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끝난 뒤 조선에선 왜란에 공이 있는 공신들을 선정하는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해당 업무를 위해 설치된 공신 도감에선 1603년 3월과 4월에 선조에게 공신에 들어갈 후보들을 추천합니다.
이중 4월에 추천된 26인을 살펴보면
공신 도감이 【당상은 이항복ㆍ이호민ㆍ황진ㆍ홍가신ㆍ박명현이다.】 아뢰기를,
“전후의 왜적을 정벌할 때에 공로가 있는 사람들을 의의하여 취품한 것은,
이원익ㆍ이순신ㆍ권율ㆍ원균ㆍ권응수ㆍ김시민ㆍ이정암ㆍ곽재우ㆍ이억기ㆍ권준ㆍ이순신(李純信)ㆍ이운룡ㆍ우치적ㆍ배흥립ㆍ박진ㆍ고언백ㆍ김응서ㆍ이광악ㆍ조경ㆍ정기룡ㆍ한명련ㆍ안위ㆍ이수일ㆍ김태허ㆍ김응함ㆍ이시언 등 26인이었습니다.
보면 그 균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전장에서 공을 세운 이들입니다. 무관들의 비중이 높죠
(아마 그 균이 포함된 것도 신하들의 선조 체면 세워주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후 여러 토의와 선조의 입김을 거쳐 1년 후 1604년 6월에 공신에 오를 인물들이 발표되는데
이중 피난하는 선조를 도운 이들을 호성공신
전장에서 공이 있거나 명나라에 지원을 받기 위해 외교적으로 노력한 이들을 선무공신으로 봉합니다.
선무공신은 총 18명으로 공신도감 추천 후보 26인에서 13명이 빠지고 5명은 새로이 추가되었습니다.
(새로 추가된 다섯 중 기효근을 제외한 넷은 명나라 지원군 파견에 공을 세운 이들 입니다)
자 이제 공신도감에서 추천한 후보였지만 안타깝게 선무공신 선정에선 탈락한 인물들을 가볍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원익
선조 때 부터 인조 때 까지 영의정만 여섯 번 거친 거물급 문신
1차 평양성 전투에서 야간에 왜군을 기습한 전공이 있다.
3차 평양성 전투에도 참전했다.
곽재우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가장 인지도 높은 임진왜란 의병장
대표적인 전공은 왜군 2000명을 상대로 승리한 정암진 전투가 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우치적)
우치적
본래는 원균 휘하에 있던 장수로 원균 밑에서도 용맹을 떨친적이 있다.
이후 수군의 선봉으로 나서며 적의 배에 올라 백병전을 펼치는 등 조선 수군의 맹장으로 활약했다.
광해군 때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배흥립)
배홍립
이순신 휘하에서 수많은 해전에 참전하여 활약한 장군
무의공 이순신, 권준, 정운과 더불어 이순신 장군이 가장 공이 많다고 평가 했던 장군 중 한 명이다.
(드라마 징비록에서 박진)
박진
병마절도사로서 영천성 탈환전과 경주성 탈환전에서 의병장 권응수와 함께 활약했다.
조선군의 병기 비격진천뢰가 경주성 탈환전에서 사용되었다.
항왜 샤아가(김충선)가 투항한 인물이 바로 박진이었다.
최후가 어이없는데 명나라 장수 누승선에게 구타당해.. 사망했다.
김응서(김경서)
평양성 전투를 시작으로 여러차레 공을 세운 장군
전투에선 매우 용맹했으나 그외 부분에선 사고도 많이친 트러블 메이커
이중간첩이었던 요시라에게 속아 이순신 파직에 원인이 되기도 했다.
훗날 사르후 전투에서 조선군 부원수로 출병했으나 패배 후 투항
청에 있으면서도 적의 정보를 조선에 보내려 했으나 강홍립의 고발로 인해 처형되었다.
정기룡
명나라 장군에게도 극찬 받은 조선군 맹장
여러 전투에서 돌격장으로 공을 세웠다.
최근에 와서는 육지의 이순신, 60전 60승의 무패장군으로 부풀려지는 등 과대평가 논란이 있다.
(네이버 웹툰 칼부림에서의 한명련)
한명련
명나라 장군에게도 극찬 받은 조선군 맹장2
천민 출신으로 의병1로 시작해서 왜란 말엔 종이품까지 오른 입지적인 인물
왜란 초기부터 김덕령과 함께 좌우별장으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다.
김덕령과는 달리 돌격장으로서의 전공은 확실하여 거품 논란은 없는 편이다.
(영화 명량에서의 안위)
안위
"안위야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군법에 죽고 싶으냐?! 달아난다고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라는 이순신 장군의 쿠사리로 유명한 인물
명량해전 당시 쫄아있던 장수들 중 가장 먼저 전투에 합류하였다.
이후에도 이순신 장군 밑에서 활약했다.
이수일
무관으로 왜란 초기 패배 후 의병을 일으켜
울산에서 왜적 50을 참살하고, 왜군의 적선 4척을 나포 하는 등
전쟁 동안 여러 군공을 세웠다.
선무공신에 오르진 못했지만 훗난 이괄의 난 진압에 활약한 공으로 진무공신 2등에 올랐다.
김태허
(미디어에서 다루어진 적이 없어서인지 쓸만한 이미지가 없음)
왜란 당시 직책은 울산 군수로 유성룡에게도 쓸만한 인재라는 평을 받았던 인물
여러 군공을 세웠다.
(영화 명량에서의 김응함)
김응함
이순신의 휘하에서 노량해전에 참전하였다.
기록이 별로 없는데 정기룡, 한명련, 이수일, 이시언, 김태허 등을 힘써 싸운 노고가 있었다고 기록된바
용맹함이 부각된 장군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시언
경주성 탈환전과 이몽학의 난 진압에 공이 있는 인물
이순신 사후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랐으나 수전엔 익숙하지 못했다고 한다.
훗날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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