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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유난히 운수가 좋았다. 첫 번째 손님부터 그녀를 지명했는가 하면, 오는 손님마다 그녀의 손에, 때로는 가슴골에, 때로는 팬티에 팁을 두둑이 꽂아 주었다. 너무 수입이 좋아서 그녀는 오늘이 무슨 기념일인가고 궁금할 정도였다.
“얘, 거기 콘스탄챠”
“네?”
B구역 관리인이 그녀를 불렀을 때도 그녀의 행운은 끝나지 않는 듯싶었다. 관리인이 그녀에게 제안한 액수는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으니까. 오늘 수입이 많았는데 관리인이 제시한 액수는 그걸 합친 것보다 더 많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인은 오히려 그녀가 거절할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어때, 할 수 있겠어?”
관리인의 물음에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는가. 언제 이런 '운수 좋은 날'이 다시 올지 모르는데. 할 수 있을 때 벌어 둬야지. 하겠다며 의욕적으로 두 손을 꼭 쥐는 그녀에게 관리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이번 손님 일 치루면 돌아가도 좋아”
그 말에 콘스탄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아직 근무시간 안 끝났는데요?”
“조퇴 시켜줄게. 필요하면 추가수당도 줄 거니까 오늘 수입은 걱정하지 말고.”
그리고 돌아서며 관리인은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멀쩡하게 걸어 나갈 수 있다면 말이야.”
...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손님...?”
관리인의 지시를 받고 찾아간 오늘의 ‘러브룸’에는 손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와서 기다린 손님에게 예의바르게 사과하던 콘스탄챠는 문득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남자와 여자가 ‘야한 짓’을 즐기는 장소라기엔 뭔가 지나치게 음산했고...
“오, 네가 오늘 나랑 놀 콘스탄챠로구나”
기다리는 ‘손님’이라는 사람은 여자였다.
‘?’
B구역에 인간 여자 손님이 오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아무튼 여긴 바이오로이드들을 가지고 성적으로 즐기는 곳이고, 바이오로이드는 여성형들뿐이니까. 그러나 콘스탄챠는 스스로 자신이 ‘열린 마인드’를 가졌다고 자부했다. 동성애자라고 B구역을 즐기지 못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설혹 이 손님이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콘스탄챠는 얼마든지 그녀의 요구에 응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무렴, 이분이 내주신 돈이 얼만데.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돈은 물고기도 땅 위에서 걷게 만든다.
그러나 콘스탄챠를 보고서 손님, 척 봐도 돈 많고 부유해보이는 그녀가 던진 첫마디는 어리둥절한 것이었다.
“나는 콘스탄챠가 싫어”
“?”
콘스탄챠가 싫으면 왜 그녀를 지명했던 걸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고개만 갸웃하며 억지로 영업용 웃음을 짓는 그녀를 위해 손님은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전남편이 자기가 산 콘스탄챠랑 바람이 났었거든.”
“그, 그러신가요. 유감이에요. 제가 그런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저택의 콘스탄챠들을 모두 쫒아냈어. 꼴도 보기 싫었으니까. 그러다 한 녀석에게 손찌검을 하게 됐는데, 그 때 깨달았지.”
“?”
갈수록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어, 콘스탄챠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친절하게도, 척 봐도 부유해 보이는 여자는 느릿느릿 설명을 계속했다.
“단순히 쫒아내는 걸로는 내 분노를 풀기에 부족하다는 걸 말야. 내게 얻어맞고 고통스러워서 나뒹구는 녀석을 보는 순간, 그 순간만큼은 전남편을 빼앗긴 증오가 조금이나마 플리더구나. 아니. 그건 쾌감이었어”
그러면서 그녀는 천천히 콘스탄챠에게 다가서며 그녀의 뺨을 슬쩍 어루만졌다. 그건, 분명, 애정어린 손길은 아니었다.
“그 이후로 콘스탄챠들만 보면 부숴버리고 싶은 충동이 솟아올랐단다. 내 분노를 위로하기 위해, 내 빼앗긴 행복에 복수하기 위해.”
“....!”
그제야 말뜻을 알아차린 콘스탄챠의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되어버린 일이었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그녀는 왜 관리인이 다른 B구역 바이오로이드들 대신 자신을 이 방에 밀어넣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사실, 이런 흉악한 방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야한 플레이를 즐기는 방이라기보다는 고문실에 가까웠으니까. 아까운 B구역의 재산을 파손시키는 것보다는 아르바이트를 쓰는 게 테마파크 입장에서는 더 나으니까.
“아, 걱정마렴. 죽이진 않을 거야. 그럴 거면 C구역에 갔지. 그리고 나도 재물손괴죄로 추가금 물긴 싫어"
여자는 느리게 말을 마쳤다.
"그리고...죽어버리면 더 이상 아파하지 못하잖니.”
C구역은 뭐만 하면 쉽게쉽게 죽여버리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러나 그게 콘스탄챠에게 그다지 위안이 되는 말은 아니었다. 그녀를 돌아보는 여자의 눈은 거의 미쳤다고 해도 좋을 가학성향으로 번들번들 빛나고 있었으니까.
