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유정난 : 1453년
세조의 찬탈 : 1455년
사육신 사건, 금성대군 이유 사건 : 1456년.
김시습의 출가 : 1455년 세조의 찬탈.
정난 터지고 2년 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
당시에 정난에 비판적이었다면 사육신 사건은 적어도 1454년과 55년 사이에 앞당겨져서 터져야했음.
사육신 사건을 그린 육신전에서도 사육신이 수양대군과
그 일파를 제거하려고 마음먹은 계기도 찬탈로 나옴.
그래서 학계에선 보편적으로 태종 이래로 세종 시기까지 소수의 공신과 고위 관료가 당상관과 정승 관직을 독점했고 그로 인한 반발심 때문에 계유정난이 정당화된 것으로 보는 거임.
ㅡ중략ㅡ
이건 걍 썰이 아니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우리 역사넷에 공시된
걍 학계 정설임.
즉, 정난 자체는 당시에 반발이 거의 없었고
찬탈하면서부터 수양대군 이유에 대한 비판과
찬탈에 대한 반발이 일어난 거.
그래서 학자 가운데서는 만약 수양대군이 찬탈하지 않고
단종이 급사한다던지 그랬으면 오히려 계유정난이
왕자의 난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분들도 계시고
그리고 계유정난에 당시 신하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원인을 태종 이방원 이래로 소수의 공신 세력과 고위 관료가 관직 독점해서라고 한 것도 썰이 아니라 학계 정설임.
역시 국편위에서 제공하는 우리역사넷 참조.




(IP보기클릭)175.192.***.***
애시당초 이게 특별했던게 아닌게 강한사람이 총대매고 정국 해결했으면 한다고 암묵적으로 이런거 지지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꽤 자주보이는 현상이긴함
(IP보기클릭)14.45.***.***
조조를 바라보는 순욱같은 느낌이고만
(IP보기클릭)221.161.***.***
그래서 우리 역사넷과 학계 공식 입장도 일견 수양대군의 위세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하고 단서를 붙인 거임. 그냥 권력 장악해서 반발 못 했으면 권력의 정점인 왕이 됐으면 더 반발 못 해야지.
(IP보기클릭)221.161.***.***
정확함.
(IP보기클릭)118.39.***.***
일은 저지르고 정작 뒷수습은 개판으로 한 결과
(IP보기클릭)221.161.***.***
아니 이거랑은 크게 상관 없음. 수양대군이 실권을 모두 장악해서 반발하지 못했다.는 논리대로가면 왕이 되서도 반발하지 못 한다는 논리가 됨. 그리고 하위지 같은 경우에는 정난 직후에는 건강을 핑계대고 사직했다가 정난 이후 복직한 뒤 다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예조참판에 올라 모의를 한 거. 오히려 정난 직전에는 소극적 저항을 하다가 더 실권을 장악한 왕이 되니까 적극적인 저항을 취한 건데 그 논리로는 말이 안 되는 거. 다만 계유정난은 고위 대신을 대상으로 한 것나 고위 대신을 마음대로 숙청한 것은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 것이지만 왕에 대한 충성을 버린 것은 아니므로 처벌이 힘들지만 찬탈은 왕에 대한 충성을 져버린 것이기 때문에 명분적으로 처벌대상임. 그래서 태도가 바뀐 거.
(IP보기클릭)221.149.***.***
애초에 계유정난 부터가 조카 죽이고 왕할려고 지를거라 뒷수습을 자기 욕심 채우는 방향으로 한게 문제가 아닌것 아닌지....
(IP보기클릭)14.45.***.***
조조를 바라보는 순욱같은 느낌이고만
(IP보기클릭)221.161.***.***
정확함. | 26.02.19 01:17 | | |
(IP보기클릭)59.9.***.***
물갈이 역할만 할 줄 알았는데 아니 이놈이 왕위를! | 26.02.19 01:28 | | |
(IP보기클릭)118.32.***.***
이 꼬라지였으니까는
(IP보기클릭)221.161.***.***
아니 이거랑은 크게 상관 없음. 수양대군이 실권을 모두 장악해서 반발하지 못했다.는 논리대로가면 왕이 되서도 반발하지 못 한다는 논리가 됨. 그리고 하위지 같은 경우에는 정난 직후에는 건강을 핑계대고 사직했다가 정난 이후 복직한 뒤 다시 세조가 왕위에 오르자 예조참판에 올라 모의를 한 거. 오히려 정난 직전에는 소극적 저항을 하다가 더 실권을 장악한 왕이 되니까 적극적인 저항을 취한 건데 그 논리로는 말이 안 되는 거. 다만 계유정난은 고위 대신을 대상으로 한 것나 고위 대신을 마음대로 숙청한 것은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힌 것이지만 왕에 대한 충성을 버린 것은 아니므로 처벌이 힘들지만 찬탈은 왕에 대한 충성을 져버린 것이기 때문에 명분적으로 처벌대상임. 그래서 태도가 바뀐 거. | 26.02.19 01:27 | | |
