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sgi 다문화가정 바네사씨
한국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겠노라는 바네사 씨의 다짐과는 달리 한국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언어 차이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으로 남편도 주변 사람들도 난감했다.
바네사 씨가 고민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주위 사람들이 노력한다고 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아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다.
특히 남편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오해가 생겨 다투는 일도 많았다. 페루에서 활발하게 생활했던 것과 달리 소극적인 모습으로 바뀌었다. 환경도 언어도 다르니 적응하기 어려웠다. 문화적 차이도 바네사 씨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바네사 씨는 그때 신심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실, 바네사 씨의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신심을 하고 있었다. 바네사 씨도 미래부 때부터 자연스럽게 신심을 시작했으며 페루SGI 여자부원으로서 활동하다가 한국으로 오게 된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는 SGI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페루에서 마음껏 광포의 사명을 다하던 때를 추억하며 4년 만에 창제를 시작했습니다.”
바네사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컴퓨터를 켰다. 포털사이트에 한국SGI라는 검색어를 쳤다. 1초 후 한국SGI 홈페이지가 눈에 보였다. 바로 본부로 전화를 걸어 현장의 학회간부와 만날 수 있었다.
“한국SGI에 연결되어 아주 기뻤습니다. 중남권에 ‘바네사’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한걸음에 달려오신 반담님이 너무나 반가워 해주셨어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회관에 가면 회원님이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건네주셨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제게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주셨습니다.”
주위 회원들도 바네사 씨의 행복과 성장을 바라며 마음을 쏟았고 바네사 씨도 그 마음을 느끼며 하루하루 진지하게 신심에 힘썼다.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적극적으로 학회활동에 참여하면서 한국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활해졌다. 물론 일상대화가 완벽하진 않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이야기해주는 회원님들의 입 모양과 단어들을 조합하며 한국어 실력도 늘었다. 그리고 자신의 서툰 한국어를 귀담아 들어주는 상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