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순신 하옥 사건의 핵심 인물을 꼽으라면
선조와 원균
두 명의 이해관계 일치인데 마치 선조가 전적으로 이순심을 의심해서
원균을 채용했다는 논리로 귀결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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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이덕형(李德馨)의 장계에,
"이순신(李舜臣)의 사람됨을 신이 직접 확인해 본 적이 없었고 한 차례 서신을 통한 적 밖에 없었으므로 그가 어떠한 인물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전일에 원균(元均)이 그의 처사가 옳지 못하다고 한 말만 듣고, 그는 재간(才幹)은 있어도 진실성과 용감성은 남보다 못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신이 본도에 들어가 해변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가 그를 칭찬하며 한없이 아끼고 추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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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미 조정 대신들에게 원균의 전방위적인 로비가 있었음은 한음 이덕형이 대놓고 발언한 적이 있음.
물론 여기서 지나치게 원균이 로비한 것 때문에 선조가 넘어갔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도 문제고
그리고 선조가 과연 이순신을 죽이려고 했는가? 에 대한 해답은 정말 간단하게 나오는데
신각, 김덕령의 사례처럼 선조는 진짜 의심하면 사람을 죽이고 일을 시작하는 기질이 강했고
역모라고 하면 15세 이하와 70세 이상에게는 형신을 가하지 않는다는 국법도 ㅈ까고 7세 아동과 80세 노인을 쳐 죽이는 위인인데
이순신이 진짜로 역모를 꾀했다고 생각했다면 ?
그리고 그 필멸의 원균 드라마에서 이순신에게 무슨 초기 기독교도들이나 당하던 고문을 묘사해 놓은 거 가지고
오해를 하는데 고신이 한 차례 이상은 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음.
왜냐하면 이덕형은 자기 문집에서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 라고 이야기하고 정탁은 신구차에서 "장수의 몸이 상해선 안된다."
의 논리를 제시해서 아 고문이 존나 심하게 가해졌구나! 로 이해하기 쉬운데
정작 난중일기를 보면
난중일기에 의하면 출옥한 4월 1일에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 다음,
이틀 뒤인 4월 3일에 말을 타고 출발해 다음 날인 4일에 수원, 다다음 날인 5일 아침에 아산에 도착한다.
도성에서 아산까지는 직선 거리로도 90km 가까이 되고 길을 따라갔다면 못해도 이틀간은 110km는 말타고 달렸다는 말인데,
진짜 심한 고문을 받았으면 아무리 인자강이라고 해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임.
그리고 관직을 뺏고 고문하는 게 무슨 경고성 조치냐고 하는데....
그 이순신은 관직 생활 초기에도 녹둔도 전투에서 허벅지에 화살이 박히는 중상을 당하고도
고신을 받고 억울하게 백의종군한 사례가 이미 있음(..)
놀랍게도 저 정도면 진짜 경고성 조치가 맞음.
(...)
아무튼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순신의 하옥은 선조가 과도하게 역모를 의심한 것도 아니고
원균의 로비 + 선조의 이해관계 + 대신들의 동조 = 이순신 하옥 ㄱㄱ 의 결론이지
무슨 선조가 와 시 우리 선조님도 저렇게 해서 왕조 세웠는데? 혹시? 같은 발상으로 저지른 건 아니라는 거임.
특히 그놈의 필멸의 원균 드라마보고
" 아 ! 이순신이 독자적으로 무관을 뽑고 하니까 선조가 분노했구나! " 하는데
선조가 이미 허가했고, 이순신이 독자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효순이 파견되서
군사를 뽑은거지 장교를 뽑은 것도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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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처럼 고문을 했으면 바로 죽었음.... | 24.05.26 14:48 | | |