(IP보기클릭)221.161.***.***
그래서 우리 역사넷과 학계 공식 입장도 일견 수양대군의 위세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하고 단서를 붙인 거임. 그냥 권력 장악해서 반발 못 했으면 권력의 정점인 왕이 됐으면 더 반발 못 해야지. | 26.02.19 01:29 | | |
(IP보기클릭)118.32.***.***
수양대군이 실권을 장악해도 반발 없었던게 단종이 아직 있었으니까는 저 새끼가 다 처먹었지만 설마 단종을 재끼겠냐 했겠지 근데 거기서 수양이 단종을 상왕으로 밀어버리고서 단종마저 내쳐버리니까는 | 26.02.19 01:36 | | |
(IP보기클릭)175.124.***.***
그래서 반발 할수 있는 이징옥은 바발했잖아. 뒤집어 말하면 위세가 대단한것도 있지만은 그게 이유가 다는 아니지만 그 이유도 있다는 뜻임 | 26.02.19 01:37 | | |
(IP보기클릭)221.161.***.***
밑에 이야기한 다는 아니지만 그 이유도 있다는 말이 제일 정확한 이야기라고 봄. | 26.02.19 01:42 | | |
(IP보기클릭)221.161.***.***
아 그런 의도로 이야기하신 거면 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위세가 강해서 반발하지 못했다는 의미보다도 핵심은 단종의 존재니까 찬탈 자체는 결코 정당화할 수 없음. | 26.02.19 01:44 | | |
(IP보기클릭)118.32.***.***
우리야 일어난 과거의 사건을 보니까는 이런 말 하지만 유교사회에서 삼촌이 조카를 폐위 시키고 죽일 거라고 당대의 윤리 기준으로(지금의 윤리기준으로 봐도) 누가 그렇게 생각 하겠음. 조정을 세조가 다 먹고서 단종이 상왕으로 밀려나면서 허수아비가 되고 기어이 죽이기 까지 하니까는 집헌전 학사들이 들고 일어난건지. 그래서 세조도 급하게 단종을 죽일 수 밖에 없었고. 세조는 당시 사회의 금기를 넘어버림 | 26.02.19 01:44 | | |
(IP보기클릭)175.124.***.***
그럼 니가 곡학아세했다는 말이네? 권력 장악해서 반발 못한것도 있다는 이야긴데? | 26.02.19 01:45 | | |
(IP보기클릭)221.161.***.***
아니 그건 찬탈 이후의 이야기고, 정난만 분리해서 보면 정당성이 생길 수 있다고 봐야함. 찬탈의 결과로 정난의 정당성이 날아가면서 부터는 님 견해가 100퍼센트 맞는데, 당시 사람들은 정난 당시에는 님 말대로 왕위 찬탈은 상상조차 못 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음. 그래서 정난 당시에는 나름의 정당성이 있게 된 거고. 한명회와 수양대군이 그 점을 노린 거. 하지만 결국 찬탈이란 결과로 인해 그게 날아가는 구조임. | 26.02.19 01:47 | | |
(IP보기클릭)221.161.***.***
그래서 우리 역사넷과 학계 공식 입장도 일견 수양대군의 위세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하고 단서를 붙인 거임. ㅡㅡㅡㅡㅡㅡㅡㅡ 라고 적어놔서 위세가 대단한 것도 있지만 명분상 이유가 더 크다는 건데요. 그리고 내가 주장하는 게 아니라 학계 입장인데요. 애초에 내가 이 파트 전공이 아니라서 걍 배운 거 그대로 옮기는 수준임. | 26.02.19 01:49 | | |
(IP보기클릭)175.124.***.***
결국 니가 하는게 학계의 정설이 아닌 말장난에 불과하고 곡학아세라고 할수밖에 없는게 니가 끌어온 학계의 정설이라는 우리역사넷은 왕위 찬탈에 대해 이야기한거지 정난만 떼서 일조또는 방조 암묵적 동의가 아님. 니가 좋아하는 우리역사넷에서도 '일부' 집현전 학사들이 세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하거나 세조의 행위를 묵인하고 라고 하는데 그럼 니 표현대로면 일부 라는 단서를 붙인거임 | 26.02.19 01:52 | | |
(IP보기클릭)118.32.***.***
조정을 이미 다 장악해버리고 왕을 허수아비 만든 시점부터 이미 찬탈이지 찬탈했지만 단종이 살아 있으니까는 참은거지 | 26.02.19 01:52 | | |
(IP보기클릭)221.161.***.***
그 대목을 보지말고 밑에 이걸 좀 보고 이야기를 하시죠. | 26.02.19 01:53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백배 양보해서 정난만 분리해서 정당성이 생길수 있다고 보더라도 갑자기 대신들이 자길 죽이려한다고 역으로 기습해서 쳐죽인게 무슨 정당성임? 그리고 정난, 난을 진압했다면서 본인이 군권, 인사권까지 싹 쥐어버리는데 이게 맞음? 그 당시에도 다들 알고 있었는데 너는 계엄군 돌아다니는데 계엄군 뚝배기 깨지 않았으니 다들 암묵적 동의를 했다라고 주장하는 꼴임 | 26.02.19 01:55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니 논리대로면 단종한테 찬탈할때도 암묵적으로 동의하다가 1년 뒤에서야 사육신이 단종 복위운동 했으니 다른 이유라고 하는꼴인데 뭔 | 26.02.19 01:58 | | |
