식하며 말해왔던 게
아니라 단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언어의 가장 큰 단위만을 사용하였으니 그 체계를 인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학교의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쉬이 인식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 배움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외국어를 필수로 익혀야 함으로써
이런 구조와 체계에 대한 인식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과거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아주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그 차이와 유사점을 생각하며 말(文) 속에 숨어있는 말(語)들의 역할을 익혀야 할 일은 거의 없었고
또 나랏말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것은 대부분 화용의 측면, 즉 수사학이나 논리 논술의 쪽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지나며 굳어져온 문법은 언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에 역부족이었다. 가령 라틴어의 로마자를 쓰는
언어에선 언어규칙을 라틴어 규칙에 국한돼 설명하고 예외를 그냥 두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언어신수설을 기본으로 한 언어신성시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언어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초기의 틀을 무조건적으로 적용시켜 통일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학문의 암흑기인 중세를 넘어 근대에 와서 언어는 다시 한 번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근대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언어학의 발전은 바로 '비교언어학'이다. 어족, 어계, 혹은 역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 언어의 변화를 관찰,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캐낼 수 있었고 언어학 발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고 스위스의 번뜩이는 학자 소쉬르에 의해
언어는 과학화되기에 이른다. 통시성을 공시성에도 적용시켜 규범을 만들어냈던 전통문법, 또
통시성에서 언어설명을 하려는 비교문법의 한계를 넘어서 언어 그 자체를 체제로서 인식하고
전체적으로 봐야한다는 시각을 가짐으로써 공시적 언어연구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다.
즉 이전의 문법에서 단순히 명사를 정의함에 있어 '사람, 사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면
구조주의에서는 명사가 발현되는 언어 자체를 살핌으로써 그것을 정의했다.
가령 영어에 있어선
s가 붙어 복수나 소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 혹은 행동에 앞서 나올 수 있는 그런 대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우리말에선 활용하지 않는 것, 격조사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다. 이처럼 구조주의 문법은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좀 더 내면을 살피면 구조주의 문법은 소쉬르가 언급한 것처럼 langue와 parole로 나뉘어 언어를 설명하고 있다.
즉 언어는 머릿 속에서 생각된 사상을 뱉어내기 위한 잠재규칙이 있고 그것이 발현된 것이 있는데 이를 구분하여야하고
언어연구의 본질은 당연히 그 langue라는 것이다. 따라서 langue를 연구하기 위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 서서
말을 수집해 분석해내야한다는 것이다. 즉 언어자료를 바탕으로 분포와 연합(유기적인 문장에 있어서 특정 위치에 사용될 수 있는
말들)을 따져서 그 규칙을 규명하고자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 소쉬르는 이 langue와 parole외에 언어는 시니피앙(발현된 기호나 소리)과
시니피에(그 기호가 가리키는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고 그 자의적 차이를 내는 것이
언어를 차이내는 것에 기인해 구조주의 언어학을 보충했다. 음소, 음운과 형태소까지.. 그런 분포에 있어서
대립관계를 통해 그 언어들의 역할을 분명시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시성, 혹은 규범성에서 벗어나
공시적 언어에 있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구조주의는 그 명시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문법으로 파생되기에 이른다.
사실 기술문법은 구조주의의 방법론이다. 구조주의에서 구조와 체계를 알기 위해 필요한 발화된 언어연구를
바탕으로 그 규칙을 기술하였다 하여 기술문법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구조주의 문법으로 들어와 혼란과 예외의 틈을
지고 있는 전통문법의 오류를 극복해야했고 경험에 입각해 언어표면에 나타나는 현상 모두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전통문법, 즉 규범문법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신수설에 입각해 변화를 극히 꺼렸기에 언어적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기술에 있어서 제약을 만들어 문법을 설명했다면, 기술문법은 있는 그대로의 언어현상을 공시성에 바탕을 두고 문법을 설명했다.
記述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보았을 땐 '적는다'로 동일하지만 이것은 규범문법과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더욱 더 정확하게 기술문법을 말한다면 '현재 그대로 기술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규범문법이 '이전 규칙대로 기술문법'이라면
그것과는 대조된 의미로서다. 즉 현세대의 사람들이 쓰는 말의 규칙을 정확하게 기술하고자 한 것이다.
이 기술주의 문법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발달하였는데 이것은 문자가 없는 인디언의 언어를 조사하고자 하니 역사적 대조도
할 수 없는 것이오, 이미 쓰는 말의 예외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 시기에 인디언이 쓰는 언어의 규칙을 하나씩
기술하는 방법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은 모든 언어는 서로 문법적으로 다르다고 독립시켜놓아 구체적 연구 대상을 확정해두었다.
따라서 언어 보편성의 연구는 배제되고 언어독립적인 학문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발화된 언어자료를 모아 그것의 분포에서 대립을 따져 음소부터 통사구조까지 확장해 나아가고 있다.
