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꿈 속에서 하얀 소녀를 만난다.
하얗다는 것만 알 뿐, 이목구비는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하얗다는걸 알 수 있는 소녀.
"미안하지만, 당신에게 주문을 걸었어."
그녀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이 나에게 주문을 걸었노라고
"너는...누구야?"
"그게 내가 당신에게 건 주문."
내 질문에,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아니,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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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
신의 마지막 예언자가 처형대에 매달린 날을 원년으로 하는, 이제 신력이라는 말이 어색해질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세계 대부분의 미지와 신비를 털어낸 인류는 급기야 용에게 도전하는 금기를 저지르고 말았다.
창, 화살, 대포, 그리고 총.
가장 강력한 인류의 무기인 비행기와 기관총으로도 용을 사냥할 수 없었고, 인류의 찬란한 문명은 파괴되었다.
남은 것은 폐허 뿐.
인류가 한때 하늘을 날았다는 것도, 총을 만들어 쏘았던 것도 잊혀진 2100년의 어느 날.
내가 살던 마을은, 용이 뿜은 불에 타버리고 말았다.
생존자는, 나를 포함해 손에 꼽을 만큼.
한때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용들은, 인간의 멸망을 바라지 않았는지, 200년이 넘게 먼저 인간을 공격한 적이 없는데
어째서 마을을 습격한 것인지는 몰랐다.
불탄 대장간에서... 용의 뼈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무구를 발견하기 전 까지는.
용은, 기본적으로 크고, 강력하다.
날기 위해 다른 부분을 많이 희생한 새와는 달리, 그들의 골격은 단단하고 뼈가 비어있지도 않았으며, 바위마저 동강내는 발톱과 이빨. 그리고 뿜어내는 불의 숨결은 용의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하지만 용은 무적의 존재는 아니다.
분명히, 용살자가 존재한다.
인간의 몸으로 용을 쓰러뜨린 위대한 자.
제 몸보다 큰 냉병기를 휘두르고, 엄청난 중장갑을 입고도 민첩한 몸놀림을 낼수 있으며,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초인들.
그런 초인들이 인간 사이에서 용을 사냥한다.
모든 용을 사냥하고, 다시 한번 세계의 패권을 손에 넣기 위해서.
나는, 그 무구를 몸에 걸쳤다.
무기와 갑옷은 엄청나게 무거워 그저 걷는 것만 할 수 있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희망을 가졌다.
그것은 나에게도 용살자의 재능이 없지는 않았다는 뜻이니까
모든 용을 물리치겠다.
그것이, 불타버린 마을을 두고 내가 한 첫 다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