(IP보기클릭)221.161.***.***
위에서 누가 언급했지만 적어도 그 당시만 해도 권신들을 마음대로 숙청해 질서를 어지럽혔지만 적어도 세종ㅡ문종 시기에 왕실의 믿을만한 어른으로 당시에는 여겨졌음. 실제로 김종서. 황보인 등이 수양대군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분경을 막으려했다가 당시에 비판 받은 것도 고려해야 함. 특히 세종대왕은 말년에 안평대군과 함께 수양대군을 지나치게 중용했고, 문종도 살아 생전에 수양대군을 여러번 비호, 두둔해서 당시에 계유정난 직전 그리고 찬탈 직전까지 그렇게 나쁘지 않았음. 당시의 관점을 고려하면 계유정난 이후에 그래도 수양대군이 찬탈까지 하겠냐가 컷음. 당장 하위지만 해도 계유정난 때 사직했다가 수양대군이 다시 부르니까 복직했는데 1년 뒤 찬탈하니까 바로 반발했고. | 26.02.19 02:00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니가 긁어온 글 밑에 있는 이부분부터 보고 이야기를 하는건 어떰? | 26.02.19 02:01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니가 좋아하는 우리역사넷에서도 계유정난을 통해 왕위에 올라서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는데? | 26.02.19 02:04 | | |
(IP보기클릭)221.161.***.***
유감이지만 찬탈은 1455년 6월 사육신이 모의를 개시한 것은 적어도 1455년 6월 당일부터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옴. 당장 육신전을 비롯해 사육신 집안 기록. 특히 박팽년 성삼문은 세조 찬탈 당일 자결하려는 박팽년을 성삼문이 말리면서 사육신의 거사가 준비를 시작했음이 나옴. | 26.02.19 02:04 | | |
(IP보기클릭)175.124.***.***
육신전을 비롯해 사육신 집안은 후대 창작이고 니가 황표정사때문에 시작했다는 계유정난이야말로 유감이지만 단종 즉위 직후부터 추진되었다는데? | 26.02.19 02:06 | | |
(IP보기클릭)221.161.***.***
그러니까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데, 정난과 찬탈을 분리해서 봐야한다는 거고, 정난의 결과를 바탕으로 '찬탈'을 했으니까 그로 인해 정난의 당위성이 날아갔다고 했는데요. | 26.02.19 02:06 | | |
(IP보기클릭)221.161.***.***
계유정난은 당연히 단종 즉위 직후부터 추진된 것으로 보는데요. 근데 수양대군이 정난 구상만 하지 실제적인 실천을 못하고 견제만 쳐맞다가 1453년(계유년) 가을 ㅡ 겨울 전에 한명회를 만나면서 구체화 ㅡ실천 구조인데요. | 26.02.19 02:09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뭘 분리해서 봄? 그럼 전에도 말했는데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도 분리해서 보면 정당성이 있는 쿠테타였던거임? 심지어 사마의는 자기가 아니라 아들이 찬탈했는데 | 26.02.19 02:10 | | |
(IP보기클릭)175.124.***.***
계유정난이 단종 즉위 직후부터 추진되었으면 너님이 말한 당위성은 날아가는거 아님? 그럼 설마 세조가 자기 야욕으로 계유정난 일으켰는데 주변에서 국정을 바로 잡으려했나보다 하고 오해해서 동의했다 뭐 이런 소리임? | 26.02.19 02:11 | | |
(IP보기클릭)221.161.***.***
그리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집필을 맡긴 역사가의 견해를 검토해서 보편적인 해석으로 올리되, 그 해석이 당연히 관계 기관의 공식 입장이 되는 건 아님. 과학 쪽도 정설. 주된 설을 이야기하되. 그것을 과학 기술부의 공식 입장입니다. 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과 같은 원리. | 26.02.19 02:14 | | |
(IP보기클릭)221.161.***.***
수양대군이 계유정난 구상했다고 떠벌리고 다녔으면 당장 잡혀 죽었고. 학자들이 추정했을 때 단종 직후 삼정승과 대립각 세우고 분경 문제로 다툰 것을 보면 단종 직후로 보는데 학자 가운데는 세종 실록의 기록을 들어 세종 말부터 계유정난과 같은 정변을 구상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분도 있음. | 26.02.19 02:17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너님이 말한대로 대다수 신하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했으면 세조를 주공에 비교해서 표창해 달라고 글 써달라니까 학사들이 죄 도망가고 남아있다 협박받아 억지로 글쓴뒤에 집에 와서 통곡함? | 26.02.19 02:18 | | |
