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다른 감방에 갇혀, 서로 정보전달이 되지 않는 두 공범(共犯)이 있다고 해 보자. 그 둘 각각에게 검사가 찾아가 사법거래를 제안한다. 이미 증거가 발견되었으니 형을 받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있으니 잘 생각해보라고.
만약, 둘 다 무죄를 주장하면 둘 다 1년 징역을 살게 된다.
만약, 한 명이 범행을 인정하고 다른 쪽이 무죄를 주장하면 범행을 인정한 쪽은 풀려나고, 무죄를 주장한 쪽은 10년형을 받게 된다.
만약, 둘 다 범행을 인정하면 둘 다 5년형을 받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두 죄수는 각각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콘스탄챠는 그 스스로도 인정했듯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고, 따라서 이런 복잡한 게임이론(Game theory)의 결론도, 그 뒤에 숨은 심오한 경제학적 원리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분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려주길 빌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 번, 그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제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녀 앞에 앉은 사디어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사방이 격리된 취조실 안. 그러나 예의바르고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콘스탄챠와 달리, 오히려 거기가 자기 구역이어야 할 그녀가 더 짜증나고 초조해 보였다.
“진짜 순순하게는 안 넘어가겠단 거군. 좋아,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으르렁대는 강력반 형사 앞에서, 그러나 콘스탄챠는 앵무새처럼 초연하게 하던 말만 반복했다.
“제가, 인간을 죽였습니다”
...
테마파크의 B구역은 그래도 C구역과는 달리 ‘막장까지는 아니’ 라고 취급받고, 실제로 거기 근무하는 바이오로이들도 C구역보다는 사정이 낫다. 적어도 여긴 다리만 잘 벌려주고 손님에게 적당히 아양만 잘 떨어주면 되니까.
하지만 B구역에 늘 ‘정규직’ 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B구역의 바이로오이드들도 ‘소모’되곤 하고, 가끔은 손님 취향을 맞춰줄 만한 바이오로이드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결원이 생겼거나,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손님들이 넘쳐나는 이른바 ‘성수기’ 가 찾아오면, B구역은 으레 ‘아르바이트’를 할 바이오로이드 모집 공고를 내건다. 세상에 어떤 주인이 자기 바이오로이드에게 그런 성접대 봉사를 시키겠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실업률이 치솟고 막장인생들이 늘어나는 현대에 의외로 자기 바이오로이드를 보내서 돈을 벌어오게 시키는 자들은 왕왕 있었다. 개중에는 자기 바이오로이드가 다른 남자 밑에 깔려 앙앙거리는 걸 보려는 변태들도 있었고. 콘스탄챠S2 736호도 그런 케이스 중 하나였다. 아니, 그녀의 주인이 아까 언급한 것 같은 변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의 그에 비교할 수준의 막장 인생은 되었으니까.
“오늘도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긋나긋하게 답하며 그녀는 조금 전 자신을 안은 손님이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느꼈는지 손님은 훔훔,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어 건넸다.
“여기, 오늘 같이 논 값이야. 안 떼먹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어”
“감사합니다”
돈다발을 받아 세던 콘스탄챠의 손이 멈칫했다. 액수가 다르다. 아니, 적게 준 게 아니다. 오히려 좀 많았다.
“손님, 약속된 가격보다 돈을 더 주셨는데요”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냥 좀 더 넣었어. 보아하니 B구역 정직원이 아니라 알바 같은데, 주인이 누군진 몰라도 어지간히 가난하게 사나봐? 불쌍한 것”
“......”
동정과 비웃음이 반반씩 섞인 그 대꾸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욱했다. 하지만 부정할 순 없었다. 그녀의 주인님이 누군지 그 사내가 알 리는 없겠지만, 틀린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말없이 침대에 앉은 채 속옷을 챙겨입는 그녀에게 사내가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다분히 욕정 넘치는 손길로.
“내가 메이드 플레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옷은 너무 낡았잖아”
“....죄송합니다”
역시 이것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녀가 입은 오래된 메이드복은, 그녀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관리하기는 했지만, 역시 떄묻고 남루한 티를 숨길 순 없었다. 그녀는 괜히 부끄러워져 고개를 숙였다. 이미 B구역에서 몸을 판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임에도. 옷 하나 제대로 사 입을 수 없는, 혹은 옷 하나 제대로 관리하기 힘든 자신의 상황이 처량해져서. 그런 그녀를 보다가 사내는 한마디 더 툭 던졌다.
