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v.daum.net/v/5f4dee9b2c7454539a1a93b3
한 무당은 <곡성>의 사진 촬영과 사진의 의미는 그 사람의 영혼을 사진에 거둬들인다는 의미라고 함
전문용어로 '식신', '사역시킨다'라는 의미로 그 혼을 마치 자기의 부하 혹은 심부름꾼으로 사역을 시킨다는 것을 의미
https://nippon.zaidan.info/seikabutsu/2000/00852/contents/002.htm
무라야마 지쥰이 찍은 사진의 장면
그는 조선을 조사할 때 사진을 찍어서 기록으로 남겨두기도 했음
물론 무라야마 지쥰의 사진 기록은 '사역'이 아니라 '기록'의 의미일듯
그는 조선의 귀신에도 흥미가 있어
『조선의 귀신』의 제목의 책을 씀
책에는 조선의 귀신과 접촉법과 차단법. 접촉에 의한 귀신 퇴치법, 차단에 의한 귀신 퇴치 내용도 들어가 있음
“조선의 풍수설에서 자손의 운명은 조상 묘지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는다”
무라야마가 인식한 조선 민간신앙 체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됨
첫째, 조선에서는 귀신 신앙이 사상의 근간이며, 조선의 문화는 그 영향을 받는다.
둘째, 풍수를 살펴 조상을 좋은 곳, 즉 명당에 모셔야 한다.
셋째, 여차하면 매사를 무격에 의탁해야 한다.
무라야마는 조선을 미신을 믿는 미개한 나라 정도로 인식함
. "조선 민중의 생활사상에는 스스로 땀 흘려 노력해 생활의 전개를 꾀하기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른 힘과 기회를 이용해 자기 생활의 약진을 기대하는 점이 있다.
생활고의 해탈에 대해서는 현상만이라도 타파되면 장래는 어떻게 되든 관계없다는 찰나 관념이 있다."
https://v.daum.net/v/20240317140438848
한국의 한 교수는 그의 저서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함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한 연구조사의 결과라고 해서 무조건 그 업적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에 앞서 그 자료를 충분히 분석하고 비판하여 보다 나은 학문의 세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123
그가 쓴 책의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임
『조선의 풍수』 (1931)에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조선 산맥에 쇠못을 박아 왕기를 제압했다”
“조선의 풍수설에서 자손의 운명은 조상 묘지의 좋고 나쁨에 영향을 받는다”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 묘지 풍수의 특징
첫째, 조선의 풍수가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점,
둘째, 풍수란 땅의 생기를 타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자연스럽게 묘지 풍수가 중요시됐다는 점
셋째, 묘지 풍수의 보급에 불교의 영향이 컸다는 점,
넷째, 조선인의 신앙 가운데 죽은 사람의 뼈가 산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신앙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풍수가 묘지 신앙으로 빨리 수용될 수 있었다는 점
마지막, 조산의 무덤이 후손에 이롭다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해 행복을 추구하고자 했고 풍수를 방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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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 구조의 명당의 그림을 책으로 낸 것이
무라야마 지쥰의 '조선의 풍수' (1931)였음
이 '조선의 풍수' 책은 이후에 한국의 풍수사에게도
엄청나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됨
흔히 명당이라고 돌아다니는 그림도 무라야마 지쥰의 영향을 받은 그림이 아닌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봄
일본 한 논문
(朝鮮時代の地誌・地理書にあらわれる 風水用語とその概念
渋谷鎮明) 을 보면 저 무라야마 지쥰의 그림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했다고 분석함
'1931년 조선 총독부의 촉탁 "조선의 풍수"를 기록한 무라야마의 '산국지도'이다.
이 그림 자체는 여성의 성기에 비추어 조선 풍수에 이상적 그림을 보여 주었지만....'
1931年に朝鮮総督府の嘱託と して『朝鮮の風水』を記した村山の「山局之 図」である(図 4右)。
この図自体は女性の 性器になぞらえて朝鮮の風水における理想の 図を示したものである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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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한국의 풍수가 저열하다는 의식을 심기 위한 무라야마 지쥰의 의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봄
풍기문란을 매우 엄격히 통제하였던 조선시대에
여성의 성기를 닮은 그림을 풍수서에 담을 수 있었을까 의문이 듬
풍수산형묘지(風水山形墓地), 풍수제강선생지묘(風樹齊姜先生之墓)
탁옥부(琢玉斧), 명릉산형도(明陵山形圖), 명산론(明山論), 풍수서(風水書),
이중환의 택리지를 찾아보았는데
무라야마 지쥰의 풍수도와 비슷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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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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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풍수가들은
조선시대 왕들은 용진처라는 맥이 끝나는 곳에 거의 묘를 썼는데
순종의 묘는 과룡처의 위치라고 함
풍수에서 가장 꺼리는 자리는 과룡처
지나가는 능선 위에 묘를 쓰면 삼대를 못가서 망한다는 뜻
도시혈:
시신을 매장한 이후 땅속이 움직여 시신이 묘 봉분 밑에 있지 않고 이동해 다른 곳에 있게 됨
https://www.youtube.com/watch?v=2BN91h6VbKE&t=32s
https://www.hankyung.com/article/2014010503691
대한제국의 기를 꺽기 위해
기맥을 달리 조성한 것으로 추정
홍릉의 석릉은 다리가 막아져 있음
이렇게 동물들의 다리가 막아져있는 것이
하지만 유릉은 특이하게 다리가 노출되어 있다고 함
조선의 석릉이 다리를 통으로 붙인 이유는 더 오래가게 하기 떄문
야스쿠니 신사 신문, 메이지 신궁 등을 만든
건축가가 되어도 그림을 그렸고
그가 그린 요괴 그림이 남아있어 책으로도 나옴
요괴나 괴수등의 일러스트집 「괴기도안집」이나 논문 「괴물」을 발표함
「怪奇図案集」や論文「化けもの」を発表
이토 주타 동물원
伊東忠太動物園
이토 주타는 조선에도 건축물을 지음
이토 주타에 의해서 경복궁 흥례문 구역이
조선총독부 부지로 선정되고 지어지게 됨
- 조선신궁 (朝鮮神宮, 1925년, 현존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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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의미 없다고 보는 쪽이긴한데 의도 자체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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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이에 끼여있는 뇌피셜이 너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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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이에 끼여있는 뇌피셜이 너무 많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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