(IP보기클릭)221.161.***.***
당장 문종 때도 수양대군이 역심 품고 있는 거 같다고 지적난 기록이 있음. 그래서 이미 문종. 세종 시기에 진작 왕이 될 계획을 세웠다고 보는 거. 근데 그 당시에 왜 계유정난 때까지 그냥 냅뒀겠음? 그만큼 철저하게 숨긴 거고 그래서 찬탈 전까진 짐작은 하더라도 다들 세종ㅡ문종 시기를 생각하면서 설마 설마했던 거고 | 26.02.19 02:19 | | |
(IP보기클릭)221.161.***.***
그래서 아까 1시간 전에 이렇게 적어놨는데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위에서 순욱의 예시를 들었지만 딱 들어맞는다고 여겨짐. 다만 유성원, 하위지 등 소극적 저항을 한 인물들은 조금 예외라고 봐야 | 26.02.19 02:20 | | |
(IP보기클릭)175.124.***.***
그럼 니가 그렇게 말하니 니가 본문에 쓴 부분 퍼온다? 애초에 계유정난이랑 찬탈이 분리가 안된다고 나왔는데? 너님은 전에 쓴 글에서도 계유정난으로 단종을 능욕한게 아니라고 하는데 영화 관상에서도 묘사되듯 계유정난으로 이미 수양대군은 조선의 왕이 된거나 마찬가지임. 괜히 단종이 김종서 쳐죽였다는 수양대군한테 살려달라고 빈게 아님. 너가 좋아하는 우리역사넷에서도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탈취한 수양대군한테 남은건 옥좌에 오르는 길 뿐이라고 나오고 그 당시 살던 사람들도 다 알고 있었음 | 26.02.19 02:22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유성원만 소극적 저항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다 도망가서 어쩔수 없이 남아있던 유성원이 독박을 쓴거잖아. 그당시 집현전 분위기가 그런 글 쓸바엔 도망간다 라는건데 너님은 지금까지 집현전 학사들 대부분이 동의했다는데 현실은 아니란거잖아? 그런데 혓바닥이 왤케 김? | 26.02.19 02:25 | | |
(IP보기클릭)175.124.***.***
왜 예외겠냐? 바른말 하면 다 죽이는데 ㅅㅂ 왜 영의정일땐 가만있다가 왕되니까 딴 마음 품음? 소리가 나옴? 심지어 계유정난 당시 이미 왕이나 다름 없는 상태였다니까? 자기 맘대로 하는데 이름만 왕이 아니지 왕이나 다름없지. 그리고 계속 묻는데 그럼 너님 주장대로면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 일으켰어도 왕이 안됐으니까 딴 마음 품은거 아니라는 소리란 동급인데 이건 끝까지 대답 못하네?? | 26.02.19 02:31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네가 다 문제인데 제일 큰 문제가 현상을 보고 논리를 수정하는게 아니라 논리를 세워놓고 현실을 수정하려하니까 오류가 생기는거야. 정난 이후와 찬탈 이후나 세조의 실권은 큰 차이가 없고 단지 이제 세조를 반대하는 쪽에서 명분이 더 크냐 작냐 그 차이인데 너는 단지 그건 이해못하고 정난 직후엔 가만 있는거 보니 다 동의한거 아님? 소리 하니까 지금 계속 찐빠가 나는거 | 26.02.19 02:47 | | |
(IP보기클릭)221.161.***.***
답을 찾아왔네 허후가 지목한 건 조정의 원로 대신임. 계유정난 당시의 대상이 원로 대신으로 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으로 많이 쓰이는 거임. 그게 아니면 왕위 찬탈을 이야기했겠지. 그래서 수양대군이 처음에 죽이지 않았던 거고. | 26.02.19 03:16 | | |
(IP보기클릭)221.161.***.***
찐빠는 님이 혼자 내고 있는 거고 어째 찾아와도 계유정난 당시부터 이미 수양대군이 역심을 품었다는 기록들도 있는데 굳이 원로대신들만 표적이었다는 기록을 찾아옴. | 26.02.19 03:18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처음에 안죽인게 허후가 자기편인줄 알아서 그랬다는 기록인데 뭔 원로 대신이라 그래요. 원로대신을 계유정난 당시 쳐죽인건 본인이 왕위를 장악하려 그런거고요. 뭔 단적으로 보여주는 기록이야;; | 26.02.19 03:19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네가 계유정난 직후 반발이 없었다라고 하기에 반발하니까 쳐죽이는 기록을 가져왔는데 그 대목은 쏙 빼놓고 이건 원로대신들이 표적이었다는 증거임. 하고 있냐 | 26.02.19 03:21 | | |
(IP보기클릭)175.124.***.***