과학이 귀납적으로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처럼 과학적 방식, 합리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
언어를 과학과 같이 보고 과학자가 그러하듯 언어학자는 개입을 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바탕으로
간결하고 정확한 결론을 내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언어는 물리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언어학을 함에 있어서 처음에 고민하고 연구하는 내용이
사고가 먼저인가, '언어가 먼저인가하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일이고 이것의 결론을 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이처럼 언어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따르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은 인류라면 누구나
행하는 인간의 의사소통인데 개별적인 것으로 보게 되면 언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다.
언어는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을 과학과 같이 보아
귀납적이고 표면적인 연구대상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귀납은 말뭉치 자체에 생긴 오류까지도 기술하게 만들 수 있다.
표면적인 연구는 언어가 langue, 즉 사람의 머리 속이라고 말해놓고서도 그 머리속의 규칙을 단순히 parole로만 연구하게 되어
다시 langue를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langue를 안다면 parole을 만들 수는 있지만 parole을 안다고 langue의 전체를
표현할 수는 없다. 언어는 머릿속의 유한한 규칙으로 무한한 발화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에 의해 그가 배우고 회의하던 구조문법을 보완하는 이론이 탄생한다.
그것이 변형-생성문법이다.
구조주의의 공시성, 그리고 langue와 parole의 구분,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구분을 따르면서
다만 관점을 달리한다. 과학적 경험주의가 아니라 인간적 이성주의에 기대 언어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언어란 사고이고, 언어란 인류 모두가 가진 것이기에 언어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말하는 parole에서 langue를 찾는 귀납적 방식을 버리고 언어능력(competence)과 언어수행(performance)
을 내세워 유한한 규칙인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무수한 언어수행을 해내는 것을 바탕으로 그 언어능력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그것은 언어수행의 규칙을 기술해 얻어내는 귀납적 방법이라기 보단 언어보편성에 기반을 둔 방식이다.
따라서 언어의 습득에 관해서도 구조주의론자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조주의에서 언어의 습득이
언어를 체험하게 되면서 귀납적으로 그 규칙을 하나하나 체득해서 익히게 된 것이라면 촘스키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능력을
갖고 난다고했다. 그리고 타고난 이 재능으로 유한하고 보편적인 언어능력을 깨닫게 되고 이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심리적 부분까지
포함해 언어수행이 된다고 했다. 즉 그는 언어에 있어서 심리적 측면과 인식의 측면을 배제한 귀납적 구조문법의 문제점을
보완해내었다. 이런 심리적, 인식적 측면에서의 무한한 언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구조파악과 기술을 하는 것은 끝이 없는
행위이고 언어를 설명하기엔 무리수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변형 생성문법 언어학에서는 미혹한 나이에 무엇보다 복잡한
언어를 익히는 인간의 언어습득의 비밀, 심리적 상태에 따른 발화변화를 생각해보는 화용론 연구로 나아갔다.
변형과 생성의 의미는 구조주의에서 연구대상이 되는 표층적 발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언어능력의 과정이다.
언어 보편성에 근간을 두고 그 보편성에서 왜 달리 표현되는가에 대한 언어능력의 전개도를 형상화하는 것이
변형생성문법이다.
언어학사와 그 이론들을 잘 살피면 시대의 조류를 타고 교묘하게 발전해왔다.
각각의 이론들은 선대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른 반란이자 보완이고 점점 더 언어 전반에 걸쳐 폭을 넓히고 있다.
문법이론의 차이는 결국 시점과 언어를 이해하는 폭에 의해 나게 된 것이다.
문법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 역시 언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관심있는 분들께선 검색을 통해 용어를 이해해 가면서 읽어보면 나쁘진 않을 겁니다.
언어학사를 주욱 읽어보시는 것도 좋구요,. 관련서적도 꽤 나와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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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식별하면서 바로 익혀버린다.