“그래서 옷 좀 사입으라고 좀 더 넣은 거야. 좀 반짝반짝한 새 메이드복으로 사 입으라고. 이왕이면 야한 걸로. 그래야 나도 좋고 너도 장사가 잘 되지 않겠어?”
“....감사합니다.”
그 사심 섞인 핀잔에 감사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부수입은 얻은 거니까. 작게 중얼거리는 그녀 앞에서 사내는 조롱과 연민이 섞인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래도 콘스탄챠를 소유할 정도면 네 주인도 과거에는 잘 나갔던 모양인데, 너도 참 안됐구만. 열심히 살아라.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고.”
그러고선 사내는 그와 그녀가 몸을 섞은 방을 떠나갔다. 아무래도 그는 콘스탄챠의 서비스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다음에 또 만나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나 콘스탄챠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라고 B구역 비정규직으로 몸을 파는 게 유쾌하진 않았으니까. 아니, 아니야, 하고 그녀는 스스로를 달래며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했다. 그래도 거액의 빚을 지고 주인 대신 팔려와 아예 B구역에 가축처럼 매여 사는 바이오로이드들보다는 낫지 않은가. 지금 그녀의 주인 꼴을 보아선 그녀도 얼마 안 가 그리 될지도 몰랐지만. 그래도, 그래도,
콘스탄챠에게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 혹은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
B구역에서의 ‘일거리’가 다 끝나고 돌아가는 밤길은 한산했다. B구역에는 밤새도록 진탕 놀고 퍼마시는(그리고 그러면서 바이오로이드들 가슴도 만지는) 유흥구역도 있지만, 콘스탄챠는 저녁 늦게 일이 끝나는 근무시간을 택했다.
그녀가 돌봐야 할 이, 아니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문득, 그녀의 발걸음이 백화점의 쇼윈도 앞에서 멈추었다. 아름답게, 마치 꿈 속의 동화나라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순백의 무대가 그녀의 눈을 사로잡았다. 늘상 지나는 길이지만, 오늘만큼은 마지막 손님의 핀잔이 생각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예쁘다’
쇼윈도 안에는 그녀와 똑같이 생긴, 그러니까 콘스탄챠를 본뜬 마네킹이 새로 출시된 메이드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 밑에는 친절하게도 상품명과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다.
콘스탄챠 S2기종용 신형 여름 메이드복.
그 너머로, 백화점 안에서 즐겁게 쇼핑을 즐기는 인간들과 바이오로이드들이 보였다. 개중에는 아마도 자기네들 주인님의 명으로 쇼핑을 하러 나왔을, 혹은 자기만의 휴식시간을 맞아 좋아하는 것을 사러 나왔을, 그녀와 똑같은 콘스탄챠S2들도 있었다. 행복해 보였다. 그녀들도 그녀들만의 고충이 있겠지만, 적어도 백화점 바깥에서 그 불빛을 쐬는 것에나 만족해야 하는 자신보다는 훨씬 즐거워 보였다. 콘스탄챠는 저 안에서 빛나는 다른 콘스탄챠들의 모습과 낡고 오래된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비교해 보았다. 댈 것도 아니었다. 똑같은 콘스탄챠지만, 어쩌면 이렇게 다른 걸까.
‘이 돈이면....’
그녀는 주머니 속에서, 방금 전 손님이 주고 간 돈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오늘 다른 손님들에게서 받은 수당과, B구역 지배인이 준 돈 외에, 가외로 생긴 돈.
새 옷.가난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낡고 해져가는 메이드복이 아닌, 신형 콘스탄챠들이 입는 번듯한 새 메이드복.
가난하다고 해서 욕망이 없겠는가. 메이드라고 해서, 바이오로이드라고 해서 욕망이 없겠는가. 그녀도 깨끗하고 좋은 옷을 입고 싶었다. 저 안의 다른 콘스탄챠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싶었다. 손님도 그러라고 준 돈이지 않은가. 이 돈이면 여름 메이드복 정도는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저기 진열된 것만큼 비싼 건 아닐지라도, 그래도 꽤 번듯하고 깔끔한 걸로,
‘아니야’
잠시 생각하던 콘스탄챠는 훗, 하고 고개를 저었다. 안 되지, 안 돼. 고작 몸을 가릴 천쪼가리 좀 사자고 이 소중한 돈을 쓸 수는 없어, 하고 그녀는 스스로의 욕심을 꾸중했다. 그리고 애써 환히 빛나는 쇼윈도에서 고개를 돌려, 땅거미가 져 가는 골목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에게는, 그 귀한 돈을 써야 할 더 중요한 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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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전에 라오게에 쓴 소설인데, 유게에도 올려봄.
아주 조금 매운맛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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