깝깝하다 진짜 너 -> 계유정난 이후 반발이 없었음 나 -> 계유정난 이후 허후가 "이 사람들이 뭔죄냐" 하니까 세조가 쳐죽이는데 어떻게 반발함? 너 -> 허후가 말한 '이 사람'은 원로 대신들이다. 왕위 찬탈이 목적이 아니라는 증거다 나 : ????? | 26.02.19 03:22 | | |
(IP보기클릭)221.161.***.***
? 왕위 찬탈이 목적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한 적이 없는데 또 상상력 발휘하네 계유정난의 타겟이 원로대신이라고만 말했는데 왜 자꾸 혼자 상상력 발휘함? | 26.02.19 03:25 | | |
(IP보기클릭)221.161.***.***
애초에 계유정난에서 한명회, 수양대군, 권람은 철저히 원로대신만 타겟으로 한다고 당사자들이 밝혔고, 허후 역시 수양대군의 역심. 또는 왕위 찬탈 의사를 지적하지 않고 원로대신들의 부당한 죽음에 항의한 건데 왜 자꾸 혼자 상상의 날개를 덧붙임? | 26.02.19 03:27 | | |
(IP보기클릭)221.161.***.***
그리고 진짜로 수양, 안평대군을 의심한 최초 기록은 문종 때 등장하지만 문종이 수양은 충직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다고 고함쳐서 찍어누른 사례를 이야기를 많이 함. 그냥 충직하다고만 하면 되는데 굳이 두 마음을 언급한 문종의 의도가 의문스러우니까. 갖고 올거면 이걸 차라리 갖고 와야지. | 26.02.19 03:29 | | |
(IP보기클릭)175.124.***.***
원로대신들 쳐죽이고 형제인 안평대군을 축출하는게 왕위 찬탈의사고 거기에 대해 항의한게 왕위 찬탈에 대해 항거한거지 그게 다름? 선황제의 고명대신인 사마의가 멋대로 국사를 농간하는 조상일파를 단죄한거랑 선왕이 아끼던 수양대군이 고명대신을 쳐죽인거랑 다름? | 26.02.19 03:31 | | |
(IP보기클릭)221.161.***.***
그리고 오히려 계유정난 때 원로대신만 제거해서 소장파 관료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실권 장악 및 왕위 찬탈로 이어졌기 때문에 계유정난이 교묘한 쿠데타라고 평가받는 거고. 애초에 처음부터 단종 대상으로 시작했으면 실패였음. 당장 거사 당일 기록에서도 권람을 비롯해서 모든 인물들이 실패할 거 같으니 미루자고 하는 이유가 뭐겠음. 지들도 준비가 부실하기 때문에 상대 측에서 이건 대신들이 목표가 아니라 왕을 대상으로 한 반란이라고 엎어버리면 끝장나기 때문인거고. 그래서 대신들만 제거할 수 있을 때가지금뿐인데 무슨 소리하냐면서 수양대군이 밀어붙인 거. 만약 권람 등이 말한대로 하루라도 늦췄으면 왕의 허락없이 사병을 조직한 그 자체로 역모임. | 26.02.19 03:34 | | |
(IP보기클릭)221.161.***.***
거 기록 안 본 거 너무 티내지 마시고. 당시 신하들은 안평대군을 위험하게 봤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지금 안평 대군(安平大君)은 많은 추종(騶從)1412) 을 거느리고 충청도 보은현(報恩縣)의 복천사(福泉寺)에 가서 폐를 일으키는 일이 많으며, 또 향연(享宴)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 26.02.19 03:36 | | |
(IP보기클릭)221.161.***.***
임금이 노하여 말하기를, "추종자(騶從者)가 얼마인가? 그 분수에 지나쳤는가? 향연을 받았다니 사실 그러한가? 어디에서 향연을 하였는가?" 하고 두세 번 힐문(詰問)하니, 조원희가 의위(依違)1413) 하면서 대답하기를, "추종자의 숫자는 자세하게 알 수 없지만, 민간(民間)에서 모두 말하기를, ‘많이 데리고 갔다.’ 합니다. 또 남의 궤향(饋餉)을 받는 것도 옳지 않으니, 감사(監司)와 수령(守令)으로 어찌 와서 궤향하는 자가 없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수양(首陽)이 가쇄(枷鎖)를 풀어 준 것이 어찌 큰 불법(不法)이겠느냐? 칼을 풀어 준 이튿날 즉시 와서 아뢰기를, ‘무슨 뜻이 있어서 풀어 준 것이 아니고 길에서 칼을 쓴 중을 만나자 불쌍하여 풀어 준 것뿐입니다.’ 하였으니, 어찌 큰 일이라고 하겠는가? 안평이 복천사(福泉寺)에 가겠다고 나에게 청하였으므로 내가 그것을 허락하였고, | 26.02.19 03:37 | | |
(IP보기클릭)175.124.***.***
ㅇㅇ 왕자의 난 당시 이방과를 더 위험하게 보고 계유정난 당시 안평대군을 더 위험하게 본것도 암. 근데 고명대신들을 한밤중에 쳐죽이고 안평대군을 축출한 시점에서 자기 야욕을 다 까발린거고 이미 정권 다 장악해서 어쩔수 없는 상태라 이에 반발한 사람은 다 죽었거나 반발해서 죽었는데 반발 안한사람들은 다 암묵적 동의라고 하니 거기에 대한 반박이지 | 26.02.19 03:39 | | |
(IP보기클릭)221.161.***.***