사실 그것은 언어를 익히면서 세상을 분절하고 식별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처럼 언어는 분명 연구할 거리가 있고 체계를 지니고 있는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나가, 태어나서 발음기관이 성숙해질 때 즈음해서 저절로 익히고 있으며
수학, 과학과 같이 기본적인 개념정립에서 활용으로 나아가면서 습득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전체의 통(通)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점 때문에 오히려 학문으로서의 언어의 발전은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의사소통이란 굉장히 복잡하고, 또 상당히 많은 외움을 요하는데 아기가 발음기관이 굳어지고
세상을 식별하면서부터 이 의사소통을 익혀내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언어 자체가 규칙이 있고 변화가 있고 사람의 흔적이 있는 학문이 아니라
사람이 만들어질 때 조물주가 같이 만들어 성장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쓸 수 있게끔 했다고
생각하는 고대의 학자도 많았다. 그 뿐만 아니라 늘 마시고 있는 공기 중에서 우리가 산소만을
빼내어 호흡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듯 늘 하는 언어생활, 그 분절된 구조를 인식하며 말해왔던 게
아니라 단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언어의 가장 큰 단위만을 사용하였으니 그 체계를 인식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현재는 학교의 교육을 통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쉬이 인식하고 있다곤 하지만 그것은 수동적 배움에 따른 것이다. 게다가 외국어를 필수로 익혀야 함으로써
이런 구조와 체계에 대한 인식은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과거의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아주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기 위해
그 차이와 유사점을 생각하며 말(文) 속에 숨어있는 말(語)들의 역할을 익혀야 할 일은 거의 없었고
또 나랏말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것은 대부분 화용의 측면, 즉 수사학이나 논리 논술의 쪽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을 지나며 굳어져온 문법은 언어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데에 역부족이었다. 가령 라틴어의 로마자를 쓰는
언어에선 언어규칙을 라틴어 규칙에 국한돼 설명하고 예외를 그냥 두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언어신수설을 기본으로 한 언어신성시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언어의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기에
초기의 틀을 무조건적으로 적용시켜 통일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학문의 암흑기인 중세를 넘어 근대에 와서 언어는 다시 한 번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근대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언어학의 발전은 바로 '비교언어학'이다. 어족, 어계, 혹은 역사적으로 따지고 들어가 언어의 변화를 관찰,
언어의 체계와 구조를 캐낼 수 있었고 언어학 발전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과학의 시대가 도래하고 스위스의 번뜩이는 학자 소쉬르에 의해
언어는 과학화되기에 이른다. 통시성을 공시성에도 적용시켜 규범을 만들어냈던 전통문법, 또
통시성에서 언어설명을 하려는 비교문법의 한계를 넘어서 언어 그 자체를 체제로서 인식하고
전체적으로 봐야한다는 시각을 가짐으로써 공시적 언어연구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다.
즉 이전의 문법에서 단순히 명사를 정의함에 있어 '사람, 사물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했다면
구조주의에서는 명사가 발현되는 언어 자체를 살핌으로써 그것을 정의했다.
가령 영어에 있어선
s가 붙어 복수나 소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 혹은 행동에 앞서 나올 수 있는 그런 대상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우리말에선 활용하지 않는 것, 격조사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다. 이처럼 구조주의 문법은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좀 더 내면을 살피면 구조주의 문법은 소쉬르가 언급한 것처럼 langue와 parole로 나뉘어 언어를 설명하고 있다.
즉 언어는 머릿 속에서 생각된 사상을 뱉어내기 위한 잠재규칙이 있고 그것이 발현된 것이 있는데 이를 구분하여야하고
언어연구의 본질은 당연히 그 langue라는 것이다. 따라서 langue를 연구하기 위해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에 서서
말을 수집해 분석해내야한다는 것이다. 즉 언어자료를 바탕으로 분포와 연합(유기적인 문장에 있어서 특정 위치에 사용될 수 있는
말들)을 따져서 그 규칙을 규명하고자 했다.
구조주의 언어학을 연 소쉬르는 이 langue와 parole외에 언어는 시니피앙(발현된 기호나 소리)과
시니피에(그 기호가 가리키는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언어의 자의성을 설명하고 그 자의적 차이를 내는 것이
언어를 차이내는 것에 기인해 구조주의 언어학을 보충했다. 음소, 음운과 형태소까지.. 그런 분포에 있어서
대립관계를 통해 그 언어들의 역할을 분명시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통시성, 혹은 규범성에서 벗어나
공시적 언어에 있어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후 구조주의는 그 명시성을 바탕으로 한 기술문법으로 파생되기에 이른다.
사실 기술문법은 구조주의의 방법론이다. 구조주의에서 구조와 체계를 알기 위해 필요한 발화된 언어연구를
바탕으로 그 규칙을 기술하였다 하여 기술문법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구조주의 문법으로 들어와 혼란과 예외의 틈을
지고 있는 전통문법의 오류를 극복해야했고 경험에 입각해 언어표면에 나타나는 현상 모두를 간결하고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이다.
전통문법, 즉 규범문법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언어신수설에 입각해 변화를 극히 꺼렸기에 언어적 예외를 인정하지 않고
기술에 있어서 제약을 만들어 문법을 설명했다면, 기술문법은 있는 그대로의 언어현상을 공시성에 바탕을 두고 문법을 설명했다.
記述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보았을 땐 '적는다'로 동일하지만 이것은 규범문법과의 혼동을 가져올 수 있다.
더욱 더 정확하게 기술문법을 말한다면 '현재 그대로 기술문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규범문법이 '이전 규칙대로 기술문법'이라면
그것과는 대조된 의미로서다. 즉 현세대의 사람들이 쓰는 말의 규칙을 정확하게 기술하고자 한 것이다.