빈부에 따라 가진 오리진 더스트가 갈리는 시대다. 상류층은 많은 오리진 더스트를 주입받아 더 젊고, 더 아름답고, 그리고 더 막강한 육체를 가지는 시대다. 그리고 그건 그녀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바이오로이드에게도 충분히 통할 만한 폭력을 행사할 만큼.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그저, 네가 좀 괴로워하는 걸 보고 싶을 뿐이란다. 아파서 몸부림치는 걸 보고 싶단다. 너무 아프고 무력해서 말이야. 진심으로 말이지. 그러니...”
여자는 드디어 뭘 첫번째로 할지 정했는지 선반 위에 있던 각목을 움켜쥐었다. 그건, SM플레이를 할 때 흔히 쓰이는 그런 약해빠진 작대기가 아니었다. 진정 고문과 구타를 할 때나 쓰일 법한, 아니 실제로 거기에 쓰일 만한 것이었다. 그게 아니면 거기에 못이 박혀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다.
“자, 넌 좀 오래 버텨주면 좋겠구나”
...
해도 다 져서 어둑어둑해져가고 판자촌의 오래된 가로등이 깜빡이는 그림자 아래, 거의 넝마조각이 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꼴이 된 콘스탄챠는 비틀비틀 집을 향해 걸었다.
머리를 맞아서 공간감각을 담당하는 모듈이 맛이 갔는지 자꾸만 몸이 엉뚱한 방향으로 헛돌고 다리가 휘청했다. 지치고 피곤한 발이 자꾸 이상한 곳을 디뎠다. 온몸이 으스러질듯이 아팠다. 이도 두 개 정도 나간 것 같고, 팔다리는 퉁퉁 붓고 피가 흘렀다.
“하, 아하하...”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전봇대에 몸을 기댄 채 웃고 있자니 그야말로 미1친년 같았지만, 그래도 그녀는 웃을 수 있었다. 몸이 으스러져라 맞아댄 대가로, 정말 엄청나게 벌었다. 이걸 소위 깽값이라 한다던가. 이 돈이면 소년의 학비를 대줄 수 있다. 그 해진 가방 대신 좋은 새 가방도 사 줄 수 있으리라. 주인님에게 들켜서 다 뺏기지만 않는다면.
그녀의 판자집이 가까워져 왔다. 술에 취한 것처럼 비틀비틀 길을 잃고 이리저리 맴돌다가 겨우 목적지가 보이자, 허름하고 비참한 보금자리건만 더더욱 그리워졌다. 저기 가면 그래도 몸을 누일 수 있으리라. 어쩌면 또 주인님이 밥 안 하냐고 성화를 부리실지 모르지만, 아마 지금 시간이면 또 인터넷 카지노에서 돈을 잃고 술에 절어 자고 계시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련님이 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그녀는 판잣집 문이 열리고 그녀의 망나니 주인이 그녀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오자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구! 콘스탄챠야! 왜 이제 오니!”
“....?”
“어구어구, 이게 무슨 꼴이냐! 멀쩡해야 할 애가 이럼 어떡하냐! 자 빨리 들어와서 피 닦자!”
여전히 술에 절어 알콜냄새와 역한 땀냄새가 확 풍겼지만, 그는 더럽긴 했지만 어쨌든 피와 먼지를 닦아낼 정도는 되는 수건으로 콘스탄챠의 몸을 북북 닦았다. 그렇게나 자신의 메이드를 기다렸는지 거의 맨발로 허겁지겁 달려온, 그리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정해진 그를 보자 콘스탄챠는 오히려 어리둥절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따뜻해진 주인의 태도에 괜히 고마워진 자신이 약간 한심해졌다. 역시 그녀는 메이드로 만들어졌다. 주인된 자가 아무리 악랄한 자라도, 그의 약간의 호의만으로도 금새 풀어져 버리는 것이다.
“주인님...감사합...”
“에헤이. 고맙단 말은 안 해도 돼. 그런 거 이제 필요없어. 그보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놀라움은 끝나지 않았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그녀의 주인이 그녀에게 건넨 것은,
“자자, 그런 더러운 옷은 빨리 벗어버리고 이거 입자!”
그녀 자신이 입는 걸 주저할 정도로 깨끗한 새 옷이었다. 콘스탄챠가 백화점 안에서 침을 삼키고 부러워하던 바로 그, 반짝반짝한 새 메이드복. 기대는 커녕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선물을 받자 그녀는 당황을 넘어 왈칵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주, 주인님, 갑자기 어째서 제게 이런 걸...”
“아, 이거 말이지?”
주인은 미소지었다. 어쩐지, 불길해 보이는 미소를. 그러고보니 정말 왜 오늘은 평소와 다르신 걸까. 인터넷 경마에서 돈이라도 따셨나.
오, 다행히도 그녀는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인의 입에서 떨어져 나온 소리는, 평소에 그의 몸에서 풍기는 썩은 술과 담배냄새보다 더 역했으므로.
그녀의 두려움은 옳았다.
“팔았거든, 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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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09.23 06:2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