후대에 와서야 수양대군이 당시에 의도적으로 몸을 사리고 자기 생각을 숨겼구나! 안평대군이 눈치 진짜 없었네 인거지. 당시에는 자기 세력 잔뜩 모아서 잔치 열고 향연을 받는 안평이 위험하게 보일 수 밖에 없었음. 다만 문종은 이 시기부터 수양 대군을 의심한 것으로 보는데 안평대군은 지적하지 않고 수양대군만 콕 찝어서 이야기하기 때문.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수양은 충직(忠直)하여 다른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항상 중을 접대할 때에는 나에게 청하였고, 내가 허락하면 주었다. 중이 형(刑)을 받는 것을 보자, 불쌍히 여겨 풀어 주었다. 만약 아뢴 뒤에 풀어 주었다면 좋겠지만, 그러나 이튿날 와서 아뢰었으니 또한 큰 과실은 아니었다. 수양과 안평은 바야흐로 국상[國恤]에 있어서 슬픔을 펼 곳이 없으므로 불도(佛道)에 의지하는데, 내가 어찌 강제로 금지하겠느냐?" | 26.02.19 03:41 | | |
(IP보기클릭)175.124.***.***
밑에서는 수양은 비호한다더니 이제는 의심한다고 허냐.. 그리고 이 대목에서는 안평대군 뿐만 아니라 수양대군도 함께 싸잡아서 고하는거잖아.. 너야말로 기록 발췌하지 말라니까 | 26.02.19 03:46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니가 말했듯이 임금의 허락없이 사병을 조직하고 고명대신들을 쳐죽이는데 이게 역모가 아니고 진짜 정난이냐 이미 반대할 사람들은 다 살생부 그으면서 제거하고 그 뒤에도 반발하면 제거하니까 누가 말을 못한건데 그거 가지고 그 당시에는 반발 안했으니 정당성이 있었다 다들 믿었다 하면 말이 안된다고 줄기차게 이야기했잖아. 단종한테 양위 받기전부터 이미 찬탈된 상태다 그 말이었고 몇번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이성계도 위화도 회군한 시점에서 역성혁명은 이뤄졌다고 보는것처럼 | 26.02.19 03:48 | | |
(IP보기클릭)175.124.***.***
네가 왕자의 난이랑 계유정난이랑 비교해서 보는걸 좋아하니까 그럼 그걸로 들면 왕자의 난 성공한 시점에서 이미 이방원이 태종이 되는건 막을수 없는 수순이었잖아. 그런데 계유정난 당시 세조는 2차 왕자의 난은 커녕 태클걸 아버지도 없는 상태라서 이미 왕이나 다름없었고 찬탈을 했다 그말임 | 26.02.19 03:50 | | |
(IP보기클릭)211.212.***.***
(IP보기클릭)175.192.***.***
애시당초 이게 특별했던게 아닌게 강한사람이 총대매고 정국 해결했으면 한다고 암묵적으로 이런거 지지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꽤 자주보이는 현상이긴함
(IP보기클릭)221.161.***.***
위에서 순욱의 예시를 들었지만 딱 들어맞는다고 여겨짐. 다만 유성원, 하위지 등 소극적 저항을 한 인물들은 조금 예외라고 봐야 | 26.02.19 01:30 | | |
(IP보기클릭)118.39.***.***
일은 저지르고 정작 뒷수습은 개판으로 한 결과
(IP보기클릭)221.161.***.***
뒷수습을 자기 욕심 채우는 방향으로 했으니까 | 26.02.19 01:27 | | |
(IP보기클릭)112.152.***.***
(IP보기클릭)221.161.***.***
인사 싹 엎자> ㅇㅇ불만 없음 이긴한데 님이? 니가요? 굳이? 라는 반응도 있긴했음. 다만 그 뒤 결론이 에휴 ㅅㅂ 그래 잘하면 되겠ㅈ..는 이 새끼가 미쳤냐!가 된거라고 보는 게 좀 더 정확할 듯. | 26.02.19 01:33 | | |
(IP보기클릭)221.149.***.***
애초에 계유정난 부터가 조카 죽이고 왕할려고 지를거라 뒷수습을 자기 욕심 채우는 방향으로 한게 문제가 아닌것 아닌지....
(IP보기클릭)221.161.***.***
그래서 정난이랑 찬탈을 좀 따로 봐야하는 부분이 생김. 정난 당시에는 찬탈이 전제되지 않아서 정당성이 있었던 셈인데, 찬탈이란 결과가 생기면서 정난의 정당성도 날아간 거라. | 26.02.19 01:45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그렇게 정당성이 있었으면 자기랑 동조한 동조자들만 공신으로 쳐줘야지. 자기가 쳐죽이지않고 회유하려한 사람들한테까지 공신 자리 뿌리고 그거 거절하니 닥치고 받으라고 하는게 설명이 됨? | 26.02.19 01:46 | | |
(IP보기클릭)221.161.***.***
그거 비판하게 되면 대부분의 공신들이 까이는데요. 애초에 공신 책봉할 때는 관계없는 사람까지 끌어당기는 경우는 자주 있고 그게 역사적으로 가장 크게 터진 게 기묘사화임. 위훈삭제. | 26.02.19 01:51 | | |
(IP보기클릭)175.124.***.***
그래서 성삼문이 자기는 참여 안했다고 발뺌하는것도 너님이 말하는 암묵적인 동의임? 그리고 닥치고 그냥 받으라는것도 다른 공신책봉할때도 나옴? | 26.02.19 01:53 | | |
(IP보기클릭)221.149.***.***
