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나라의 비극이었다. 동시에 안산의 아픔이기도 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실종 5명 포함) 가운데 단원고가 있는 안산지역 희생자는 모두 263명(단원고 학생 250명, 교사 12명, 일반인 1명). 동네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사라졌고, 자식 잃은 부모는 길 위에 눈물을 뿌렸다.]
[2023년 12월 기준 희생자 가족 764명 가운데 최씨처럼 안산을 떠난 이는 224명(29.3%)이다. 거주지역은 안산 외 경기도가 122명(16%)으로 가장 많았고, 충청도가 32명(4.2%)으로 뒤를 이었다. 8명(1%)은 아예 한국을 떠났다.
이들이 안산을 떠난 이유는 아이와의 기억이 가장 컸다. 동네를 지날 때면 곳곳에서 아이 모습이 눈에 밟혔다. 단원고 근처에는 발을 들이기조차 어려웠다. 최씨는 “화랑유원지는 아이들이 인라인도 타고 자전거도 탔던 곳인데, 갈 때마다 그게 다 눈에 밟히고 보인다. 안산에 있으면 하나하나 다 생각나니까 떠난 것 같다”고 했다.]
[안산에 남은 가족들은 정부와 언론에 의해 고립됐다. 참사 초기에는 지역사회가 함께 애도하고 아파하는 분위기였지만, 유가족을 향한 공격이 거세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와 언론의 공격은 가족들의 집 앞까지 따라왔다. 함께 아파하던 이웃들이 보상금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고, 유가족이 무엇을 먹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감시했다.
“한번은 합동분향소 앞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 이웃집이 유가족인데 맨날 뭘 시켜 먹더라. 나는 애 군대 보내고 일주일 동안 밥도 못 먹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뭐라고 반박도 못 하고 그저 뒤에서 따라가며 눈물만 흘렸습니다.”]
[소문과 낙인은 일터까지 따라붙었다. 안산에 남은 2학년 6반 이태민의 엄마 문연옥(51)씨는 “참사 당시 미용실을 했고 동네 사람들을 다 알고 지냈는데, 도저히 다시 할 수가 없다”며 “나는 아이를 잃은 것밖에 없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문씨는 “세월호 가족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돈을 얼마 받았다느니 이런저런 얘기가 나와서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더 걱정했다. 자신들은 단원고를 매개로 뭉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이태원 유가족은 사회적 고립이 더 심각하지 않겠느냐는 우려였다.]
[“이태원 참사를 보면 정부의 대응 방식이 우리 때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며 “(유가족에게) 악의적인 프레임을 씌우고 공격하는 이런 것들을 제발 멈췄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역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안산을 생명과 안전의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생명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이는 사건으로 기록되고, 이를 통해 안산이 광주나 제주처럼 역사적·정치적 상징성을 가질 때 가족은 물론 지역의 아픔도 치유·승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가슴이 아프다.
기사 초반에 나오는 순범이 어머니는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몇번 뵈어서(여러 번 공연보러감) 글을 읽는데 음성지원이 되네..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