이 기술주의 문법은 미국에서 시작되어 발달하였는데 이것은 문자가 없는 인디언의 언어를 조사하고자 하니 역사적 대조도
할 수 없는 것이오, 이미 쓰는 말의 예외를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 시기에 인디언이 쓰는 언어의 규칙을 하나씩
기술하는 방법론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은 모든 언어는 서로 문법적으로 다르다고 독립시켜놓아 구체적 연구 대상을 확정해두었다.
따라서 언어 보편성의 연구는 배제되고 언어독립적인 학문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발화된 언어자료를 모아 그것의 분포에서 대립을 따져 음소부터 통사구조까지 확장해 나아가고 있다.
과학이 귀납적으로 여러 사실을 바탕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처럼 과학적 방식, 합리적 방식을 따르고 있다.
언어를 과학과 같이 보고 과학자가 그러하듯 언어학자는 개입을 하는 게 아니라 근거를 바탕으로
간결하고 정확한 결론을 내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러나 언어는 물리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가 언어학을 함에 있어서 처음에 고민하고 연구하는 내용이
사고가 먼저인가, '언어가 먼저인가하는 언어와 사고의 관계'를 생각해보는 일이고 이것의 결론을 내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이처럼 언어는 물리적 현상이라고 말하기에 무리가 따르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은 인류라면 누구나
행하는 인간의 의사소통인데 개별적인 것으로 보게 되면 언어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다.
언어는 보편적이라는 인식이 있어야만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구조주의는 언어학을 과학과 같이 보아
귀납적이고 표면적인 연구대상으로 한정시켜 놓았다. 귀납은 말뭉치 자체에 생긴 오류까지도 기술하게 만들 수 있다.
표면적인 연구는 언어가 langue, 즉 사람의 머리 속이라고 말해놓고서도 그 머리속의 규칙을 단순히 parole로만 연구하게 되어
다시 langue를 판단해버리고 말았다. langue를 안다면 parole을 만들 수는 있지만 parole을 안다고 langue의 전체를
표현할 수는 없다. 언어는 머릿속의 유한한 규칙으로 무한한 발화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에 의해 그가 배우고 회의하던 구조문법을 보완하는 이론이 탄생한다.
그것이 변형-생성문법이다.
구조주의의 공시성, 그리고 langue와 parole의 구분,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의 구분을 따르면서
다만 관점을 달리한다. 과학적 경험주의가 아니라 인간적 이성주의에 기대 언어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언어란 사고이고, 언어란 인류 모두가 가진 것이기에 언어의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구조주의가 말하는 parole에서 langue를 찾는 귀납적 방식을 버리고 언어능력(competence)과 언어수행(performance)
을 내세워 유한한 규칙인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무수한 언어수행을 해내는 것을 바탕으로 그 언어능력의 본질을 파악하려 했다.
그것은 언어수행의 규칙을 기술해 얻어내는 귀납적 방법이라기 보단 언어보편성에 기반을 둔 방식이다.
따라서 언어의 습득에 관해서도 구조주의론자와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조주의에서 언어의 습득이
언어를 체험하게 되면서 귀납적으로 그 규칙을 하나하나 체득해서 익히게 된 것이라면 촘스키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능력을
갖고 난다고했다. 그리고 타고난 이 재능으로 유한하고 보편적인 언어능력을 깨닫게 되고 이 언어능력을 바탕으로 심리적 부분까지
포함해 언어수행이 된다고 했다. 즉 그는 언어에 있어서 심리적 측면과 인식의 측면을 배제한 귀납적 구조문법의 문제점을
보완해내었다. 이런 심리적, 인식적 측면에서의 무한한 언어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구조파악과 기술을 하는 것은 끝이 없는
행위이고 언어를 설명하기엔 무리수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변형 생성문법 언어학에서는 미혹한 나이에 무엇보다 복잡한
언어를 익히는 인간의 언어습득의 비밀, 심리적 상태에 따른 발화변화를 생각해보는 화용론 연구로 나아갔다.
변형과 생성의 의미는 구조주의에서 연구대상이 되는 표층적 발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언어능력의 과정이다.
언어 보편성에 근간을 두고 그 보편성에서 왜 달리 표현되는가에 대한 언어능력의 전개도를 형상화하는 것이
변형생성문법이다.
언어학사와 그 이론들을 잘 살피면 시대의 조류를 타고 교묘하게 발전해왔다.
각각의 이론들은 선대언어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른 반란이자 보완이고 점점 더 언어 전반에 걸쳐 폭을 넓히고 있다.
문법이론의 차이는 결국 시점과 언어를 이해하는 폭에 의해 나게 된 것이다.
문법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 역시 언어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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