애초에 찬탈이 전제되지 않았다고 봐야 할 이유가 있나? 찬탈이 전제되었다고 어디 써놓았거나 하진 않았을거라서. 정당성이야 반란한 애들이 다 어서 찾잖아. 영포시절에야 왕한번 해보고 싶었다로 지를 수 있었지만 수양은 한참 후대라서. | 26.02.19 02:21 | | |
(IP보기클릭)221.161.***.***
다른 공신 책봉에서도 자주 터지는 일이고 그게 극단적으로 표출된 게 기묘사화ㅡ위훈삭제임. | 26.02.19 02:25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그래서 다른 공신 책봉때도 부끄러워서 밥맛을 잃었으며 연회를 홀로 열지 아니하였다고 나오냐고? | 26.02.19 02:27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기묘사화-위훈삭제는 조광조가 허위로 기재된 공신이 너무 많다고 삭제한거고 성삼문은 공신으로 책봉된 본인이 거절한건데 뭘 같은 수순에 놓고 비교함????? | 26.02.19 02:28 | | |
(IP보기클릭)221.161.***.***
그야 세종, 문종 때 이미지+ 세종과 문종이 계속 중용했던 이미지가 컷으니까 적어도 아버지와 형의 은혜를 안다면 그러겠냐는 은혜를 전혀 모르는 위인이었지. | 26.02.19 02:29 | | |
(IP보기클릭)221.161.***.***
닥치고 그냥 받으라는것도 다른 공신책봉할때도 나옴? ㅡㅡㅡㅡㅡㅡ 라고 해서 다른 공식 책봉할 때도 있다고 한 거고. | 26.02.19 02:30 | | |
(IP보기클릭)175.124.***.***
뭔 소리야? 내 글 똑바로 읽은거 맞음? 내가 물었던건 본인이 거절하는데 닥치고 그냥 받으라고 하는게 다른 공신책봉때도 나오냐고 물은거잖아. 자꾸 지 유리한 쪽으로만 대답하네? | 26.02.19 02:33 | | |
(IP보기클릭)221.161.***.***
공신 책봉을 사양한 사례도 많음. 당장 유성룡, 이항복 등도 공신 사양했고, 억지로 공신 책봉되거나 사양한 사례 자체는 얼마든지 있음. | 26.02.19 02:34 | | |
(IP보기클릭)221.149.***.***
아니 단종 즉위 전부터 한명회니랑 모의하고, 사람키우고 하던거 보면 본인은 계유정난 전부터 왕 해보고 싶었고 계유정난이 왕이 되는 과정중에서도 중요한 절차였다고 봐야 하는거 아닌감. 이미지야 사서 쓰면서 그랬다고 적으면 되는거고.... | 26.02.19 02:35 | | |
(IP보기클릭)175.124.***.***
그러니까 그게 공신 책봉에 하자가 있다고 불만 표출한거잖아. 그런데 그게 암묵적 동의냐 그말인데 너는 앵무새같이 집현전 학자들은 다 동의했고 일부 예외 사례가 있다라고 주장하는거잖아 | 26.02.19 02:39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그게 분리가 안되는거라니까 그럼 고평릉 사변도 사마씨의 찬탈이랑 따로 봐야하는건데? 그럼 사마씨는 아예 쿠테타-찬탈을 따로따로 했으니 따로 봐서 사마의는 정당성 있는 충신이라 고평릉 사변을 일으킨 거임? | 26.02.19 02:41 | | |
(IP보기클릭)221.161.***.***
. 심희수가 처음에는 최유원의 말을 믿어 삼사의 계문에 참여하였고 또 국문에 참여한 공로로 여러 대신과【이원익·이덕형·이항복·이산해·윤승훈·기자헌. 】 함께 2등에 녹훈되었다. 희수가 그것을 부끄러워하여 사양하였으나 면하지 못하였으므로 계사나 차자가 아니면 공신 호칭을 쓰지 않았다. | 26.02.19 02:46 | | |
(IP보기클릭)175.124.***.***
찾느라 고생 많았는데 그래서 그게 암묵적 동의냐고 정당성이 있는 공신이었냐고 그 말인데 진짜 찾고 있네 진짜 코미디다. 위에댓 여러개 달고 있으니까 그거나 대답해라 | 26.02.19 02:49 | | |
(IP보기클릭)221.161.***.***
자꾸 사례에 안 맞는 거 가져와서 등식화하니까 문제인데 당시 사마의에 대한 인식과 찬탈 직전의 수양대군의 인식 차이가 커서 당시를 기준으로 두 사건을 동일선상에 둘 수가 없음. 당장 일개 고위 관료가 왕실의 친인척을 제거한 것과 태상왕과 상왕의 총애를 받던 왕족이 대신을 제거한 걸 동일선상에 둘 수 있음? | 26.02.19 02:50 | | |
(IP보기클릭)221.161.***.***
아니 뭐 증거나 기록. 학설도 하나도 제시 못하고 자꾸 자기 상상만 나열하는데 그 상상에 무슨 답이 필요함? 자기가 이미 결론 내리고 근거도 없이 이야기하는데 | 26.02.19 02:51 | | |
(IP보기클릭)221.161.***.***
억지로 공신이 되서 암묵적으로 동의하게 된 건 인조반정만 찾아도 수두룩하고 인조반정도 당시에 정당성 논란이 있었고 계속 이야기하지만 그게 극단적으로 표출된 게 기묘사화라니까 극단적이란 말의 의미를 좀 알았으면 하는데 | 26.02.19 02:53 | | |
(IP보기클릭)175.124.***.***
내가 할말을 대신하고 있네. 내가 기록가져와서 일부 사례가 아닌데요? 하니까 하나도 제시못하고 상상만 나열한다고 하면 내가 수양대군을 잡아와야함? | 26.02.19 02:54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억지로 공신이 된게 암묵적인 동의가 아니라고 하는데 무슨 너는 억지로 공신이 되면 암묵적인 동의다 라고 하냐? | 26.02.19 02:55 | | |
(IP보기클릭)221.161.***.***
당장 수양대군에 대한 당시 인식이 어땠는지 보여주면 세종 28년 10월 4일 무술 3/3 기사에서 세종이 신하를 힐책하는데 세자도 아니고 승지도 아닌 수양대군 시켜서 우참찬 정갑손을 힐책하는 상황임. 세종이 총애하고 문종이 비호하는 수양대군이랑 당시에 이미 조온나게 의심스러운 사마의하고 이걸 동일 선상에 둔다고? | 26.02.19 02:57 | | |
(IP보기클릭)175.124.***.***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정난을 따로본다한들 대신이 정사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고 한밤중에 찾아가서 몰래 쳐죽이고 남아있는 대신들 밤중에 불러들여 살생부 명단대로 쳐죽이는게 무슨 정당성이 있다는거임? 아무튼 글쓴 유성원만 소극적 저항이고 예외다? | 26.02.19 02:58 | | |
(IP보기클릭)221.161.***.***
왜냐하면 진짜로 그 사안에 동의 안하는 신하들은 공신 자체를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사직하는 경우가 '보통'이었기 때문. 그래서 아까 언급한 심희수도 계사나 차자가 아니면 일체 공신 언급도 안 한거고 공신록도 거부한 거고. | 26.02.19 02:59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정난이랑 찬탈을 따로 보자는 사람이 사건이랑 사건 행위자는 따로 안보고 이걸 동일선상에 두냐고 하고 있네 | 26.02.19 03:00 | | |
(IP보기클릭)221.161.***.***
위에서 하위지도 언급했는데? 이쪽도 사직함. 근데 1년 뒤에 수양대군의 요청으로 복직했는데 수양대군이 찬탈한 1455년에는 그 동안 거절하던 승진을 갑자기 받아들여 이상했는데, 바로 다음 해에 사육신 사건이 터지면서 갑자기 승진 받아들인 이유가 드러났고. | 26.02.19 03:01 | | |
(IP보기클릭)221.161.***.***
사건 행위자가 당시 이미지가 다르니 당시 사람들이 사건을 보는 인식도 다르지. 사마의는 처음부터 찬탈이 의심되는 거고 수양대군은 설마 찬탈을 하겠냐 인거고. | 26.02.19 03:02 | | |
(IP보기클릭)175.124.***.***
도망친 집현전 학사들은 이름이 안나왔으니까 암묵적 동의다? 아무튼 우리역사넷에서 집현전 학사들이 동의했다고 나와있으니까 그게 학계의 정설이다? | 26.02.19 03:02 | | |
(IP보기클릭)221.161.***.***
나는 계속 실록에서 찾아오고 년도 찾아오는데 님은 뭐 공식 기록은 둘째치고 어디 언론 기사나 학자 의견서. 학술서라도 갖고 온게 있음?, | 26.02.19 03:03 | | |
(IP보기클릭)175.124.***.***
사마의가 처음부터 찬탈이 의심되긴? 집현전 학사들이 동의했냐 안했냐는 학계에서 왈가왈부하는데 사마의의 고평릉 사변당시 사마의 역심을 눈치 못채고 조상일파에게 사마의가 맹세를 했다며 설득하던 대신들도 있었는데 | 26.02.19 03:04 | | |
(IP보기클릭)175.124.***.***
위에 다 캡쳐해놨잖아? 지금까지 뭐봄? 내 댓글 제대로 읽긴 한거임? | 26.02.19 03:06 | | |
(IP보기클릭)221.161.***.***
그리고 기록 안 보는 거 그만 좀 티냈으면 하는게 신숙주. 정인지. 최항. 권람은 아예 계유정난에 적극 가담한 인물인데 전부 집현전 학사 ㅡ 직제학임. 이 사람들은 계유정난에 참여했으니까 집현전 학사가 아님? | 26.02.19 03:07 | | |
(IP보기클릭)221.161.***.***
내가 갖고 온 거 그대로 써먹고 있는게 태반인데 무슨. | 26.02.19 03:08 | | |
(IP보기클릭)175.124.***.***
그러니까 신숙주 정인지 최항 권람같은 집현전 학사가 참여했다고 대다수 집현전 학사가 동의했다고 할수 없다 그말인데 아직까지 이해 못함? 너님 말대로면 성삼문, 유성원, 하위지는 집현전 학사가 아님? | 26.02.19 03:09 | | |
(IP보기클릭)175.124.***.***
아니 원래 반박할때 같은거 들고오는게 당연하지 심지어 너는 너한테 유리한거만 잘라오니 그런건데 맘에 안듬? 내가 뭘 어떡해야함? | 26.02.19 03:10 | | |
(IP보기클릭)221.161.***.***
괜히 신숙주. 최항. 정인지 등이 두고 두고 까이는게 아님. 집현전 학사 출신인데도 계유정난만 지지한 게 아니라 찬탈까지 지지했으니까. | 26.02.19 03:10 | | |
(IP보기클릭)175.124.***.***
처음으로 공통점 찾았네 | 26.02.19 03:1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